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초전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갔다.
그것도 4년이 넘는 꽤 긴 시간이.
강현수는 차분히 몬스터를 사냥하며 스텟을 쌓고 스킬을 강화시켰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잠잠하지.’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사면 침공 이후.
마왕군은 대규모 침공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간의 침공 속도는 회귀 전보다 빨랐어.’
그런데 지금은?
너무 잠잠했다.
마치 마왕군이 아틀란티스 차원 침공을 포기하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 마왕군이 아틀란티스 차원 침공을 포기했다면?
‘퀘스트가 완료됐겠지.’
그럼?
강현수를 비롯한 타 차원의 플레이어들은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인류 공적들도 잠잠하고.’
지금쯤 슬슬 모습을 드러내야 할 녀석들도 조용했다.
‘힘을 모으고 있는 건가?’
회귀 전과 회귀 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왕군의 침공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거야.’
회귀 전에는 침공한 마왕군이 전멸하더라도 그만큼 아틀란티스 인류 전체에 큰 피해를 입혔다.
반면 회귀 후에는?
강현수의 개입으로 독충 군단부터 시작해 최근 벌어진 사면 침공까지 모두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물론 프랭크 왕국이 멸망하고 라메파질 왕국과 사브라 왕국이 국토의 상당 부분을 잃는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틀란티스 차원에 살아가는 사람들 입장에서 큰 피해인 거고.’
마왕군이 투자한 전력에 비하면?
그리 큰 피해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틀란티스 차원의 인류가 입은 피해보다 마왕군의 전력 손실이 월등히 컸다.
주식투자로 치자면?
거금을 투입해 투자하는 족족 하한가를 맞고 파란불이 들어와 원금만 까먹는 상황이었다.
‘포기한 것도 아닌데 침공을 늦췄다라.’
그럼 뭘 하겠는가?
‘힘을 모아서 한 번에 쳐들어오겠지.’
강현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비를 해야 하기는 하는데.’
현재로서는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 업을 하며 차분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쪽에서 먼저 쳐들어갈 수는 없나.’
그게 가능하다면?
‘최고의 반격이 될 텐데.’
강현수의 무력과 일인군단이라는 직업이 결합해 게릴라를 벌인다면 엄청난 효용이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참 아쉬웠다.
‘회귀 전에도 마계로 쳐들어가는 방법 따위는 없었으니까.’
강현수가 아쉬움을 참으며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갔다.
* * *
아틀란티스 차원의 최북단에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파지지직!
차원 게이트는 쉼 없이 마족들과 몬스터들을 쏟아 냈다.
파직!
그리고 사라졌다.
파지직!
그 후 다시금 차원 게이트가 열렸고 마족과 몬스터를 쏟아 냈다.
파직!
다시금 차원 게이트가 소멸했다.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당연히 차원 게이트에서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마족과 몬스터보다 이미 대기하고 있는 마족이나 몬스터의 숫자가 더 많았다.
그러나 차원 게이트는 계속해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마족과 몬스터를 쏟아 냈고.
아틀란티스 차원에 모습을 드러낸 마족들과 몬스터들은 인간들을 습격하는 대신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조심스럽게 몸을 웅크리고 버텼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흐른 현재 정렬해 있는 마족과 몬스터 병력은 혹한의 군주가 이끌던 빙마족 군단보다 족히 10배는 더 많았지만.
마족들과 몬스터들은 일절 진군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기다릴 뿐.
다시금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새롭게 열린 차원 게이트는 계속해서 병력을 토해 내다 소멸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6개월간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먼저 차원 게이트를 통과한 마족들은 좀이 쑤셨다.
혹한의 냉기밖에 없는 환경은 마족들에게도 최악이었다.
특히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몬스터들이 점점 거칠어졌다.
그러나 마족들은 몬스터들을 다독이며 끈기 있게 참고 기다렸다.
첫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1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파지지직!
또다시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열렸고.
저벅저벅.
한 무리의 마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아틀란티스 차원인가? 아직 부족한 게 많군.”
“계획이 많이 어그러졌으니까. 이번에 그간의 실책을 만회해야 한다.”
“멍청한 놈들. 고작 인간 따위에게 몰살당하다니.”
그 마족들을 이끄는 셋이 얼굴을 찌푸리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멍청한 그놈들의 뒤처리를 우리가 직접 하게 될 줄은 몰랐어.”
“방심하지 마라. 아틀란티스 차원의 인간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강하다.”
“알고 있어. 그래서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넘어온 거잖아. 하지만 우리가 중간에 차원의 미아가 되었다면 모를까 무사히 넘어온 이상 충분히 계획을 완료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
“그래도 최선을 다해라. 이는 마왕님의 명령이니.”
“알고 있다.”
“그럼 움직이자.”
마족을 이끄는 셋이 진군 명령을 내렸고.
쿵! 쿵! 쿵!
그와 동시에 그간 북부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족히 500만이 넘는 숫자의 마족과 몬스터 대군이 남쪽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 * *
‘벌써 1년이 지났네.’
사면 침공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아틀란티스 차원은 마족의 침공 없이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평화를 누렸다.
수많은 차원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지만.
몬스터들은 더 이상 아틀란티스 차원의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레벨과 스킬 랭크를 올려 주고 아이템을 주는 경험치 셔틀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했다.
오히려 튜토리얼을 마치고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넘어온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와 원주민 출신 플레이어의 숫자가 너무 많이 늘어난 결과.
‘사냥터와 몬스터가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지.’
강현수가 회귀 전이었다면?
사냥터를 두고 알력 다툼이 벌어지거나.
