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의 군주 (2)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손에 들린 새하얀 창과 강현수의 검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막혔네.’
막 차원 게이트를 통과한 상태.
전력을 다해 가장 허약할 수밖에 없는 틈을 노렸는데.
막혀 버렸다.
그러나.
‘효과가 없는 건 아니야.’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몸이 뒤로 밀려나 있었고.
마력 스텟, 신성 스텟, 마기 스텟이 뒤엉킨 뱀피릭 오러와 충돌을 감당하지 못하고 새하얀 눈 같은 갑옷에 크고 작은 손상이 생겼다.
결정적으로.
순백의 피부에 여러 개의 붉은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스르륵!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다.
그저 티끌만 한 생채기에 불과했고.
당연히 순식간에 완치되었다.
하지만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엄청난 성과지.’
회귀 전에는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갑옷을 부수기 위해.
몇 개의 생채기를 만들기 위해.
‘수천수만의 플레이어들이 죽어 나갔으니까.’
거기다 강현수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강현수가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며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콰지지직!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강현수의 움직임을 제약했고.
날카로운 순백의 창날이 강현수를 향해 날아오자.
꽈아아앙!
강현수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미친.’
강현수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피어났다.
수호의 반지에 내장된 방어 스킬이 하나가 방금 전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소비되었다.
‘방어 스킬이 막아 주지 못했으면 팔 하나는 날아갔겠는데.’
그간 꾸준히 성장했다.
그렇게 키워 온 힘으로 전력을 다했다.
그런데도.
‘혹한의 군주를 이기는 건 무리다 이건가.’
과연 마계 후작다웠다.
그렇지만.
‘그간 키운 힘이 내 개인적인 무력만 있는 건 아니라서 말이야.’
강현수가 밀려남과 동시에.
콰콰콰콰콰!
마룡 카라스가 브레스를 날렸고.
도플갱어 킹 탈리만을 시작으로 사단장, 여단장, 연대장의 직책을 맡고 있는 최상위 소환수들이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 마족 놈의 목을 따 버리자고!”
또한 빙화신검을 시작으로 휘하 지휘관들 역시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파강! 퍼엉!
냉기로 가득한 공간을 뚫고 오러로 뒤덮인 검과 창이 휘둘러지고.
-우리의 주군을 위해 싸워라!
강현수의 도움으로 마계 백작의 힘을 모두 회복한 아크 리치 킹 리몬쉬츠를 포함한 리치 군단이 그 뒤를 받쳤다.
“크윽! 하찮은 인간과 언데드 따위가!”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가 분노한 얼굴로 저항했다.
꽈아앙!
푸른 냉기가 넘실거리는 순백의 창에 오크 로드 카쉬쿠가 소멸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군단 구성.”
강현수의 한마디에 다시 부활했으니까.
꽈아아앙!
혹한의 냉기를 담고 있는 창이 휘둘러지며 그간 애써 복구시킨 리치 부대가 순식간에 박살 났지만.
‘상관없지.’
라이프 포스 베슬은 강현수가 안전하게 보관 중이었다.
거기다 강현수는 안전한 후방에서 구경만 하는 군주가 아니었다.
콰콰콰콰콰!
핏빛 뱀피릭 오러를 중심으로 신성 스텟과 마력 스텟이 융합된 은빛과 독성 스텟의 초록빛이 하나로 뒤엉켰다.
타악!
몸을 날린 강현수가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 레이드에 합류했다.
꽈아앙! 꽈아앙!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는 강했다.
홀로 강현수가 이끄는 군단을 상대로 엄청난 위용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그는 혼자였고.
상대는 군단이었으니까.
사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뒤를 이어 마족들이 계속해서 차원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러나 그들은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가 아니었다.
당연히 집중되는 군단의 맹공에 순식간에 전멸해 버렸다.
원래대로라면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가 그들을 보호해야 했지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내가 올 줄 알고.’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수하들은 각개격파 당했고.
마계 귀족급 실력을 가진 인간들과 마력과 마기로 이루어진 존재들이 자신을 공격했다.
거기다 마계 백작이었던 너절한 리치 나부랭이까지 자신을 공격하고 있었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는 마계 후작이라는 직위에 걸맞는 강자였다.
아니, 마계 공작에 거의 근접한 존재로 사실상 마계 후작들 중에서도 최강의 반열에 오른 존재였다.
그러나 그런 그도 쉼 없이 밀려드는 인해전술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사아아악!
마력이나 마기로 이루어진 존재들이 소멸과 동시에 부활해 버린다는 점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들의 숫자를 먼저 줄이려고 했지만.
퍼어어엉!
콰아아앙!
그 인간들을 노리기 무섭게 마력과 마기로 이루어진 존재와 몬스터와 마족의 시체로 만든 골렘들이 앞을 가로막아 번번이 실패했다.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니 공포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소멸해도 얼마든지 부활해 버리니 괜히 아까운 마기만 낭비한 꼴이다.
설상가상으로.
‘맹독이 몸에 침투했다.’
마족은 인간보다 월등히 강한 상위 생명체이지만.
어쨌든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였고.
당연히 독이 통했다.
‘도대체 어떤 독이기에.’
웬만한 독은 몸에 침투하는 즉시 강력한 저항력과 자가 회복력으로 순식간에 해독되어 버린다.
그런데 이 독은 달랐다.
쉽게 소멸하지 않고 끈질기게 육체를 갉아먹었다.
마기를 집중시키면 몸 밖으로 몰아내는 게 가능했지만.
이런 치열한 전투 중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나마 강력한 저항력과 자가 회복력으로 어느 정도 독을 해독하면.
서걱!
다시 독이 몸속으로 침투했다.
