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공의 서막
파지지직!
‘끝인가.’
끊임없이 마족을 쏟아 내던 차원 게이트가 화려한 스파크와 함께 그 모습을 감췄다.
편하게 꿀을 빨 수 있는 사냥이 끝나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쉽지는 않았다.
‘족히 1년 동안 할 레벨 업을 오늘 다했네.’
휘하 지휘관들이 경험치를 나눠 먹기는 했지만.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은 강현수의 소환수였고.
당연히 강현수가 가장 많은 경험치를 얻었다.
그 덕분에 스텟이 충분히 쌓였다.
‘일단 개편은.’
마룡 카라스를 여단장으로 강등시키고 마계 후작 아리보사를 사단장으로 삼았다.
그 외에도 오크 로드와 데스 나이트가 차지하고 있던 여단장 자리도 마룡 카라스를 포함한 마계 남작들로 채웠다.
소환수들의 직위만 변경했을 뿐.
휘하 지휘관들의 직위는 그대로였다.
‘굳이 바꿀 필요는 없지.’
현재 여단장과 연대장의 직책을 받은 휘하 지휘관들은 그 역할을 해내기에 충분했다.
설령 마계 귀족급 소환수에 비해 조금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겠지.’
지금처럼 계속해서 노력해 나간다면 말이다.
‘끝인가.’
다행히 초반에 잘 틀어막은 덕분에 대참사를 막아 낼 수 있었다.
이 엄청난 숫자의 마족 대군과 마계 귀족들이 각개격파당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희생을 치렀겠지.’
그러나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분을 통해 힘을 소모하지 않은 지금의 인류는.
‘회귀 전과 비교하면 월등히 강해졌으니까.’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단 한 가지 의문이 있기는 했다.
“아리보사.”
“예, 주군.”
“왜 네가 아틀란티스 차원을 침공한 거지?”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는 후작의 작위를 가진 고위 귀족이고.
빙마족의 일파를 이끄는 수장.
단독 아틀란티스 차원 침공이라는 욕심을 부릴 위치에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인간이든 마족이든 그 욕심이 끝이 없기는 하지만.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가 그런 성격은 아니었단 말이지.’
그는 공을 탐하기보다는 일족인 빙마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를 원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회귀 전에는 더 까다로운 상대였고.’
공을 탐하지 않고 부하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주력하는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는 쉽게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다.
“마왕의 명령이었습니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대답에.
‘역시 그런가.’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 대공이나 마계 공작이라고 해도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에게 이렇게 위험한 임무를 강제할 수는 없었다.
“왜 너에게 이 임무를 맡긴 거지? 네 힘으로 아틀란티스 차원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은 건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명령을 받았고. 무조건 따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빙마족만으로 아틀란티스 차원을 점령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는 욕심만 많은 마룡 카라스나 이판사판으로 달려든 아크 리치 킹 리몬쉬츠와 달랐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소모시켜서라도 아군의 전력을 줄이려고 한 건가?’
강현수의 생각으로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와 그가 이끄는 빙마족 대군이라면?
‘미래 예지에서 봤던 것처럼 북부 지역의 영지를 초토화시킬 수 있었겠지.’
로크토 제국군에도 엄청난 피해를 강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지.’
이기는 건 무리였다.
‘마왕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네.’
마룡 카라스의 용종 몬스터 대군은?
‘마룡 카라스의 욕심이 원인이었지.’
리몬쉬츠의 언데드 대군이 전격적으로 침공한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계획적인 침공은 도플갱어 군단, 오크 군단, 빙마족 군단이다.
그러나.
‘빙마족은 상위 마족이야.’
하위 마족인 도플갱어나 오크처럼 적 전력 소모를 위한 용도로 활용하기에는?
‘상당히 아까운 전력이지.’
그냥 마왕이 휘하 마족들의 희생을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는데.’
회귀 전 마왕군의 침공은 무척 계획적이었고 체계적이었다.
마왕군은 최소한의 피해를 보며 아틀란티스 차원의 인류에게 최대의 피해를 강요했다.
