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이상해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강현수가 혼란에 빠졌다.
그때.
“거기 젊은이. 자네도 플레이어 아닌가? 그런데 왜 여기서 구경만 하고 있는 건가? 어서 가서 몬스터를 막아야지.”
족히 70세는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강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몬스터에 대해 아십니까?”
강현수의 물음에 할아버지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노인네는 몬스터도 모를까 봐? 저놈들 고블린 아닌가? 하급 몬스터. 나도 그 정도는 아네.”
당연하다는 듯한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강현수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정보가 필요해.’
일단 여기가 강현수의 고향인 지구가 맞는지.
그게 아니면 평행 차원 같은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강현수가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터넷이다.
문제는 강현수에게 돈이 없다는 점이다.
아틀란티스 차원이었다면?
황금 군주에게 요청만 하면 골드가 쏟아져 들어왔다.
로크토 제국의 황제인 세실리아에게 말 한마디만 해도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아틀란티스 차원이 아니었고.
현재 강현수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아공간에 비상금으로 넣어 둔 몇천 골드 정도였다.
‘골드화도 금이니까 금은방 같은 곳에서 팔면 현금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강현수가 근처에 있는 관공소를 찾았다.
‘저기다.’
강현수가 주민센터로 들어갔다.
‘있다.’
주민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었다.
강현수가 자리에 착석했다.
‘날 이상하게 보지 않아.’
검을 차고 갑옷을 입은 강현수를 향해 시선이 가기는 했지만.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하는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강현수가 인터넷을 켰다.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오늘의 정확한 날짜였다.
‘뭐지?’
강현수의 표정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지구의 강현수는 27살이었다.
그러나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30년에게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10년밖에 안 지났다고?’
30년의 시간이 무려 1/3로 압축되어 있었다.
날짜를 확인한 강현수가 다른 정보 확인에 들어갔다.
‘내가 있던 지구가 맞는 거 같은데?’
강현수가 다녔던 학교는 물론 자주 가던 식당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강현수가 포털 사이트 로그인을 눌렀다.
그러자.
[휴면 계정 안내]
-회원님의 계정으로 1년 이상 로그인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계정이 휴면 처리되었습니다.
-재사용을 원하실 경우 [휴면 전환 신청하기]를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휴면 계정 안내가 떠올랐다.
그 말은?
‘내가 살던 그 지구가 맞아.’
평행 차원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몬스터가 있는 거야?’
강현수가 의아한 마음에 인터넷으로 차원 게이트와 몬스터를 검색했다.
그러자 그에 대한 정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5년 전?’
몬스터가 지구에 등장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처음 차원 게이트가 열렸을 때 인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현대 군화기의 위력은 엄청났다.
‘등장과 함께 쓸려나갔네.’
갑작스러운 기습이었기에 피해는 컸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습이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국가들은 군대를 동원해 몬스터를 쓸어 버렸고.
그 후 탄생한 플레이어들을 통해 효율적으로 몬스터를 토벌했다.
‘마석과 몬스터 사체의 재발견이라.’
몬스터를 토벌한 후 나온 사체와 마석은 인류의 과학 발전을 몇 단계나 앞당겼다.
‘지구에서는 몬스터 사체가 남는 건가?’
아틀란티스 차원에서는 그냥 사라졌는데 지구는 아닌 모양이다.
‘차원 게이트 탐지기? 별걸 다 만들었네.’
마석과 몬스터 사체를 이용해 온갖 장비들이 개발되었다.
‘아틀란티스 차원이랑은 비교하기 힘들 정도네.’
아틀란티스 차원도 마석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써먹기는 했지만.
지구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지구의 현대인들은?
마석과 몬스터 사체를 이용해 석유를 대체할 연료를 만들고.
차원 게이트 탐지기, 특수 합금, 반도체, 의학품, 고무, 플라스틱, 비누, 화장품 등등등.
사실상 현대인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물품에 마석과 몬스터 사체를 넣어 효율을 올렸다.
그 결과.
지구의 인류는 5년 만에 천지개벽 수준의 발전을 이루어 내는 데 성공했다.
초창기 약간의 피해는 있었지만.
현대의 인류는 차원 게이트와 몬스터의 등장으로 인해 오히려 더 번성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뭐, 초기이기도 하고.’
나오는 몬스터라고 해 봐야 중하급 몬스터가 대부분이라 그다지 토벌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강현수에게 중요한 건?
지구의 변화가 아니라.
이곳에 자신이 살던 지구라는 거였다.
그 말은?
‘집으로 가자.’
이곳에 부모님이 그리고 누나와 형이 있다는 뜻이니까.
강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는 없었다.
‘달의 그림자.’
강현수의 몸이 눈에 녹듯 사라졌고.
타악!
그 상태로 가볍게 땅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라.
건물들을 뛰어넘으며 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
강현수는 집에 도착했다.
‘드디어.’
강현수가 떨리는 손으로 벨을 눌렀다.
띵동! 띵동!
-누구세요?
인터폰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강수혁 씨 댁 아닌가요?”
강현수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닌데요?
“분명히 여기 사셨었는데? 정말 아닌가요?”
-아니에요.
강현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집주인이 제가 아는 분이셨는데?”
-제가 1년 전에 샀어요.
“죄송하지만. 혹시 이 집에서 전에 사셨던 분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잠시 후.
-계약서 확인해 보니까 저는 이광석 씨라는 분한테 구매를 했었는데요?
‘아버지가 아니야?’
