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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2)
강현수가 품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런데 먹통이었다.
‘그러고 보니 던전 내부에서는 전자 기기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했지?’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자 기기뿐만이 아니라 총기나 미사일을 포함한 현대 무기들도 던전 안에서는 작동을 멈춘다고 했다.
‘던전에서 작동하는 시계도 하나 사야겠네.’
오토매틱 시계를 하나 사면 그만이다.
‘이제 슬슬 돌아갈까?’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후 5시는 넘었겠지.’
너무 늦으면?
가족들과 저녁 식사 시간이 늦어질 수 있다.
강현수가 마석과 아이템을 회수한 뒤 떠나려고 할 때.
“너 이 자식 잡았다!”
일단의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몰려와 강현수를 포위했다.
‘뭐지?’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제외한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은 던전이었고.
사냥하는 플레이어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으니까.
“너 어디 소속이야?”
“소속?”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어디 소속이기에 겁도 없이 샤이닝 길드 전용 사냥터에서 사냥을 했냐고!”
“전용 사냥터? 던전은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거 아니었나?”
강현수가 인터넷으로 배운 지식으로는 그랬다.
모든 던전은 국가에서 관리하며.
소정의 입장료만 내면?
플레이어는 누구든 사용이 가능했다.
“그건 법이 그런 거고.”
“아!”
상대의 말에 강현수는 상황을 파악했다.
‘여기나 저기나 인간은 다를 게 없네.’
아틀란티스 차원에서도 거대 길드들이 좋은 사냥터를 독점하는 경우가 있었다.
타 길드원에게 적당히 사냥을 허락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허락해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중화길드가 그랬지.’
이놈들도 중화 길드 같은 놈들인가 보다.
“소속 말해. 그리고 얻은 마석이랑 아이템 다 토해 내고.”
상대의 말에 강현수가 피식하고 미소를 지었다.
강현수는 현재 이 던전에 무단으로 불법 침입한 상태다.
그렇기에 당연히 정체를 감추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감싸고 있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쉽게 말해 강현수의 신상이 드러날 가능성은 제로였다.
“내가 왜?”
“뭐?”
“던전이 다 공용이지 전용은 무슨.”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법대로 하자고 법대로. 왜? 법대로 하자는데 무슨 문제 있어?”
강현수의 말에.
“하, 건방진 놈. 너 여기가 어딘지 몰라? 여긴 던전이야 던전. 여기가 법이 통하는 곳인 줄 알아!”
상대의 고함에 강현수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진해졌다.
“왜 여기는 법이 안 통하나?”
“당연히 안 통하지.”
던전은 현대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다.
즉, CCTV도 없고 스마트폰 카메라와 마이크도 없다.
“던전은 법의 힘이 미치지 않는 약육강식의 세상이야. 어느 길드 소속인지는 모르지만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꼬리 내려.”
“아, 그래?”
법의 힘이 통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은 나도 꽤 익숙한데.”
익숙한 걸 넘어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최강자로 군림하던 이가 바로 강현수였다.
“뭐? 익숙해? 이거 제대로 미친놈이네. 당장 잡아서 무릎 꿇려!”
상대의 말과 함께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강현수를 향해 몰려들었다.
‘숫자가 많네.’
30명 정도 되어 보이는 인원.
아틀란티스 차원과 비교하면?
3배 정도 많은 숫자였다.
저 정도 인원이 몰려다니면?
‘사냥 효율이 떨어질 텐데.’
대신.
‘안전하기는 하겠네.’
사냥 효율보다는 안전을 우선하는 파티 구성.
‘뭐, 사냥터를 독점한다면 그렇게 큰 페널티도 아닐 테고.’
독점이면?
위급 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따로 사냥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떻게 할까?’
죽이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여기는 지구였고.
‘저 애송이들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지.’
말은 죽이네 살리네 하지만.
‘살인을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네.’
명령 자체도 죽이라는 게 아니라 잡아서 무릎 꿇리라는 것이었다.
‘역시 평화롭네.’
뭔가 느슨하기도 하고.
‘마음에 들어.’