강현수의 활약으로 그간 마왕군이 부려 왔던 수작이 모조리 막힌 상황에서 이런 비효율적인 짓을 한 이유가 뭘까?
강현수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와중에.
-주군, 큰일입니다.
로크토 제국의 황제 세실리아에게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지?
-족히 20만이 넘는 마왕군이 동부를 침공했습니다. 벌써 라메파질 왕국의 국토 절반이 점령당했습니다.
-뭐?
강현수가 화들짝 놀랐다.
‘양동작전?’
그간의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북부와 동부 양쪽에서 펼쳐지는 양동작전.
이건 피해가 어마어마하게 클 수밖에 없었다.
‘북부는 원래 플레이어들이 사냥을 꺼려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확률이 높은 지역이야.’
거기다 동부의 경우는?
강현수가 최근 독충들을 청소했지만.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는 지역이었어.’
마왕군의 목적을 이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기 직전인 북부와 동부.
강현수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겠지.’
그렇게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와 함께 마왕군이 들이닥친다면?
‘로크토 제국과 그 제후국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거야.’
어쩌면 마왕군에게 영구적으로 북부와 동부 일대의 영토를 강탈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북부는 내가 막았어.’
거기다 동부의 경우도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킬 맹독을 가진 몬스터들을 다 쓸어버렸다.
‘이미 커진 피해는 어쩔 수 없지만.’
전력을 다해 마왕군만 때려잡으면?
손쉽게 마왕군의 양동작전을 막아 낼 수 있었다.
-왕국의 절반이 점령당하다니? 방비가 허술했던 건가?
강현수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무리 기습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맹독을 사용하는 반인반사 마족과 몬스터들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수준 낮은 플레이어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는군요.
‘반인반사면 라미아네.’
대량 학살에 특화된 마족이었다.
-내가 동부로 가겠다.
-감사합니다. 주군.
-지원군은?
-이미 파병했습니다.
-정예만 보내. 일정 수준 이하의 플레이어들은 오히려 방해만 될 거야. 사클란트 제국에도 지원을 요청하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북부를 정리했고.
동부의 몬스터 전력도 빼놓은 상태지만.
‘20만이라고 했어.’
마족의 대군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하는 편이 좋다.
‘굳이 대규모 병력은 필요 없지.’
맹독을 사용하는 라미아와 몬스터들이 상대라면?
일반 병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수 정예로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들만 보내는 게 최선이었다.
‘제때 도착하면 라메파질 왕국이 무너지기 전에 마왕군의 침공을 막아 낼 수 있어.’
강현수가 휘하 지휘관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공간 이동 게이트를 통해 북부에서 동부로 이동했다.
절반쯤 이동했을까?
-주군, 서쪽에서 마왕군이 침공했습니다.
사클란트 제국의 황실에 심어 두었던 도플갱어에게 연락이 왔다.
‘이런 망할.’
강현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규모는?
-20만 정도로 추정됩니다.
-현재 상황은?
-사브라 왕국의 1/4이 점령당했습니다.
-마족은 어떤 놈들이지?
-소 같은 뿔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이 전사로 이루어져 있어 성벽을 끼고 방어 중입니다.
‘투마족인가?’
전형적인 전사 부족이었다.
-황제에게 최선을 다해 방어하라고 말해.
-예.
‘투마족이라면?’
물량 공세로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다.
-세실리아.
강현수가 로크토 제국의 황제인 세실리아를 찾았다.
-예, 주군.
-일반 병력을 사클란트 제국으로 지원 보내라.
-알겠습니다.
어차피 맹독을 뿜어내는 라미아와 몬스터들에게 쓸모없는 전력.
‘투마족을 막으라고 보내는 게 이득이지.’
투마족을 상대로는 네임드 플레이어나 랭커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 플레이어도 도움이 된다.
‘양동작전이 아니었어.’
삼면 공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사면, 오면 공격일지도 몰랐다.
‘괜히 아리보사를 보낸 게 아니었어.’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 세 곳에서 동시 침공이 벌어졌다.
거기다.
‘거리가 멀다.’
최북단, 최동단, 최서단.
이 세 곳에서 대규모 마왕군 침공이 벌어졌다.
