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인의군왕 신창후.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거대 길드 중 하나인 고려 길드의 길드 마스터.
훗날 인의군신이라는 칭호까지 손에 넣은 아틀란티스 차원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그리고.
‘당연히 귀환을 선택할 인물이었지.’
그렇지만 설마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오랜만이라.”
강현수의 중얼거림에.
“주군께서는 고작 2주 만이겠지만. 저에게는 무려 4년 만입니다.”
신창후가 미소를 지으며 강현수에게 말했다.
“이제는 주군이 아니지 않나?”
신창후는 더 이상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여기는 대한민국.
신분제 따위는 없었고.
연장자를 우대하고 예의를 중요시하는 유교의 나라이자 동방예의지국 아니겠는가?
“시스템이 맺은 관계가 끊어졌을 뿐. 여전히 제 주군이십니다.”
신창후의 말에 강현수가 피식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반면.
강현수와 신창후의 대화를 들어 버린 플레이어 협회장 백정혁의 두 눈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뭘 들은 거지.’
신창후.
비공식 대한민국 랭킹 1위.
비공식 전 세계 랭킹 5위.
대한민국 최강의 플레이어이자.
전 세계적으로 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
그런 신창후가 주군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실력은 많이 회복했나?”
“아직 멀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하더군요. 한데 주군은 힘을 잃지 않으신 듯합니다.”
“나도 많이 잃었어. 그냥 적당히 기초만 가지고 왔을 뿐이지.”
100만을 넘던 소환수가 아직 100기도 채 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그간 쌓아 놨던 누적 스텟도 다 까먹어서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했다.
그나마 직업이 그대로고 스킬 랭크가 그대로라 다행일 뿐이었다.
“두 분이 서로 아는 사이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떨리는 눈동자를 겨우 진정시킨 백정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잠시 자리를 비켜 줄 수 있겠나?”
신창후의 물음에 백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플레이어 협회 본사였고.
여기는 플레이어 협회장실이었고.
자신이 협회장이었지만.
누구 말이라고 거역을 하겠는가?
“말씀 나누시고 불러 주십시오.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백정혁이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물러났고.
“제대로 자리를 잡았나 보네.”
“보잘것없기는 하나 그렇습니다.”
신창후는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일국의 왕 이상의 권력을 지닌 존재.
꽤 대접받는 위치이기는 했지만.
아틀란티스 차원과 비교할 수는 없으리라.
“자네 이야기를 좀 들려주겠나?”
강현수의 물음에 신창후가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뻔한 이야기였다.
귀환을 하고.
난장판이 된 대한민국을 보고.
가족들을 만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장석원도 귀환을 선택했나?”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강현수의 물음에 신창후가 품에서 금화 하나를 꺼냈다.
“이걸 보고 알았습니다.”
“안 녹았네.”
“경매에 올려놨기에 제가 전부 회수한 후 흔적을 지웠습니다.”
“귀찮은 일을 피하게 됐군.”
귀환자들이 2주 전에 귀환한 게 아니라면?
신창후처럼 이미 오래전 자리를 잡았다면?
금화를 알아보고 강현수에게 접근하는 자들이 분명 나왔을 것이다.
“괜한 욕심을 부리는 자들이 나올 게 뻔해서 손을 썼습니다.”
괜히 뭣도 모르는 귀환자들이 강현수에게 수작을 부리면?
강현수는 귀찮은 걸로 끝나겠지만.
그들은 재앙을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잘했네.”
“앞으로 어찌 사실 생각이십니까?”
“뭐, 별수 있나? 플레이어로 살아야지.”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했던 일을 지구에서도 반복할 뿐이다.
“제가 돕겠습니다.”
지구는 아틀란티스 차원과 다르다.
하지만 기본적인 진리는 동일했다.
약육강식.
신창후는 지구로 귀환해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구건 아틀란티스건 어차피 인간이 사는 곳이다.’
법이 있고.
질서가 있고.
