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권능 (2)
상대의 물음에.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강현수가 차분히 대답했다.
애초에 강현수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인해 지구에서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이동했다.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인간을 초월한 힘을 손에 넣기는 했지만.
그건 강현수가 원해서 얻은 힘이 아니다.
그저 강제로 주어진 의무를 해결하라고 가이아 시스템이 강제로 쥐여 준 힘일 뿐.
가이아 시스템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벗어나 봤자.
가이아 시스템이 준 힘만 잃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내게 남은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약간의 간섭뿐이니까.
“넌 누구지?”
-난 이름이 없다. 그저 소멸한 누군가의 잔재일 뿐이니.
그 말과 함께 뼛조각에서 생소한 힘이 흘러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경고! 경고! 가이아 시스템에 손상이 가해집니다.]
그간 상태창도 뜨지 않던 가이아 시스템에 이변이 발생했다.
‘어떻게 하지?’
손을 떼면?
이 생소한 힘이 더 이상 흘러 들어오지 않으리라.
그럼 가이아 시스템이 손상될 일도 없다.
그러나.
‘어차피 나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가이아 시스템에 손상이 가해지든 말든.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해.’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생소한 힘이 계속 쏟아져 들어왔고.
그게 한계점에 달한 순간.
퍼억!
강현수의 몸에서 근육이 갈라지고 실핏줄이 터져 나갔다.
뛰어난 자체 회복력과 불멸의 성화로 상처를 치료했지만.
퍼억! 퍼억!
육체가 회복되는 속도보다 파괴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크윽!”
강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엄습해왔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피어올랐지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이판사판이야.’
이곳에 아틀란티스 차원이었다면?
절대 이런 모험을 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곳은 어디인지 모르는.
생명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차원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히 이곳에 갇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느니.
‘버틴다.’
가이아 시스템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게 현재의 강현수에게 도움이 되는지 도움이 되지 않는지 가늠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현재 상태가 지속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크아아아악!”
하나 뼛조각에서 흘러나오는 생소한 힘은.
의지나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강현수의 의지와 정신력이 아무리 굳건하다고 해도.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육체가 무너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콰직! 퍼억!
뼛조각에서 흘러나오는 강대한 힘을 버티지 못하고 강현수의 육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전신의 뼈와 근육이 모두 터져 나갔다.
-실패인가.
강현수에게 힘을 전해 준 존재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자신의 무덤인 이곳에 외부인이 들어오는 일은 아주 드물게 발생한다.
문제는 그렇게 드물게 들어온 존재 중 열에 아홉은 자신에게 도착하지도 못하고 소멸한다는 점이다.
가까스로 도착해도.
자신이 주는 힘을 받아 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여태까지 왔던 이들 중 가장 강한 존재라 희망을 가졌거늘.
결국 실패했다.
죽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때.
우득! 우득!
심장을 포함해 전신의 모든 장기가 터져 나가 확실하게 숨이 끊어진 강현수의 육신이 다시금 부활하기 시작했다.
조각난 뼈가 다시 붙고 찢겨 나간 근육이 다시 이어진다.
두근! 두근!
강현수의 심장이 다시금 뛰기 시작했고.
사아아아악!
강현수의 죽음과 함께 멈췄던 힘의 전이가 다시금 이어졌다.
-부활의 권능을 보유하고 있었군.
이건 호재였다.
애초에 강현수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제대로 된 호흡은 물론 음식과 물을 섭취하지 못한 강현수의 몸은?
그저 강대한 체력으로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만신창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다시금 부활한 강현수의 육체는?
최상의 컨디션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강현수에게 유입된 정체불명의 힘을 바탕으로 신체를 강화했다.
그 결과.
강현수의 육체는 다시금 정체불명의 힘을 계속해서 이어받을 수 있었다.
‘살았네.’
강현수의 의식이 돌아왔다.
‘불사의 서 덕분인가.’
1회에 한해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는 옵션.
그게 강현수를 살린 것이다.
단 그 대가로 불사의 서는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애초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주는 힘을 받아들인 이유도.
‘불사의 서가 가진 부활의 권능이 있어서였으니까.’
어차피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강현수는 체력이 고갈되어 죽을 수밖에 없다.
