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파리
“단순히 외모뿐 아니라 기억도 일부 흡수했으니 대역을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거다. 무력도 네 수하들보다 월등히 강할 거고.”
“저를 죽이셨다면 저렇게 제 대역도 만드셨겠군요.”
“아마 그랬을 거다.”
강현수의 대답에.
서동진이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강현수를 바라봤다.
‘저 사람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서동진은 랭커이자.
맨주먹으로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길드를 키워 낸 인물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그렇기에 강현수에 대한 보고를 입수하고 곧바로 움직였다.
걱정 따위는 없었다.
자신이 패배해 계획이 틀어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직접 만나 본 강현수라는 인물은.
서동진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불가해의 존재였다.
‘압도적인 무력은 그렇다고 쳐도, 저자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정체가 무엇이기에 죽은 자의 기억을 흡수하고 외모를 완벽하게 복사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어.’
저런 불가해한 괴물에게 덤벼들다니?
목숨은 건졌지만.
‘이걸 건졌다고 할 수 있나?’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그 대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저벅저벅.
그때 누군가가 강현수와 서동진이 있는 장소로 다가왔다.
“이미 끝난 모양이군요.”
다가온 이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구지?’
서동진은 갑자기 등장한 이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강현수는 달랐다.
“늦었군.”
“죄송합니다.”
“그럴 필요 없어. 애초에 올 필요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저들은?”
“대역이다.”
“그렇군요.”
“나를 막을 생각이었나?”
“저들을 막을 생각이었습니다.”
“너무 과하게 반응하지는 마. 나도 큰 혼란을 몰고 올 생각은 없으니까.”
“다 죽은 겁니까?”
“이놈은 아니야.”
강현수의 말과 함께 서동진의 얼굴을 하고 있던 도플갱어들이 각자 위장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죽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영혼의 계약서로 제대로 옭아맸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저 어리석은 놈이 주군을 노예로 부릴 생각이었던 모양이군요.”
“맞아.”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직접 찾아올 필요 없어.”
“하면?”
“필요하면 내가 부르지.”
“알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던 이가 모습을 사라졌다.
“저자는 누구입니까?”
“현재 대한민국 비공식 랭킹 1위.”
강현수의 대답에 서동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신.”
“무신? 그게 무슨 말이지?”
“2년 전 벌어진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를 종료시킨 장본인으로 대한민국 비공식 랭킹 1위라고 알려진 인물입니다. 정부 측 인물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정부 측 인물 맞아. 그런데 무신이라고 불린단 말인가?”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고 워낙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여서 그냥 그렇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거기서 거기네.”
강현수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지구에는 랭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네임드 플레이어 같은 존재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뭐, 아틀란티스 차원처럼 칭호에 붙는 명칭으로 계급을 만들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어쩌면 앞으로는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럴 수도 있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돌아가라. 그리고 평소처럼 행동하며 살아라.”
강현수의 말에.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서동진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을 노예로 삼았으니.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샤이닝 길드도 손에 넣지 않았는가?
“없다. 지금 당장은 내려야 할 지시도 없고.”
강현수가 서동진을 노예로 삼은 이유는?
서동진이 강현수를 노예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강현수는 서동진과 샤이닝 길드를 써먹을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저 서동진의 실력이 괜찮았기에.
잘만 성장하면 차후 벌어질 마왕군과의 전면전에 쓸 만한 장기짝이 될 것 같기에 노예로 삼은 것뿐이다.
“알겠습니다.”
서동진이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났고.
그 뒤를 서동진의 동료들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이 따랐다.
서동진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동료들은 모두 죽었는데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노예가 되어 버렸다는 좌절감.
강현수가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안도감.
자신과 샤이닝 길드를 무시하는 것 같은 모습에 대한 분노.
대한민국 비공식 랭킹 1위를 수족처럼 부리는 불가해의 괴물.
강현수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지만.
서동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강현수의 지시에 따르는 것뿐이었다.
* * *
서동진을 노예로 삼은 이후에도 강현수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던전에 가서 사냥을 하고 소환수를 늘린다.
강현수는 계속되는 반복 작업을 했고.
그 와중에 이사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단, 얼마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확실히 성장 속도가 빠르네.”
“빨라 봤자. 그동안 쌓은 레벨, 업적, 스킬 랭크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송하나가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말했다.
“한번 가 봤던 길이잖아. 이번에는 더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2회 차 특전도 있고.”
“그렇기는 한데. 뭔가 아쉬워서.”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쌓아 놓은 힘이 한순간 사라졌으니.
허탈할 만도 했다.
차라리 지구에 차원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면?
몬스터가 없었다면?
이렇게 허탈하지도 않았으리라.
어차피 지구 귀환을 선택한 건 플레이어의 힘을 포기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집은 어때?”
강현수는 2채의 집을 샀다.
고층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였다.
처음 강현수는 전원주택 같은 것도 생각을 했었지만.
어머니가 관리하기도 힘들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에 뜻을 접었다.
관리야 돈을 쓰면 해결되지만.
지인들은 강현수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현수는 과거 살았던 동네의 아파트 중 펜트하우스를 선택했다.
꼭대기 층 두 개가 나란히 비어 있기도 했고.
전망도 좋고 치안도 좋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도 많이 사는 아파트고.’
차원 게이트와 몬스터의 등장으로 고층 아파트 가격은 떨어지는 추세였지만.
플레이어들이 대거 거주하는 고층 아파트의 경우는?
오히려 가격이 더 올랐다.
