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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공의 서막 (5)

강현수 일행이 투마족들을 쓸어버린 후 대중의 환호를 받을 무렵.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고생은 우리가 다했는데 찬사는 다크 나이트가 받는군.”

사클란트 제국의 네임드 플레이어 중 한 명이자 신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인 섬광도신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 꼴만 우습게 되었어.”

파천권신 역시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진작 목이 떨어졌을 자들이 그걸 모르고.”

“배은망덕한 놈들이야.”

무극신과 마도신 또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은 모두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들로 그 뿌리를 사클란트 제국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사클란트 제국의 황제인 카를 13세의 신하는 아니었다.

원주민이든 타 차원 출신이든 그건 큰 상관이 없었다.

원주민인 섬광도신과 마도신은 독자적인 영지를 가진 귀족이었고.

타 차원 출신인 파천권신과 무극신은 거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였다.

영주로 불리든 길드 마스터로 불리든 명칭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핵심은 이 네 사람이 독자적인 세력을 갖추고 자신의 명만 따르는 사병을 거느린 군주라는 점이었다.

이들은 사클란트 제국의 황제인 카를 13세의 부탁을 귓등으로 들을 정도로 오만했다.

카를 13세 역시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자 독자적인 세력을 가진 이 네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동안은 별문제가 없었다.

서로 소 닭 보듯 지내면 끝이었으니까.

문제는 오크 군단의 침공으로 프랭크 왕국이 멸망하고.

언데드 군단의 침공으로 수도가 불바다가 되고 나서부터였다.

다크 나이트의 수장 척마혈신의 명성이 치솟음과 동시에.

사클란트 제국인이면서도 오크 군단의 침공과 언데드 군단의 침공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이 네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것이다.

유형적인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무형적인 피해가 상당히 컸다.

마족이 무서워서 나서지 않았다.

자기만 아는 소인배들이다.

인류 수호의 사명을 저버린 매국노다.

등등등.

온갖 소문이 돌며 드높던 명성이 땅에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으로서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황제 못지않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

개인의 강함과 다수의 사병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성들과 일반 플레이어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존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그 근원 중 하나인 지지와 존경이 사라지고 있다.

명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악명이 쌓인다.

또한 백성과 일반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건 위험했다.

자칫 잘못하면?

신의 칭호를 박탈당할지도 몰랐다.

이에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은 차분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투마족의 침공이 시작되자.

번개같이 움직였다.

척마혈신과 다크 나이트가 나서기 전에 사건을 종결시켜 자신들의 힘에 대한 대중의 의심과 그간의 행적에 대한 비난을 종식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결과는 비참했다.

그들 넷과 휘하 플레이어들은 투마족의 족장을 상대로 분전했지만.

그게 다였다.

발목을 잡고 시간을 끌었을 뿐.

이기기는커녕 점점 더 불리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척마혈신과 다크 나이트가 나타나 보란 듯이 투마족의 족장을 쓰러트리고 투마족들을 쓸어버렸으니.

빠르게 움직였음에도 오히려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이는 이 네 사람의 실력이 부족해서였지만.

당사자인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척마혈신과 다크 나이트를 빛나게 해 주는 장신구가 되어 버렸어.”

“우리가 저놈의 체력과 마력을 소모시킨 공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군.”

“저 비열한 놈이 우리의 공적을 빼앗아 간 거야.”

“영악한 놈.”

네 사람은 자신들이 투마족 족장의 체력과 마력을 소모시켜 빈사 상태로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척마혈신과 다크 나이트가 그 공을 가로챘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넘어가면 우리만 우스운 꼴이 될 거야.”

“얻는 건 없고 잃는 것만 있을 수는 없지.”

“이번 기회에 신입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하네.”

“사실 전부터 한번 교육을 시키고 싶었는데 기회가 왔군.”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이 당당하게 척마혈신에게 다가갔다.

이 네 사람은 척마혈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들의 공을 가로챈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크 군단의 침공으로 멸망한 프랭크 왕국?

척마혈신과 다크 나이트가 처리하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나서 처리했을 것이다.

그건 언데드 군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네 사람은 단지 자기 몸값과 명성을 올리기 위해 조금 뜸을 들였을 뿐인데?

척마혈신과 다크 나이트가 냉큼 튀어나와 자신들이 얻을 찬사와 명예를 가로챘다.

네 사람은 이번 기회에 척마혈신에게 제대로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혼자였다면 이렇게 선뜻 나서지 못했으리라.

바보도 아니고 강현수가 아무리 자신들이 체력과 마력을 고갈시켜서 빈사 상태(?)로 만들어 놨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홀로 투마족의 족장을 쓰러트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무려 신의 칭호를 얻은 플레이어가 넷이었다.

이 정도라면?

척마혈신의 사과를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뭐야?’

‘저놈들이 왜?’

척마혈신에게 다가가던 네 사람은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보고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빙화신검, 권신, 신마검, 신창.

저 네 사람은 로크토 제국과 그 제후국 출신이기에 설마 이곳까지 왔을 줄은 몰랐다.

“오호, 안 그래도 찾아가려고 했는데 직접 찾아왔네.”

빙화신검이 환하게 웃으며 네 사람을 반겼다.

이에 섬광도신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때.

“자네도 저 친구한테 이번 일을 따지러 온 건가?”

눈치 없는 파천권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따지다니? 뭘 말인가?”

