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공의 서막 (2)
“이 나라가 이렇게 멸망하는 건가.”
라메파질 왕국의 국왕 호엘로저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로크토 제국과 주변국들의 빠른 지원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고.
다행히 수도를 지킬 수 있었다.
대피가 빠르게 이어졌기에 잃은 국토에 비해 희생당한 백성들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지원군으로도 전황은 뒤집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수도를 중심으로 항전하고 있지만.
잃은 국토를 회복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설사 기적적으로 국토를 회복해도 문제였다.
맹독으로 오염된 국토는.
‘사람이 살 수 없다.’
사람만이 아니다.
맹독에 의해 오염된 국토는 동물들과 식물들이 모두 죽어 버렸다.
저 맹독이 사라지려면?
몇 년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라메파질 왕국이 존속하려면 남은 절반의 국토라도 지켜야 하지만.
‘끝장인가?’
희망이 없었다.
열심히 항전하고 있지만.
지원군보다 중독으로 후송되는 병력이 더 많았다.
이대로 수도를 빼앗기면?
남은 절반의 국토도 순식간에 마족과 몬스터에 의해 점령당할 것이다.
그럼?
‘사라지겠지.’
라메파질 왕국의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수도가 함락될 것을 가정하고 백성들을 대피시키는 중이지만.
‘절반이라도 몸을 피할 수 있으면 기적이겠지.’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희망이 없었다.
조국을 잃은 라메파질 왕국인들은 부랑자가 될 것이고.
자신은 망국의 군주가 되리라.
“크윽!”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슈슈슈슉!
전신에 칠흑빛 갑옷을 걸친 병사들이 전장에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원군?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병사들의 수는 족히 10만은 넘어 보였다.
저 정도 병력이 이렇게 단기간에 증원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고 마족과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칠흑빛 갑주를 걸친 병사들은 엄청난 무위를 뽐내며 마족과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그러나.
“저 머저리들.”
라메파질 왕국의 국왕 호엘로저의 얼굴은 절대 밝지 않았다.
오히려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병력으로 밀어붙여 이길 수 있는 이들이 아니거늘.’
마족과 몬스터 모두 맹독을 품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플레이어도 해독제와 힐러 없이는 지속적인 전투가 불가능했다.
라메파질 왕국의 국왕 호엘로저는 맹위를 떨치는 칠흑빛 갑주를 걸친 병사들이 금방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뭐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칠흑빛 갑주를 걸친 병사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맹독이 잔뜩 담긴 적들의 피를 뒤집어썼음에도 멀쩡했고.
독기가 들끓어 숨을 쉬는 것만으로 중독되는 대지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검을 휘두르고 창을 찔러 넣었다.
“도대체 어떻게?”
라메파질 왕국의 국왕 호엘로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칠흑빛 갑주를 걸친 병사들이 수도를 둘러싸고 있던 개미 떼 같은 마족과 몬스터 대군을 밀어붙였다.
“와아아아!”
“살았다!”
죽음 직전에 놓였다 구원받은 병사들이 힘찬 함성을 터트렸다.
‘저들의 정체가 뭐지?’
그와 동시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조금만 더 빨리 와 줬다면.’
국토의 절반을 잃지 않았으리라.
그랬다면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건졌을 것이다.
“폐하!”
로크토 제국군 사령관이 다가왔다.
“저들도 로크토 제국의 지원군이요?”
라메파질 왕국의 호엘로저 국왕의 물음에.
“예, 다크 나이트가 지원을 왔다고 합니다.”
“다크 나이트?”
라메파질 왕국의 호엘로저 국왕도 다크 나이트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비밀결사 조직 같은 거 아니었나?’
그런데 무슨 놈의 비밀결사 조직의 병력이 10만이 넘는다는 말인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쨌든 저들 덕분에 살았으니까.
그렇지만.
“조금 더 빨리 지원을 와 줄 수는 없었나?”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로크토 제국 북부에서 마계 후작이 20만의 대병을 이끌고 침략해 와서 그걸 막아 내고 오느라 늦었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 사클란트 제국의 제후국인 사브라 왕국이 마왕군이 20만의 대병을 이끌고 침략해 왔다고 합니다. 마왕군이 삼면에서 대공세를 한 듯합니다.”
