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연합 왕국 (3)
“편하게 둘러보시길.”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의 말에.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강현수가 본격적으로 남부 연합 왕국의 보고 탐사를 시작했다.
‘도대체 뭘 가지고 가려고 저러는 거지?’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강현수를 주시했다.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을 포함해 각국의 국왕들이 강현수에게 남부 연합 왕국의 보고를 개방한 이유는 간단했다.
‘쓸 만한 건 이미 다 사용 중이니까.’
보고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계륵이나 다름없는 아이템을 모아 놓는 창고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왜 보고에 있는 아이템을 요구했을까?
남부 연합 왕국의 국왕들로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은 그 궁금증이 컸다.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의 고유 스킬은 진실의 눈.
진실의 눈은 플레이어뿐 아니라 아이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곳에 진실의 눈으로 꿰뚫어 보지 못한 효력을 지닌 아이템이 있을 리가 없는데.’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이 의문 섞인 시선으로 강현수를 주시하고 있을 때.
강현수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스킬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저걸 선택했다고?’
강현수가 선택한 스킬북을 목격한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강현수가 선택한 스킬북의 이름은 희생의 용기.
EX랭크의 스킬북이기는 하지만.
‘저걸 선택할 이유가 없을 텐데.’
스킬북 희생의 용기는.
‘레벨을 영구적으로 희생해 일시적으로 스텟을 증폭시켜 주는 스킬인데.’
저건 죽을 생각이거나 플레이어로서의 미래를 버릴 생각이 아니고서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스킬이었다.
한번 발동시킬 때마다 현재 레벨의 절반을 소진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효과는 좋다.
소진된 레벨에 해당하는 스텟을 300% 증폭시켜 주니까.
발동 시간도 길다.
그렇지만.
‘그래 봐야 단점이 더 큰 스킬인데.’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으로서는 강현수가 왜 저 스킬북을 선택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강현수 입장에서는?
‘역시 대박이네.’
레벨만 희생시킨다.
그 말은?
‘스킬 강화처럼 스텟은 바닥이고 레벨만 높을 때는 페널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지.’
강현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스킬이 없었다.
‘희생의 용기를 시전한 상태에서 이중 야수화 스킬을 사용하면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겠지.’
쿨타임이 12시간으로 조금 길기는 하지만.
‘그 정도야 문제 될 게 없지.’
왜냐면 발동 시간이 무려 12시간이나 되었으니까 말이다.
사실상 레벨만 높다면?
‘무한대로 사용이 가능하지.’
단 강현수 한정이었다.
다른 최상위 플레이어가 희생의 용기를 연속으로 사용하면?
‘레벨이 계속해서 반 토막이 나니까.’
순식간에 최상위 플레이어에서 최하위 플레이어로 추락할 수 있었다.
스킬명처럼 자신을 희생할 용기가 있어야만 사용이 가능한 스킬이었다.
‘나한테는 아니지만.’
회귀 전 이 스킬을 사용한 인물은 드워프 왕국의 플레이어로.
‘왕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전사였음에도 신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능가하는 엄청난 위용을 보여 줬지.’
단 12시간 후 곧바로 전력 외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지. 그럼 다른 보물을 찾아볼까?’
강현수가 환한 미소와 함께 다시 보물 탐험을 시작했다.
‘찾았다.’
그 후 발견한 보물들도 희생의 용기와 비슷한 계륵 격의 아이템들이었다.
스텟을 소모해 스킬의 위력을 강화시킨다거나.
수명을 깎아 스텟과 스킬을 상승시킨다거나 하는.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사용하기 위해서 엄청난 각오가 필요하지.’
그러나 강현수와 소환수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스텟을 깎는다?
강현수에게는 큰 페널티가 아니다.
수명이 줄어든다.
애초에 수명이랄 게 없는 소환수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총 10개의 아이템을 선택한 강현수가 밝은 표정으로 남부 연합 왕국의 보고를 빠져나갔고.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은 여전히 의문을 풀지 못한 상태였다.
몇몇 아이템의 용도는 알 수 있었지만.
희생의 용기를 포함한 몇몇 아이템의 경우는 도무지 어떻게 사용할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저런 아이템을 선택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다행이야.’
강현수가 선택한 아이템들은 남부 연합 왕국의 입장에서는 그리 쓸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부 연합 왕국이 멸망의 위기에 몰렸을 때 아군의 희생을 각오하고 사용해야 하는 아이템들이었다.
그러니 강현수가 가져간다고 해서 반발이 크게 일어날 일도 없었다.
‘아마 이 소식을 전한다면 모두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지.’
큰 출혈을 각오했는데.
별다른 피해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저자에게는 큰 쓸모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그게 뭘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중요한 건 아니지.’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은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자신에게 쓸모없는 물건이 다른 이의 손에서 보물로 거듭난다고 해도.
냉정하게 평가해서 배가 아플 수는 있어도 자신들이 손해를 본 건 아니니까 말이다.
거기다 상대는 엘프 왕국의 멸망을 막아 준 은인이자 구원자.
‘이 정도 보상으로 친분을 유지할 수 있다면 무조건 이득이야.’
마왕군의 침공이 이게 끝일 리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 * *
남부 연합 왕국에서의 위기가 종결되고 아이템까지 챙겼다.
‘1차 목표는 끝났어.’
투신갑의 저주도 풀었고 원하던 스킬북과 아이템도 손에 넣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2차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남부 연합 왕국 소속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들을 휘하에 넣어야 하는데.’
