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탕질
강현수는 황궁을 빠져나왔다.
‘활동하기 편해지겠어.’
이중 인장이 로크토 제국의 공작과 사클란트 제국의 대공으로 채워졌다.
‘카를 13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일도 없고.’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무력도 무력이지만.
‘녀석은 연대장이란 말이지.’
유사시에는 휘하 연대원들을 소환해 대응할 수 있었다.
‘일단 합류부터.’
강현수는 송하나, 투황, 유카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향했다.
“현수야!”
“현수 씨!”
송하나와 광혈마녀 유카가 환하게 웃으며 강현수를 반기는 순간.
파지직!
송하나와 광혈마녀 유카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불꽃이 튀어 올랐다.
‘뭐지?’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
“왔냐? 일은 잘 끝났어?”
투황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강현수에게 손을 흔들며 물었다.
“어, 잘 마무리했어.”
강현수가 간단하게 황제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야기를 듣던 투황의 얼굴이 점점 더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너, 그러다가 천벌 받는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그렇지만 일이 벌어진 후 방치한 건 사실이잖아.”
“그, 그렇기는 한데…….”
거기서 진실을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일단 마왕의 하수인부터 찾자.”
강현수가 말을 돌렸다.
“그런데 어떻게 찾아? 미래 예지 스킬로 본 거라도 있어?”
투황의 물음에.
“아니, 아직은 없어.”
회귀 전에 접한 사클란트 제국에 대한 정보가 빈약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찾아낼 수 없다는 건 아니지.’
일단 반란군과 마왕의 하수인이 손을 잡은 건 확실했다.
그럼?
‘반란을 일으킬 만한 가능성이 높은 인물 위주로 조사를 해 보면 되겠지.’
그리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카를 14세.’
회귀 전 카를 13세의 뒤를 이어 사클란트 제국의 황제가 되었던 자.
‘지금은 무슨 신분인지 모르겠네.’
그렇지만 골드로드상단과 다크섀도의 정보력을 이용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게 확실했다.
황위 계승 서열이 높은 황족임은 확실할 테니까 말이다.
‘그보다 어디에 사용하면 좋을까?’
강현수는 등가교환 스킬을 사용할 조합을 고민했다.
‘직업 스킬은 필요없고.’
랭크가 올라서 스택이 넉넉했다.
‘스킬 강화도 기각.’
조금 더 자주
가 되면 레벨 업이 빨라져 효율이 올라가기는 하겠지만.
‘경험치 총량은 동일해서 큰 이득이 없어.’
역시 가장 좋은 건.
‘쿨타임이 긴 편인 스킬 증폭이나 미래 예지에 사용하는 건데.’
스킬 증폭은 큰 도움이 되지만 미래 예지는 도박성이 강해서 망설여졌다.
‘근데 아이템이 보유한 스킬에도 적용이 되나?’
얼음 왕의 목걸이나 수호의 반지에 내장된 스킬들 중에는.
‘효과는 좋은데 쿨타임이 긴 것들이 꽤 많단 말이지.’
특히 얼음 방패 같은 스킬들을 연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무적 시간이 늘어나는 거나 마찬가지야.’
테스트가 필요했다.
‘써 보면 그만이지.’
얼음 방패는 쿨타임이 3일이니 너무 길었다.
‘얼음 왕의 목걸이나 수호의 반지에 내장된 스킬은 다 쿨타임이 길어.’
거기다 전투 활용성이 높아서 괜히 쿨타임 중이면 난감하다.
쿨타임이 짧으면서도 페널티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스킬을 가진 아이템이 필요했다.
‘악몽의 반지를 써먹으면 되겠네.’
습득한 이후 EX랭크 스킬 악몽을 써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상은 아마 그 녀석들이 좋겠지?’
마왕의 하수인으로 의심되는 자들.
악몽 스킬을 사용해 상황을 만들어 주면?
그들이 진짜 마왕의 하수인인지 아닌지 감별할 수 있다.
‘꿈에서조차 거짓말을 하는 놈은 없을 테니까.’
악몽 스킬의 효과는 시전자가 원하는 악몽을 선사해 주는 것.
‘이게 사기지.’
그저 악몽을 꾸게 하는 걸로 끝이었다면?
상대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거나 자멸하게 만드는 전투 용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악몽을 꾸게 해 줄 수 있으면 사정이 다르지.’
전투 용도를 넘어서 정보를 캐내는 용도로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 * *
‘경계가 삼엄하네.’