로크토 제국군 사령관의 말에 라메파질 왕국의 호엘로저 국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로크토 제국이 침공당했으니 늦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우리 왕국으로 먼저 와 줘서 다행이군.’
다크 나이트의 수장 척마혈신은 로크토 제국의 공작이기도 하지만 사클란트 제국의 대공이기도 하다.
만약 다크 나이트의 수장 척마혈신이 로크토 제국의 제후국인 라메파질 왕국이 아니라 사클란트 제국의 제후국인 사브라 왕국으로 향했다면?
라메파질 왕국은 그대로 멸망했으리라.
강현수 입장에서는 먼저 연락을 받은 것도 있고 전략상 이점도 있었기에 라메파질 왕국으로 온 것이었지만.
그게 라메파질 왕국을 살렸다.
* * *
‘역시 치명적이네.’
라메파질 왕국으로 이동하던 중 서부에서 벌어진 마족의 침공 소식을 들었다.
그럼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것은.
‘이쪽이 더 급하니까.’
로크토 제국과 사클란트 제국.
이 두 제국은 결코 약하지 않다.
회귀 전 결국 멸망하기는 했지만.
‘마왕군의 침공을 막는 최후의 보루였지.’
동부를 침공한 마족은 라미아.
‘맹독을 사용하지.’
서부를 침공한 마족은 투마족.
‘전사로 이루어진 종족이지.’
라미아와 투마족은 동일한 상급 마족이다.
그러나.
‘독을 사용하는 게 더 치명적이야.’
사클란트 제국은 강국이다.
그간 준비를 잘 갖춰 놨기에 순식간에 대군을 소집해 지원군으로 보낼 수 있다.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가 먼저 가서 방어를 지원하고 있을 거고.’
그래서 갑작스러운 기습임에도 영토의 1/4을 빼앗긴 상태에서 어느 정도 선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맹독을 사용하는 라미아는?
‘플레이어에게 훨씬 더 위험해.’
수준이 낮은 플레이어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독기는 성벽을 넘어 플레이어들의 몸속으로 스며든다.
‘이쪽이 더 급하지.’
그러나 여유는 없다.
사클란트 제국이 전력으로 나선 만큼 강현수가 지원을 가지 않아도 제국이 멸망한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피해가 엄청나게 커지겠지.’
어쩌면 제후국인 사브라 왕국 영토를 영구적으로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건 강현수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야 했다.
강현수가 서부 침공 소식을 듣고도 방향을 바꾸지 않은 이유다.
‘독기로 오염된 대지라.’
일반적인 플레이어에게는 치명적인 곳이다.
그러나 강현수에게는?
[독성 스텟이 상승하였습니다.]
[독성 스텟이 상승하였습니다.]
[독성 스텟이 상승하였습니다.]
……후략……
‘팍팍 오르네.’
독성 스텟을 올리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대지와 대기에 스며든 독기가 강현수에게 빨려 들어갔고.
짧으면 몇 년 길면 몇십 년 동안 독기에 오염되었을 대지와 대기가 정화되어 갔다.
‘유카도 잘하고 있는 것 같고.’
독기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 건 강현수의 소환수들만이 아니었다.
광혈마녀 유카의 골렘들도 독기 따위에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거기다.
“모조리 쓸어버려!”
“와아아아아!”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들을 포함해 로크토 제국 전역에서 끌어모은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 같은 최상위 플레이어들은.
적당한 해독제만으로도 충분히 라미아와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20만에 가까운 적들 사이로 고작 수천의 병력이 달려드는 건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어도 자살행위에 가깝다.
그러나 강현수의 소환수들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 주는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캬아아악! 이놈들은 뭐야!”
“독이 통하지 않는다!”
라미아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자신들의 가장 큰 무기가 통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여기를 먼저 온 이유지.’
맹독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라미아와 몬스터들의 경우.
‘독을 빼면 동급의 마족이나 몬스터보다 약하지.’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코브라가 무서운 이유는 맹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맹독을 가진 코브라는?
사자나 호랑이같이 월등히 강한 맹수도 이길 수 있지만.
맹독이 없다면?
고양이나 개에게도 물려 죽을 수 있는 약한 존재다.
독이 통하지 않는 소환수와 골렘.