남부 연합 왕국 소속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는 총 세 명이었다.
치유의 여신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
대지의 수호신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드워프 왕국의 전사장.
전신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인간 왕국의 플레이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강현수가 다짜고짜 자신의 휘하로 들어오라고 하면?
‘당연히 들어올 리가 없겠지.’
더군다나 엘란의 경우는 일국의 왕이었고.
다른 둘 역시 자국에서는 왕 못지않은.
‘어떤 의미에서는 왕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지.’
골치가 아팠다.
‘휘하에 넣어야 필요할 때 소환해서 써먹을 수가 있는데.’
그래야 지휘관 임명과 지휘관의 축복으로 스텟도 올려 주고.
업적도 따박따박 챙겨 주고.
최악의 경우 사망했다고 해도 소환수로 부활시켜 써먹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건 강현수의 입장일 뿐.
‘그 셋을 설득하기는 부족하지.’
특히 남부 연합 왕국은 자기들끼리는 똘똘 뭉쳐도.
타국인에게는 적대적이다.
특히 제국인에게는 적대감이 더 증가했다.
‘차라리 그놈들이 편했는데.’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
이 네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걸어 명분을 만들어 준 덕분에.
손쉽게 휘하에 넣을 수 있었다.
‘시비를 좀 걸어 줬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그럴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의 경우 오히려 스스로를 낮추고 저자세로 나오지 않았는가?
‘역시 진실의 눈 때문이겠지?’
뭐, 진실의 눈이 아니더라도 강현수가 언데드 군단을 쓸어버리는 모습을 봤다면 감히 시비를 걸 생각은 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일단 이야기라도 꺼내 봐야겠어.’
설득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는 해 봐야지.’
강현수는 첫 번째 타깃을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으로 정했다.
“그런 장점이 있군요.”
강현수의 말을 들은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생사여탈권이 종속되겠죠?”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의 물음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거짓말을 할 생각도 없었고.
‘어차피 해 봐야.’
진실의 눈을 가지고 있는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에게는 통하지도 않았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강현수의 물음에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이 잠시 고심하던 중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조건만 수락해 주시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의 말에.
‘어라?’
강현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솔직히 말해 거부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건부지만 어쨌든 승낙을 한 것이다.
“그 조건이 뭐죠?”
강현수의 물음에.
“남부 연합 왕국을 지켜 주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의 말에 강현수가 잠시 고심했다.
사실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다.
애초에 강현수의 목표 자체가 아틀란티스 차원의 모든 이들을 지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거래라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거는 대가가 비슷해야 성립하는 법이지.’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은 거래의 대가로 자신을 올려놓았다.
자신이 강현수에게 종속되더라도 남부 연합 왕국을 지키겠다는 의지이리라.
그러나.
‘그건 수지가 안 맞지.’
강현수의 입장에서 정당한 거래의 조건에 올라갈 수 있는 건?
“엘프 왕국은 지켜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이번 언데드 군단의 침공을 막아 드린 것처럼 말입니다.”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 하나를 휘하로 넣고 남부 연합 왕국 전체를 지켜 주겠다는 약속을 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남부 연합 왕국이 망하든 말든 방치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우선순위가 떨어질 뿐.
‘그리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이 된다면?
연대장 직책을 받고 그만큼의 연대로 이루어진 소환수들의 지휘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이것만 해도 큰 힘이고.
‘만약의 경우 소환수 교환 스킬을 사용할 수도 있지.’
휘하에 데리고 있는 소환수 하나를 사단장급 소환수와 교체하면?
순식간에 사단급 병력을 지원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강현수 휘하의 지휘관이 아니라면?
‘그런 식의 지원은 불가능하지.’
물론 사클란트 제국의 경우처럼 강현수가 휘하 소환수를 대기시켜 놓으면 가능하지만.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런 호의를 베풀 수는 없지.’
그것도 남부 연합 왕국이 지불할 수 있는 대가가 있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제 가치는 그게 한계인 모양이군요? 그럼 엘프 왕국은 어떻게 지켜 주실 생각인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의 물음에 강현수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직업인 일인군단의 정보 일부가 풀리는 격이지만.
어차피 휘하로 들어올 인물이니 상관없었다.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이 말을 바꿔 화를 자초할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해했습니다. 휘하에 들어가겠습니다.”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은 강현수의 설명을 듣고 결정을 내렸다.
‘생각보다 쉽게 끝났네.’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릴 줄은 몰랐다.
뭐, 솔직히 말해서.
‘분위기상 내가 악당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옆에 있던 엘프 왕국의 중신들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은 왕국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듯한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차피 달라질 건 없을 텐데 말이야.’
강현수 입장에서는?
쓸 만한 전력을 강화시키고 필요에 따라 더 편하게 전투에 동원하기 위해 휘하에 넣었을 뿐이다.
그런데 엘프들은 마치 자신들의 여왕이 자유를 잃고 새장에 갇힌 새 신세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앞으로 보여 주면 그만이지.’
마왕군과의 전쟁을 제외하고는 자유를 줄 생각이니 앞으로 차차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다른 놈들도 휘하로 꼬시기 좋을 테니까.’
엘프 왕국의 여왕 엘란이 남부 연합 왕국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여왕이 자유를 누리는 모습을 보면 대지의 수호신과 전신도 내 휘하로 들어올 확률이 높아.’
과거 빙화신검을 시작으로 다른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줄줄이 강현수의 휘하에 들어왔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