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2)
“저렇게 보내 줘도 괜찮아?”
송하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강현수에게 물었다.
빙화신검이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제약도 없이 너무 자유롭게 풀어 준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 것이다.
“애초에 마왕군과의 전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휘하에 받아 준 것뿐이야.”
“그래도 저 사람이 현수 네 직업 스킬에 대해서 떠들고 다닐 수도 있잖아.”
강현수는 빙화신검에게 아무런 제재도 걸지 않았다.
그런 빙화신검이 강현수의 직업 스킬인 지휘관 임명과 지휘관의 축복에 대해서 떠들고 다닌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라고 일부러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어? 그게 무슨……?”
송하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투황 역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이 있지. 빙화신검이 친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평범한 인물들일 것 같아?”
“그럼 빙화신검이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들과 친분이 있다는 말이야?”
“그럴 확률이 높지.”
사실 그럴 확률이 높은 게 아니라 그랬다.
‘대부분 독불장군 타입이기는 하지만.’
권신과 신마검.
유유상종이나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처럼 빙화신검은 독불장군 타입의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인 권신, 신마검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친분을 쌓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는 경쟁 관계지.’
일종의 라이벌이라고나 할까?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친분을 나누는 악우 같은 관계.
‘원래는 서로 승부를 가르기 힘들 정도로 팽팽한 라이벌 관계였지만.’
강현수의 버프로 인해 그 균형이 산산조각 났다.
‘빙화신검은 얌전히 참고 있을 위인이 아니지.’
보나 마나 힘자랑에 들어갈 것이고, 권신과 신마검에게 자연스럽게 강현수의 존재가 알려질 것이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하려나?’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를 휘하에 넣고 싶은 거구나?”
송하나의 말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현수 네 직업 스킬이 알려지면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신사적으로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막말로 영혼의 계약서를 들이밀며 강현수에게 아무 제약 없이 버프만 빼먹으려고 할 수도 있었다.
“그건 내가 힘이 없을 때나 걱정할 문제고.”
강현수도 그런 일을 걱정해 최대한 직업 일인사단에 대한 정보를 숨겼다.
그러나.
일대일로 빙화신검을 꺾으며 강현수는 자신의 강함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 둘이 아니라 넷이 연합해 오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굳이 빙화신검을 소환할 필요도 없이 아크 리치 킹 리몬쉬츠, 도플갱어 킹 탈리만, 오크 로드 카쉬쿠 이 셋만 동원해도 충분했다.
“저, 저기 현수 씨는 강한 플레이어가 좋으신 건가요?”
그때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유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좋다기보다는 앞으로 있을 마왕군과의 전쟁에서 꼭 필요한 존재니까.”
“꼭 필요한 존재, 꼭 필요한 존재, 현수 씨한테 꼭 필요한 존재.”
혼자서 중얼거리던 유카의 두 눈에서 강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꼭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가 돼서 현수 씨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거야.’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강현수의 소환수들에게까지 질투를 했던 유카다.
당연히 빙화신검을 비롯해 강현수가 꼭 필요한 존재라고 말한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들을 질투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더 강해져서 현수 씨한테 가장 사랑받는 존재가 될 거야.’
유카가 두 눈을 빛내고 있을 때.
송하나 역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현수와 계속 함께하려면 더 강해져야 해.’
유카와 송하나가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 때.
‘꼭 따라잡는다.’
투황의 두 눈 역시 투지로 불타올랐다.
애초에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넘쳐흐르던 투황이다.
강현수와 빙화신검의 대결을 보며 피가 끓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자신 역시 저런 강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활활 타올랐다.
‘좋네.’
강현수가 투지를 불태우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회귀 전 살황, 투황, 광혈마녀라 불리며 최상위 네임드 플레이어로 군림했던 이들이다.
지금도 회귀 전보다 빠르게 강해지고 있지만.
저렇게 투지를 불태운다면 더 빠른 성장이 가능할 터.
‘회귀 전과는 다른 칭호로 불리게 해 줄게.’
특히 광혈마녀 유카의 경우는 꼭 다른 칭호가 생기게 만들어 줄 작정이었다.
* * *
빙화신검은 일주일 동안 얌전히 지냈다.
갑자기 늘어난 스텟에 적응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혹시 무슨 수작을 부렸을지 몰라.’
강현수가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 줬지만.
혹시 자신도 모르는 제약이나 감시가 있을지 몰랐다.
그래서 최대한 숨죽이며 지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자 빙화신검의 본래 성격이 나왔다.
평소처럼 몬스터들을 사냥했고.
빙화신검의 눈에 띈 건방진 귀족이나 플레이어 들을 두들겨 패 주었다.
평소처럼 자유롭게 행동했음에도 아무런 변화나 제약이 없었다.
‘진짜 자유구나.’
그저 명목상 강현수의 휘하에 들어갔을 뿐인데.
‘이런 엄청난 버프를 주다니.’
거기다 빙화신검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 직위는 대대장이야.’
그러나 강현수가 준 축복은 사단장의 것이었다.
‘더 강한 버프를 줄 수 있는 거야.’
그저 강현수가 자신에게는 그 버프를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자 작은 욕심이 생겼다.
강현수가 자신을 불러 주면 큰 활약을 해서 더 좋은 버프를 받아 내겠다는 욕심이 말이다.
하지만.
‘언제 불러 주는 거야?’
강현수는 빙화신검의 존재를 까먹기라도 했는지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하긴 웬만한 침공은 자체적으로 막아 낼 수 있을 테니까.’
대규모 침공이 아니라면 자신을 부를 필요가 없으리라.
빙화신검이 사냥에만 열중하며 무료한 일상을 보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약이 없는 것도 확인했고.
