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171화 (171/365)

수확제 (2)

조금 전 슬라브 왕국.

“다크 나이트다! 다크 나이트가 왔다!”

마족의 공세에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에 쌓이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늘어 가던 슬라브 왕국의 플레이어들이 다크 나이트의 등장에 열광했다.

하지만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아무리 다크 나이트라고 해도 저 마족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러게 말이야.”

기우는 사실이 되었다.

마족과 다크 나이트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기는 했지만.

승기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반전되었다.

콰아앙!

다크 나이트들이 순식간에 맹공을 퍼부어 마족을 제거해 버린 후.

그대로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러게?”

“혹시 힘을 숨기고 있었나?”

“왜?”

“나야 모르지.”

“신경 꺼. 어쨌든 살았으면 된 거잖아?”

“그건 그렇지.”

“그런데 다크 나이트가 정말 강하기는 하네.”

“같은 편이라 다행이야.”

“잡담은 그만하고 부상자부터 옮기자고.”

어찌 되었든 목숨을 건진 플레이어들이 전장을 정리했다.

모코로 왕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사클란트 제국의 지원군이 왔고.

곧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승기를 잡았음에도 적들의 저항이 상당히 강했다.

그런데.

퍼어엉! 퍼어엉! 퍼어엉!

처음부터 방어에 열중하던 이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콰콰콰콰!

엄청난 오러를 뿜어냈고.

순식간에 마왕의 하수인들을 쓸어버리더니, 그대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저 사람들 다크 나이트라고 했지?”

“그렇지.”

“그런데 저렇게 강한데 왜 여태까지 방어만 했던 거야?”

“그러게, 저 정도 무력이면 사클란트 제국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마왕의 하수인 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모르는 윗분들의 사정이 있겠지.”

“그래, 신경 끄자. 어쨌든 살았으면 됐지. 피해도 없다시피하고.”

건물이 좀 상하고 부상자가 꽤 많기는 했지만, 사망한 사람은 없었으니.

엄청난 대승이었다.

결국 모코로 왕국의 플레이어들도 슬라브 왕국의 플레이어들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전장을 정리했다.

* * *

“당장 저놈을 포박하라!”

카를 13세가 근위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으아아아!”

궁지에 몰린 마리우스 후작이 마기를 내뿜으며 도주를 시도했다.

‘결국에 이놈이 사고를 치네.’

강현수가 분노로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카를 13세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마리우스 후작을 처리하는 일은 차원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마왕군을 제압한 후에 결정할 예정이었다.

마리우스 후작이 마왕군과 힘을 합치면 제거하고.

모르는 척하고 있으면?

좀 더 써먹을 생각이었다.

한데 아직 어린 나이의 카를 13세가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초를 친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좀 아깝기는 하지만.

‘마왕의 하수인이 저놈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마왕의 하수인들을 이용하면?

기존 계획을 얼마든지 계속해서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마리우스 후작의 경우.

‘희생양으로 써먹으면 그만이지.’

마왕군의 이번 계획 실패를 모두 마리우스 후작의 탓으로 돌리면?

‘다른 마왕의 하수인들은 계속 명맥을 유지할 수 있어.’

그놈들을 이용해서 마왕군을 사지로 몰 계획을 진행하면, 그만이다.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면?

‘마족과 마왕의 하수인들 사이에 분열이 시작된다.’

강현수가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는?

‘마족들이 가지고 있는 마왕의 하수인들에 대한 신뢰를 박살 내는 거지.’

그럼 마왕의 하수인들이 늘어나는 걸 방지할 수 있고.

아틀란티스 차원의 정보가 마계로 흘러 들어가는 것도 차단할 수 있었다.

“커억!”

마리우스 후작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넝마로 변했다.

마족화를 통해 랭커 플레이어 수준의 강함을 얻게 된 마리우스 후작이지만.

사클란트 제국의 최정예 플레이어 중에서도 가려 뽑은 근위 기사들의 맹공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일이 꼬였다. 함정이야.’

‘설마 황제가 우리 정체까지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동료인 마리우스 후작의 정체가 발각되자 마왕의 하수인들은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황제인 카를 13세는 마리우스 후작을 제외한 다른 마왕의 하수인들의 정체는 알지 못하는 듯했다.

