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눈 (2)
“알겠다. 그럼 이만 다들 가 보거라.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니냐.”
권영수의 축객령에.
“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소희야 몸조리 잘해라.”
“소희야 삼촌 가마.”
“고모가 또 보러 올게.”
세 사람이 생글생글 웃으며 병실을 나섰다.
그러나 그건 겉모습일 뿐.
‘다 죽어 가는 노인네가 왜 저렇게 혈색이 좋아.’
‘옆에 있는 저 청년은 누구지? 혹시 소희 신랑감인가?’
‘그동안 소희한테 가장 많이 신경 쓴 건 나야. 큰아버지가 그걸 모르실 리가 없어.’
세 사람이 각각의 다른 생각을 품고 자리를 떠났다.
“널 치료해 준 분이시다.”
권영수가 강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소희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네 할아버지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고 치료해 준 것뿐이다.”
“그래도 감사드려요. 힐러님이 없으셨다면 전 죽었을 테니까요.”
권소희의 말에 강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19살 때부터 그 상태였다더니.’
대기업 회장의 유일한 상속녀답지 않게 상당히 순진해 보였다.
‘뭐,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
어린 나이에도 약삭빠르고 발랑 까진 녀석들도 많다.
권소희가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건.
‘천성이 순한가 보네.’
대기업 회장.
아니,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수장이 되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해 보였다.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앞으로 우광 그룹을 이끌어 나갈 사람은 권소희가 아니라 권영수니까.
‘그보다. 진짜였네.’
권소희는 할아버지인 권영수에게 자신을 치료한 분을 만나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고.
권영수가 강현수에게 그 뜻을 전했다.
그러나 권영수는 강현수가 권소희의 요청에 응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강현수는 직접 권소희를 보기 위해 왔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권소희를 치료할 때 느껴졌던 미약한 마력 때문이었다.
재차 확인을 하기 위해 권소희를 만나러 왔는데.
‘플레이어였어.’
권소희는 각성을 한 플레이어였다.
레벨은?
‘0레벨이네.’
그렇기에 품고 있는 마력이 너무 미약했다.
강현수가 아니라면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권영수가 알아서 잘하겠지.’
손녀를 플레이어로 키우든.
일반인으로 키우든.
그건 할아버지인 권영수가 알아서 할 것이다.
플레이어로서의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우광 길드가 있으니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였다.
강현수가 권소희를 찾아온 건 단순히 호기심으로.
그때 자신이 느꼈던 마력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확인이 끝났으니.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어? 힐러님이 아니셨네요?”
권소희의 한마디가 강현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강현수의 물음에.
“그냥 보여서요.”
권소희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였다고?’
강현수의 눈이 번뜩였다.
권소희가 간파 스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강현수의 스킬 저항력은 어마어마하다.
지구의 랭커들이 직접 써도 꿰뚫지 못하는 강현수의 정보를.
‘0레벨 플레이어인 녀석이 봤다고.’
강현수는 확인하러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태창을 보여 줄 수 있겠니?”
강현수의 물음에 지금껏 얌전히 대화를 듣고 있던 권영수가 화들짝 놀랐다.
“소희야. 너 플레이어였느냐?”
“네, 할아버지.”
“허어.”
권영수의 얼굴에 난감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저 어떻게 해요?”
권소희가 권영수에게 물었고.
“보여 드리거라.”
권영수의 말에 권소희가 자신의 상태창을 공개했다.
권소희는 강현수의 예상대로 0레벨이었고.
스킬도 고유 스킬 하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고유 스킬이었다.
고유 스킬 : [진실의 눈 – F랭크]
‘진실의 눈이라.’
간파 스킬이 확실해 보였다.
스킬 정보를 확인하자.
[진실의 눈 – F랭크]
-패시브 스킬.
-상대의 모든 것을 꿰뚫어 봅니다.
믿기 힘든 옵션이 나왔다.
‘패시브인 것도 놀라운데.’
상대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니?
물론 스킬 랭크가 낮은 만큼 한계가 있으리라.
그러나 스킬 랭크가 올라가면?
‘정말 모든 걸 꿰뚫어 볼 수도 있겠지.’
