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180화 (180/365)

피라미드

“자, 그럼 어디 한번 보여 줘 봐라.”

빙화신검이 당당하게 강현수에게 요구를 했다.

표정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점핑 스킬의 쿨타임이 끝났구나.’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준비가 끝나자 방금 전과 같은 초조함이 사라졌다.

“좋아, 보여 주지.”

강현수가 마리오네트 스킬의 정보를 공개했다.

“이런 스킬이!”

빙화신검은 마리오네트 스킬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자 크게 놀랐다.

설마 정말로 이런 스킬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나마 안심할 수 있는 건.

‘페널티가 엄청나게 크다.’

당연히 함부로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놈의 무위는 나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플레이어의 강함을 결정하는 척도는 레벨.

그러나 좀 더 세심하게 들어가면 스텟과 스킬로 나뉜다.

특히 스텟의 경우 플레이어의 근본.

그중 가장 중요한 스텟이 바로 마력 스텟이었다.

‘마력 스텟의 절반을 소모하는 스킬이라면.’

이 정도 위력을 발휘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광견왕을 휘하에 거두기 위해 꽤 큰 대가를 치렀구나.”

중저 레벨 플레이어에게도 마력 스텟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최상위 네임드 플레이어에 비할 수는 없다.

중저 레벨 플레이어는 성장의 여력이 많지만.

최상위 네임드 플레이어는 거의 성장이 끝난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자니까.”

강현수의 대답에 빙화신검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졌다.”

빙화신검이 내기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나 빙화신검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절반의 마력 스텟을 소비한 상태에서 나를 압도했어.’

그건 애초에 가진 마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해.’

빙화신검은 검사 플레이어였다.

그러나 힘, 민첩, 체력보다 마력에 더 많은 미분배 포인트를 투자했다.

이유는 빙화신검의 가장 큰 힘이 빙 속성과 화 속성을 지닌 오러를 조합했을 때 나오기 때문이다.

‘저자의 마력 스텟은 나보다 높아.’

직접 부딪쳐 봤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빙화신검은 현존하는 최고레벨 플레이어.

‘그런 나보다 마력 스텟이 높은데, 그게 본래 마력 스텟의 절반이라고?’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정적으로.

‘고작 광견왕 따위를 거두기 위해서 그런 큰 손해를 감수했을 리가 없어.’

빙화신검은 강현수가 마리오네트라는 스킬의 페널티를 파훼할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와 동시에 강한 위기의식이 피어올랐다.

‘저 녀석이 나한테 마리오네트 스킬을 사용할 수도 있어.’

빙화신검은 힘, 민첩, 체력, 정신력, 마력 중 정신력 스텟이 가장 낮았다.

그 말은?

‘자칫 잘못하면 꼼짝없이 저 녀석의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다.’

빙화신검이 애써 초조함을 감추며 입을 열었다.

“어떤 부탁을 할 생각인가?”

빙화신검이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크 나이트에 들어오게.”

강현수의 말에 빙화신검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크 나이트에 들어오라고?”

“그래.”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은데.”

패배했다고는 하지만 빙화신검은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였다.

당연히 그간 수많은 영입 제안이 들어왔었다.

그러나 모조리 거절했다.

그중에는 로크토 제국 황제의 제안도 있었다.

황제의 제안도 거절한 빙화신검이 강현수의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왜? 다크 나이트에 들어오는 게 불의한 일인가? 다크 나이트는 마왕군과의 전쟁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네.”

강현수의 말에 빙화신검의 표정이 굳어졌다.

불의한 일이 아니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한 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빙화신검 자네는 다크 나이트에 들어오는 게 불의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강현수의 물음에 빙화신검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신념의 서약이 움직였다.

은은한 마력이 일어나며 빙화신검의 몸을 옭아맸다.

‘이런 망할.’

빙화신검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신념의 서약을 할 때 정한 불의한 일의 기준은 빙화신검 스스로의 판단이었다.

그때는 자신이 직접 판단하는 것이니 손해 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이 꼬여 버렸다.

빙화신검 스스로가 다크 나이트에 입단하는 게 불의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크 나이트의 목적이 뭐지? 정말 순수하게 마왕군 토벌을 위해 뭉친 건가?”

“마왕군 토벌과 귀환 퀘스트의 완료가 목표다. 타 차원 출신인 우리가 좋아서 이 싸움에 끼어들었다고 생각하나?”

“그럼…….”

빙화신검이 온갖 질문을 던지며 다크 나이트에 가입하는 게 불의한 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강현수의 거침없는 답변에 빙화신검의 머릿속에는 다크 나이트라는 집단이 점점 더 정의로운 존재라는 생각만 강해졌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신념의 서약이 가하는 압박이 강해졌다.

불의한 일에 대한 기준을 빙화신검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하겠다는 조건이 오히려 더 큰 압박이 되어 버렸다.

다크 나이트를 불의한 집단으로 몰아가고 싶어도.

본인 스스로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신념의 서약을 맺는 게 아니었는데.’

과거 영혼의 계약서에 크게 당한 적이 있었기에 신념의 서약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게 더 큰 족쇄가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으니까.

가장 거슬리는 건 시스템의 힘으로 강현수의 휘하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마왕군과의 전쟁을 제외하면 자유를 주겠다고 했지만.

그 말을 순순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네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결국 빙화신검의 선택은 강현수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빙화신검의 마음속에는 강현수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의심이 남아 있었다.

“그럼 방금 전 내가 했던 말이 진실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지.”

그 말과 함께 강현수가 신념의 서약을 꺼내자.

빙화신검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강현수는 망설임 없이 신념의 서약을 발동시켜 자신이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자 빙화신검을 옭아매고 있던 마력의 힘이 더욱더 강력해졌다.

