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이상해졌다. (3)
‘하나를 만날 수도 없네.’
송하나는 아예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 목록에서 삭제되어 버렸다.
‘지구로 온 순간 다시 플레이어로 각성했겠지만.’
기존의 정보가 초기화되어 버렸을 테니.
‘내 휘하의 지휘관이었다는 사실 역시 초기화되어 버렸겠지.’
지금 당장은 다시 만날 방법이 없었다.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전화번호를 교환하기는 했지만.
‘10년이나 지났는데 번호가 살아 있을 리가 없지.’
그러나 당장은 아니더라도 만날 방법은 있었다.
강현수와 송하나의 약속.
지구로 귀환해 헤어지게 되면?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20일 남았네.’
송하나는 20일 후에 만나면 된다.
단 송하나를 제외한 다른 휘하 지휘관들과는?
‘아예 만날 방법이 없지.’
그러나 다른 휘하 지휘관들은 굳이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필요에 의해 맺었던 관계니까.’
일단은 가세부터 일으켜 세워야 했다.
‘플레이어 등록부터 하자.’
가족들은 강현수가 사라진 후 실종 신고를 했다.
문제는 실종 신고 후 5년이 지나면?
사망 처리가 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강현수의 가족들은 중간에 실종 신고를 취소했다.
강현수가 죽지 않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강현수는 10년이 지났지만.
지문 인증만으로 간단하게 신분증을 재발급받을 수 있었다.
플레이어 등록을 하면 던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던전에서 나온 물품을 합법적으로 팔 수 있지.’
강현수의 아공간에는 다양한 종류의 마석과 아이템이 쌓여 있다.
마왕군과 전면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느긋하게 마석과 아이템을 황금 군주에게 넘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구산이나 아틀란티스산이나 같은 마석이고 아이템이지.’
던전에서 얻었다고 하면 자기들이 뭘 어쩌겠는가?
세금이 꽤 많이 나오기는 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이사지.’
겨우 14평 남짓한 임대 아파트는 강현수 포함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너무 비좁았다.
* * *
다음 날 아침.
강현수와 강현아가 집을 나섰다.
강현수는 플레이어 등록을 하기 위해서.
강현아는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누나 그냥 나중에 나랑 같이 들어가는 게 좋지 않아?”
강현수의 말에.
“놀면 뭐 하니? 지금 당장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돈은 내가 벌면 금방이야.”
강현수는 정말 자신이 있었다.
아공간에 있는 금화만 해도 120억 원어치고.
마석과 아이템까지 합치면?
억이 아니라 조 단위의 돈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같이 벌면 더 빠르지.”
강현아의 말에 강현수는 입을 다물었다.
‘원래 누나 고집이 보통이 아니지.’
또 자존심도 강하다.
‘누나는 부모님한테 진 빚을 직접 갚고 싶은 거야.’
강현수는 누나인 강현아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안전장치는 해야지.’
강현수가 누나 강현아를 휘하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플레이어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이게 네가 말한 그거야?”
“응, 버프 팍팍 줄 테니까 받아.”
강현수의 말에 강현아가 예를 선택했고.
[군단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모든 스텟이 35% 증가합니다.]
“우와!”
크게 놀랐다.
모든 스텟이 35% 늘어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강현수의 선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휘관의 축복.’
[지휘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든 스텟이 40% 증가합니다.]
“무슨 스텟이.”
강현아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이거 완전 사기네.”
“그리고 이것도 받아.”
강현수가 아공간에서 갑옷과 활을 꺼냈다.
“A랭크지만 꽤 쓸 만할 거야.”
“A랭크?”
강현아가 크게 놀랐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아이템 중 최상위 아이템은 S랭크다.
그러나 수량 자체가 워낙 적기에 부르는 게 값인 상황.
그 아랫급인 A랭크 아이템은 나름 흔하기는 하지만.
그래 봤자 전 세계적으로 고작 천 개가량의 물량이 풀린 상태로.
‘못해도 몇백억은 할 텐데.’
비싸면?
몇천억도 우스웠다.
“이건 너무 과해.”
강현아가 A랭크 아이템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 줬다.
