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232화 (232/365)
  • 날파리 (2)

    ‘그거였구나.’

    강현아는 그제야 우광 길드가 자신에게 접근한 목적을 알아차렸다.

    “예, 완치되었습니다.”

    “상당히 큰 부상이라고 들었는데. 힐러분을 통해 치료를 받으신 겁니까?”

    “네, 부상을 당하고 던전에서 짐꾼으로 일했는데. 그때 만난 힐러분이 치료를 해 주셨어요.”

    “아, 그러시군요. 혹시 그 힐러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저도 우연히 만나고 치료해 준 후 바로 사라지셔서 알 수가 없네요.”

    강현아의 대답에.

    “하하하, 그렇군요.”

    윤성호가 너털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후 윤성호는 별것 아니었다는 듯 다시금 대화를 이어 나가며 계약을 제의했다.

    “어떠십니까? 이런 조건이라면 업계 최고 대우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고민해 볼게요.”

    “고민할 가치가 있을까요?”

    “아직 계약서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아, 실례. 계약서는 여기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강현아는 그 말과 함께 커피숍을 떠났다.

    ‘우연히 만난 힐러가 치료해 줬다라.’

    윤성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좋게 좋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곱게 말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일단 확인은 해 봐야겠네.’

    탐문과 함께 강현아가 이동한 동선에 있던 CCTV를 뒤져 보면?

    정말 우연히 만난 힐러에게 치료를 받은 건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으리라.

    * * *

    ‘역시 거짓말이었네.’

    윤성호는 강현아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날 치료된 건 확실한데.’

    누구에게 치료를 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길드에 들어오기라도 했으면 좋았을걸.’

    강현아는 윤성호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했다.

    자기 실력이 거대 길드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라며 거절했지만.

    윤성호는 강현아가 변호사 사무실에 들른 사실을 확인했다.

    ‘계약서로 옭아맬 생각이었는데.’

    아쉽게도 그 계획 역시 실패한 듯싶었다.

    ‘어쩔 수 없네.’

    이번 일은 자신의 손을 떠나 버렸다.

    * * *

    ‘우광 길드라.’

    강현수는 누나 강현아에게 접근했던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후 조사에 들어갔다.

    인터넷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샤이닝 길드의 길드장인 서동진에게 조사를 맡겼다.

    같은 거대 길드인 만큼 사전에 파악해 둔 정보도 넉넉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보고받은 결과는?

    ‘같은 거대 길드라도 샤이닝 길드랑은 규모 자체가 다르네.’

    샤이닝 길드는?

    랭커인 서동진의 원맨팀이나 마찬가지인 길드였다.

    규모 자체도 아슬아슬하게 거대 길드에 발을 걸칠 정도였고.

    고레벨 플레이어의 질이 전체적으로 떨어졌다.

    반면 우광 길드는?

    대기업인 우광 그룹의 자회사인 만큼 자금 지원이 빵빵했고.

    그만큼 규모도 샤이닝 길드의 다섯 배 이상이었고.

    고레벨 플레이어의 질도 높았으며.

    보유한 랭커도 무려 다섯 명이나 되었다.

    ‘이 정도면 같은 거대 길드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수준이네.’

    서동진의 보고에 의하면 최상위권의 거대 길드 다섯은 모두 대기업의 자회사로.

    다른 거대 길드들과는 그 규모 자체가 달랐다.

    ‘서동진이 대단한 거였네.’

    정부나 기업의 뒷배 없이 맨주먹으로 거대 길드를 일궜으니.

    나름 난놈은 난놈이었다.

    그러나.

    ‘대기업 자회사인 거대 길드들과는 전력 차이가 크네.’

    애초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이 다르니.

    규모 자체가 다른 게 당연하기는 했다.

    ‘이놈들을 어떻게 한다.’

    아직까지 누나 강현아에게 해를 끼친 건 아니다.

    그저 스카우트를 보내 한번 찔러봤을 뿐.

    ‘순순히 포기하면 좋으련만.’