‘설마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빙화신검이 얼굴을 찌푸렸다.

신념의 서약에 묶여 있어 도망쳐도 의미가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선택은.

“다크 나이트에 들어가겠다.”

빙화신검의 말에 신념의 서약이 서서히 약해졌다.

“그럼 받아들여.”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시전했다.

[플레이어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자 빙화신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예를 선택했다.

그 순간.

[대대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모든 스텟이 15% 증가합니다.]

“헉!”

빙화신검이 화들짝 놀랐다.

스텟이 갑자기 15%나 늘어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

“아까 말했던 버프다.”

“대단하군.”

“그걸로 끝이 아니야.”

강현수가 지휘관의 축복 스킬을 시전하자 스텟이 추가로 30%나 상승했다.

“으윽!”

갑자기 모든 스텟이 45%나 증가하자 빙화신검이 몸을 비틀거렸다.

엄청나게 늘어난 스텟으로 인해 신체를 제대로 제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답게 빙화신검은 순식간에 늘어난 스텟에 적응했다.

“휴우! 정말 대단하군.”

빙화신검의 입에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 가지고 있던 찝찝한 감정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마왕군과는 어차피 싸워야 한다.’

어차피 싸워야 할 적과 싸우는 대가로 이런 엄청난 버프를 받는 건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척마혈신의 부하가 된 게 오히려 득이 되어 버렸군.’

아직 높아진 스텟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해 어색함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적응이 완료된다면?

‘압도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빙화신검은 신의 칭호를 받은 최강의 플레이어 중 하나.

레벨과 스텟 자체도 플레이어 중 최상이었다.

그런 빙화신검의 스텟이 45%나 늘어났으니.

사실상 다른 신의 칭호를 받은 플레이어들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최강의 플레이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족하나 보네?”

강현수의 물음에 빙화신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버프를 받고 누가 만족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빙화신검의 말투가 바뀌었다.

강현수를 자신의 윗사람으로 인정한 것이다.

“약속은 지켜 주시겠죠?”

빙화신검의 물음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자유롭게 살아. 그저 내가 부를 때 힘을 보태 주면 된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새롭게 생긴 스킬들은 어떻게 사용하는 겁니까?”

빙화신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고.

“그건 말이지.”

강현수가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그리고 그런 강현수의 설명을 듣는 빙화신검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런 사기꾼!”

빙화신검이 강현수를 노려보며 외쳤다.

휘하 지휘관이 된 이의 생사여탈권을 강현수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사기꾼이라니, 그냥 말하지 않은 것뿐이야. 너도 안 물어봤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빙화신검이 물어본 것들은 대부분 자신의 자유를 제약하는 단점들에 대해서였다.

강제로 명령에 따라야 하는지, 명령을 어기면 제약을 받는지 등등.

“이건 제약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강현수가 사전에 말했던 것처럼 강제적인 제약이 없다고는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의지에 따라 빙화신검을 소멸시킬 수 있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그걸 무기로 압박하면?

빙화신검은 강현수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 약속은 지킬 거니까.”

“정말입니까?”

“그래, 정말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충성심이 올라간다.

괜히 목숨 줄을 무기로 충성을 강요해 봐야 괜한 반발만 살 뿐이다.

막대한 스텟을 소모해 지휘관 임명과 지휘관 축복을 해 준 아틀란티스 차원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하나인 빙화신검을 괜한 주도권 싸움으로 소멸시킬 수도 없다.

빙화신검은 마왕군과의 전쟁에서 꼭 필요한 전력이었으니까.

“그 약속 꼭 지키셔야 합니다.”

“마왕군과의 전쟁이 아니라면 네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아.”

강현수의 말에 빙화신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대일로 날 꺾은 강자야.’

마왕군과의 전쟁이 아니라면?

‘굳이 내 힘을 필요로 할 일 자체가 없겠지.’

거기다.

‘휘하에 있는 게 나만은 아닐 거야.’

아마 꽤 많은 강자들이 강현수의 휘하에 있을 거다.

그러니 마왕군과의 전쟁이 아니라면 굳이 자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하지 않으리라.

“그럼 가도 됩니까?”

“얼마든지.”

강현수의 말에 빙화신검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약속이 강현수의 진심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아,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그러십니까?”

“맨티스길드를 왜 박살 낸 거야?”

회귀 전 맨티스길드는 이 무렵 멀쩡히 활개를 치고 다녔다.

그 말은 회귀 전에는 빙화신검이 맨티스길드를 토벌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빙화신검이 의로운 성향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성향의 인물이기도 했다.

눈앞에 보이는 범죄는 뿌리 뽑아도.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맨티스길드를 뿌리 뽑기 위해 오랜 기간 자기가 사냥할 시간까지 희생할 인물은 아니란 말이지.’

“살인마 놈들 때려잡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합니까?”

“그럼 진작 때려잡지 그랬어? 그동안은 안 때려잡았잖아.”

“크흠, 그게…….”

빙화신검이 얼굴을 붉혔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줘. 그냥 궁금해서 그래.”

“사실 업적 때문입니다.”

“업적?”

“예, 이놈들을 때려잡으면 업적을 주니까요.”

빙화신검의 말에 강현수는 왜 맨티스길드의 운명이 회귀 전과 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이구나.’

강현수가 퍼트린 소문으로 인해 빙화신검이 맨티스 길드를 때려잡은 것이다.

‘어쩌면 빙화신검 말고 다른 최상위 네임드 플레이어들도 맨티스길드나 머더러 플레이어들을 공격했을 수 있어.’

업적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좋네.’

강현수가 푼 정보가 제대로 효과를 보고 있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얼굴이 붉게 물든 빙화신검이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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