“걱정하지 마. 적당히 위장을 해 뒀으니까.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그냥 C랭크로 보일 거야.”
“그게 가능해?”
강현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런 스킬이 있어.”
강현수가 대충 대답하고 아이템을 강현아에게 넘겼다.
사실은 스킬이 있는 게 아니라 창조의 권능으로 아이템의 정보를 조작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EX랭크로 도배를 해 주고 싶은데.’
EX랭크 아이템은 강현수에게도 귀했다.
거기다 대부분 소환수를 무장시키는 데 써 버렸다.
소환수를 부활시키면 되찾아올 수 있지만.
‘스텟이 너무 빈약해.’
레벨 업을 하고 스텟을 좀 더 쌓아야 소환수 복구를 노려 볼 수 있다.
물론 강현수에게는 SSS랭크 아이템이 잔뜩 있다.
‘하지만 그건 아이템 정보를 조작해도 너무 튀어.’
A랭크 아이템을 C랭크로 조작하는 건 쉽지만.
SSS랭크 아이템은?
격이 워낙 높기에 현재 강현수의 능력으로는 조작을 해도 SS랭크 정도가 한계였다.
S랭크나 SS랭크 아이템들도 마찬가지였다.
줄여 봐야 A랭크나 S랭크가 한계.
‘지킬 수 없는 보물은 안 주는 것만 못하니까.’
현재 누나인 강현아에게 줄 수 있는 건 A랭크가 최선이었다.
‘사실 저것도 좀 과한 편이지.’
현재 플레이어들의 주력 아이템이 D~C랭크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D랭크지.’
C랭크만 해도 일반적인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가의 아이템이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결과.
‘못해도 몇억은 할 테니까.’
옵션이 좋으면?
가격이 10억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었다.
‘뭐, 나쁘지 않아.’
강현수 입장에서는?
아공간에 남아도는 C랭크 아이템 몇 개만 팔아도.
수십억 단위의 돈을 손쉽게 마련할 수 있다.
‘일단은 스마트폰부터.’
어제는 급해서 옷만 샀지만.
오늘은 스마트폰을 사야 했다.
강현수가 매장에서 신형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가족들의 번호를 입력한 후 문자를 보냈다.
‘이제 플레이어 등록을 하러 가자.’
그리 어렵지는 않다고 들었다.
그냥 상태창을 보여 주고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만 하면?
곧바로 플레이어 등록증이 나오니까 말이다.
강현수가 플레이어 협회 지부를 찾아갔다.
“플레이어 등록하러 왔는데요.”
“아, 저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강현수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갔고.
플레이어 확인 절차는 간단하게 끝났다.
그 후.
강현수는 플레이어 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임시야?’
강현수의 플레이어 등록증에는 임시라는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여기 왜 임시라고 쓰여 있죠?”
“아, 요즘 플레이어 사망률이 높아서요. 2주간 임시 등록증을 받으시고 협회에서 지정한 교관과 함께 다니시면서 테스트를 받으셔야 해요.”
“테스트요?”
“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요?”
“플레이어 등록이 취소됩니다.”
“인터넷에서는 그런 말이 없던데요?”
“최근에 생긴 거라서요.”
직원은 자신들도 업무가 늘어서 귀찮지만.
사망률이 올라가고 여론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이 신설된 제도라고 설명했다.
‘하긴 직원들 입장에서는 업무가 늘어난 꼴이니.’
협회 소속 플레이어들 역시 자신들 사냥할 시간을 쪼개 뉴비 보모 역할을 해야 하니 귀찮을 수밖에 없으리라.
‘뭔가 아틀란티스 차원과는 많은 게 달라.’
아틀란티스 차원의 플레이어는 튜토리얼을 통해 탄생했다.
튜토리얼을 통과하지 못하면?
사망한다.
하나 지구의 플레이어는?
‘그냥 각성만 하면 플레이어가 되니.’
허들이 상당히 낮아진 상태다.
거기다.
‘아카데미도 없지.’
아틀란티스 차원은 튜토리얼을 통과한 플레이어가 훈련소라고 불리던 아카데미를 의무적으로 수료해야 했다.
