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와의 계약
강현수가 사클란트 제국의 황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를 13세라.’
회귀 전 강현수의 기억 속 카를 13세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황제였다.
‘내가 사클란트 제국에서 활동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후이기도 했고.’
그래서 카를 13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몇 살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지.’
강현수가 나름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클란트 제국의 황제는 카를 13세 사후 즉위한 카를 14세였다.
‘그 녀석은 직접 만나 본 적도 있지.’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권력욕이 너무 강했지.’
황권 강화를 위해 정적들의 세력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을 수시로 벌인 냉혈한이었다.
‘결국은 제살 깎아 먹기인데.’
모르고 한 것도 아니고 알고 한 것이다.
인류 전체의 전력이 줄더라도 황권을 강화할 수만 있다면?
‘신경 쓰지 않았지.’
아무리 황권을 강화해도.
‘나라가 망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건데.’
카를 14세의 이기적인 행보에 결국 사클란트 제국은 멸망했고.
‘그 녀석은 사클란트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됐지.’
나라도 잃고 황제 자리도 잃고 목숨도 잃었다.
‘그간의 행보를 보면 카를 13세도 비슷한 성향인 것 같은데 걱정이네.’
로크토 제국은 강현수의 활약으로 회귀 전의 악재를 모두 극복했다.
그러나 반대로 사클란트 제국은?
제후국 하나가 무너지고 정예군이 전멸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강현수 입장에서는?
쓸 만한 장기짝 하나를 고쳐 놨더니.
다른 장기짝 하나가 망가진 격이었다.
‘기왕이면 사클란트 제국도 제대로 고쳐 놓는 게 좋지.’
그래야 둘 다 잘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서 오십시오.”
근위 기사들이 대전의 문을 열었고.
강현수는 사클란트 제국의 황제와 귀족들이 자리한 대전에 진입했다.
‘어?’
사클란트 제국의 황제 카를 13세의 얼굴을 본 강현수는 적잖이 당황했다.
‘뭐야, 어린애잖아?’
강현수의 기억 속에 있는 황제 카를 14세는 70대의 노인이었다.
현황이 선황보다 어린 경우는 거의 없기에 강현수는 당연히 전 황제인 카를 13세가 카를 14세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카를 13세는 이제 겨우 15살이 됐을까 싶은 어린아이였다.
‘일반적인 승계가 아니었구나.’
황위는 일반적으로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이어진다.
한데 선황인 카를 13세보다 다음 황제인 14세의 나이가 더 많다면?
‘후손 없이 죽었구나.’
그래서 황위가 아버지의 형제에게 이어졌을 확률이 높았다.
“그대가 다크 나이트의 수장인 척마혈신인가?”
카를 13세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강현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그대와 다크 나이트들의 활약 덕분에 수많은 제국인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에 짐이 그대에게 작위를 하사하고자 한다.”
카를 13세의 말에.
“황제 폐하, 작위라니요?”
“저자는 로크토 제국의 공작이옵니다.”
“어찌 로크토 제국의 공작에게 작위를 하사하겠다는 말씀을 하시옵니까?”
귀족들이 벌 떼처럼 들고일어났다.
‘뭐지?’
강현수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냥 불러서 적당히 치하의 말이나 하고 골드나 아이템을 포상으로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위라니?
“닥쳐라! 척마혈신과 다크 나이트는 제국의 수도를 공격한 언데드 군단을 제압하는 큰 공훈을 세웠다! 한데 어찌 작위가 과하다 하겠는가!”
“하오나, 저자는 로크토 제국의 공작이옵니다.”
“어차피 하사받은 영지는 없는 명예직 아닌가?”
“영지는 없지만, 감찰권과 군사권 같은 실권을 쥔 인물이옵니다!”
“그것도 어차피 마왕군의 침공이나 몬스터의 침공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이는 황명이다! 경들은 더 이상 토를 달지 말라!”
카를 13세의 말에 신하들이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진짜 막 나가는 녀석이네.’
아직 어린 만큼 충분히 저런 막무가내 고집을 피울 수는 있다.
하지만.
‘저 녀석은 황제지.’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면 혼을 내면 그만이지만.
‘황제가 저러면 막을 수가 없지.’
