0레벨 플레이어
이변
강현수는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평화롭게 시간이 흘러갔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한 번.
북한 평안남도에서 한 번.
연속된 두 번의 갑작스러운 차원 게이트 오픈 이후.
세 번째 네 번째 차원 게이트가 오픈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석 달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좋네.’
소환수의 숫자가 5천 기를 돌파했다.
강현수의 소환수가 늘어갈수록 사냥 시간은 짧아졌고.
레벨 업 속도가 빠르게 상승했다.
원정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나 강현아와 형 강현우 역시 플레이어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송하나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송하나는 강현수의 버프를 받은 이후.
그간의 경험을 살려 빠른 속도로 레벨과 스킬 랭크를 높여 나갔고.
아틀란티스에서처럼 수많은 업적을 쓸어 담았다.
강현수는 평소와 다름없이 외출 준비를 했다.
그때.
“하루 정도는 좀 쉬어라.”
어머니가 강현수에게 말했다.
“어, 전 충분히 쉬고 있는데요?”
“아침이랑 저녁만 빼면 매일매일 사냥을 나가잖니.”
그건 그랬다.
아틀란티스에서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강현수는 쉼 없이 사냥에 매달렸다.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후 사냥을 나가고.
저녁에 돌아와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후 야간 사냥에 나선다.
수면은 하루에 3시간 정도면 충분했고.
강현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항상 사냥에 매진했다.
“어…….”
강현수의 기준으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거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틀란티스에 있을 때랑 별로 다른 게 없네.’
어떻게 생각하면 던전의 존재 때문에 사냥 시간이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했다.
야간 사냥 시간이 제법 길었으니까.
‘내가 너무 조급했나.’
강현수는 강하다.
그러나 아틀란티스 차원에 있을 때보다는 약했다.
소환수도 다 복구하지 못했고.
그건 누적 스텟도 마찬가지였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회귀 전과 회귀 후를 통틀어.
여유로운 삶을 즐겨 본 기억이 없는 것 같기는 했다.
지구로 귀환을 했고.
가족들을 만났다.
‘목적은 다 이뤘지.’
지구에 차원 게이트가 열린 건 충격적이었지만.
지금처럼 조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겠지.’
지구의 무력은 아틀란티스와는 비교 불가 수준으로 뛰어났고.
플레이어들의 성장 속도 역시 엄청났으며.
아틀란티스에서 귀환한 귀환자들이었었고.
결정적으로 강현수라는 이레귤러가 존재했으니까.
“그냥 엄마가 걱정이 돼서 그래.”
어머니의 말에 강현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노는 방법을 잊어버린 건가?’
지구에 오면?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TV도 보고 신나게 놀 생각이었는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지구의 던전이나 플레이어에 관한 자료 조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인터넷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뭐,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지구 시간으로는 10년이었지만.
회귀자인 강현수의 기억으로는 60년도 더 전의 옛날 일이었다.
“그러게요. 좀 쉬엄쉬엄해야겠네요.”
강현수가 어머니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뭘 하면서 놀아야 할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오늘 하나한테 같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해라.”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고.
“하나가 좋아할까요?”
“좋아할걸.”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셨다.
‘그러고 보니.’
보니 강현수뿐만 아니라.
송하나 역시 지구로 귀환했음에도 아틀란티스 차원에서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한번 물어볼게요.”
강현수가 아침을 함께 먹은 뒤 집으로 돌아간 송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늘 같이 영화 보러 갈래?”
강현수의 물음에.
-좋아.
송하나가 콜을 외쳤다.
‘사냥해야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송하나는 강현수 못지않은 사냥광이었다.
약속을 잡았고.
강현수와 송하나는 평상복 차림으로 만나 영화관으로 향했다.
‘뭔가 어색한데.’
오랜 시간을 송하나와 함께했지만.
데이트를 한 적은 없었다.
강현수와 송하나는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는 정석적인 데이트 코스를 밟았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서히 날이 저물었고.
‘종종 이렇게 쉬는 것도 나쁘지 않네.’
강현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집에 돌아가서 함께 저녁을 먹을까.
송하나와 외식을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허공에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강현수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건 송하나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차원 게이트 하나 등장하는 거였다면?
표정이 굳어질 필요도 없었다.
가볍게 정리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허공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무려 10개가 넘었다.
“이런 경우가 있었나?”
강현수가 물었고.
“내가 알기로는 없어.”
송하나가 대답했다.
5년 전 차원 게이트가 열렸던 대격변 이후.
한 지역에서 두 개 이상의 차원 게이트가 열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확히 13개였다.
“느긋하게 쉴 팔자는 아닌가 보네.”
강현수가 중얼거렸고.
송하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파지지직!
13개의 차원 게이트가 열렸고.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강현수가 몸을 날리며.
소환수들을 소환했다.
아무리 강현수라고 해도 몸은 한 개다.
13개의 차원 게이트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혼자서 모든 차원 게이트를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소환수가 많이 불어나서 다행이네.’
강현수는 인간형 소환수들을 다수 소환했고.
갑옷으로 완전 무장을 한 인간형 소환수들은?
플레이어들과 외형적인 차이가 없었다.
“크아아앙!”
몬스터들의 레벨은 꽤 높았다.
‘이걸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고레벨 던전이 늘어나면?
강현수의 사냥 속도가 빨라진다.
그렇지만.
차원 게이트가 이렇게 급속도로 늘어나는 현상은?
‘그다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지.’
강현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검을 휘둘렀고.