“자네들이 로크토 제국에서 여기까지 힘겹게 지원을 왔는데. 그에 대한 성과는 척마혈신이 다 차지하지 않았나?”

파천권신의 말에.

“뭐, 그건 그렇지.”

빙화신검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은 일반 마족을 상대한 모양인데. 우리는 저 마족들의 우두머리를 상대했네. 그 때문에 길드원들의 피해가 꽤 커졌어. 한데 이런 대접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히겠나?”

“아, 그랬구만.”

빙화신검이 맞장구를 쳐 주자.

무극신과 마도신도 재빨리 입을 열어 억울함을 토로했다.

빙화신검, 권신, 신마검, 신창 역시 자신들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척마혈신을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자 힘이 났기 때문이다.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 네 명이 따지는 것보다 여덟 명이 따지는 게 더 영향력이 크지 않겠는가?

빙화신검이 적당히 대화를 받아 주자.

‘우리랑 같은 목적이었나 보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섬광도신도 마음을 놨다.

‘애초에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어.’

생각해 보니 빙화신검, 권신, 신마검은 원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놈들이었다.

척마혈신과 친분이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는 자들인 것이다.

‘그건 신창도 마찬가지고.’

신창은 귀족이고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자신들과 비슷한 부류니 당연히 척마혈신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었다.

‘잘된 일이군.’

넷이 뭉쳤다고는 하지만 내심 척마혈신이 거느린 수하들이 마음에 걸렸던 참이었다.

무려 10만이 넘는 병력이지 않은가?

그런데 저 넷이 함께한다니 마음이 든든했다.

‘설사 황제라도 우리 앞에서는 자존심을 굽혀야 할 거다.’

무려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만 여덟 명이다.

자신들이 한마음으로 움직인다면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신의 칭호를 가진 여덟 명의 플레이어가 위풍당당하게 척마혈신에게 다가갔고.

“이보게 자네 어찌 그리 염치가 없을 수 있나!”

“우리가 다 잡은 사냥감을 가지고 생색을 내다니!”

“그런 얌체 같은 행동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당장 우리에게 사과하게!”

당당히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콰콰콰콰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척마혈신 주변에 있던 이들이 마력을 끌어 올렸고.

그 순간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자신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기운을 품고 있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척마혈신이 직접 마력을 뿜어낸 것도 아니다.

그저 근처에 포진해 있던 다섯 명의 플레이어들이 마력을 뿜어낸 것뿐인데.

그 마력에 짓눌릴 것 같았다.

‘저놈들은 무투황과 일인군단도 아닌데.’

예상과 다른 결과에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사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혹한의 군주와 투마족의 족장은 비록 다운그레이드되기는 했지만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들을 능가하는 강자다.

거기다 그간 강현수에께 꾸준히 마기를 주입받고 강화된 도플갱어 킹 탈리만, 오크 로드 카쉬쿠, 데스 나이트 버나드 같은 경우도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들을 능가하는 실력자.

그들의 마력을 제아무리 신의 칭호를 가진 강자들이라 하나 고작 넷이서 감당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 인외의 존재라 소환하지 않은 라미아 로드나 마룡 카라스.

혹시 몰라 라이프 포스 베슬에 넣어 버린 리몬쉬츠와 리치들.

거기다 전장에서 전리품을 수거하는 소환수들을 지휘하느라 빠진 하급 마계 귀족 출신 소환수들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저 넷은 그대로 전의를 상실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이 자리에는 고작 다섯뿐이었고.

‘우리는 여덟 명이야.’

‘아무리 힘이 있어도 우리를 핍박할 수는 없다.’

동료가 네 명 더 늘어난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주군을 뵙습니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맞장구(?)를 쳐 주던 빙화신검이 척마혈신을 보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걸 시작으로.

“주군을 뵙습니다!”

권신, 신마검, 신창이 합창하듯 외치며 일제히 척마혈신에게 고개를 숙이자.

‘이게 무슨?’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 자존심 강한 놈들이 왜?’

‘이럴 리가 없는데?’

순식간에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의 맨탈이 붕괴되어 버렸다.

“너희가 다 잡은 사냥감이었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척마혈신의 무심한 한마디에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젠장 역시 뭔가 불안하다 했더니.’

섬광도신은 뒤늦게 자신의 감이 맞았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놈들 때문에.’

빙화신검, 권신, 신마검, 신창.

저 넷의 수작에 휘말려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잘못하면 여기서 목이 날아간다.’

여기 오기 전에는 꿀릴 게 없다고 생각했고.

설사 분쟁이 커지더라도 무력을 쓰는 일까지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한데 그 생각이 바뀌었다.

척마혈신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여기서 살아 돌아갈 수 없어.’

척마혈신의 무력을 보고도 당당할 수 있었던 건.

무력 충돌이 없으리라 확신했던 건.

자신들과 척을 지면 척마혈신이 더 손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전력을 비교하면?

척마혈신은 아무런 피해없이 자신들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큰 착각을 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섬광도신이 재빨리 몸을 낮췄다.

그런 섬광도신을 보고.

“맞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저희가 실수를 했군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도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착각했다고 해서 무례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실수라고 해서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못을 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척마혈신의 말에 섬광도신, 파천권신, 무극신, 마도신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잠시 후.

그 네 사람은 사죄의 보상으로 척마혈신에게 충성 맹세라는 커다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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