“저놈을 황궁 감옥 가장 깊숙한 곳에 처박아라. 내 이번 일이 끝나면 친히 친국할 것이다. 또한 마리우스 후작의 가솔과 가신들을 모조리 체포해 감옥에 처박아라. 그 과정에서 저항하는 자는 모조리 즉참하라.”

“충!”

카를 13세의 명령에 근위 기사들이 힘차게 대답한 뒤 황실 중앙군을 움직였다.

이 작은 소동이 끝날 무렵.

차원 게이트가 온전히 열리고.

마왕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육의 시간이다!”

“이번에는 꼭 승급하리라!”

세 명의 마계 귀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세 명의 마계 귀족은 리몬쉬츠 백작의 권속으로, 모두 언데드였다.

리치 하나와 데스 나이트 둘.

이들이 받은 명령은 하나.

주력이 빠져나가 텅 빈 사클란트 제국의 수도 백성들을 학살하고 황제를 죽이는 것.

마지막에 마리우스 후작을 비롯한 마왕의 하수인들에게 죽는 연기(?)를 해야 하기는 했지만.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계속 활약하기 위해서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격!”

화르르륵! 파지지직! 콰콰콰콰!

차원 게이트를 넘자마자 세 명의 마계 귀족을 향해 온갖 종류의 공격 스킬들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이게 무슨?”

당황한 마계 귀족들이 공격을 막아 냈다.

“수도는 텅 비었다고 들었는데?”

“노예 놈들이 또 실수를 한 모양이군.”

“빌어먹을!”

마계 귀족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지만.

‘어차피 하찮은 인간일 뿐이야.’

‘그냥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오히려 산 제물이 많아지면 승급에 유리하다.’

세 명의 마계 귀족들은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비천한 인간들이 저항해 봤자 어찌 자신들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 순간.

송하나, 투황, 유카를 비롯해 강현수가 미리 소환해 놓은 로크토 제국 출신 지휘관들과.

강현수가 사단 소환을 통해 슬라브 왕국과 모코로 왕국에서 불러들인 오크 로드들과 네임드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세 명의 마계 귀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최선두에는?

당연히 강현수가 자리해 있었다.

꽈아아앙!

첫 격돌과 동시에 마계 남작인 데스 나이트 버나드가 뒤로 밀려 났다.

‘힘이 보통이 아니야.’

상대는 여러 마계 귀족을 쓰러트리고 그간 마왕군의 계획을 여러 차례 방해한 척마혈신.

당연히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귀찮군.’

마기를 갉아먹는 오러와 스킬들이 꽤 까다롭게 다가왔다.

그러나 데스 나이트 버나드 역시 딱지치기로 마계 남작 자리를 따낸 게 아니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 버나드의 적은 강현수만이 아니었다.

꽈아앙!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과 오크 로드 카쉬쿠의 합공에 데스 나이트 버나드가 형편없이 뒤로 밀려 났다.

‘이게 무슨?’

척마혈신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데 그와 비슷한 수준의 강자가 무려 둘이나 더 등장한 것이다.

‘혼자서는 무리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하지만.

꽈앙! 꽈앙! 꽈앙!

“크윽! 이 미천한 인간들이!”

“왜 이렇게 강한 거냐!”

그러나 동료들은 데스 나이트 버나드를 도와줄 상황이 아니었다.

송하나, 투황, 유카를 필두로 적염제 도르초프, 인의군왕 신창후, 검왕 장석원, 멸마창왕 진구평이 맹공을 퍼붓고 있었고.

거기다 최근 소환수가 된 오크 로드 둘과 철혈제를 시작으로 강현수의 소환수들이 마계 귀족들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이곳은 사클란트 제국의 수도였고.

강현수와 그 소환수들을 제외하고도 사클란트 제국의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 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사클란트 제국의 명예를 지켜라!”

“우리의 터전을 더럽힌 마족을 퇴치하자!”

사클란트 제국군과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똘똘 뭉쳐 맹공을 퍼부었다.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황제인 카를 13세를 지키기 위해 충의성 리처드 공작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근위 기사들은 절반 이상 전투에 참여한 상태였다.

강현수와 그 소환수들도 감당하기 버거운 상태에서 사클란트 제국의 수많은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 들이 벌 떼처럼 달려드니.

제아무리 마계 귀족이라도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었다.

