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아직도 보고가 없나?”
우광 그룹의 회장 권영수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혹시 일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
“이런 일에는 최적화된 이들입니다. 금방 연락이 올 겁니다.”
우광 길드의 길드장 지우현이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좋으련만.”
위이잉!
그때 우광 길드의 길드장 지우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성공해서 복귀 중이라고 합니다.”
“다행이군. 무례를 저지르지 말고 최대한 정중하게 나에게 모시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광 길드의 길드장 지우현이 조용히 물러났다.
* * *
‘으흠.’
강현수가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생각보다 대접이 좋네.’
우광 길드에서 보낸 플레이어들을 정리한 강현수는 최상급 도플갱어를 그들로 위장했다.
그리고 도플갱어 킹 탈리만에게 누나 강현아로 위장할 것을 명령했다.
그 후 태연하게 적의 소굴로 들어갔다.
‘그냥 박살을 내 버려도 되기는 하지만.’
어떤 놈이 누나 강현아를 납치해 오라고 했는지는 알아야 제대로 된 처벌을 내릴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예상외로 이놈들의 행동이 상당히 깍듯했다.
진정하라고 우황청심환도 줬다.
그것도 그냥 시중에서 파는 게 아니라.
마석이 섞인 한 알에 몇백만 원짜리 고가의 우황청심환을 말이다.
‘대우도 좋고.’
납치를 한 게 아니라 귀한 손님을 모셔 온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납치범들이지.’
누나 강현아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을 극진히 대접하는 이유도.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게 있어서 이리라.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
잠시 후.
“가시지요.”
플레이어들이 누나 강현아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을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대접이 거칠었던 점 사과드립니다.”
반백의 노신사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누나 강현아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에게 인사를 했다.
‘누구지?’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그런 강현수의 의문을 해결해 주듯 노신사가 입을 열었다.
“우광 그룹 회장 권영수라고 합니다.”
‘아.’
강현수는 그제야 왜 상대의 얼굴이 어디서 본 것 같았는지 알아차렸다.
‘TV에서 봤었지.’
우광 그룹은 강현수가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끌려가기 전에도 대기업었고.
지금도 대기업이었다.
당연히 매스컴에 많이 등장했고.
그랬기에 낯이 익었던 것이다.
“대기업 회장님께서 왜 나를 납치한 거지?”
강현수가 누나 강현아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입을 빌어 물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사죄드리겠습니다. 제가 느긋하게 기다릴 상황이 아니라서요.”
“난 핑계가 아니라 이유를 물었는데?”
누나 강현아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물음에 우광 그룹 회장 권영수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평범한 저레벨 플레이어라고 들었는데.’
납치를 당했음에도 긴장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대기업 회장인 자신을 마주했음에도 눈빛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다.
오히려.
‘나를 낮춰 보고 있어.’
아득히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 있는 자를 내려다보는 눈빛.
이건 결코 평범한 저레벨 플레이어가 보여 줄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오직 수많은 이들 위에 군림해 본 자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군주의 시선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도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고 있었고.
자신은 그걸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우광 그룹 회장 권영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양팔을 잃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회복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역시 그거였나?”
누나 강현아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이 그럴 줄 알았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알면 어떻게 할 거지? 날 치료한 자를 납치라도 할 생각인가?”
냉기마저 느껴지는 누나 강현아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말에 우광 그룹의 회장 권영수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돈으로 설득할 생각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사실 강현아 님께 사람을 보낸 것도 저의 제의를 거절하셨기 때문입니다.”
누나 강현아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을 조종해 대화를 나누던 강현수는 적잖이 놀랐다.
‘누나에게 따로 제의를 했다고?’
도플갱어 킹 탈리만이 하는 일은 누나 강현아의 호위지 감시가 아니다.
당연히 누나 강현아가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았는지까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강현아 님께서는 제가 당신의 은인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겠지만. 그건 큰 착각입니다.”
강현아를 치료한 장본인은 강현수.
‘누나가 말할 리가 없지.’
그러나 약간의 아쉬움이 들었다.
‘나한테 이야기를 하지.’
그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단 이해는 했다.
단순한 제안이었고.
설마 납치라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사용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이건 강현아 님께도 이득이 되고 그 은인분께도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부디 마음을 바꿔 주시기 바랍니다.”
우광 그룹의 회장 권영수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쓸 만한 힐러 플레이어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아닌 건 확실하군.’
그랬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수를 쓸 필요도.
대기업 회장인 그가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으리라.
“가족 중에 아픈 이가 있는 건가? 그러나 힐러의 스킬로도 병을 고칠 수는 없다.”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제가 치료하고 싶은 건 제 손녀입니다.”
“상태가 어떻기에 치료하지 못한 거지?”
권영수는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최고의 힐러와 의료진을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인물.
도대체 어떤 상태이기에 아직도 치료를 하지 못했단 말인가?
“머리와 상반신 일부만 남은 상태입니다. 힐러들이 24시간 상주해 있음에도 겨우 삶을 부지하고 있을 뿐이지요.”
그 정도면 반 시체나 다름이 없다.
‘할아버지가 권영수가 아니었으면 죽었겠군.’
부자 할아버지를 둔 덕에 목숨을 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였겠지.’
목숨을 붙여 둘 수는 있어도.
완치는 꿈도 꿀 수 없었으리라.
