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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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탕질 (2)

마왕군의 입장에서는 아틀란티스 차원 노예들의 전폭적인 협조가 꼭 필요하다.

정보 수집을 포함해 차원 게이트를 통해 넘어간 마왕군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강림이나 승급에 필요한 산 제물 수급도 모두 노예들이 떠맡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노예들에게 나름 동료 대접을 해 주고 있지.’

마왕군을 희생시켜 노예들의 레벨이나 세력을 성장시켜 준다거나.

마족화를 통해 불로의 길을 열어 준다거나.

‘그런 식으로 노예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던져 주고 있어.’

마왕군과 마왕의 하수인들은 속마음은 어떻든 겉으로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

‘그걸 깨 버리면?’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

또 신뢰를 깨는 과정을 잘만 이용하면?

‘마왕의 하수인들을 이용해서 마왕군의 침공 경로를 유도할 수 있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마왕군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장에 차원 게이트를 오픈한다면?

‘손쉽게 마왕군을 처리할 수 있어.’

그러려면 일단 마왕의 하수인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일에 적격인 녀석들이 있지.’

강현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늘은 이만합시다.”

“다음 정기 회의 때 뵙도록 하죠.”

마왕의 하수인들이 회동을 마치고 흩어지려는 순간.

‘사단 소환.’

강현수가 최상급 마족 도플갱어들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소환수들을 소환했다.

-저놈들 따라가라.

강현수의 지시에 도플갱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차근차근 일을 벌여 보자고.’

마왕의 하수인들을 죽이고 도플갱어로 대체하는 건 하책이다.

계약이 끊어지면 마족과 마왕의 하수인들 사이를 이간질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마왕의 하수인들을 따르는 녀석들은 얼마든지 대체해도 상관없지.’

그 녀석들이 마왕의 하수인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주거나 오판을 유도하면?

‘결과는 같아지지.’

거기서 끝이 아니다.

마기의 구슬을 사용하면?

‘마기로 이루어진 소환수를 만들 수 있어.’

마기로 이루어진 소환수는 마족으로 오해받기 딱 좋았다.

‘그게 단점만 있는 건 아니지.’

마족으로 오해받으면?

플레이어들에게는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지만.

마왕의 하수인들에게는?

‘아군으로 인식되겠지.’

마기로 만들어진 소환수가 마족 역할을 맡아 분탕질을 치고.

최상급 도플갱어들이 마왕의 하수인들을 충동질한다면?

‘제대로 개판을 칠 수 있겠어.’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역시 도플갱어.’

그것도 연기력이 뛰어난 최상급 도플갱어답게 완벽하게 잠임에 성공했다.

뭐, 중대장으로 임명된 녀석들의 경우 지능이 달린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도플갱어 킹 탈리만이 잘하고 있으니까.’

과거 도플갱어 1호가 그랬듯 원격 보고를 받으며 최상급 도플갱어들을 잘 컨트롤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일이 술술 풀렸다.

‘반란을 꿈꾸고 있는 게 확실하네.’

새롭게 추대할 차기 황제는 당연히 로프방 백작이었다.

이유는 하나.

‘카를 13세의 황권이 너무 강하니까.’

어린 황제.

잘 구워삶으면 손쉽게 자신들이 조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보통 또라이가 아니지.’

거기다 정치 머리도 만만치가 않다.

어디 그것뿐인가?

폭군의 자질도 충만해서 강현수를 대공에 임명하고 감찰권과 군사권을 줬듯이 뻑하면 황명을 들먹이며 독불장군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신권을 바닥에 패대기치는 수준을 넘어서서 아예 말소하려고 하니 신하들 입장에서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선황의 외아들인 데다 정통성이 워낙 탄탄하다 보니 반란을 일으키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언데드 몬스터 침공 이벤트로 수도와 백성들을 버린 암군이라는 이미지를 씌우려고 했는데.

‘나 때문에 실패했지.’

오크 군단 토벌 실패도 강현수가 사클란트 제국의 대공이 됨에 따라.

‘오크 군단 토벌 실패가 성공으로 뒤바뀌어 버렸어.’

또 황제에게 충성하는 네임드 플레이어와 군부의 손실도.

‘내가 메꿔 버렸고.’

마왕의 하수인들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로프방 백작은 서자. 정통성도 약하고 든든한 외가나 처가 같은 지지 세력도 없어.’