“크아아아악!”

데스 나이트 버나드가 마계 귀족다운 활약을 채 선보이지도 못한 채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소멸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사단 구성.’

강현수의 소환수로 부활했다.

‘지휘관 임명, 지휘관의 축복.’

강현수는 마계 귀족이자 데스 나이트인 버나드를 연대장으로 임명하고 지휘관의 축복까지 내려 전장에 투입했다.

마계 귀족 셋 중 하나가 쓰러지자.

당연히 남은 둘은 더 큰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안 그래도 손발이 달리는데 동료가 죽고.

“우오오오!”

그렇게 죽은 동료가 적이 되어 돌아오자.

전황이 절망적으로 변해 버렸다.

유일한 희망은 차원 게이트를 타고 넘어오는 후속 언데드 군단이 활약을 해 주는 것뿐이었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언데드 군단은 차원 게이트를 나오는 순간 강현수의 수환수들과 사클란트 제국 플레이어들의 집중포화를 받고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승패가 갈려 버린 것이다.

* * *

‘빌어먹을.’

마계에 있던 리몬쉬츠 백작은 금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틀란티스 차원에 있는 인간 노예와 계약을 맺은 수하들이 계약이 끊겼음을 알려 왔고.

차원 게이트를 넘어간 권속들이 연달아 소멸해 버리니.

상황이 이상함을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마족들은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넘어간 권속의 생사 여부를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나 언데드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수하이자 권속인 언데드들이 아크 리치 킹인 리몬쉬츠 백작의 소환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건 마계 귀족의 작위를 받은 아크 리치와 데스 나이트 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 노예들은 도대체 정보 보안을 어떻게 한 거야?’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했으면 절호의 기회가 적들이 파 놓은 함정이 되냐는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선택은 두 가지.

더 양질의 병력을 투입하느냐.

병력 투입을 중단하느냐.

‘이대로 중단하기에는 손해가 너무 큰데.’

차원 게이트를 열기 위해 꽤 많은 마기를 소모했다.

그것도 모자라 휘하에 몇 없는 마계 귀족 하나가 소멸했고 나머지 둘도 얼마 가지 않아 소멸할 것 같다.

언데드의 특성상 부활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당연히 그에 합당한 마기를 영구적으로 소모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소멸한 데스 나이트들의 경우 척마혈신이 수작을 부리면 아무리 마기를 쏟아부어도 부활이 불가능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리치의 경우는 부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막대한 마기가 영구적으로 소모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손해가 너무 크다.’

로크토 제국의 사공작 오르페수스의 몸에 강림했을 때 마기를 영구적으로 손실했다.

사클란트 제국의 수도를 1차 습격했을 때 수많은 수하들을 잃었고.

소멸한 수하들을 부활시키는 데 또 마기를 영구적으로 소모했다.

어디 그뿐인가?

그때도 강림하느라 마기를 영구적으로 소모했다.

‘더 이상은 위험해.’

이번에도 아무 이득도 얻지 못하고 손해만 본다면?

‘그 망할 놈들이 날 가만히 두지 않겠지.’

거기다 소멸한 수하들을 부활시키려면 영구적으로 마기가 소모되고, 그러면…….

‘승급이 아니라 강등될지도 몰라.’

후작이 되려다 자작이 되게 생겼다.

“끄응.”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리몬쉬츠 백작이 결국 결정을 내렸다.

‘더는 물러날 수 없다.’

그러나 휘하 수하들을 아무리 투입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리몬쉬츠 백작이 내린 마지막 수단은.

저벅저벅.

직접 차원 게이트를 넘는 것이었다.

리몬쉬츠 백작이 차원 게이트를 넘는 건 위험 부담이 컸다.

가이아 시스템의 방호가 막강했기에 힘이 깎여 나갈 게 뻔했고.

자칫 잘못하면 가이아 시스템의 방호에 불안정해진 차원 게이트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차원의 미아가 되어 소멸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힘이 많이 소모되었다는 건가.’

그간의 손해로 리몬쉬츠 백작은 마계 백작 중 최약체가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차원의 미아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졌다.

더군다나 리몬쉬츠 백작은.

‘어차피 그놈들의 공세가 시작되면 난 소멸할 수밖에 없어. 이판사판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파지직!

리몬쉬츠 백작이 차원 게이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