던전이라는 곳에 오고 몬스터를 사냥하다 플레이어들과 충돌했지만.
이곳이 지구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어서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스르릉.
강현수가 뽑아 든 검이.
콰콰콰콰콰!
핏빛 오러에 휩싸였고.
사라라락!
강현수에게 달려들던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던 공격 스킬들이 눈 녹 듯이 녹아내렸다.
“이게 무슨?”
“오러가 사라졌어?”
휘익!
강현수가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핏빛 오러가 채찍처럼 늘어나 덤벼들던 플레이어들의 오른팔을.
서걱!
단숨에 잘라 냈다.
“아아악!”
“아파아아!”
순식간에 플레이어들의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멀쩡한 건 후방에서 공격 명령을 내렸던 플레이어들의 리더와 힐러 셋뿐이었다.
저벅 저벅.
강현수가 차분한 발걸음으로 공격 명령을 내렸던 플레이어들의 리더에게 다가갔다.
“히이이익!”
방금 전까지 자신만만한 얼굴이던 플레이어들의 리더가 겁에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나약해.’
고작 팔 하나 잃었다고 전의를 잃다니?
티끌 하나 다치지 않았는데 겁에 질리다니?
‘이러면 계산이 조금 달라지는데.’
지구 플레이어들이 모두 저런 약골들이면?
강현수가 계산했던 전쟁 승리 확률이 꽤 많이 조정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익숙하다고 했잖아.”
강현수의 말에.
“사, 살려 주십시오.”
플레이어들의 리더가 겁에 질려 강현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건 힐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약육강식이니 뭐니 하더니.’
진짜 약육강식은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온실 속의 화초들이었다.
‘하긴 여기는 지구의 대한민국이니까.’
던전에서 칼부림이 빈번하게 일어나겠지만.
아틀란티스 차원처럼 서로가 죽고 죽이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였다.
아니, 사지 중 하나를 자르는 경우도 드문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놀라는 걸 보니까 말이다.
“죽일 생각은 없어. 그랬다면 진작 죽였을 거야.”
“가, 감사합니다.”
강현수의 말에 플레이어들의 리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한테 감사할 것 없어. 네가 날 죽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널 죽이지 않는 거니까.”
플레이어들의 리더가 강현수를 죽이라고 명령했다면?
이들은 이미 죽었으리라.
상대를 죽이려고 했으면.
자신의 목숨 또한 걸어야 하니까.
이들이 강현수를 죽이려 하지 않았기에.
강현수도 죽이지 않은 것뿐이다.
“네 말대로 던전은 약육강식이잖아. 목숨을 너무 함부로 걸지 말라고.”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가볍게 검을 휘둘렀고.
서걱!
플레이어들의 리더와 힐러들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
“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강현수는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겨 던전을 빠져나갔다.
팔 하나가 베어지는 고통.
그 정도가 저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였다.
@강현수가 떠난 후.
장성철은 파티원들을 수습해 서둘러 던전을 빠져나왔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거대 길드인 샤이닝 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팔 하나씩을 잃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강현수가 워낙 깔끔하게 잘라서.
잘려 나간 팔을 다시 붙일 수 있다는 거였다.
샤이닝 길드 소속 힐러들의 수준으로는 힘들었지만.
현대 의학과 힐러의 힘을 합치면?
잘린 팔을 붙이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적잖은 시간의 재활 훈련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이 사실을 너무 많은 이들이 봤고.
그 때문에 샤이닝 길드의 명성이 땅에 처박혔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떤 놈 짓이야!”
샤이닝 길드의 길드장 서동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노성을 터트렸다.
“그게 알 수가 없습니다.”
“알아내지 못한 것도 아니고 알 수가 없다? 플레이어 출입 명단만 확인해도 누군지 알 수 있잖아!”
“며, 명단을 확인했는데. 던전에 출입한 건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뿐입니다.”
“그럼 그놈들이 유령에게 당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분명히 플레이어였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출입 명단에 없어.”
“몰래 들어간 게 아닐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고레벨 던전이기에 던전 웨이브를 대비해 항상 협회 소속 플레이어들과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 몰래 들어간다?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닙니다.”