현재 지구 힐러들의 수준으로 손실된 신체를 재생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손녀를 꽤 아끼나 보네?”
“제게 남은 유일한 혈육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아이지요.”
강현수는 약간 의아했다.
‘대기업 회장이라기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을 생각했는데.’
손녀 사랑은 지극한 모양이다.
‘뭐, 그래 봐야. 불법을 저지른 자에 불과하지.’
지금은 저렇게 신사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얻지 못하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지.’
저 정도 절박함이라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했고.’
불법적인 일을 전담하는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
납치라는 중죄를 저지르기까지 했으니.
‘죽일까? 살릴까?’
강현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권영수를 주시했다.
원래는 원인을 파악한 후 뿌리를 뽑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강현수의 손에 죽은 플레이어들은?
불법의 테두리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공격적인 면보다는 방어적인 면이 강했다.
사실 이번 납치 사건만 제외하면?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지.’
잠시 고민하던 강현수가 결정을 내렸다.
이자를 죽이는 게 좋을지 살리는 게 좋을지 테스트해 보기로 말이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했지?”
강현수가 누나 강현아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입을 빌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그게 진심인지 확인해 보지. 영혼의 계약서를 가지고 와라.”
누나 강현아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말에 권영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방금 전에 했던 말은 거짓이었나?”
“하나 당신은 제 손녀를 살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권영수가 아는 강현아라는 인물은?
손실된 신체를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에게 은혜를 입은 자였지.
손실된 신체를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 아니었다.
“그럼 손녀를 살릴 수 있는 인물이 대상이라면 영혼의 계약서를 쓸 수 있나?”
누나 강현아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물음에.
“그렇습니다.”
권영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순간.
사라라락!
달의 그림자 스킬을 해제한 강현수가 권영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증명해 봐라.”
강현수의 말과 동시에.
채채챙!
권영수의 호위를 서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어 강현수를 겨눴다.
“그만.”
그때 권영수가 손을 들어 올려 플레이어들을 제지했다.
“당신이 저분의 양팔을 치료한 장본인입니까?”
“맞다. 진짜 강현아의 양팔을 치료한 게 나지.”
“진짜 강현아?”
권영수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휘리릭!
강현수의 누나 강현아로 위장하고 있었던 도플갱어 킹 탈리만이 평범한 중년 남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게 무슨?”
권영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그리고 자신을 호위하던 플레이어들에게 호통을 쳤다.
권영수를 호위하던 플레이어들은.
강현아를 납치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이들이었다.
비밀은 아는 자가 없을수록 좋으니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악수였다.
“저들을 탓할 것 없다.”
강현수의 말과 함께.
휘리릭!
권영수를 호위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외형이 도플갱어 킹 탈리만이 변한 존재와 동일하게 바뀌었다.
“이럴 수가.”
권영수는 호위들의 외형이 바뀌는 순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 선택해라. 나와 영혼의 계약을 맺겠느냐? 아니면 밖에 있는 자들을 불러들이겠느냐?”
강현수의 물음에 권영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내부에는 진실을 아는 자들만 호위로 들였지만.
밖에는 우광 길드의 길드장 지우현을 포함한 우광 길드의 정예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손가락 한 번만 까닥하면?
지금 당장 그들을 불러들일 수 있다.
상식적으로는 그들을 부르는 게 맞았다.
더군다나 눈앞의 청년이 강현아를 치료한 장본인이라고 한다.
일단 안전을 확보한 후 설득하든 굴복시키든 해서 손녀를 치료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과연 가능할까?’
막대한 투자를 통해 키워 낸 우광 길드가 눈앞의 청년을 막아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광 길드의 압승이 맞았다.
우광 길드는 다섯 명의 랭커를 보유하고 있었고.
특히 길드장인 지우현은?
대한민국 공식 랭킹 2위의 최강자였다.
그렇지만.
‘저 눈빛이 걸려.’
강현아로 위장한 존재가 뿜어내던 아득히 높은 자에 앉은 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시선.
그 시선이 저 청년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거기다 바보가 아니라면 밖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을 게 뻔했다.
‘이들의 전력으로 일반인에 불과한 나를 제압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한데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권을 줬다.
마치 자신을…….
‘테스트라도 하듯이 말이야.’
감이 좋지 않았다.
권영수는 이성적인 판단보다.
상대의 눈빛과 자신의 감을 선택했다.
“영혼의 계약을 맺겠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했네? 감이 좋은 건가? 아니면 판단력이 좋은 건가?”
강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권영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일반인에 불과한 권영수를 제거하는 건 너무나 쉽다.
도플갱어 킹 탈리만이라면?
권영수의 대역도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테스트한 이유는?
‘인형은 어디까지나 인형에 불과하기 때문이지.’
도플갱어는 상대의 기억과 모습을 훔쳐 행동을 흉내는 낼 수 있어도 결코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
대기업 회장.
거대 길드의 주인.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또 다른 마왕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강현수의 입장에서 권영수는?
꽤 괜찮은 장기짝이었다.
‘지구에도 세실리아 같은 존재가 필요하기는 하니까.’
전쟁은 무력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재력과 권력도 필요했다.
“감이 좋다고 해 두지요. 하지만 제 손녀를 치료해 주신다는 확약이 있어야 할 겁니다.”
권영수의 말에.
“얼마든지.”
강현수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