불사의 서가 가진 부활의 권능으로 다시 부활하기는 하겠지만.
그래서는?
‘그냥 불사의 서와 부활의 권능만 날릴 뿐이지.’
그러나 모험을 한 결과.
강현수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정체불명의 힘이 계속해서 밀려들어 왔지만.
다시금 부활한 강현수의 육체는 결국 정체불명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성공이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기쁨에 가득 찬 외침을 토해 냈다.
파삭!
그와 함께 뼛조각이 그대로 부서져 가루로 흩어졌다.
‘더 이상 육성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군.’
강현수의 머릿속에 직접 전달되는 형식으로 음성이 들려왔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기이한 힘과 함께 강현수의 몸속으로 흡수된 것이다.
-드디어 내가 육체를 얻었구나!
“이건 내 육체야.”
강현수의 대답에.
-이제는 아니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강력한 의지로 강현수의 몸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어째 예상에서 벗어나지를 않네.’
강현수는 기가 찼다.
예상에서 벗어났다면?
‘서로서로 좋았으련만.’
사람은 공짜를 좋아한다.
그건 강현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가 없는 호의는 극히 드물지.’
강현수는 그 이치를 알고 있었고.
정체불명의 존재가 힘을 준 이유 역시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어서라고 짐작했다.
현재 강현수가 줄 수 있는 건?
자신의 몸뚱이뿐이었다.
‘역시 흡혈왕의 반지와 비슷한 놈이었구나.’
흡혈왕의 영혼이 보관되어 있던 반지.
흡혈왕의 반지는 사용자의 영혼을 잡아먹는다.
이 뼛조각도 이치는 비슷했다.
좀 더 강력한 힘을 준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사실 마족화도 비슷한 이치를 가지고 있었다.
강력한 힘을 주고 결국은 육체와 영혼을 지배하니까.
‘이 뼛조각은 육체가 없지.’
딱 봐도 오래전 죽은 누군가의 뼛조각이다.
‘잔존 사념이나 백의 일부가 남아 있는 거겠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뼛조각에 이런 힘과 의지가 남아 있다는 건 대단했지만.
그게 다였다.
‘내가 아무 대책도 없었을 것 같아?’
마족의 무서운 점은 단순히 물리적인 무력만이 아니다.
정신적 공격 역시 상당히 강력하다.
그렇기에.
‘대비책을 마련해 놨지.’
엘프 여왕 엘란에게서 받은 축복의 반지를 비롯해 수많은 정신계 방어 스킬이 내장된 아이템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윽!”
그걸로는 부족했다.
점점 육체의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었다.
‘결국 이놈도 혼이 떠난 백에 불과해.’
강현수가 이를 악물고 버티며.
감각을 집중했다.
시스템창이 보이지 않지만.
스킬명을 외치면 스킬은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그러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어.’
스킬이라는 것은 강현수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을 정형화시켜 놓은 것에 불과했다.
강현수의 직업은 일인사령부.
영이 떠나고 지상에 남은 백을 가공해 육체를 제공하고 소환수로 만드는 직업이다.
당연히 백을 볼 수도 있고.
강제로 가공해 소환수로 만들 수도 있다.
‘보인다.’
자신의 몸을 점령하려는 백의 존재가 또렷이 보였다.
‘죽어라.’
강현수는 자신의 몸을 점령하는 백을 소환수로 만드는 대신.
소멸시키기 위해 힘을 쏟았다.
소환수로 만들기 위해 가공하는 것보다 소멸시키는 게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크아아악!
강현수가 백을 소멸하기 위해 힘을 쓰자.
‘반응이 있어.’
-고작 가이아의 권능 따위에 무너질 것 같으냐!
그러나 반응이 있는 거지 완전히 소멸한 건 아니었다.
‘나는 백을 부리는 존재야.’
백만 남은 잔재를 부활시켜 소환수로 부리는 자가 바로 강현수였다.
‘혼이 떠나고 뼛조각에 백만 남은 찌꺼기에게 당할 수는 없지.’
강현수와 정체불명의 존재가 서로를 공격하고 육체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강현수는 아이템과 스킬을 포함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했고.
