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4)
테스트를 끝낸 강현수가 수호신 이철민을 역소환했다.
당분간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내버려 두겠지만.
소환수의 숫자가 가득 찬다면 가장 먼저 소멸시킬 예정이었다.
강현수의 소환수가 된 이철민은.
‘회귀 전의 수호신이 아니라 흔하디흔한 플레이어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강현수가 애써 아쉬운 마음을 끊어 냈다.
이철민이 온전히 부활하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마기의 구슬로 마기 스텟을 얻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이득이야.’
앞으로의 전투에 있어서 마기 스텟은 강현수에게 큰 도움이 되어 줄 테니까 말이다.
“따라오도록.”
강현수의 지시에.
“예.”
검신 이광호가 대답과 함께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철민이 죽고 괴이한 형태로 부활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내가 저런 꼴이 될 수도 있었어.’
그 생각만 하면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나마 자신이 더 강했기에 저런 꼴이 되지 않은 것이다.
‘살아남는다.’
검신 이광호가 목표를 정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은 선택받아 살아남았고 이철민은 죽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저자는 냉혈한 악인이다.’
언제든 자신의 목숨을 거둘 수 있는 존재를 모셔야 한다는 압박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검신 이광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강해져서 저자의 그늘에서 벗어날 것이다.’
설사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것이다.
그럼?
‘저자도 나를 함부로 할 수 없을 거야.’
하나 힘을 키울 때까지는.
‘저자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
죽으라고 명하면?
망설이지 않고 심장에 검을 꽂아 넣는 퍼포먼스 정도는 보여 줄 생각이었다.
‘잘려 나간 팔을 붙일 정도의 힐 스킬이라면.’
꿰뚫린 심장도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
강현수는 검신 이광호를 데리고 발해길드의 길드 하우스로 향했다.
‘발해길드에는 무슨 일로 온 거지?’
검신 이광호가 알고 있는 건 자신의 목줄을 잡은 주인이 로크토 제국의 공작이라는 것과 강현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한국인이겠지?’
이름도 한국식이고 말투도 한국식이다.
북한 사람이나 조선족 또는 교포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 확률은 상당히 낮았다.
‘도대체 어떻게 로크토 제국의 공작이 된 거지?’
의문이 치솟았다.
그러나 억지로 눌러 참았다.
‘기회를 잡은 걸지도 몰라.’
잘만하면?
권력의 중심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오셨습니까?”
발해길드의 길드장 검왕 장석원이 공손히 강현수를 맞이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로크토 제국의 공작 신분 아니겠는가?
“그놈만 보고 바로 떠날 생각이다.”
“곧바로 불러오겠습니다.”
그러나 강현수가 당연하다는 듯 하대를 하며 지시를 내리고.
검왕 장석원이 수하처럼 행동하자 두 눈이 동그래졌다.
‘이게 무슨?’
검왕 장석원은 평범한(?) 거대 길드의 수장이 아니었다.
로크토 제국의 황제와 사클란트 제국의 황제가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 연합의 핵심 간부였다.
실력 또한 황의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로 뛰어났다.
베록커토의 영주 와이더 백작은 물론 테라 왕국의 국왕이라 할지라도 검왕 장석원을 저리 대할 수는 없었다.
이게 가능하려면?
‘설마 검왕 장석원이 이자의 수하였다는 말인가?’
검신 이광호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보통 권력자가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자신의 예측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데리고 왔습니다.”
웬 플레이어 하나가 왔고.
“실행해라.”
강현수의 지시에 뭔가를 하더니 다시 모습을 감췄다.
그 후.
기대감에 살짝 서렸던 강현수의 표정이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가자.”
강현수가 검신 이광호를 데리고 발해길드의 길드 하우스를 떠났다.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강현수가 고려길드의 길드 마스터 인의군왕 신창후에게 깍듯한 대접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레드베어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자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 연합의 수장 적염제 도르초프가 주군이라 칭하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반쯤 넋이 나가 버렸다.
강현수가 누구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로크토 제국의 공작.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 연합의 진정한 수장.
이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인물은 오직 하나.
다크 나이트의 수장인 척마혈신밖에 없었다.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였다니.’
검신 이광호의 눈이 번뜩였다.
뒤통수를 쳐야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현수의 눈에 들어 중임을 받겠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검신 이광호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사형.
강현수로서는 그저 테스트를 위해 좀 더 명줄을 붙여 놓은 것뿐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검신 이광호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살려 둔 이유가 수하로 거두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검신 이광호는 강현수의 충신을 자처했다.
그러나.
‘아주 쑈를 하네.’
강현수는 검신 이광호가 어떤 인물인지 자기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진심으로 충성을 맹세하겠지만.
‘조금이라도 기회가 생기면 물어뜯겠지.’
안타깝게도 검신 이광호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단순히 회귀 전의 원한 때문이 아니라.
회귀 후에도 변하지 않은 그의 행적 때문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동료 뒤통수나 치는 놈을 믿을 수는 없지.’
황소욱처럼 큰 쓸모가 있지 않는 한 말이다.
차라리 검신 이광호의 입장에서는 곱게 죽는 게 더 이득일 수도 있었다.
강현수의 경험치 자판기가 된 황소욱은 살아도 산 게 아닌 처지로 차라리 죽음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 * *
‘아쉬워.’
강현수는 이번에 기대를 걸었다.
‘레플리카가 EX랭크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황소욱이 그간 모은 경험치를 모두 흡수했음에도 레플리카는 여전히 SSS랭크에 머물고 있었다.
‘조급해하지 말자.’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고.
‘얼마 안 남았어.’
그간 계속해서 레플리카 스킬의 경험치를 쌓았다.