그럼 1년이 아니라 그 전에 이 집을 파셨다는 뜻이었다.
“혹시 그 이광석 씨라는 분 연락처를 알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개인 정보라서 알려 드리기 좀 그러네요.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인터폰이 꺼졌다.
‘이사를 가셨다라.’
강현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생 살 집이라며 30년 만기 대출을 받아 산 구매하신 집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절대 판매하실 리가 없는데.’
현재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알아보는 건 무리였다.
‘계약서 확인해서 전 소유주를 알려 준 것도 호의를 베푼 거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러나 급하게 움직이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지.’
일단은?
‘외형부터 바꾸자.’
현재 강현수는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갖췄던 복장 그대로였다.
‘돈부터.’
강현수의 전 재산은 용돈으로 쓰려고 가지고 다니던 8,172골드가 전부였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금이니까 환전이 가능하겠지.’
강현수는 일단 금은방으로 향했다.
‘1골드가 얼마나 하려나.’
일단 그것부터 알아봐야 했다.
“금 팔러 왔는데요.”
“아, 그러세요? 몇 돈 짜린가요?”
“대충 다섯 돈 정도 될 거예요.”
강현수가 1골드짜리 금화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상당히 정교하네요.”
금은방 주인이 1골드짜리 금화를 가지고 가서 감정을 했고.
“순도 99.99%짜리 순금이네요. 무게는 21g으로 5돈이 조금 넘네. 오늘 시세로 하면 보자. 150만 원에 매입할 수 있겠네요.”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인터넷으로 금 시세를 확인해 봤고.
저 정도면?
‘적당하지.’
몇만 원 정도 오차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금은방도 남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니겠는가?
“5개 팔게요.”
“5개나?”
“예, 대신 당장 현금으로 주세요.”
“현금? 계좌이체 말고?”
“예.”
계좌도 죄다 휴면 상태일 게 뻔했다.
“현금 없으시면 있는 만큼만 사시고요.”
강현수의 말에.
“아니야. 내가 다 살게.”
금은방 주인이 잠시 후 현금 750만 원을 가지고 왔다.
“수고하세요.”
강현수가 현금을 챙기고 자리를 떠났다.
‘수집가들한테 팔면 딱이겠네.’
금은방 주인은 싱글벙글했다.
순수하게 금의 가치로만 따지자면?
강현수에게 준 금액이 맞았다.
그러나 이 금화는?
‘딱 봐도. 던전에서 나온 물건 같단 말이지.’
판매자가 플레이어이기도 했고 말이다.
던전에서 나온 금화가 맞다면?
수집가들이 환장을 할 것이다.
물론 금은방 주인의 추측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럼?
‘그냥 금으로 팔면 그만이지.’
금은방 주인으로서는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알찬 거래였다.
‘1개가 150만 원이라. 금화를 다 팔면 대충 120억 정도 되는 건가?’
물론 그 정도 물량을 판매하려면?
신분증이 무조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디서 금화를 얻었는지 증명도 해야 하고.
‘좀 더 넉넉히 가지고 다닐걸.’
금화를 직접 쓸 일이 별로 없어서 몇천 골드 정도만 들고 다녔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몇백만 골드 정도 들고 다닐 걸 그랬나 보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등장한 세상이다.
돈을 벌고자 하면?
금방 거부가 될 것이요.
권력을 얻고자 한다면?
무력으로 전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일도 없겠지만.’
강현수는 옷을 구매하고 머리를 잘랐다.
아이템은?
아공간에 넣어 뒀다.
그 결과 강현수는 말끔한 차림의 현대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신분 회복부터 하자.’
그래야 가족들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강현수가 주민센터를 찾았다.
신분증을 재발급받기 위해 지문을 찍었고.
“어머, 엄청 동안이시네요.”
주민센터 직원은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강현수를 바라봤다.
올해 37살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20대 초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놀랄 만도 했다.
강현수는 따끈따끈한 새 신분증을 받았고.
등초본도 한 부씩 뽑았다.
그 결과.
‘안성?’
서울에 살던 부모님이 4년 전 안성으로 이사를 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자.’
부모님의 사시는 집의 주소를 알아냈으니.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 * *
강현수가 주소지에 도착했다.
‘임대 아파트?’
부모님이 사시는 집은 임대 아파트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강현수의 집은 가난한 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대기업에 재직하셨고.
어머니는 은행에 재직하셨다.
두 분 모두 고액 연봉자였고.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은행원인 어머니의 착실한 재테크로 노후 준비도 든든하게 해 놓으셨다.
거기다.
‘누나랑 형이 있는데 어째서?’
강현수의 누나와 형은?
소위 말하는 엄친딸 엄친아였다.
누나는 양궁 국가대표이자 금메달리스트였고.
형은 한국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레지던트 의사였다.
‘일단 가 보자.’
강현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띵동!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분명히 사람이 있는데?’
기감을 집중하자.
집 안에서 사람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반응이 없었다.
‘그냥 들어가?’
강현수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땡!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누구신데 우리 집 앞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이 강현수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익숙했다.
강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리웠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고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엄마!”
어머니의 얼굴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혀, 현수?”
강현수의 어머니 박영숙의 두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말 현수 맞니.”
“네, 맞아요. 엄마.”
“우리 막내!”
강현수와 어머니 박영숙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동안 어디 갔었어. 이 녀석아.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어머니 박영숙이 강현수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고.
“죄송해요. 죄송해요. 엄마.”
강현수 역시 사과와 함께 눈물을 펑펑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