극과 극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공간 이동 게이트가 있어도 병력 지원이 쉽지가 않아.’
이런 상황이라면?
‘남부도 위험할지 몰라.’
그나마 다행이라면?
‘북부는 조기에 틀어막았어.’
거기다 동부도 나름 조기 진화를 했다.
‘동부를 막고 서부로 간다.’
병력을 쪼갤 수는 없다.
마왕군의 침공 병력의 양과 질은 보통이 아니다.
‘사클란트 제국을 믿는 수밖에.’
로크토 제국의 영토에 속하는 동부 지역의 침공을 막을 때까지 최소한의 피해로 버텨 주기를 바랄 뿐이다.
‘쉽게 막을 수 있어.’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별다른 손실 없이 손쉽게 쓰러트렸다.
그 결과 소환수의 질이 올라갔고.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을 손쉽게 올렸다.
레벨도 많이 올라서 강현수를 포함한 휘하 지휘관들의 전력이 상승했다.
결정적으로.
‘아리보사를 바탕으로 만든 소환수와 골렘이 있어.’
원래대로는 소환수로 끝이겠지만.
광혈마녀 유카가 합류해서 골렘까지 만들 수 있게 됐다.
‘아리보사만 소환수와 골렘으로 만든 건 아니지.’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따르던 7마리의 마계 귀족 역시 소환수와 골렘이 되었다.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전력이 월등히 강해진 거지.’
그리고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다.
마왕군의 대대적인 침공이 회귀 전보다 월등히 빨랐다.
그렇지만.
‘아군의 전력도 월등히 올라갔어.’
또한 강한 마족과 많은 숫자의 마왕군을 쓰러트릴수록.
‘나와 아군은 더 강해지고 적들은 약해진다.’
단순히 업적을 얻고 레벨을 올리고 스킬 랭크를 올릴 수준의 성과였다면?
전력이 크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강현수가 가진 일인군단이라는 직업.
광혈마녀 유카가 가진 절망과 공포의 누더기 골렘술사라는 직업.
이 두 직업 덕분에 아군의 전력을 순식간에 월등히 증가시킬 수 있다.
거기다.
‘이번에는 쓸 기회가 없었지만.’
일인사단에서 일인군단으로 승급하며 얻은 새로운 스킬들.
‘그게 비장의 한 수가 되어 줄 거야.’
쿨타임이 길어서 웬만한 위기 상황이 아니면 사용할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 * *
“인간들을 죽여라!”
“우리의 군주님을 위해 싸워라!”
마족의 대군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온다.
평범한 마족이 아니었다.
상위 마족이자 맹독을 가진 반인반사.
상체는 인간의 형상이지만 하체는 뱀의 형상을 가진 라미아 일족이었다.
라미아 일족의 대군은 수많은 수하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맹독을 품은 몬스터였다.
갑작스럽게 침공을 받은 라메파질 왕국은 멸망 직전이었다.
순식간에 국토의 절반을 잃었고.
로크토 제국의 지원군이 왔음에도 전황은 뒤집어지지 않았다.
그저 남은 절반의 영토라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싸웠지만.
“크아아악!”
“해독제! 해독제 좀 줘!”
“어서 후방으로 이송해!”
전장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그 이유는 라미아 일족과 몬스터들의 무력도 무력이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맹독 때문이기도 했다.
라미아 일족을 베면?
맹독이 섞인 피가 흩뿌려진다.
그건 몬스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힐러들이 열심히 힐을 하고 해독을 했지만.
그 숫자가 너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맹독에 중독된 아군 플레이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전투에서 아무리 승리해도 전쟁에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구오피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당장 고급 해독제를 가지고 와!”
강현수의 돈줄이자 독충 군단의 습격 당시 엄청난 활약을 했던 해독제 구오피 역시.
지금 상황에서는 그리 큰 힘을 쓰지 못했다.
구오피 대량생산이 가능한 대신 해독제로서의 약효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약한 독은 즉시 해독이 가능하고 강한 독도 장복하면 해독이 가능하지만.
맹독에 중독돼서 당장 죽느니 사느니 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