갑자기 급증한 스텟에도 완벽하게 적응했다.
그럼?
‘설욕전을 해야지.’
맨티스길드를 때려잡으며 악착같이 업적을 얻으려 한 이유도 설욕전을 위해서였다.
‘무조건 이긴다.’
맨티스길드를 때려잡아 업적을 얻었을 때도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뭐, 조금 반칙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힘 아니겠는가?
빙화신검이 설욕전을 위해 움직였다.
“어쩐 일이냐?”
상대가 의아한 표정으로 빙화신검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욕전을 하러 왔다.”
“풋!”
상대의 비웃음에 빙화신검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네 실력으로는 무리인 거 알잖아.”
“무리는 무슨! 종이 한 장 차이였거든!”
“그 종이 한 장 차이가 큰 거야.”
빙화신검이 찾아온 상대의 입가에 승자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권신.
두 주먹으로 신의 칭호를 손에 넣은 플레이어.
빙화신검처럼 특별한 세력을 형성하지 않고 독보하는 존재.
2년 전의 대련에서 권신은 빙화신검을 꺾었다.
“업적을 얻기 위해서 맨티스길드 놈들을 털었다는 소식은 들었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 소식을 들었을까?”
“네놈도 맨티스길드 놈들을 족쳤으니까 그렇겠지.”
빙화신검의 말에 권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득! 우득!
목을 꺾고 팔을 비틀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맞아. 그리고 나도 업적을 얻었지. 과연 너와 나의 차이가 좁혀졌을까?”
권신은 자신감이 넘쳤다.
빙화신검과 자신의 실력 차이는 종이 한 장 정도.
방심하거나 실수를 했다가는 승패가 뒤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은?
‘방심하지만 않으면 무조건 이긴다.’
그간 제법 레벨과 업적을 올린 것 같기는 하지만.
‘고작 그 정도에 뒤집힐 승패가 아니지.’
스텟 차이로 자신을 압도하려면 족히 100레벨 차이는 벌려야 할 것이다.
거기다.
‘그동안 나도 놀고 있던 게 아니라고.’
꾸준히 레벨 업을 했고.
업적도 획득했고.
새로운 EX랭크 스킬도 손에 넣었다.
그럼 당연히.
‘질 이유가 없지.’
빙화신검도 전보다 많이 강해지기는 했겠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폭렙을 했거나.
대량의 업적이나 특별한 EX랭크 스킬을 손에 넣은 게 아니라면?
‘무조건 내가 이긴다.’
승리를 확신한 권신이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디 한번 덤벼 봐.”
권신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빙화신검이 입꼬리를 올렸다.
“전과는 많이 다를 거다.”
“다르기는 개뿔.”
권신의 도발에 빙화신검이 몸을 날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속도 자체가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꽈아아앙!
두 자루의 검에 실린 힘과 마력이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해졌다.
꽈앙! 꽈앙! 꽈앙!
“커억!”
권신이 빙화신검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
“너,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권신이 경악한 눈빛으로 빙화신검에게 물었지만.
“수작은 무슨, 내가 강해진 거지!”
빙화신검은 대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꽈앙! 꽈앙! 꽈앙!
2년 전의 치욕을 갚아 줄 생각으로 가득할 뿐.
그날 권신은 빙화신검에게 일방적으로 깨졌다.
* * *
멘티스길드 토벌이 마무리된 후 강현수 일행은 다시금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 사냥에 열중했다.
‘독기가 제대로 올랐어.’
강현수와 빙화신검이 맞붙은 일이 송하나, 투황, 유카에게 제대로 불을 질렀다.
세 사람이 경쟁적으로 사냥에 열중했고.
강현수도 그 세 사람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몸을 혹사시키며 사냥에 열중했다.
그러던 중.
-크흠, 저기, 강현수 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녀석이 하나 있는데, 같이 찾아가도 괜찮을까요?
빙화신검으로부터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얼마든지.
강현수가 현재 위치를 알려 주자.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지 금방 빙화신검이 누군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 누군가는 강현수에게 상당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권신.’
마왕군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웠던 전우 중 하나.
‘드디어 만났네.’
강현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훨씬 나중에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빙화신검 덕에 예상보다 빨리 만나게 되었다.
‘신마검도 함께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 하나라도 건진 게 어디야.’
좀 더 기다리면?
저 둘과 친분이 있는 신마검도 강현수가 던진 낚싯줄에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왜 날 찾아온 거지?”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게, 이 친구가 강현수 님을 뵙고 싶다고 해서 말입니다.”
빙화신검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권신을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일로 날 찾았지?”
“당신이 척마혈신입니까,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라는?”
“그렇다.”
“이 친구에게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마왕군과 함께 싸울 동료를 찾으신다고요?”
“정확히는 동료가 아니라 수하지.”
강현수의 말에 권신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수하라.”
권신은 지금까지 홀로 아틀란티스 차원을 독보한 존재.
지금껏 자신이 누군가의 수하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당신의 수하가 되면 그 버프를 주는 겁니까?”
“그렇다. 능력에 따라 퍼센트는 다르겠지만.”
“마왕군과의 전쟁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 빼고는 제약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강현수의 말에 권신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한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당신의 수하가 되겠습니다.”
“그게 뭐지?”
“저놈보다 높은 직위를 주십시오.”
권신의 말에 빙화신검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울며불며 사정해서 알려 줬더니,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쳐!”
“울며불며 사정한 적은 없거든.”
“이게!”
빙화신검과 권신이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좋아, 그렇게 하지.”
강현수의 허락이 떨어지자.
빙화신검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권신의 얼굴은 환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권신의 승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진짜 승자는 빙화신검도 권신도 아니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네.’
바로 강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