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공의 서막 (3)
“으아아아!”
라미아 로드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독기는 모든 것을 녹여 버렸고.
삼지창 속에 담겨 있는 파괴력은 웬만한 랭커 플레이어의 숨통을 일격에 끊을 정도로 강력했다.
꽈아앙!
라미아 로드의 맹공에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베이스로 만든 소환수와 골렘이 뒤로 쭉 밀려났다.
‘어느 정도 보강을 해 줬는데도 부족하네.’
소환수와 골렘 모두 본체였던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보다는 월등히 약하다.
그러나 지휘관 임명과 지휘관의 축복으로 늘어난 스텟.
강현수가 자신의 마기 스텟을 늘리는 걸 포기하고 쏟아부은 마기로 인해 어느 정도 본체의 무력을 따라잡았다.
광혈마녀 유카가 만든 골렘 역시 골렘 합성과 냉기의 정수로 인해 빠르게 본체의 무력을 따라잡고 있는 상황.
지금은 본체보다 약하지만.
시간만 지난다면?
‘도플갱어 킹 탈리만처럼 본체의 무력을 능가할 수 있겠지.’
마기의 구슬을 통해 마기를 계속 주입해 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거기다 나름 선전하기는 했지만.
현재 강현수 일행의 전력은 라미아 로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혹한의 군주를!”
라미아 로드는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승승장구하더니 갑자기 독이 통하지 않는 마력과 마기로 이루어진 놈들이 나타났다.
자신이 직접 나서면 손쉽게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데.
적들의 전력이 자신의 예상보다 강했다.
결정적으로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꼭 빼닮은 마기로 이루어진 존재와 골렘.
이건 혹한의 군주가 적들에게 죽었고.
죽은 혹한의 군주를 적들이 부활시켜 수족으로 부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알 거 없고.”
강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라미아 로드가 이끄는 라미아와 몬스터 대군.
이놈들 덕분에 경험치, 신성 스텟, 마기 스텟에 이어 독성 스텟까지 엄청나게 늘릴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
휘익!
강현수가 휘두른 탐식의 검이.
서걱!
삼지창을 들고 있던 라미아 로드의 오른팔을 잘라 냈다.
“죽은 후에 부활시켜서 너도 알뜰하게 써먹어 줄게.”
강현수의 말에 라미아 로드는 심장이 얼어붙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고귀한 마계 후작인 자신이.
죽은 후 인간의 노예가 되다니?
“내가 그런 꼴을 당할 것 같으냐!”
라미아 로드의 몸에서 독기와 뒤섞인 마기가 급격히 부풀어 올랐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순간.
서걱!
유카가 조정하는 누더기 골렘이 라미아 로드의 목을 베어 냈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베이스로 수많은 빙마족의 시신을 덧붙여 만든 누더기 골렘.
두 개의 뿔과 세 개의 눈이 달린 머리를 제외하면 나머지 육체는 누더기처럼 다른 마족의 시체를 끼워서 만들어진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전투력 자체는 훌륭했다.
“만들게요.”
광혈마녀 유카의 말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골렘 소환!”
광혈마녀 유카가 라미아 로드의 육체를 기반으로 골렘을 만들었고.
강현수 역시 군단 구성 스킬을 통해 라미아 로드를 기반으로 소환수를 만들었다.
[라미아 로드를 홀로 쓰러트리는 있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라미아 로드 슬레이어 EX랭크가 주어집니다.]
[라미아의 침공을 홀로 막아 내는 있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라미아 학살자 EX랭크가 주어집니다.]
[마계 후작을 홀로 쓰러트리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계 귀족 학살자 F랭크가 E랭크로 성장합니다.]
[라미아족 전사를 다수 쓰러트리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족 학살자 C랭크가 B랭크로 성장합니다.]
당연히 업적이 쏟아져 내렸다.
‘아틀란티스 차원의 수호신은 성장하지 않았네.’
아쉽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강현수에게는 아직 투마족이 남아 있었으니까.
‘막타를 친 유카가 업적을 하나 얻었을 거고.’
다른 휘하 지휘관들도 쓸 만한 업적을 얻었으리라.
‘여기 뒷정리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강현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툭!
라미아 로드가 들고 있던 삼지창과 함께 동그란 무언가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역시 뭔가 주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골렘으로 만들 때 시체에서 떨어져 나왔던 냉기의 정수와 비슷한 것으로 보였다.