정체불명의 존재 역시 이대로 소멸하지 않기 위해 발악하며 강현수를 공격했다.
강현수는 혼백이 온전히 존재하는 살아 있는 인간이다.
반면 상대는 혼이 떠난 백.
그것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이 소실되고 잔존 사념마저 희미해진 백이다.
그러나 싸움은 팽팽했다.
‘도대체 생전에 어떤 존재였던 거야.’
얼마나 강한 혼백을 가진 존재였기에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그때 강현수의 머릿속으로 다른 이의 기억이 흘러 들어왔다.
‘이 녀석의 기억이다.’
기억은 온전치 못했다.
그러나 드문드문 흘러 들어오는 기억만으로도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
지금은 죽음의 대지가 되어 버린 이 차원에 존재하던 생명체들의 생사를 관장하던 존재.
‘신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네.’
그러나 이 녀석은 자신과 같이 초월적인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소멸했고.
이 차원 자체가 죽음의 대지가 되어 버렸다.
‘이건 소멸한 육체에 남은 잔재의 일부.’
그리고 신과 같은 존재인 이자를 제거한 원수는?
‘가이아.’
가이아 시스템을 만든 초월적인 존재가 바로 강현수의 육체를 점령하려고 하는 자를 소멸시킨 당사자였다.
‘우라노스라.’
어쨌든 우라노스는 패배했고.
가이아는 승리했다.
‘나의 육체를 빼앗아 부활을 노리는 모양인데.’
강현수는.
고작 소멸한 존재의 잔존 사념 따위에 육체를 빼앗길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다.
-크아아아악!
기나긴 줄다리기 끝에.
우라노스의 잔존 사념이 소멸했다.
“휴우!”
긴 한숨을 토해 낸 강현수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창조의 권능이라.’
우라노스라는 존재는 창조의 권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 힘은 강현수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온전하지가 않아.’
아니, 온전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창조의 권능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의 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가이아 시스템에 개입할 수는 있을 것 같네. 상태창.’
강현수가 상태창을 소환했다.
파지직!
기이한 스파크와 함께.
푸른빛이 아닌 보랏빛 상태창이 떠올랐다.
‘시스템은 가이아가 가진 창조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게 확실하네.’
그래서 이름이 가이아 시스템인 모양이다.
가이아 시스템은 현재 강현수와 연결이 끊긴 상태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게임 메인 서버와의 컴퓨터의 연결이 끊긴 상태.
당연히 구동이 불가능한 게 정상이다.
하지만 현재의 강현수는?
새롭게 얻은 힘을 통해 강제로 싱글 모드로 게임을 구동시킨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연결이 우선이야.’
가이아 시스템과 연결이 되어야 뭐라도 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연결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리라.
그러나 강현수에게는 아니었다.
아틀란티스 차원에 남겨 두고 온 휘하 지휘관들과 소환수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휘하 지휘관이나 소환수들과의 끈이 이어져 있어.’
우라노스의 잔존 사념이 준 힘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비록 온전한 기억도 아니었고.
티끌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힘의 파편일 뿐이지만.
신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전지전능했던 존재가 지녔던 권능의 일부를 손에 넣었다.
거기에 기존에 강현수에게 주어져 있던 가이아 시스템의 힘이 있었다.
‘새로운 스킬을 만들어야 해.’
기존의 강현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이아 시스템이 주는 힘을 사용할 수만 있을 뿐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가이아 시스템에 개입할 수 있었다.
마치 마왕이 가이아 시스템에 개입해 인류 공적들에게 힘을 실어 준 것처럼 말이다.
‘대가는 따르겠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그건 새롭게 손에 넣은 권능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가는 충분해.’
힘과 마력 같은 기본 스텟과 신성이나 마기 또는 독성 같은 특수 스텟을 소모하면 사용이 가능했다.
강현수가 차분히 정신을 집중했다.
비록 우라노스의 기억이 어느 정도 남아 있기는 했지만.
방금 생긴 권능이었고.
가이아 시스템과 연계까지 해야 했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무조건 성공한다.’
그래서 기필코 이곳을 벗어나.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돌아간다.’
그 후 마왕을 쓰러트리고 지구로 귀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