    왠지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의 진짜 목적은 누나 강현아를 치료한 힐러에게 있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결국 나를 찾는다는 말인데.’

    사라진 두 팔을 다시 재생시킬 수 있는 힐러.

    우광 길드뿐만 아니라.

    ‘웬만한 거대 길드들은 모두 탐낼 만한 인재이기는 하지.’

    그러나 그렇다고 범죄를 저지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인터넷의 발달로 대기업이라도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이다.

    예전처럼 대기업 오너 일가네, 국회의원이네, 검사장이네, 경찰 서장이네 하면서 갑질하면?

    끈 떨어진 연이 되거나.

    그대로 옷을 벗어야 했다.

    그런데 단순히 갑질이 아니라 범죄 행위를 저지른다면?

    절대 무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이성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니까.’

    거기다 아랫사람에게 총대를 메게 하고.

    나는 모르쇠 전략으로 빠져나갈 방법은 존재했다.

    ‘아무리 뛰어나도 힐러 하나 손에 넣자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혹시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강현수는 누나 강현아의 호위를 대폭 늘리기로 결정했다.

    이게 현재로서의 최선이었다.

    그저 누나 강현아에게 스카우트 제의 한 번 했을 뿐인데.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길드를 개박살 낼 수는 없지 않은가?

    ‘괜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어찌어찌해서 법의 처벌은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강현수가 내리는 징벌은 절대 피할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 * *

    강현아는 오늘도 무사히 사냥을 마쳤다.

    ‘오늘도 꽤 넉넉하게 벌었네.’

    그러나 그 넉넉하다는 기준은 강현아의 레벨에 비해서일 뿐.

    강현아의 목표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부모님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아야 했다.

    아니, 갚는 걸 넘어서 더 많은 걸 해 드려야 했다.

    ‘조만간 돌아가야겠어.’

    강현아는 타지에서 사냥을 했다.

    그러나 강현수가 서울에 집을 마련한 이상.

    다시금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강현아도 가족과 떨어져 사는 건 원하지 않았으니까.

    특히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강현수와는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서울에도 던전은 많으니까.’

    강현아는 이사하는 날에 맞춰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활을 등에 멘 강현아가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휘익!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뭐지?’

    잔뜩 긴장한 강현아가 재빨리 몸을 돌렸지만.

    ‘없네?’

    강현아의 등 뒤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착각했나 보네.’

    강현아가 다시금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강현아가 느낀 건 착각이 아니었다.

    강현아의 뒤편 골목에 플레이어 하나가 우악스러운 손길에 제압당해 있는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이 괴물은 뭐야?’

    우광 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 하동욱은 강현아를 납치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일을 벌이기는 던전 안이 더 편했지만.

    죽이는 게 아니라 생포하는 것이기에 던전 밖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던전을 출입을 관리하는 플레이어 협회 직원들의 눈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하동욱이 이번 임무가 그리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현아는 고작 100레벨대 플레이어.

    그에 반해 하동욱은 600레벨대 플레이어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강현아에게 다가가기 무섭게 우악스러운 악력이 하동욱의 몸을 구속했다.

    마력을 끌어올려 반항해 보려 했지만.

    하동욱의 마력을 압도하는 강대한 마력의 파도에.

    그 어떤 반항도 할 수가 없었다.

    ‘이놈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하동욱이 눈알을 굴리며 동료들을 찾았다.

    이번 작전은 하동욱 혼자만 동원된 게 아니다.

    파티 하나가 통째로 움직였다.

    즉, 지금쯤 상황을 파악한 파티원들이 자신을 돕기 위해 움직였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파티원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스윽.

    하동욱을 제압한 괴인이 몸을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이런 미친.’

    하동욱은 자신처럼 완벽하게 제압당한 파티원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잠시 후.

    하동욱을 포함한 파티원들은 인근 야산으로 옮겨졌다.

    꿀꺽.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보통 놈들이 아니야.’