상식이 있는 건.
‘어디까지나 각국 내부의 사정일 뿐.’
지구에는 법도 없고.
질서도 없고.
상식도 없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고.
그 인간이 모여 만든 국가라는 존재는 이기주의 극치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그 어떤 파렴치한 짓도 할 수 있고.
전쟁이라는 파괴적인 행위도 할 수 있는 게.
‘바로 인간들이 만든 국가라는 존재지.’
그러나.
그렇게 강대한 인간들의 국가도.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무용할 뿐.
각국은 플레이어들을 말 잘 듣는 사냥개 정도로 생각한다.
지구의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국가에 반기를 들고 대항할 정도는 아니다.
하나 강현수 정도의 강자는?
홀로 일국을 무너트리고 전 세계를 짓밟을 수 있다.
‘이미 세계의 운명은 주군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
그 사실을 모르는 머저리들이 강현수를 건드리지 않게 막는 것.
그게 신창후가 해야 할 일이었다.
“너나 장석원은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 같던데?”
강현수는 공식 랭커들의 정보를 모두 훑어봤다.
그러나 아는 얼굴이 없었다.
“귀환자들은 대부분 비공식 랭커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고향에서까지 시끄럽게 지낼 생각은 없으니까요.”
부, 명예, 권력.
이미 그 모두를 질리도록 누려 본 이들이고.
지구로 귀환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부, 명예, 권력보다는 안정과 평화를 선택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들은 괜한 광대 노릇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귀환자들은 오히려 지긋지긋한 전쟁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하긴 굳이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
귀환자들은 굳이 광대 노릇을 하지 않아도.
부와 권력은 얼마든지 손에 쥘 수 있었고.
명예 역시 원하면 언제든지 얻을 수 있기에.
그다지 갈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강현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조용히 살 생각이야.”
굳이 TV나 신문에 얼굴 팔리고 연예인의 삶을 경험해 볼 생각은 없었다.
하나 그렇다고 궁핍하게 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리 사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창후의 말에 강현수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나도 괜한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어.”
강현수의 말에 신창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나 주군이 가만히 있으시려고 해도 귀찮게 하는 날파리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
이곳에 온 이유도 그 날파리 하나 때문 아니겠는가?
“백정혁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난 이만 가 봐도 되나?”
“예, 세금을 포함한 절차상의 문제도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합법적으로 고레벨 던전에 출입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거야?”
“물론입니다.”
“덕분에 편해졌네. 그럼 가볼게. 조만간 장석원까지 불러서 셋이서 술 한잔하자고. 아, 그리고 송하나를 찾아봐 줘.”
“검마신 말씀이시군요.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강현수가 그대로 플레이어 협회를 떠났다.
백정혁이 강현수를 잡으려 했지만.
신창후의 눈짓에 행동을 멈춰야 했다.
강현수가 떠난 후.
협회장실에 신창후와 백정혁이 남았다.
“도대체 저 플레이어는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어떤 존재였습니까?”
백정혁은 귀환자들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신창후가 지구에서는 물론 아틀란티스 차원에서도 최강자의 반열에 오른 존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한데 그 신창후가 저리 깍듯이 대하는 존재라니?
“절대자.”
“예?”
“아틀란티스 차원을 다스리던 대제국의 황제들을 수족으로 부리시던 분이시다. 그리고 그건 우리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고.”
신창후의 말에 백정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또한 힘도 어느 정도는 보존하신 모양이고.”
“그럼 세계 랭킹 1위라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그 정도가 아니다.”
“예?”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다 달려들어도. 아니, 미국, 유럽, 러시아, 중국이 힘을 합쳐도 저분을 어찌할 수는 없다.”
신창후의 말에 백정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금 제정신으로 하시는 말씀인가?’
백정혁은 신창후가 헛소리를 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신창후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 없는 법이지. 하나 저분에게는 예외 사항이다.”
신창후는 강현수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100만이 넘는 소환수를 거느린 존재.