역시 사클란트 제국의 황위 계승 서열 1위 로프방 백작의 저택다웠다.
‘로프방 백작이라.’
카를 13세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카를 14세는 선황의 동생으로, 현재 백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서자라는 거지.’
황후가 아닌 후궁 소생이었고.
‘친모인 후궁이 귀족 출신이 아니라 평민 출신의 시녀.’
쉽게 말해 황족이기는 한데 정통성이 약했고 지지 기반도 없었다.
처가 역시 남작 가문이었다.
로프방 백작이 황후 소생이었다면?
‘백작이 아니라 대공, 아무리 못해도 공작의 작위는 받았겠지.’
그나마 가지고 있는 백작의 작위도.
‘작위만 백작일 뿐이지.’
백작이라고는 하지만.
‘하사받은 영지 자체가 없어.’
그나마 황실에서 품위 유지비가 두둑이 주어지기에 큰 저택을 유지하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왜 같은 이름을 써서 사람을 헛갈리게 만들어.’
카를 13세니 카를 14세니 하는 건 단순히 카를이라는 이름을 쓰는 몇 번째 황제냐는 뜻으로.
혈족 간의 항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손자 카를이 아버지 카를을 건너뛰고 할아버지 카를 1세의 황위를 물려받았다면?
그냥 카를 2세가 되는 거다.
마찬가지로 삼촌 카를이 조카 카를 13세에게 황위를 물려받으면?
‘카를 14세가 되는 거지.’
다만 황위가 항렬이 높은 쪽에서 항렬이 낮은 쪽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보니 카를 13세와 카를 14세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 게 실수였다.
‘평판은 상당히 좋은 편이야.’
조카이자 황제인 카를 13세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반역의 기미는 1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은 모르는 거니까.’
강현수가 달의 그림자 스킬을 시전했다.
삼엄한 경비가 순식간에 뚫려 나갔다.
전에는 달의 그림자 스킬이 있었음에도 이렇게 막 사용하기가 힘들었다.
스킬을 사용하거나 물리적 공격을 가하면 달의 그림자 스킬이 풀려 버리는 단점이 있었고.
‘거기다 쿨타임도 12시간이나 되니까.’
잠입하는 건 가능한데 빠져나가는 게 불가능한 게 달의 그림자 스킬의 단점이었지만.
‘등가교환 스킬 덕분에 페널티가 사라져 버렸지.’
마음만 먹으면 열 번 연속으로 달의 그림자 스킬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여기네.’
강현수가 로프방 백작의 침실까지 무사히 들어왔다.
‘역시 호위가 없네.’
침실 앞까지는 호위 기사들이 바글바글했다.
하지만.
‘자기가 잠자는 공간까지 호위를 들이지는 않지.’
[EX랭크 스킬 악몽이 발동합니다.]
강현수가 로프방 백작에게 악몽 스킬을 사용했고.
[달의 그림자 스킬이 해제됩니다.]
달의 그림자 스킬이 자동으로 해제되었다.
‘호오, 이런 식이었나?’
강현수도 악몽 스킬을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엄청 친절하네.’
강현수의 머릿속에 스킬 악몽의 진행 상황이 또렷하게 보였고.
‘시전자가 원하는 악몽을 선사해 준다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악몽을 조정할 수 있었다.
“으으으으.”
로프방 백작이 신음을 토해 내며 몸을 비틀거렸다.
그러나 이 정도로 호위들이 난입할 일도 없었고.
악몽에서 깨어날 일도 없었다.
‘마왕의 하수인은 아니네.’
악몽 스킬을 통해 테스트해 본 결과.
로프방 백작은 마왕의 하수인이 아니었다.
‘이대로 끝내기는 섭섭하지.’
강현수가 악몽의 종류를 바꿨다.
그 결과.
‘역시 황제 자리를 노리고 있었어.’
로프방 백작이 반역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다음은 저놈을 타깃으로 하면 되겠네.’
로프방 백작과 뜻을 함께하는 귀족 중 대표적인 인물.
‘마리우스 후작이라.’
회귀 전에는 공작이었고.
‘사클란트 제국이 무너진 후에 패잔병을 모아 마왕군과의 싸움에 함께한 인물인데.’
단순히 로프방 백작과 손을 잡고 반역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싶어 하는 야심가인지.
그게 아니면.
‘마왕의 하수인인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지.’