이건 단순히 남의 상태창을 볼 수 있는 걸 넘어선다.
상태창만 보는 것도 대박이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고 했으니까.’
마족의 계약자를 알아보거나.
인간 사회에 숨어든 마족을 감별해 낼 수도 있다.
‘그걸 넘어서 상대방의 모든 정보를 꿰뚫어 본다는 것 자체가 사기지.’
거기다 액티브 스킬도 아닌 패시브 스킬이니.
그저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모든 전력을 파악할 수 있다.
‘얻고 싶은데.’
마음 같아서는 당장 레플리카 스킬로 만들고 싶다.
그러나 강현수에게는 레플리카 스킬 자리에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겠지만.’
레플리카 스킬의 한계는 EX랭크가 아니다.
EX랭크를 넘어서 U-EX랭크로 성장할 수 있다.
문제는 강현수 레플리카 스킬의 랭크를 따로 올리기 위해서는 보유 스킬 하나를 삭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론은?
‘창조의 권능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어.’
문제는 창조의 권능을 사용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결론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거네.’
최대한 쉼 없이 사냥을 해서 소환수를 복구하고 누적 스텟을 쌓아야.
창조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창조의 권능을 사용해야 레플리카 스킬도 성장시키고.
아틀란티스에 있는 투황이나 유카와 연락을 취할 수 있다.
문제는?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지.’
그 전까지는?
‘이 녀석을 성장시켜야 해.’
강현수는 애초에 권소희가 플레이어로 살아가든 말든 신경 쓸 생각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어.’
권소희가 가진 진실의 눈 스킬이 있으면?
앞으로 시작될 마왕군의 대대적인 침공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로 살아갈 생각이 있니?”
강현수가 권소희에게 물었다.
“네.”
싫다고 하면 일이 꼬일 뻔했는데.
다행히 권소희는 플레이어로 살아갈 생각이 있다고 대답했다.
“소희야!”
대경실색을 한 건 할아버지인 권영수였다.
“플레이어는 너무 위험하다.”
몬스터 웨이브로 아들 부부를 잃었고.
하나 남은 손녀조차 5년 동안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다 겨우 목숨을 건졌다.
할아버지인 권영수의 입장에서는 권소희가 위험할 수밖에 없는 플레이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하겠다는 거냐?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권소희는 우광 그룹 회장인 권영수의 유일한 상속녀.
플레이어로서의 삶을 선택하지 않아도 충분히 풍요롭게 살며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다.
“강해지고 싶어요.”
“네가 직접 그럴 필요는 없다.”
돈의 힘은 강력하다.
무력?
돈을 주고 사면 그만이다.
“아뇨. 제가 직접 강해지고 싶어요. 사실 진작 그랬으면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냐?”
“사실 전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기 전에 각성했어요.”
그러나 권소희도 위험한 플레이어로서의 삶을 원하지 않았고.
부모님도 반대했다.
그래서 플레이어 등록 의무 법안을 무시했다.
그 후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다.
“제가 진작 플레이어로서의 삶을 살아갔다면 그 사고를 막을 수 있었어요.”
“그건…….”
권영수는 할 말이 많았다.
아들 부부가 권소희가 플레이어로 살아가지 않기를 원하는 건 당연했다.
초기 플레이어는?
사망률이 어마어마하게 높았으니까.
플레이어 등록 의무 법안이 있기는 했지만.
권소희처럼 등록하지 않은 이들도 꽤 많았다.
그건 권소희의 잘못이 아니었다.
또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권소희에게 필요한 건 플레이어로서의 힘이 아니라 우광 그룹이라는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지식이었다.
그렇지만.
굳건한 의지를 가진 권소희의 눈빛을 보고 포기했다.
‘내가 반대하면.’
권소희가 몰래 던전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건 막아야 했다.
“알았다. 허락하마.”
권영수는 깔끔하게 물러났다.
그렇지만.
“대신 우광 길드에 들어가야 한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휴우!”
권소희의 말에 권영수가 긴 한숨을 토해 냈다.
“손녀가 걱정되겠지?”
강현수의 물음에 권영수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도움을 주지.”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권소희에게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다.