아마 그리 오래지 않아 레플리카 스킬을 EX랭크로 성장시킬 수 있으리라.
‘레플리카는 규격 외 스킬이야.’
마력의 심장의 경우는 스킬 강화를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현재 SSS랭크를 찍은 상태였다.
상시 발동하는 패시브 스킬이라는 장점 덕분이기도 했지만.
‘랭크를 상승시키는 데 필요한 경험치가 레플리카보다 월등히 적어서이기도 하지.’
스킬 강화, 스텟 고정, 야성의 감각, 야성의 분노 같은 레플리카 스킬 역시 현재 SSS랭크에 도달해 있었다.
‘불멸의 성화와 뱀피릭 오러가 아직 SS랭크이기는 하지만.’
최상의 힐 스킬과 오러 스킬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는 무척 빠른 성장 속도였다.
‘레플리카를 EX랭크로 만든 후 다른 레플리카 스킬을 모조리 EX랭크로 만든다.’
아마 레플리카 스킬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터였다.
강현수가 송하나, 투황, 유카와 합류했다.
“금방 왔네?”
“빨리 오셨네요.”
송하나와 유카가 환하게 웃으며 강현수를 반겼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저 녀석이 그놈이야?”
투황의 물음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사전에 대충 설명을 해 놓았기에 송하나, 투황, 유카는 검신 이광호가 어떤 놈인지 알고 있었다.
당연히 눈초리는 그리 좋지 않았다.
사형받아야 마땅한 범죄자를 보는 시선이 좋을 리 만무했다.
눈치 빠른 검신 이광호는 당연히 강현수 일행의 탐탁지 않은 시선을 알아차렸다.
‘바꾸면 그만이야.’
검신 이광호는 강현수 일행의 시선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가치를 보여 주며 묵묵히 이미지 관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후 다시금 사냥이 시작되었다.
강현수는 소환수를 동원해 사냥터를 순식간에 쓸어버렸고.
송하나, 투황, 유카 역시 정신없이 사냥에 열중했다.
검신 이광호 역시 어떻게든 사냥에 끼어 보려고 했지만.
‘사냥 속도가 너무 빨라.’
거기다 수준 차이가 너무 났다.
강현수 일행이 사냥하는 사냥터는 최고 레벨 사냥터.
검신 이광호가 사냥을 하기에는 몬스터의 레벨이 너무 높았다.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흘렀다.
그러나 검신 이광호는 계속해서 제자리걸음이었고.
반면 강현수, 송하나, 투황, 유카는 계속해서 성장해 나갔다.
그러던 중 드디어 텅 비었던 마기의 구슬이 가득 찼다.
‘준비가 끝났네.’
강현수는 그간 검신 이광호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 결과 안심할 수 있었다.
마기 스텟으로 인해 인성이 변한다거나 서서히 마족화가 진행된다거나 하는 변화는 전혀 없었다.
짧은 기간도 아니고 긴 시간 지켜봤으니 확실했다.
‘이제 더 이상 그 녀석을 살려 둘 필요가 없어졌군.’
검신 이광호는 이제 그 쓰임새가 다했다.
그러나 처리보다는 마기 스텟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강현수가 마기의 구슬을 움켜쥐었다.
[마기의 구슬에 마기가 가득 찼습니다. 마기를 흡수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강현수가 예를 선택했다.
그 순간.
[특수 스텟 마기를 획득하였습니다.]
짧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음.’
검신 이광호로 테스트를 했던 것처럼 부작용 따위는 없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의 조합이지.’
강현수가 융합 스킬을 사용해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을 조심스럽게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강현수의 몸에서 찬란한 은빛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성공이다.’
강현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고통 따위는 없었다.
신체가 무너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이 하나로 합쳐진 새로운 기운이 피어올랐다.
‘테스트를 해 볼까.’
강현수가 뱀피릭 오러에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을 합친 힘을 담아 가볍게 휘둘렀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십여 그루의 거목이 산산조각 났다.
‘효율이 미쳤네.’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 모두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투자한 양에 따라 파괴력이 달라지는 게 당연했다.
현재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이 융합된 힘은 강현수의 상상의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1+1 = 2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경우는.
‘20은 되는 것 같네.’
거의 10배 가까이 증폭된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상극의 힘이 억지로 뭉친 덕분인가?’
강현수가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을 조금 더 끌어올렸다.
‘좋아.’
자신감을 얻은 강현수가 조금씩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의 양을 늘려 나갔다.
그러던 중.
“큭!”
강현수의 입에서 고통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강현수가 재빨리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을 거둬들였다.
‘고작 이 정도가 한계인가?’
신성 스텟과 마력 스텟은 각각 1,000에 근접한다.
처음에 강현수가 끌어올린 스텟은 고작해야 1% 수준.
조심하며 서서히 올렸지만.
대략 20% 정도가 넘어선 순간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유는 하나.
‘융합 스킬의 랭크가 너무 낮은 게 문제인가?’
빙화신검에게서 얻은 융합 스킬은 신성 스텟과 마기 스텟이라는 상성이 정반대인 두 기운을 훌륭히 조합해 주었다.
그러나 현재 레플리카 스킬로 만든 융합 스킬의 랭크는 고작 D랭크.
부지런히 사용했지만 F랭크 상태였던 만큼 D랭크가 한계였다.
당연히 융합 스킬로 제어할 수 있는 기운의 수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레플리카 스킬이니까 20%나 감당을 한 거겠지.’
현재 SSS랭크인 레플리카 스킬의 증폭도는 무려 240%.
만약 일반 스킬이었다면?
20%는커녕 10%도 융합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건 융합 스킬의 랭크가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였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