강현수가 봤을 때 카를 13세는 폭군의 자질이 충만했다.
“투구를 벗고 무릎을 꿇으라.”
카를 13세의 말에 강현수가 투구를 벗고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낭인족 소년의 외모를 한 강현수의 얼굴이 드러났다.
“허, 수인족이지 않은가?”
“그보다 너무 어린데?”
“저런 어린아이가 신의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이자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란 말인가?”
신하들이 크게 놀라 수군거렸다.
반면 카를 13세는 얼굴이 환해졌다.
“오호!”
카를 13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저벅저벅.
거침없이 강현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러운 카를 13세의 돌발 행동에 근위 기사들이 적잖이 당황했지만.
카를 13세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강현수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대사클란트 제국의 황제 카를 13세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다크로드라는 성과 대공의 작위를 하사한다.”
카를 13세의 발언에.
“황제 폐하!”
“아니 되옵니다!”
신하들이 다시금 벌 떼처럼 일어났다.
강현수도 황당했다.
‘대공? 그게 무슨?’
오공작 중 최고 작위가 공작이다.
대공은 공작보다 상위 작위로.
보통 소국의 왕이나 황족들에게 하사되는 작위다.
강현수가 사클란트 제국의 대공이 되면?
사클란트 제국의 모든 귀족이 강현수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어처구니가 없네.’
강현수의 수족이자 로크토 제국의 실권을 장악한 여황제 세실리아가 내린 작위가 공작이다.
한데 강현수와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클란트 제국의 황제가 무려 대공의 작위를 준 것이다.
“내 분명히 황명이니 토를 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카를 13세의 말에 신하들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고집불통에 막무가내라.’
이 정도면 회귀 전 강현수의 기억 속에 폭군으로 기억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또한…….
‘괜히 내전의 향기와 반란 각이 보인 게 아니었어.’
그러나 회귀 전 강현수의 기억 속에 사클란트 제국에서 내전이나 반란은 없었다.
‘혹시 암살당한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크로드 대공, 나와 함께 점심 식사나 하지.”
카를 13세의 말에.
“알겠습니다.”
강현수가 선선히 수락했다.
폭군의 기질이 농후한 어린 황제지만.
‘나한테 호의를 가지고 있어.’
왜 그러는지는 강현수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지금부터 카를 13세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해. 그리고 지금 당장 네가 알고 있는 카를 13세에 대한 정보부터 모두 말해 봐.
황금 군주 사에마알을 들들 볶는 수밖에 없었다.
-카를 13세는…….
곧바로 카를 13세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선황이 사망해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라…….’
얼마 전까지 친모인 태후가 수렴청정을 했고.
‘올해 15살로 성인이 되어 친정을 시작했다는 말이지?’
그 외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
‘거기다 반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단 말이지.’
그게 조금 의외였다.
‘선황의 적통에 적장자라.’
정통성이 워낙 탄탄했고.
군부도 충성을 바치고 있었으며.
친모인 태후의 가문도 사클란트 제국에서 상당히 명망 높은 명문가라고 했다.
‘오크 군단의 침공 때문에 문제가 생겼구나.’
토벌대는 황제의 지시에 따라 프랭크 왕국의 국토를 수복하려다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그게 카를 13세가 황제로서 친정을 시작한 직후 벌어진 일이었으니.
‘황권이 흔들릴 만하네.’
거기다 토벌대가 큰 피해를 입으며 황제에게 충성하던 군부 세력 역시 대거 소멸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가 언데드 군단의 침공까지 당했으니.
‘내가 늦었으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었겠어.’
어쩌면 황궁이 점령당하고 황제가 살해당했을 수도 있었다.
‘만약 도망쳤다면 황제가 백성을 버렸다며 욕을 바가지로 먹었겠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오크 군단의 침공 루트가 바뀐 거야 이해할 수 있지만.’
한참 후에 등장해야 할 언데드 군단이 빠르게 등장했다.
그것도.
‘사클란트 제국의 수도에 말이지.’
사실 주력이 빠진 상태라 예상외의 큰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평상시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단 말이지.’
다른 차원에 있는 마족이 마치 사클란트 제국의 병력 배치를 알고 움직인 것처럼 공격을 가해 왔다.