“좋아. 그렇게 넓은 집에 혼자 살아도 되나 할 정도로.”
“그래 봐야. 아틀란티스보다는 못하잖아.”
아틀란티스에서는?
궁궐 같은 집이 아니라.
진짜 궁궐을 내 집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
강현수와 송하나는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헤어졌다.
일상에서 벌어진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강현수는 그 변화가 퍽 마음에 들었다.
* * *
강현수의 누나 강현아는 플레이어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리고 형 강현우 역시 서서히 몸이 회복되어 다시금 플레이어 생활을 시작했다.
강현수의 입장에서 누나 강현아와 형 강현우의 행보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불안했다.
그렇지만.
‘구속할 수는 없지.’
새장의 새처럼 보호하기만 한다면?
그건 누나 강현아와 형 강현우에게 행복보다 불행이 될 것이다.
그래서 강현수는 누나 강현아에게는 도플갱어 킹 탈리만을 붙였고.
형 강현우에게는 최상급 도플갱어 30마리를 붙였다.
무력과 지능이 달리니 쪽수로 밀어붙인 것이다.
다행히 그런 강현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누나 강현아와 형 강현우의 플레이어 생활은 상당히 순조로웠다.
오늘까지는 말이다.
-주군, 아가씨를 미행하는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뭐?
강현수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소리지?
-던전 내부에 있는데 1개 파티가 아가씨의 파티 뒤를 은밀히 따르고 있습니다.
‘머더러인가?’
인간이 사는 세상은 다 비슷비슷하다.
아틀란티스보다 적기는 하지만.
지구에도 머더러들이 있다.
-위해를 가하는 즉시 제거해라.
-예, 주군.
도플갱어 킹 탈리만에게 지시를 내린 강현수가 잠시 사냥을 멈췄다.
‘단순한 머더러?’
차라리 그런 거라면 속이 편했다.
제거해 버리고 신경을 꺼 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꽤 골치가 아파질지도 몰랐다.
* * *
“정말 양팔이 멀쩡하잖아?”
“그러게,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단의 플레이어들이 능숙하게 활을 들고 원거리에서 딜을 넣고 있는 강현아를 바라보며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도대체 어떻게 치료한 거지?”
“그걸 알아내는 게 우리 임무야.”
플레이어들이 눈을 번뜩이며 강현아를 주시했다.
“일단은 던전 밖으로 나간 후에 그자에게 연락한다.”
“교섭 담당 말이야? 강현아가 순순히 말해 줄까?”
“그러기를 기대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실력 행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던전을 빠져나갔다.
그 후 교섭을 담당한 이에게 자신들이 본 정보를 전달했다.
“정말 양팔이 멀쩡하게 재생된 겁니까?”
“예, 활을 사용해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정말 놀랍군요.”
교섭 담당자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진실로 밝혀졌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들은 차분히 기다렸고.
날이 저물어 갈 무렵.
강현아가 파티원들과 함께 던전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강현아 씨.”
교섭 담당자가 강현아에게 다가갔다.
“누구시죠?”
“우광 길드의 스카우터 윤성호라고 합니다.”
“우광 길드요?”
강현아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광 길드는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길드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우광 길드는?
대기업 중 하나인 우광그룹의 자회사였다.
“네, 우광 길드입니다.”
“그런데 우광 길드의 스카우터께서 저에게는 어쩐 일로?”
강현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하하, 왜겠습니까? 당연히 강현아 씨를 스카우트하기 위해서죠.”
“저는 지금 딱히 소속된 길드가 없는데요?”
“신인을 발굴하는 것 또한 제 임무 중 하나입니다.”
“신인이라.”
강현아의 얼굴이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큰 부상으로 꽤 오랜 시간 플레이어로 활동하지 못했지만.
강현아는 엄연히 1세대 플레이어.
신인이라고 불릴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우광 길드가 도대체 왜 나를?’
강현아는 그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동생 강현수의 도움으로 양팔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고작해야 100레벨대 플레이어 불과했다.
100레벨대 플레이어는?
널리고 널린 저레벨 플레이어에 불과했다.
뛰어난 실력이나 특별한 스킬을 보여 주기라도 했다면 모르겠지만.
‘내 실력이 그렇게 특출난 편은 아니야.’
동생 강현수가 준 버프로 스텟이 늘어나 레벨보다 높은 스텟을 가지고 있고.
A랭크 장비로 레벨보다 월등히 강해지기는 했지만.
강현아는 그 스텟과 아이템을 바탕으로 자신의 실제 레벨보다 높은 플레이어들과 파티를 맺고 사냥했다.
그렇기에 레벨에 비해 스텟이 높고 아이템이 좋다는 특별함이 드러날 일 자체가 없었다.
“조금 갑작스럽네요.”
“하하하, 당황하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우광 길드가 강현아 플레이어를 원하는 건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왜 저를 원하는 거죠?”
“그에 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잠시 커피라도 한잔하실까요?”
우광 길드의 스카우터 윤성호의 말에 강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아와 윤성호는 커피숍으로 이동해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강현아는 확신했다.
‘나를 원하는 게 아니야.’
윤성호의 말발은 사기꾼의 뺨을 후려칠 정도로 화려했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홀라당 넘어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현아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가 아니었고.
어리석지도 않았다.
강현아는 윤성호의 말에 넘어가는 척하며.
자신을 스카우트하겠다는 진짜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부상은 완치되신 겁니까?”
윤성호가 강현아의 부상에 대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