[플레이어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이건.”
권소희가 눈을 반짝였다.
‘지휘관 임명 스킬을 꿰뚫어 본 건가?’
그럼 거절할 여지도 있었다.
어쨌든 휘하 지휘관이 된다는 건 생사가 강현수에게 종속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나 권소희의 선택은 예였다.
[연대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모든 스텟이 20% 증가합니다.]
“우와!”
권소희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스킬 랭크가 낮아 지휘관 임명 스킬의 효과를 정확하게 확인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제 손녀에게 뭘 하신 겁니까?”
권영수가 눈을 번뜩이며 강현수에게 물었다.
“영혼의 계약이 반응하지 않잖아. 해가 되는 일은 아니다.”
강현수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모든 스텟이 20%나 늘어났어요.”
“그게 끝이 아니다.”
강현수는 지휘관은 축복을 해 주었고.
권소희의 모든 스텟이 추가로 40% 증가했다.
“모든 스텟이 60% 늘어났어요.”
권소희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20%도 놀라웠는데 60%가 되다니?
지금은 0레벨이기에 큰 효과가 없겠지만.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이 버프의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다.
“위급하면 나에게 연락해라. 그럼 어떤 상황에서든 목숨을 건질 수 있을 테니까.”
사령부 소환 스킬을 사용하면?
언제든 강현수 곁으로 불러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권소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제 가지.”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먼저 병실을 나섰고.
“그럼 쉬어라.”
권영수가 짧은 인사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그런 강현수와 권영수의 귀로.
“안녕히 가세요.”
권소희의 인사가 들렸다.
“제 손녀에게 힘을 주신 겁니까?”
“중요한 스킬을 가진 아이거든.”
“감사합니다.”
권영수가 짧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 녀석들 중 하나를 호위로 붙여라.”
“알겠습니다.”
강현수의 지시에 권영수가 짧게 대답했다.
그 녀석들.
권영수가 만든 우광 길드에 속해 있는 도플갱어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꽤 강하니 네가 붙일 호위보다는 나을 거고. 위급 시 나에게 곧바로 연락을 취할 수 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영수는 소환수 도플갱어의 정체에 대해 모른다.
그저 엄청나게 강하고.
다른 이의 모습을 훔쳐 낼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런 존재가 손녀를 지켜 준다면?
안심할 수 있었다.
* * *
“알아봤어?”
권인수의 물음에.
“예, 여기 있습니다.”
비서가 조사 자료를 내밀었다.
“강현수라. 힐러를 소개해 준 사람의 동생?”
권인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인물을 권영수가 직접 데리고 올 리도 없었고.
손녀인 권소희에게 소개시켜 줄 필요도 없었다.
“제 추측이기는 하지만. 아가씨를 치료한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예, 그게 아니고서는 최근 행적이 설명이 안 됩니다.”
“음, 그렇기는 하네.”
강현아의 팔을 치료해 준 것도 그렇고.
치료비도 아니고 소개비로 강현아에게 거액을 준 것도 그랬다.
“최근에 각성한 플레이어라.”
“엄청나게 좋은 고유 스킬을 가진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랭크가 낮을 텐데 그게 가능한가?”
“모두가 고유 스킬을 F랭크부터 시작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권영수가 강현수가 아니라 강현아에게 돈을 준 이유는?
아마 강현수가 가진 힐 스킬을 감추기 위해서이리라.
“어떻게 할까요?”
비서의 물음에.
“내버려 둬.”
권인수가 짧게 대답했다.
일이 벌어지기 전이라면 모를까.
벌어진 후다.
권영수가 직접 챙기는 사람인데 괜히 건드렸다가는 불똥만 튈 뿐이다.
그보다.
“이거 진짜야?”
강현수에 대한 보고서 뒷면의 내용이 더 신경 쓰였다.
“예, 아가씨가 플레이어로 활동하신다고 합니다.”
“그 노인네가 그걸 허락했단 말이지.”
권인수의 눈이 번뜩였다.
플레이어와 던전.
이 두 가지를 잘만 조합하면?
길이 보일 것도 같았다.
0레벨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