강한 체력과 저항력을 바탕으로 약간의 해독제로 독을 중화시킬 수 있는 최상위 플레이어.
이 조합이면.
콰아아앙!
“크아아악!”
라미아와 몬스터 대군을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었다.
그간 무적처럼 보였던 라미아와 몬스터 대군이 일방적으로 쓸려 나갔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가 이끄는 빙마족을 격파한 후 강현수가 거느린 소환수들의 전체적인 질이 크게 상승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손쉽게 라미아와 몬스터 대군을 격파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미천한 인간들 따위가!”
콰콰콰콰콰!
꽈아아앙!
어디에나 변수는 있는 법.
‘라미아 로드.’
맹독이 무용지물인 소환수들의 육체를 순수한 독기로 녹여 버릴 정도의 맹독을 가진 존재.
최상위 플레이어들이 해독할 틈도 없이 육체를 녹이고 강력한 힘과 속도로 압살하는 괴물.
‘일반 소환수들을 투입해 봐야 녹아내릴 뿐이지.’
저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정예 중에 정예만 투입시켜야 했다.
-유카.
강현수의 부름에.
-네, 투입시킬게요.
유카가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바탕으로 만든 최강의 누더기 골렘을 투입시켰다.
강현수 역시 일반 소환수들을 뒤로 물리고 사단장과 여단장의 직위를 가진 소환수들을 투입시켰다.
타악!
그와 동시에 강현수 역시 라미아 로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치이이익!
거리가 좁혀질수록 맹독이 강현수의 몸을 파고들었다.
옷가지가 녹아내렸지만.
강현수의 피부는 멀쩡했다.
오히려.
[독성 스텟이 상승하였습니다.]
[독성 스텟이 상승하였습니다.]
[독성 스텟이 상승하였습니다.]
……후략……
독성 스텟만 미친 듯이 상승했다.
‘넌 뭘 줄래.’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는 몇 개의 아이템을 남겼다.
눈처럼 새하얀 갑옷과 창.
그리고 냉기의 정수라는 아이템.
눈처럼 새하얀 갑옷과 창은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베이스로 만든 소환수에게 주었고.
냉기의 정수는 강현수가 유카에게 누더기 골렘의 재료로 양보했다.
소환수에게 주는 것보다 골렘의 재료로 사용하는 게 더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휘익!
강현수가 핏빛 오러를 중심으로 은빛과 초록빛에 휩싸인 검을 휘둘렀다.
파강!
라미아 로드의 창과 강현수의 검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서걱!
충돌과 함께 터져나간 오러의 파편이 라미아 로드의 몸을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피와 함께 뿜어져 나온 맹독이 강현수를 노렸지만.
‘그건 독성 스텟을 올려 주는 보약일 뿐이지.’
라미아 로드가 가진 맹독은 상당히 강력했지만.
강현수의 독성 스텟 역시 1,000을 돌파한 상황이었고.
거기다 독룡의 정수를 흡수하며 독에 대한 저향력이 500%나 향상된 상태였기에.
강현수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아리보사보다 약하다.’
라미아 로드 역시 후작급 마계 귀족의 강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마계 후작 중에서도 최강인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보다는 약했다.
그 약함을 맹독으로 극복했는데.
맹독조차 통하지 않는 강현수가 나서자 자연스럽게 그 무력이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해야 마계 백작급일 뿐이야.’
맹독이 무용지물이 된 라미아 로드는 전력은 강현수와 소환수들의 맹공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강현수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라미아 로드의 몸이 만신창이로 변했다.
여기에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베이스로 만든 소환수가 이끄는 사단장 여단장 소환수들이 맹공을 펼치자 라미아 로드의 비늘이 꿰뚫리고 꼬리가 잘려 나갔다.
“쿠오오오!”
여기에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사체를 바탕으로 만든 누더기 골렘까지.
‘확실히 사기적이야.’
마계 후작 하나를 잡았는데.
그걸 베이스로 하나의 소환수와 하나의 골렘을 만들다니.
‘라미아 로드를 잡으면?’
당연히 그걸 베이스로 한 소환수와 골렘이 탄생할 것이고.
강현수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얼른 잡자.’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투마족이 날뛰는 사클란트 제국의 제후국 사브라 왕국으로 지원을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