플레이어들 간의 힘겨루기가 한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현수에 의해 로크토 제국, 사클란트 제국, 남부 연합 왕국이 하나의 동맹으로 거듭났고.
원주민 출신 플레이어와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들의 분쟁이 금지된 결과 현재까지는 별다른 분쟁 없이 인류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슬슬 이것도 한계야.’
무란 왕국의 경우처럼 국가 단위의 무투 대회를 열거나 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 표출구를 마련해 주기는 했지만.
‘사람은 안정이 되면 나태해지지.’
방만한 마음을 품는 자들의 비율이 급격히 늘어났다.
마왕군의 침공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자 플레이어들이 전체적으로 풀어진 것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기보다는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가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강현수는 알고 있다.
마왕군이 전면전을 펼치기 시작하면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
지금처럼 몬스터를 마왕군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가는?
분명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뭐, 단점만 있는 건 아니지만.’
대대적인 마왕군의 침공이나 몬스터 웨이브가 없었기에 좋은 점도 있었다.
그건 아틀란티스 차원의 인류가 가진 힘의 크기가 전체적으로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회귀 전과 비교하면?
‘족히 5배 이상은 뛰어난 전력을 갖췄어.’
침공을 조기 진압하고 내전과 분쟁이 발발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결과였다.
멸망해야 할 나라들이 살아남았고.
허무하게 죽었을 자들이 목숨을 건졌으며.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성장의 기회를 얻었다.
‘마왕군의 침공이 시작되면 큰 피해를 입겠지만.’
아틀란티스 차원의 인류는 그 피해를 감당할 만한 충분한 체력을 키운 상태였다.
마왕군의 대대적인 침공이 멈춘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장점이 더 커.’
기왕이면 전면전 시작 전까지 이런 평화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야 인류의 전력이 더 커질 것이고.
부족한 상태가 아닌 풍족한 상태에서 전면전을 치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최소 300만은 넘는 숫자의 마족과 몬스터 대군이 북부에서 남하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마족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사클란트 제국에 지원 요청을 하고 병력을 소집해서 방어진을 구축해.
-알겠습니다.
로크토 제국의 황제 세실리아에게 지시를 내린 강현수도 이동할 준비를 했다.
‘꽤 오랜 시간 잠잠하기는 했지.’
병력 규모를 보니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닌 듯했다.
‘오히려 잘됐어.’
사면 침공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저 정도 병력을 강현수 혼자 막을 수는 없다.
‘아마 이기더라도 어마어마한 피해가 생기겠지.’
패배한다면?
로크토 제국이 멸망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준비는 충분해.’
아틀란티스 차원은 오랜 시간 평화로웠고.
힘을 비축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간 비축한 힘을 통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해야 했다.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엄청난 피해를 입겠지만.
‘그래서 얻는 것도 있겠지.’
안정적으로 몬스터만 사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경험과 성장.
이번 침공을 막아 내며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겠지만.
잘만 막아 낸다면?
‘오히려 인류의 전력이 더 올라갈 수도 있어.’
이번 침공 방어는 마왕군과의 전면전을 대비한 훌륭한 실전 연습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러나 연습이라고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최선을 다한다.’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오랜 평화에 나태해진 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은?
‘변화해서 살아남거나 허무하게 죽겠지.’
안타깝기는 하지만.
강현수가 모두를 구제해 줄 수는 없다.
지금 강현수가 해야 할 일은?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 * *
강현수, 송하나, 투황, 유카.
네 사람이 거대한 성벽 위에 섰다.
“정말 어마어마하네.”
송하나가 기가 질린다는 듯 말했고.
“저 정도 병력이 차원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걸 왜 몰랐지?”
투황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우리가 아틀란티스 전역을 감시할 수는 없으니까.”
마왕군의 병력 규모는 실로 엄청났다.
그러나.
‘전면전이 시작된 건 아니야.’
회귀 전 마왕군이 전면전을 시작했을 당시의 병력은?
‘몇백만 단위 수준이 아니었지.’
최하 몇천만.
최종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억 단위의 병력이 쏟아져 들어왔다.
문제는 그 시작이었다.
‘회귀 전에는 이런 대규모 침공이 연속적으로 벌어졌지.’
그게 전면전의 시작이었다.
저렇게 쌓인 몇백만의 병력이 천만을 넘어서고.
계속해서 늘어나 몇천만을 넘어 억 단위의 병력으로 거듭난다.
‘빠르다.’
회귀 전의 흐름보다 못해도 5년은 빠른 느낌이었다.
그러나 괜찮았다.
아군의 전력은 회귀 전보다 강해졌으니까.
오히려.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마왕군의 침공이 무작정 미뤄졌다면?
아군의 전력이 더 상승했을 수는 있겠지만.
위기감은 바닥을 쳤으리라.
‘뭐, 저놈들 입장에서도 자잘하게 공격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병력을 모아서 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을 거고.’
자잘하게 병력을 보내도 계속 패배하기만 하니 아예 작정하고 대군을 보낸 것이리라.
‘그럼 가볍게 인사를 해 볼까.’
강현수가 휘하 지휘관들과 소환수들을 소환했다.
그 후 리치 부대까지 동원했다.
-공격.
강현수의 지시와 함께 휘하 지휘관들과 소환수들 그리고 리치들이 일제히 원거리 공격을 날렸고.
강현수 역시 마력, 신성, 마기를 끌어올려 융합시킨 후.
휘익!
검을 휘둘러 공격을 가했다.
10만이 넘는 병력이 동시에 쏘아 낸 각양각색의 공격 스킬들이 날아갔다.
그때.
위이이잉!
검푸른 장막이 피어올랐고.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강현수와 수하들이 날린 공격이 검푸른 장막과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