“그럼 다른 가능성은?”
“플레이어 협회에서 출입 명단 기록을 지웠을 수도 있습니다.”
“출입 명단 기록을 지웠다.”
몰래 던전에 들어갔다는 말보다는 그게 더 신빙성이 있었다.
의아한 점은.
“혹시 나 몰래 우리 샤이닝 길드가 플레이어 협회랑 척진 적 있나?”
“없습니다.”
플레이어 협회가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었다.
“저기 혹시 그런 거 아닐까요?”
“뭐?”
“플레이어 협회에서 비밀리에 키우는 정예부대 같은 게 있다든지.”
“있을 리도 없지만 있어도 이상하잖아. 비밀리에 키우는 정예부대가 왜 공개적으로 이런 대형 사고를 쳐?”
“그럼 플레이어 협회에서 컨트롤하기 힘든 랭커급 플레이어를 스카웃한 거 아닐까요?”
“그놈이 사고를 쳐서 플레이어 협회가 덮으려고 하는 거다?”
“예.”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그렇다고 용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리 랭커라도.
플레이어 협회가 배후라도.
“우리 샤이닝 길드를 건드릴 수는 없지.”
서동진이 이를 빠득빠득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플레이어 협회로 찾아가 이번 일을 따지기 위해서였다.
* * *
강현수는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흰쌀밥에 참치 김치찌개가 전부였지만.
‘맛있다.’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가 해 주는 밥을 가족들과 함께 먹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든든해졌다.
“좀 더 맛있는 걸 해 줬어야 하는데.”
강현수의 어머니 박영숙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10년 만에 돌아온 아들.
제대로 진수성찬을 차려 주고 싶었지만.
당장 가진 여윳돈이 없었다.
대출은 한계치였고.
이자 갚느라 바빠서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이 없었다.
“이거보다 더 맛있는 게 어딨어요.”
강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밥공기를 세 그릇을 비웠다.
가족들과 함께 먹는 식사.
그리운 어머니의 손맛.
강현수에게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진수성찬이었다.
“내가 돈을 벌어 왔어야 하는데.”
강현수의 누나 강현아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양팔을 회복하고 자신만만하게 나섰는데.
오늘 하루를 제대로 공쳤다.
양팔을 잃고 일꾼으로 일하던 그녀를 파티원으로 받아 주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당분간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사냥을 하려고.”
짐꾼으로 일하던 안성에 있는 던전에서는 플레이어로 활동하기 힘들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었다.
“다른 지역?”
강현수의 형 강현우의 물음에.
“응, 평일은 거기서 일하고 주말에 오려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사냥을 하겠다는 누나 강현아의 말에 강현수는 가슴이 답답했다.
오랜만에 만난 누나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강현수의 마음 같아서는.
‘당분간 집에서 쉬라고 하고 싶은데.’
참았다.
애써 하고 싶은 말을 눌렀다.
‘괜히 누나 자존심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어.’
강현수의 누나 강현아는 자존심이 강했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또 부모님에게 적잖은 마음의 짐을 지니고 있었다.
그 마음의 짐은 강현수가 큰돈을 벌어다 준다고 덜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누나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어야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어.’
그렇기에 강현수는 누나 강현아의 원정을 말리지 않았다.
“미안해. 누나. 나도 도와야 하는데.”
형 강현우의 말에 누나 강현아가 씨익 하고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몸 회복하면 전처럼 같이 다니자.”
“응.”
“현수 넌 플레이어 등록증 받았어?”
누나 강현아의 물음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런데 임시 등록증을 주더라고.”
“임시?”
강현수가 간단하게 임시 등록증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 게 생겼구나. 나름 체계적이고 좋네.”
“처음부터 저런 제도가 있었으면 좋았을걸.”
누나 강현아와 형 강현우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누나와 형의 레벨도 그리 높지 않지.’
고작 100레벨을 막 넘긴 저레벨이었다.
사고로 인해 꽤 오랫동안 플레이어 생활을 하지 못한 게 컸다.
‘레벨이야 앞으로 차차 높이면 그만이지.’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나고.
강현수가 아공간에서 현금 1억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