핏빛 오러가 그물처럼 펼쳐지며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소환수들 역시 무시무시한 속도로 몬스터들을 학살했고.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후략……
그 대가로 레벨이 미친 듯이 상승했다.
강현수와 소환수들은 가볍게 13개의 차원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을 쓸어버렸고.
송하나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간 많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너무 짧았고.
고레벨 몬스터들을 사냥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강현수가 소환수들과 함께 차분히 몬스터들을 쓸어내고 있는 사이.
일반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다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일제히 스마트폰을 들어 강현수와 소환수들이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모습을 촬영했다.
‘겁도 없네.’
눈앞에서 몬스터가 날뛰고 있는데 그걸 찍을 생각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너무 많았다.
강현수는 후드를 눌러 쓰고 얼굴을 가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소환수들을 찍느라 스마트폰 카메라 세례가 분산되었다는 점이었다.
잠시 후.
차원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서둘러!”
“근데 저 사람들은 누구야?”
협회 소속 플레이어들이 합류했다.
강현수는 자리를 피했고.
“잘 막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디 길드 소속입니까?”
그 후 협회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질문 세례를 당하고 있는 소환수들의 소환을 모두 해제하자.
강현수의 소환수들이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뭐야? 갑자기 어디 간 거야?”
“은신 스킬 아니야?”
“저 많은 사람들이 다 은신 스킬을 익혔다고?”
“그런데 왜 사라진 거야? 포상 두둑하게 나올 텐데?”
협회 소속 플레이어들은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건 강현수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 * *
차원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고 집으로 향하는 강현수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이유지?’
하나씩 두 번 나왔던 차원 게이트가 이번에는 무려 13개나 나왔다.
그나마 강현수 근처에서만 터져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걸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나?’
비정상적인 흐름에 자주 발생한다는 건 아주 좋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강현수의 가족이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지구였다.
그때.
“현수야. 이것 좀 봐.”
송하나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어?”
스마트폰 기사를 본 강현수가 화들짝 놀랐다.
“한국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어?”
중국에서 10개 내외의 차원 게이트가 베이징, 선양, 창춘, 하얼빈 등등의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중국만이 아니었다.
러시아, 일본, 몽골, 대만에서도 여러 개의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고 한다.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동아시아에 존재하는 5개국에서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다.
“난리가 났네.”
한국에서 나타난 차원 게이트는 강현수가 훌륭하게 틀어막았지만.
불행하게도 타국은 그러지 못했다.
특히 땅덩어리가 넓은 중국과 러시아 같은 나라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재앙이었다.
북한 소식은 알 수 없지만.
한국은 서울에서만 13개의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가장 국토가 넓은 러시아의 경우는.
무려 10개 내외의 차원 게이트가 20개가 넘는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일본에서는 10개 내외의 차원 게이트가 10개 넘게 발생했고.
몽골과 대만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으로 10개 내외의 차원 게이트가 한 곳에서만 발생했으며 손쉽게 진압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저게 지금 파악된 수치라는 거고.
어쩌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범위 역시 지금은 동아시아지만.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었다.
‘대대적인 침공이 시작된 건가.’
아틀란티스에서는 독충 군단의 침공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건 기존의 차원 게이트에서 발생한 일이었고.
지금은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등장한 거였다.
‘이거 인류가 감당이 가능한가?’
지금 당장은 가능하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몇백 개에 달하는 고레벨 차원 게이트가 동시에 생겨나면?
현재 지구의 인류는 지금의 고레벨 차원 게이트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번 사건을 조기 진압하지 못한다면?
지구에게 있어 아틀란티스에서의 독충 군단 침공보다 더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움직이자.’
강현수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국경을 넘어 가장 가깝고 또 많은 차원 게이트가 발생한 러시아로 향했다.
강현수는 북한 영토에 진입한 순간 와이번 소환수의 등에 올라타고 하늘을 날았다.
속도는 마룡보다 느렸지만.
지금은 이 정도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숫자의 차원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상황이다.
와이번의 등장은?
당장 피해만 없다면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마룡은?
그럴 수가 없다.
강현수는 인터넷 기사를 통해 확보한 장소로 이동하는 와중에.
‘북한에도 열렸었네.’
북한에 열린 차원 게이트 하나를 발견했다.
인적이 없는 곳이기도 했고.
북한의 차원 게이트 능력이 워낙 바닥인 탓에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진짜 멍청한 놈들이네.’
강현수가 와이번의 등에 탄 상태에서 검을 휘둘렀고.
꽈아아아앙!
차원 게이트 근처에 있던 몬스터들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다행히 차원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더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다.
아공간 스킬을 통해 전리품을 수거한 강현수가 다시금 이동했고.
잠시 후 목표로 했던 러시아 지역에 도착했다.
“크아아앙!”
좌악! 콰직!
“아악!”
“제발 살려 주세요!”
“빌어먹을! 막아!”
“어서 저놈들을 죽이란 말이야!”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고.
러시아 플레이어들은 몬스터와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이미 민간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였고.
러시아 플레이어들은 민간인을 보호하기는커녕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이 밀리는 상황.
강현수는 와이번의 등에 올라탄 상태에서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
핏빛 오러가 정교한 그물처럼 퍼져 나가.
민간인들과 플레이어들을 피해.
그들을 공격하던 몬스터들만 골라서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그 덕에 살아남은 민간인과 플레이어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정리하는 건 무리였다.
지금도 차원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정도는 저놈들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겠지.’
강현수는 전리품을 회수한 후 다시금 이동했다.
0레벨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