한데 지구는?
그것도 없다.
‘그러니 사망률이 높지.’
하지만 플레이어의 생존율로 보면?
아틀란티스 차원보다 지구가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튜토리얼을 치르는 것보다는 저레벨 던전에서 직접 깨지는 더 나으니까.’
또 사망률이 올라갔다고 이렇게 친절하게 보모까지 붙여 주지 않는가?
‘뭔가 많이 달라.’
아틀란티스 차원의 가이아 시스템과 지구의 가이아 시스템은?
같은 듯하면서도 꽤 많은 차이가 있었다.
가장 큰 차이가 바로 던전이었다.
‘아틀란티스 차원에도 던전이 없던 건 아니지만.’
상당히 희귀했다.
그러나 지구는 달랐다.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건 똑같지만.
몬스터가 튀어나온 차원 게이트로의 진입이 가능했고.
그 공간이 바로 던전이었다.
‘던전 너머에 있는 차원 게이트는 진입이 불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일종의 안전장치가 생긴 거나 다름이 없었다.
차원 게이트 밖으로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민간인 피해와 시설물 피해가 커진다.
그러나 던전 안에서 전투를 치르면?
‘민간인 피해와 시설물 피해가 제로지.’
마치 가이아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라도 된 것 같았다.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의 유입도 전혀 없고.’
아틀란티스 차원은 타 차원에서 지원병을 받았는데.
지구는 그런 것도 없었다.
‘지구 자체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구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기술력도 그렇고.
무력도 그렇고.
지구와 아틀란티스는 그 격이 달랐다.
가이아 시스템으로 탄생한 플레이어의 존재를 제외한 무력을 비교하면?
‘비교라는 단어 자체가 성립 불가능한 수준이지.’
말을 타고 창, 칼, 활을 주력 무기로 쓰는 중세 시대와 탱크, 전투기, 항공모함을 타고 총과 미사일을 쏘는 현대 문명.
개미와 코끼리 이상의 차이가 났다.
만약 전쟁이 난다면?
일방적인 지구의 승리였다.
인명 피해와 환경 오염을 신경 쓰지 않고 핵미사일만 주구장창 날리면?
아군 피해 제로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래도 편애가 너무 심하네.’
아틀란티스 차원이 위험하다고 지구인들을 지원병으로 투입해 놓고.
반대로 지구가 위험한데 아틀란티스 차원에서의 지원병은커녕.
지구 출신 플레이어들의 힘마저 앗아가 버렸으니.
지구인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었다.
“2주 동안 던전 의무 출입 시간은 50시간입니다. 그 이하면 자동으로 플레이어 등록증이 말소됩니다.”
‘빡빡하지는 않네.’
2주면 하루에 3시간 반 정도다.
주 5일 근무로 치더라도.
‘하루에 5시간 정도네.’
강현수 입장에서는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던전에 출입 전날에 미리 출입하실 던전과 이용 시간을 알려 주셔야 교관 파견이 가능해요.”
“그럼 오늘은 어떻게 하죠?”
“못 들어가시는 거죠.”
직원의 담담한 대답에 강현수는 어이가 없었다.
“사실 각성하고 바로 던전에 들어가시는 건 플레이어 협회 차원에서 권장하지 않아요. 기왕이면 플레이어 육성 사설 학원에서 교육을 받으신 후 들어가시는 걸 권해 드리죠. 2주의 제한 시간은 던전 출입 시작부터 적용되니까 부담가지실 필요는 없어요.”
“사설 학원이요?”
“네, 플레이어 교육을 전담하는 학원들이 꽤 많이 있거든요.”
‘역시 대한민국인가?’
사교육의 천국답게 플레이어 교육 기관도 사설로 운영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플레이어 협회를 나와 스마트폰으로 사설 학원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사기꾼 천지네.’
1년 안에 플레이어 각성 보장.
미각성 시 전액 환불 등등.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등쳐먹는 게 목적이네.’
플레이어 각성 시스템의 메커니즘도 모르면서 저런 말을 하다니.
사설 학원에서 가르치는 건 몬스터를 상대하는 전투 기술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상당히 어설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