강현수는 다시금 달의 그림자 스킬을 사용해 로프방 백작의 저택을 빠져나와 마리우스 후작의 저택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악몽 스킬의 쿨타임이 등가교환 스킬로 초기화가 가능한지 확인했는데…….
‘성공이네.’
등가교환 스킬은 아이템에 내장된 스킬의 쿨타임도 초기화가 가능했다.
‘좋아.’
이로써 얼음 왕의 목걸이나 수호의 반지에 내장된 쿨타임이 긴 스킬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곧바로 써먹어야지.’
강현수가 마리우스 후작의 저택에 도착했다.
‘여기도 만만치 않네.’
경계가 삼엄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달의 그림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어디 있나?’
강현수가 열심히 마리우스 후작을 찾아 움직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안 자고 있잖아?’
거기다 혼자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혼자 있었으면 그냥 스킬을 걸어 버리면 그만인데.’
갑자기 픽 쓰러져 잠들어 악몽을 꾼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다면?
‘당연히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겠지.’
그러니 지금 당장 악몽 스킬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놈은 왜 이 늦은 시간까지 안 자고 있는 거야?’
강현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좀 더 기다려야 하나 하고 생각했을 때.
“척마혈신과 다크 나이트의 등장으로 일이 꼬였네.”
“그러게 말입니다.”
“문제는 미치광이 황제가 척마혈신에게 대공의 작위와 감찰권, 군사권을 하사했다는 거네. 로크토 제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다들 알고 있지 않나?”
“로크토 제국에 있는 마왕의 하수인들이 모두 쓸려 나갔지요.”
“우리도 그 꼴이 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네. 당분간은 몸을 사려야 해.”
“그렇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시간이 흐르면 흔들린 황권이 다시 굳건해집니다. 그럼 기회가 사라집니다.”
“그분께서 한 번 더 힘을 내 주시면 좋으련만.”
“설사 힘을 내 주신다고 해도 이제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프랭크 왕국과의 국경에 나가 있던 주력이 모두 복귀해 버렸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다시금 양동작전을 한다면 가능하지 않겠나?”
“공간 이동 게이트가 상시 통행으로 바뀌어 버려서 큰 의미가 없을 겁니다.”
“정말 골치가 아프군. 그럼 암살밖에는 방법이 없는 건가?”
“충의성 리처드 공작이 철통같이 경계를 하고 있기에 그것도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이놈들 봐라.’
굳이 악몽 스킬을 시전할 필요도 없었다.
이놈들이 나누는 대화만 들어 봐도.
‘마왕의 하수인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네.’
손쉽게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강현수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했다.
‘다 죽여 버려?’
강현수가 여기 있는 마왕의 하수인들을 쓸어버린 후 다시금 달의 그림자 스킬을 사용해 빠져나가면?
‘완전범죄지.’
그럼 반역을 노리고 있는 역적 겸 마왕의 하수인들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놈들이 전부라는 보장이 없지.’
추가로 마왕의 하수인들이 있을 수도 있다.
거기다.
‘지금 당장 죽여 버리면 결국은 암살에 불과해.’
그 자식들이 작위와 영지를 물려받을 것이고.
‘그놈들도 마왕의 하수인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지.’
결국 암살로는 자라난 싹과 가지만 자를 수 있을 뿐.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세력을 뿌리 뽑을 수는 없었다.
‘차분히 관찰해서 다른 마왕의 하수인들 정체를 알아내고 그 사실을 까발린 후 처리하는 게 가장 베스트야.’
이놈들이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찾아낼 필요도 있었다.
그때.
“그분들이 직접 강림하시기만 하면 일이 편해질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나 공을 세워야 인간의 육신을 벗어던지고 불로의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강현수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어차피 이놈들이 마왕의 하수인이 된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이득.
마왕군이 이길 거라는 사실에 베팅했고.
아틀란티스 차원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하며.
수명이라는 한계에 갇힌 인간의 육신을 불사는 아니지만 불로는 가능한 마족의 육신으로 탈바꿈하는 것.
그러나 마족들이 그런 저들의 소망을 들어줄지는 미지수였다.
마족들은 아틀란티스 차원의 계약자들을 대등한 동료가 아니라 쓸 만한 노예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저놈들은 그걸 모르지.’
그럼?
‘진실을 알게 해 줘야지.’
물론 진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이미 마족과 계약을 한 이상 무를 수는 없다.
하지만.
‘엇나가게 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