‘마왕의 하수인이 개입한 게 확실해.’
그리고 마왕의 하수인은.
‘카를 13세와 대척점에 있어.’
이점을 잘 이용하면?
‘로크토 제국에 이어 사클란트 제국도 손에 넣을 수 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누가 마왕의 하수인인지 알 수가 없다는 건데.’
로크토 제국에 암약하는 마왕의 하수인에 대한 정보는 확실히 꿰고 있었지만.
‘사클란트 제국에 암약하고 있는 마왕의 하수인에 대해서는 딱히 아는 게 없어.’
그게 참 아쉬웠다.
“앉지.”
카를 13세가 자리를 권했다.
‘내가 무섭지도 않나?’
강현수는 신의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다.
그것도 척마혈신이라는 무시무시한 칭호를 지닌.
아무리 호위가 있다고는 하지만.
‘나를 전혀 경계하지 않는단 말이지.’
마치 마리오네트 스킬이 걸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내 그대에 대한 소식은 일찍이 알고 있었네. 로크토 제국에서 마왕군을 침공을 여러 차례 분쇄했다지? 마룡 카라스는 어땠나? 정말 그렇게 무시무시했나? 도플갱어 군단은…….”
카를 13세가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속사포처럼 강현수에게 질문을 쏟아 냈다.
‘어라?’
뭔가 감이 왔다.
강현수는 차분히 그간 마왕군과 전투를 벌였던 ‘썰’을 풀었다.
당연히 MSG도 팍팍 쳤다.
그런데.
“그렇게 전투를 치렀는데…….”
“오오오!”
카를 13세의 리액션이 범상치 않았다.
“결국 큰 희생 끝에 마룡을 쓰러트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하군!”
“그 후에…….”
강현수가 MSG를 듬뿍 친 썰을 풀 때마다 카를 13세는 마치 자기가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기라도 한 듯 흥분했다.
‘이 녀석.’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내 팬이었잖아?’
아이돌에 열광하는 10대 소년처럼.
카를 13세는 다크 나이트라는 비밀결사 조직에 열광하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자 척마혈신이라는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 강현수에 대한 호감이 엄청났다.
다크로드라는 성을 내린 이유도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어.’
자신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면?
작업이 더 쉬워진다.
그때.
“내 한 가지 부탁이 있네.”
“무엇인지요?”
“그대가 대공의 작위를 받은 날짜를 오늘이 아니라 석 달 전으로 해도 괜찮겠는가?”
석 달 전이라면?
오크 군단의 침공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괜히 대공의 작위를 준 게 아니었구나.’
강현수를 이용해 먹을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다.
“오크 군단의 준동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줄어들었다고 들었네. 아마 자네와 다크 나이트가 손을 쓴 것이겠지. 맞나?”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나마 퇴각하던 아군의 피해가 줄어든 것도 자네 덕이겠군.”
“맞습니다.”
“자네가 오늘 나에게 작위를 받은 것이 되면 그간 자네가 세운 공은 모두 로크토 제국의 차지가 되네. 하지만 석 달 전에 받은 거라면 사정이 달라지지.”
로크토 제국 공작의 도움을 받은 게 아니라.
사클란트 제국 대공이 대활약을 해서 위기를 극복한 게 된다.
로크토 제국과 사클란트 제국에서 이중으로 작위를 받은 게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나는 신의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야.’
황제조차 어찌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존재가 바로 신의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다.
또한 그들은 로크토 제국이나 사클란트 제국의 황제가 대공이나 공작 같은 작위를 준다고 해도 거절할 정도로 콧대가 높은 인물들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작위를 받으면?
공식적으로 황제의 신하 신분이 되기 때문이다.
‘이래서 공작보다 높은 대공의 작위를 줬구나.’
일종의 물타기였다.
후발 주자인 만큼 더 높은 작위를 줘서.
‘내가 로크토 제국의 공작이라는 사실을 은근슬쩍 덮으려는 거야.’
단순히 ‘혈통빨’로 황제 자리를 차지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오히려.
‘자기가 어리다는 사실을 역으로 이용했어.’
이건.
‘나쁘지 않아.’
저 정도로 머리가 돌아간다면?
강현수가 준비한 카드가 통할 가능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