그에 반해 선황의 유일한 동생이기에 혈통상으로 황위 계승 서열은 1위다.

당연히 마왕의 하수인들 입장에서는 허수아비 황제로 세우기 딱 좋은 인물이었다.

‘회귀 전에 왜 그렇게 황권 강화에 매달리나 했더니.’

허수아비 황제로 신하들에게 휘둘려 살다 보니 그 꼬라지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면 회귀 전에는 마왕의 하수인들이 훌륭히 임무를 수행한 거네.’

사클란트 제국을 둘로 갈라 버렸으니까 말이다.

아틀란티스 차원의 인류는 결코 약하지 않다.

시스템을 통해 플레이어의 힘을 얻었고 계속해서 강해질 수 있다.

거기다 타 차원을 통해 계속해서 병력이 보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처참하게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힘을 합치지 못해서지.’

로크토 제국도 그랬고 사클란트 제국도 그랬다.

황권, 신권, 귀족, 평민, 아틀란티스 원주민 플레이어,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 등등.

‘로크토 제국은 잘 봉합했어.’

이제는 사클란트 제국의 차례였다.

그 선봉장이 될 존재가 바로.

‘이 녀석이지.’

바로 도플갱어 1호였다.

‘애매하단 말이지.’

강현수는 그간 열심히 사냥을 해서 부지런히 마기의 구슬을 채웠다.

그 후 그렇게 모은 마기를 도플갱어 1호에게 투자했다.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활동하기에 가장 적합한 소환수.

위장에 능하고 마기도 감출 수 있으며 연기력도 탁월한 소환수.

사실 무력을 제외하면 가장 활용하기 좋은 소환수가 바로 도플갱어였다.

그렇기에 도플갱어 1호에게 마기의 구슬에 주입된 마기를 넘겨주었다.

단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베이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느냐는 거지.’

마족은 마기의 구슬에 저장된 마기를 흡수해 벽을 부수고 승급할 수 있다.

그게 소환수도 가능할까?

호왕과 도플갱어 킹 탈리만을 통해 강해진다는 건 확인했지만.

‘애초에 베이스가 된 능력치의 한계를 넘어선 적은 없으니까.’

그렇기에 이번 테스트가 상당히 중요했는데.

다행히도 성공은 했다.

‘이 정도면 마계 준남작급은 되지.’

최상급 마족을 베이스로 탄생한 존재가 마계 귀족급이 되었다.

문제는.

‘단순히 전투력만 늘어났다는 거지.’

그것도 마기가 늘어나서 전투력이 늘어난 거지 보유한 스킬 자체가 성장한 건 아니었다.

거기다 도플갱어 킹이 가지고 있는 분신 스킬이라거나 비행형 몬스터로의 변신이라거나 하는 스킬들은.

‘단 하나도 가지지 못했어.’

마기를 주입하면 한계를 뛰어넘어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보유한 스킬은 그대로다.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절반의 성공인 거지.’

더 강한 소환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베이스가 좋아야 했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당장 써먹기는 충분하지.’

준비는 끝났다.

‘그럼 시작해 볼까?’

강현수가 마기로 강화된 도플갱어 1호의 육신을 지배한 후 계획 실행을 위해 움직였다.

* * *

마리우스 후작은 마왕의 하수인이다.

사실 제국의 후작으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그가 굳이 마왕의 하수인이 될 필요는 없었다.

아틀란티스 차원이 마왕군과의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보장도 없었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우스 후작이 마왕의 하수인이 된 이유는 단 하나.

불로.

마족도 불사의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불로의 존재이기는 했다.

백 년도 제대로 못 사는 인간이 볼 때 측정 불가의 긴 수명을 가진 마족은 불로의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마리우스 후작은 현재 70세가 넘은 노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

그의 육체는 20대 청년의 것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웬만한 랭커 플레이어 수준의 힘을 품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마족화 덕분이었다.

그러나 젊음을 손에 넣은 대가는 상당히 값비쌌다.

인류의 적인 마족을 위해서 일해야 했다.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곧바로 목이 잘려 나가고 가문은 멸문한다.

마왕군이 아틀란티스 침공에 실패하면?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마리우스 후작은 계약한 마족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자신의 이득을 챙겼고.

자신의 정체를 철저하게 감췄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에.

마기를 풀풀 풍기는 마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구나, 비천한 노예야.”

그것도 이런 개소리와 함께.

“당신은 누구요?”