    600레벨대 플레이어인 자신과 파티원들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제압해 옮겼다.

    700~800레벨대 플레이어들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마 이들 전부가 랭커라고?’

    그건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대체 어떤 길드가 10명이나 되는 랭커를 동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왜 강현아를 납치하려고 한 거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들의 수장인가.’

    하동욱이 긴장된 눈빛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그 순간.

    꾸우욱!

    강력한 악력이 하동욱의 목을 압박했다.

    ‘얼굴을 보이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하동욱은 그걸 좋은 신호라고 파악했다.

    어차피 죽일 생각이라면?

    얼굴 보는 걸 막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누가 우광 길드와 척을 지려고 하겠어.’

    죽을 일이 없다는 확신이 들자 하동욱의 긴장이 풀렸다.

    “대답해라.”

    “안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하동욱이 역으로 물었다.

    그 순간.

    콰직!

    하동욱의 오른발이 그대로 으스러졌다.

    “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부러진 것도 아니고 베어진 것도 아니고 으스러졌다.

    뼈와 살이 으깨어지는 고통.

    현대인인 하동욱으로서는 난생처음 느껴 보는 고통이었다.

    “이렇게 할 생각인데?”

    “이, 미친놈!”

    이런 극심한 부상은?

    최상위 힐러를 데리고 와도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콰득!

    뼈가 박살 나고 살이 으깨졌다.

    오른발에 이어 왼발마저 으스러져 버린 것이다.

    “아아아악!”

    다시금 하동욱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성이 마비될 정도의 고통.

    “생각보다 강단이 있는 놈인가 보네.”

    그 말과 함께.

    콰직!

    이번에는 오른쪽 정강이가 으깨졌다.

    “사지가 다 으스러질 때까지 네놈이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네.”

    그 말과 함께 왼쪽 정강이에서 은은한 압력이 느껴졌다.

    “길드장이 지시했습니다!”

    왼쪽 정강이가 으스러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하동욱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길드장이라면? 지우현을 말하는 거냐?”

    “그렇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지시를 내렸지?”

    “그건 저도 모릅니다.”

    “이거 웃기는 놈이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납치라는 중죄를 저지르려고 했단 말이야?”

    걸리면 범죄자가 되어 콩밥을 먹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일에 가담했으면서 그 이유를 모른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저, 정말입니다! 그냥 돈을 받기로 하고 한 일입니다!”

    “거대 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가 돈에 연연할 일이 있나?”

    “그게 그러니까.”

    하동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하동욱의 파티가 하는 일 자체가 지저분한 일이라는 것.

    그 대가로 거액을 받고 있으며.

    하동욱을 포함한 파티원 전원에게 급전이 필요한 사정이 있다는 점이었다.

    사정은 다양했다.

    도박에 중독된 경우도 있었고.

    사치와 허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심한 경우도 있었으며.

    유흥에 빠진 자도 있었고.

    마약에 빠진 자도 있었다.

    “결국은 돈을 받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라는 뜻이네.”

    상대의 말에 하동욱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상대의 말에 틀린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교차 검증을 해 볼까?”

    상대가 그 말과 함께 하동욱의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콰직!

    “아아아악!”

    처절한 고문이 꽤 긴 시간 이어졌다.

    “으흠. 거짓말을 한 거 같지는 않네.”

    하동욱을 포함한 동료들의 증언은 모두 동일했다.

    “그래도 추가 검증이 필요하기는 하겠지.”

    “히이익!”

    추가 검증이라는 말에 하동욱이 비명을 질렀다.

    다시금 고문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욱!

    “어?”

    고문은 없었다.

    그저 차가운 검날이 자신의 심장을 관통했을 뿐이다.

    “도, 도대체 왜?”

    하동욱은 상대가 자신을 죽일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도대체 왜 죽인다는 말인가?

    “왜기는 왜야.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까 그렇지.”

    하동욱은 자신의 쓸모 있음을 어필하고 싶었지만.

    심장을 꿰뚫린 몸이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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