홀로 마왕을 쓰러트린 자.
“자네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고 수준의 편의를 봐드리게.”
“알겠습니다.”
“수집한 정보도 파기하고. 상부에 보고할 생각 따위는 접게.”
“그건!”
편의를 봐주려면?
그럴 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건 보고 없이 불가능하다.
“내 이름을 얼마든지 팔아도 좋네. 또한 귀찮은 날파리가 꼬이면 곧바로 나에게 알리게.”
신창후는 비공식적이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 최강의 플레이어다.
정부 역시 그걸 알고 있었고.
최선의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신창후의 이름을 판다면?
웬만한 일은 모두 해결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강현수에게 관심을 가지는 자들이 나올 겁니다.”
신창후가 저렇게 끼고 돌면?
오히려 더 많은 파리가 꼬일지도 모른다.
또 협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는 있다.
신창후가 자신의 이름을 팔아도 좋다고 허락했지만.
사설 길드 중에는 신창후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건 자네가 정보를 잘 차단해야지.”
“그러려면 적당히 협회에 이름을 올리고 활동하는 게 낫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주게. 대신 번거로운 일은 만들지 말고.”
이건 권리만 주고 의무는 지우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그래야지. 저분이 조용히 살 수 있다면.”
신창후는 강현수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악인은 아니다.
오히려 대의를 위해 싸우는 선인에 가까웠다.
그러나 강현수는 무자비한 학살자이자.
아틀란티스 차원을 오랜 시간 지배한 군주이기도 했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분이시지.’
그런 이가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하면?
조용히 살게 해 드려야 했다.
거인이 움직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평지풍파가 일어나는 법이지.’
특히 쓸데없는 욕심에 헛된 수작을 부리다 강현수의 진노를 산다면?
대기업이든, 거대 길드든, 세계 최강국이든.
개박살이 날 수밖에 없었다.
* * *
‘귀환에 시간차가 있다라.’
강현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모두가 한날한시에 동시 귀환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따로따로 귀환한 것일 줄은 몰랐다.
‘그럼 하나는 어떻게 만나지?’
강현수보다 먼저 지구에 왔을 수도 있다.
그럼?
‘신창후가 찾아내겠지.’
그러나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라면?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일단은 이사부터.’
일은 이미 벌어졌고.
강현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게 우선이었다.
* * *
“협회장이 직접 챙기는 플레이어?”
샤이닝 길드의 길드 마스터 서동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으르렁거렸다.
“예, 최근에 A랭크 팔찌를 판매했다는 그 녀석입니다.”
“정보는?”
“여기 있습니다.”
서동진이 서류를 들어 살펴봤다.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초보 플레이어잖아?”
병아리가 베테랑 30명을 가지고 논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초보 플레이어치고는 대접이 너무 좋습니다.”
“그렇기는 하네.”
“또 대박이 터진 게 너무 수상합니다. 저레벨 던전에서 A랭크 아이템이 나온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지 않습니까. 거기다 이빨 토끼 던전에서…….”
“그 녀석이 또 나왔다.”
“예.”
“당연히 이놈이 사냥하던 던전이었을 거고?”
“맞습니다.”
서동진의 두 눈이 살기로 물들었다.
“결국 이놈이 신분을 세탁한 거거나. 그게 아니면 이놈과 관련이 있는 놈이라는 뜻이겠군.”
“그럴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이놈 던전에 들어가는 일정 파악해서 보고해.”
“직접 나서실 생각이 십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보고를 올리던 길드원이 물러나자.
‘절대 보통 놈은 아니야.’
서동진이 고민에 빠져들었다.
‘죽일까? 포섭할까?’
샤이닝 길드를 건드렸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단 그 대가를.
목숨으로 치를 것인지.
노동력으로 대체할 것인지는.
‘직접 만나 보고 결정하면 되겠지.’
순순히 굴복한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테지만.
그게 아니라면?
‘겁도 없이 샤이닝 길드를 건드린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