“내 이름은 카루트, 고귀한 마계 귀족이다.”

“마계 귀족?”

마리우스 후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마족의 계급 체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일반 마족과 마계 귀족은 그 격이 다르다.

“한데 나를 왜 찾아온 거요, 그것도 이런 위험한 시국에?”

카를 13세가 마족의 하수인을 뿌리 뽑겠다고 설치고 있었고.

그간 마족과 마왕의 하수인들을 학살한 척마혈신과 다크 나이트가 감찰권을 가지고 대대적인 수색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산 제물을 통한 마족화 진행과 계약한 마족과의 통신도 자제하며 숨을 죽이고 있는데.

‘이 미친놈이 마기를 풀풀 풍기면서 여기를 왜 온 거야?’

황제가 흩뿌린 수사관과 다크 나이트의 눈에 띄기 전에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다가는 자기 목이 날아갈 뻔했다.

그때.

콰직!

자칭 마계 귀족 카루트가 마리우스 후작의 목을 움켜쥐었다.

“비천한 노예 주제에 상당히 건방지구나? 여기서 네놈의 숨통을 끊어 주랴?”

“으으윽!”

마리우스 후작은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이었다.

마족화된 육체 덕분에 랭커 플레이어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자신의 목을 붙잡고 있는 이 우악스러운 손길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휘익!

자칭 마계 귀족 카루트가 손을 휘젓자.

콰앙!

마리우스 후작은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자비는 한 번뿐이다, 비천한 노예야.”

“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눈치 빠른 마리우스 후작이 재빨리 말투와 행동을 바꿨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의문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하온데 어찌하여 저를 찾아오신 것인지? 저는 마계 백작님의 종입니다.”

마리우스 후작이 자신이 계약한 마계 백작을 들먹였다.

“알고 있다. 너절한 뼈다귀인 리몬쉬츠 백작의 종이겠지.”

자칭 마계 귀족 카루트의 말에 마리우스 후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분을 너절한 뼈다귀라고 부르다니.’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족이기는 하지만 리몬쉬츠 백작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언데드였고.

그의 몸은 뼈다귀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너절한 뼈다귀는 무려 마계 백작이다.

‘도대체 얼마나 고위 마계 귀족이기에 리몬쉬츠 백작을 저리 부른다는 말인가?’

머릿속에 혼란이 왔다.

‘가이아 시스템의 방어가 너무 단단해서 지금 당장 자작급 이상의 마계 귀족이 차원 게이트를 넘는 건 무리라고 들었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눈앞의 존재는 그 괴리감이 너무 컸다.

“당분간 네게 신세 좀 져야겠다.”

“예?”

그런데 그 존재가 황당한 소리를 했다.

“왜, 싫어?”

살기와 마기를 줄줄 내뿜는 상대의 물음에.

“아닙니다.”

자동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한데 리몬쉬츠 백작님과는 어떤 사이신지?”

“내가 그 너절한 뼈다귀 놈과 눈곱만큼이라도 관련이 있어 보이나?”

상대의 말을 들은 마리우스 후작은 큰 혼란에 빠져들며 동공 지진이 왔다.

“궁금한 게 꽤 많은 것 같구나.”

“예, 그렇사옵니다.”

“하긴 네놈도 어느 정도 사정을 파악하는 게 편하겠지? 나는 마계 자작 카루트다.”

마리우스 후작의 눈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아니, 마계 자작 주제에 마계 백작을 너절한 뼈다귀 취급하다니?

“마계 공작이자 고귀한 마룡족의 수장이신 크라누스 님을 모시고 있지. 나는 그분의 명령에 따라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마계 자작 카루트의 사정은 간단했다.

차원 게이트를 통해 아틀란티스 차원의 로크토 제국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다크 나이트를 만나 수하들을 모두 잃고 쫓기는 몸이 되었다.

로크토 제국에서는 도저히 발을 붙일 수가 없어서 사클란트 제국으로 넘어왔는데.

“여기도 다크 나이트가 득실거리더구나.”

그래서 몸을 피하기 위해 마왕의 하수인인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이었다.

‘이런 망할.’

마리우스 후작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큭큭큭!”

마계 자작 카루트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의 육체를 조종해 썰을 풀던 강현수는 엉망진창이 된 마리우스 후작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죽을 맛일 거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하지.’

강현수는 마리우스 후작에게 제대로 된 지옥을 선물해 줄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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