[독사의 근원 - EX랭크]
-라미아 일족의 로드 가진 맹독의 근원입니다.
‘비슷하네.’
이걸 유카에게 주면?
‘라미아 로드를 베이스로 만든 골렘이 맹독을 품게 되겠지.’
거기다 다른 효용도 있어 보였다.
‘계속해서 독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럼에도 독사의 근원이 품고 있는 독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독성 스텟이 상승하였습니다.]
[독성 스텟이 상승하였습니다.]
[독성 스텟이 상승하였습니다.]
……후략……
‘독성 스텟이 계속 오른다.’
그럼에도 독기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 독사의 근원을 이용해 라미아 로드의 골렘을 만들고 곁에 두면?
‘계속해서 독성 스텟을 올릴 수 있겠어.’
물론 한계는 있을 게 확실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 한계가 꽤 높을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얼른 정리해야겠어.’
수장을 잃은 라미아 일족과 몬스터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사클란트 제국의 제후국 사브라 왕국으로 향해야 했다.
* * *
“막아라! 어떻게든 버텨!”
머리에 소뿔을 단 마족들이 무식하게 성벽을 기어오른다.
플레이어들이 성벽 위에서 창과 검을 휘두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퍼억!
겨우겨우 성벽 아래로 떨어트리면?
멀쩡하게 다시 일어나 성벽을 기어오른다.
꽈아앙!
소뿔로 성문을 들이받고 성벽도 들이받는다.
박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먹질도 한다.
이 무식한 마족 놈들은 끊임없이 성벽을 기어오르고.
방어 스킬이 겹겹이 달린 성벽과 성문을 부숴 버릴 기세로 공격을 퍼부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무식한 마족 놈들이라며 비웃음을 날릴 것이다.
그러나.
우지직!
방어 스킬을 꿰뚫는 충격을 받은 성문이 금방이라도 박살 날 듯 비명을 토해 냈고.
쩌저적!
성벽에 작은 실금이 퍼져 나갔다.
“저 무식한 놈들.”
사클란트 제국에서 파견 나온 지원 병력의 총지휘관은 기가 질린다는 듯 전방을 주시했다.
수많은 마족이 우직하게 힘으로 성벽을 향해 돌진한다.
아군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전장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성벽 아래 있는 마족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가야 했다.
그러나.
“뭐가 이렇게 단단한 거야!”
공격 스킬을 날려도 몸으로 받아 내고 전진한다.
검과 창을 휘둘러도 힘으로 뭉개 버린다.
무식한 놈들이라고 욕을 했지만.
그 무식한 놈들의 손에 수많은 성과 마을이 파괴되었다.
지금 버티고 있는 이 성벽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지원군으로 온 플레이어들이 성벽을 방어 스킬로 도배하고 공격 스킬을 쏟아 내고 있지만.
적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숫자를 줄여야 승산이 있는데.’
저 빌어먹게 단단한 놈들은 쉽게 죽지도 않았다.
네임드 플레이어나 랭커 플레이어들이 나서면 가능하겠지만.
‘저놈 때문에.’
5미터에 가까운 키를 가진 거인.
투마족들의 족장.
네임드 플레이어들과 랭커 플레이어들이 저놈 하나를 막기 위해 손발이 묶였다.
그나마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나서서 겨우 손발을 묶어 놓을 수 있었지.
그게 아니었다면?
‘벌써 저놈이 성문을 박살 냈겠지.’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결국 패배한다.
‘로크토 제국에서 지원군이 와 줘야 하는데.’
일반 플레이어들의 지원은 왔지만.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들이 아직이었다.
‘최대한 빨리 와 줘야 해.’
투마족의 족장을 막기 위해 나선 네임드 플레이어들과 랭커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겨우겨우 막아 내고 있지만.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끝장이다.’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들이 패배하면 저 괴물이 성벽을 향해 돌진할 것이고.
그럼 끝장이었다.
‘북부와 동부에서도 마왕군의 침공이 있었다고 했지.’
다행해 북부는 빠르게 정리했고 동부만 틀어막으면 된다고 했다.
‘제발 제발.’
이곳이 밀리면?
사브라 왕국의 국토 절반을 내줘야 한다.
아니, 어쩌면 절반이 아니라 전부를 내줘야 할지도 몰랐다.