큰 상처도 필요 없었다.
그저 순식간에 자가 회복되어 사라질 생채기를 통해 독이 침투했다.
맹독이 빠른 속도로 체력을 갉아먹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인해전술과 맹독.
전투가 계속 이런 식으로 지속된다면?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소멸한 존재들을 부활시키는 이가 자신에게 맹독을 주입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는 점이다.
‘저놈이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가 강현수를 노려봤다.
모든 문제의 근원.
저들의 군주.
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병력의 보충과 맹독 주입을 끊으려면 저 인간을 제거해야 했다.
‘기회를 주는구나.’
저들의 군주가 후방에 틀어박혀 있었더라면?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로서도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그저 끊임없이 쏟아지면 병력의 공세에 모든 마기를 소모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 존재는 자신의 강함을 믿고 자신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네놈의 오만이 스스로의 숨통을 조일 거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가 차분하게 마기를 응축시켰다.
극한의 냉기가 하나로 뭉쳐 냉기의 정수를 만들어 냈고.
‘지금이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가 전력을 다해 냉기의 정수를 가득 담은 창을 적들의 군주를 향해 찔러넣었다.
“고맙다.”
그때 적들의 군주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고.
그 순간.
꽈아아아앙!
커다란 충격이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몸을 강타했다.
“커억!”
뼈를 아릴 것 같은 냉기가 전신을 파고들었고.
쩌저저적!
차가운 냉기가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몸을 뒤덮었다.
‘당했다.’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모든 힘을 짜낸 강력한 일격이.
고스란히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냉기로 뒤덮인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서걱!
적들의 군주가 휘두른 검이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오른팔을 잘라 냈다.
‘왜?’
자신의 심장을 꿰뚫을 수도 있었는데 왜 팔을?
그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 인간의 손에 들린 검이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심장을 파고들었고.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의 숨통이 끊어졌다.
* * *
‘드디어 죽었네.’
강현수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골렘으로 만들어도 괜찮나요?”
광혈마녀가 유카가 눈을 번들거리며 물었고.
강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경험치는 다른 몬스터를 사냥해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으니.
‘경험치를 포기하고 골렘으로 만드는 게 낫지.’
강현수의 허락이 떨어지자.
“골렘 소환!”
광혈마녀 유카의 외침과 함께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바탕으로 탄생한 골렘이 만들어졌다.
‘저거 골렘 맞아?’
광혈마녀 유카의 손에 의해 탄생한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골렘은.
‘골렘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인형 같네.’
굳건한 뿔과 세 개의 눈이 그리고 순백의 피부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뭐,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골렘처럼 보이지 않는 외형이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역시 강하네.’
그간 쌓아 온 힘을 총동원했음에도.
‘꽤 까다로웠어.’
하지만.
‘생각보다는 손쉽게 끝났어.’
독성 스텟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의 조합도 훌륭했고.’
회귀 전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쓰러트리기 위해 족히 수만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는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도 플레이어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 한 명도 죽지 않았어.’
아무런 피해 없이 이겼다.
‘운이 좋았어.’
그간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한다고 생각했던 미래 예지가 간만에 큰일을 했다.
만약 차원 게이트를 사전에 점령하지 못했다면?
‘피해가 훨씬 커졌겠지.’
그래도 이기긴 이겼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그랬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봤겠지.’
강현수가 최전선에서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유인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소환수가 죽어 나가며 스텟이 계속 소모되었고.
‘거의 바닥나기 직전이었으니까.’
다행히 그 전에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가 미끼를 물었고.
그 덕에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었다.
‘막타도 송하나한테 양보했으니.’
휘하 지휘관들이 먹을 업적도 늘었다.
‘군단 구성.’
강현수가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소환수로 부활시켰다.
스텟이 살짝 아슬아슬했는데.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후략……
차원 게이트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마족들 덕분에.
‘레벨이 미친 듯이 올라서 다행이네.’
계속 레벨 업을 통해 스텟이 공급되었다.
사아아아악!
마력으로 부활한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가 공손히 강현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혹한의 군주를 홀로 쓰러트리는 있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혹한의 군주 슬레이어 EX랭크가 주어집니다.]
[빙마족의 침공을 홀로 막아 내는 있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빙마족 학살자 EX랭크가 주어집니다.]
[마계 후작을 홀로 쓰러트리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계 귀족 학살자 F랭크가 주어집니다.]
[빙마족 전사를 다수 쓰러트리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족 학살자 E랭크가 C랭크로 성장합니다.]
[마왕군의 침공을 홀로 저지하는 훌륭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아틀란티스 차원의 수호신 S랭크가 SS랭크로 성장했습니다.]
업적이 쏟아져 내렸다.
‘뭐, 이 정도는 줘야지.’
오히려 업적이 조금 짠 편이기도 했다.
특히 마계 귀족 학살자와 마족 학살자의 경우는 말이다.
‘사실상 마지막 칭호니까 어쩔 수 없나.’
사냥꾼, 포식자, 살해자, 학살자로 이어지는 칭호 테크트리의 끝 단계이니 이 정도 성과도 나쁜 건 아니었다.
칭호를 강현수 혼자만 얻은 것도 아닐 테고 말이다.
‘한 번 대대적으로 정비를 해야겠어.’
무려 마계 후작이 소환수가 되었다.
거기다 하급 마계 귀족 7마리가 소환수가 되었다.
‘대대적으로 지휘관 계급을 개편해야지.’
그러나 지금 당장은 불가능했다.
남은 스텟을 모두 긁어모아 겨우 혹한의 군주 아리보사를 소환수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휘관 임명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좀 더 레벨 업을 해야지.’
다행히 레벨 업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차원 게이트에서는 마족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