현재 이곳에 사클란트 제국과 사브란 제국의 정예가 총동원되었다.
‘여기가 뚫리면 사브라 왕국만이 아니라 사클란트 제국도 위험해.’
주력이 모두 몰려 있는 곳이다.
성벽이 무너지고 방어진이 뚫리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거다.
이차 방벽이 준비되어있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오히려 이곳보다 약하다.’
로크토 제국의 지원 덕분에 플레이어는 넘치도록 많았지만.
투마족의 족장과 정예 전사들을 막을 실력자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타악!
그때 칠흑빛 갑옷을 입은 한 사내가 투마족과 몬스터들로 뒤덮인 성벽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어?”
너무 이질적인 광경에 순간적으로 넋이 나갔다.
‘미친놈.’
마족과 몬스터가 가득한 성벽 아래는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한데 그곳으로 뛰어내리다니.
‘죽겠군.’
총지휘관은 신경을 끊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어리석은 자에게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쿠우웅!
커다란 폭음과 함께.
“크아아악!”
“커어어억!”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비명의 근원은 성벽에서 뛰어내린 미친놈이 착지한 곳이었다.
콰직! 서걱!
강철로 만들어진 육체를 가진 것처럼 보이던 투마족들이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사아아악!
칠흑빛 갑주를 입은 이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초록빛 연기가 전장을 뒤덮었고.
“아아아악!”
“독이다!”
“저놈을 죽여!”
가까이 있던 투마족과 몬스터의 몸이 녹아내렸다.
멀리 있던 투마족들과 몬스터들도 몸을 비틀거렸다.
두두두두!
투마족들과 몬스터들이 성벽 아래 홀로 있는 칠흑빛 갑주를 입은 이에게 달려들었지만.
강력한 독기 때문에 제대로 다가가기도 전에 죽어 나갔다.
‘도대체 저자는 뭐지?’
저 강력한 독을 사용하는 플레이어가 누구란 말인가?
‘독황?’
아니다.
그는 독을 사용한 플레이어들 중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이기는 했지만.
‘저런 위용을 보여 줄 수준은 아니야.’
결정적으로 독황 역시 입을 쩍 벌린 상태로 성벽 아래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성을 향해 맹공을 퍼붓던 투마족들과 몬스터들의 뒤로 10만이 넘는 대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투마족들과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한 대지다.
기습을 위해 병력을 돌릴 여력 따위는 없었다.
콰악! 서걱!
투마족들과 몬스터들의 후방에서 나타난 10만의 병력이 무서운 기세로 진격을 시작했다.
그에 발맞춰 맹독을 사용하는 칠흑빛 갑주를 입은 플레이어도 발걸음을 옮겼다.
10만의 병력과 1명의 플레이어.
그들이 앞으로 전진할수록.
방금 전까지 무적처럼 보였던 투마족들과 몬스터들이 샌드위치처럼 뭉개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나 답은 하나였다.
그건 바로 더 이상 성의 함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 * *
‘대량 학살에는 역시 독이 최고지.’
투마족.
회귀 전 상대해본 적이 있는 자들로.
‘전형적인 무투파 마족이지.’
강철보다 단단한 육체를 바탕으로 펼치는 맹공은.
‘기갑부대의 돌파력을 능가하지.’
정면으로 깨부수면?
‘이길 수야 있겠지만 피해가 커.’
거기다 스킬 저항력도 높아서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에도 잘 견뎠다.
그렇다고 공격력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잘 단련된 육체에서 나오는 괴력은 맨손으로 강철을 찢어발길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독에는 약하지.’
뭐, 약하다는 것도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투마족은 웬만한 독은 맨몸으로 씹어먹을 정도로 터프하다.
그러나.
동부의 몬스터를 쓸어버리고.
차원 게이트를 통과해 쏟아져 나온 라미아들과 몬스터들의 맹독을 흡수한 강현수만큼은 아니었다.
‘2,000이 넘었어.’
독성 스텟은 본래 강현수가 지니고 있던 특수 스텟 중에서도 가장 빈약한 스텟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삼시 세끼 독초로 배를 채웠고.
간식으로도 독초를 먹었지만.
‘잘 오르지 않았지.’
그랬던 독성 스텟이 단 한 번의 전투로 엄청나게 쑥쑥 올랐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