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 (3)
유카의 광기 어린 눈빛에 따듯한 순풍이 불었다.
‘차라리 같이 싸우다 죽겠어.’
유일하게 진심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인 강현수를 잃느니.
함께 죽는 게 나았다.
문제는 유카 자신의 마력이 바닥난 상태였다는 점.
설사 마력이 온전하다고 해도.
유카의 실력으로는 현재의 전황을 뒤집을 수 없었다.
‘그 스킬을 사용하자.’
새롭게 얻은 스킬이자.
단 한 번만 사용이 가능한 일회성 스킬.
파멸의 골렘.
절망과 공포의 누더기 골렘술사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만 소환할 수 있는 골렘.
유카가 호신용 단검을 꺼내 자신의 심장을 향해 겨눴다.
그리고 막 찔러 넣으려는 순간.
“조금 늦었지!”
“미안!”
꽈아아앙!
강현수의 동료인 송하나와 투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두 사람은.
도플갱어가 흉내 낸 가짜가 아닌 진짜 송하나와 투황이었다.
원래는 조금 더 늦게 투입할 생각이었는데.
‘설마 파멸의 골렘을 소환하려고 할 줄은 몰랐네.’
강현수는 도플갱어 킹 탈리만이 화한 오크 대족장과 적당히 치고받으면서도 지휘관의 시선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카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단검을 꺼내 심장을 겨누자 화들짝 놀라 재빨리 송하나와 투황을 투입시켰다.
‘파멸의 골렘은 재앙 그 자체지.’
광혈마녀가 토벌당하기 직전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만들어 낸 골렘으로.
‘광혈마녀에게 죽은 토벌대원보다 파멸의 골렘에 죽은 토벌대원이 더 많았을 정도지.’
스킬 랭크가 낮을 테니 그때보다는 위력이 낮겠지만.
‘위력이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까지 공을 들인 광혈마녀 유카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현수는 송하나, 투황과 함께 오크 무리로 위장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을 비롯한 도플갱어들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접전을 벌였고.
다행히(?) 승기를 잡았다.
“쿠워어억! 다음에 보자!”
전황이 뒤집히자 오크 대족장으로 화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이 뻔한 악당의 대사를 내뱉으며 도망쳤다.
“저놈이 부하들을 데리고 다시 찾아올 수도 있어. 일단 이곳을 벗어나자.”
강현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피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생각한 강현수 일행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유카 씨,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죠?”
강현수가 광혈마녀 유카에게 하야토 파티원들과 민간인들의 행방을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광혈마녀 유카가 상황을 설명했고.
강현수는 모르는 척하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민간인들은 죽었겠지만 파티원들은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요. 한번 찾아볼까요? 그래도 유카 씨와 오랜 시간 함께한 동료였는데.”
강현수의 물음에.
“아니요. 어차피 죽어도 싼 인간들이에요. 또 괜히 그 녀석들을 찾다가 우리까지 위험에 빠질 수는 없어요.”
광혈마녀 유카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 그렇기는 하죠.”
그간 의지하던 하야토를 비롯한 파티원들에 대한 미련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파티에 들어갈게요.”
광혈마녀 유카가 강현수 파티 합류를 선언했다.
“아, 그런데 파티에 들어오려면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강현수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저랑은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같은 소환사인 거네요.”
“맞습니다.”
“제가 현수 씨의 휘하 지휘관이 되면 일종의 소환수가 되는 거니까 절대 헤어질 일이 없겠죠?”
“그렇죠.”
강현수의 대답에.
“지휘관이 될게요!”
광혈마녀 유카가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계획대로 진행돼서 다행이기는 한데.’
뭔가 기이한 집착 같은 게 느껴져서 뒷골이 서늘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휘하 지휘관이 되면 충성심 상승 효과도 있으니.
‘무조건 휘하에 받아들여야지.’
강현수가 광혈마녀 유카에게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다.
[플레이어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광혈마녀 유카가 당연히 예를 선택했다.
화아악!
[중대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모든 스텟이 10% 증가합니다.]
“우와! 현수 씨, 정말 스텟이 올랐어요! 정말 고마워요!”
광혈마녀 유카가 환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하나 더 있어요.”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지휘관의 축복 스킬을 시전해 줬다.
그간 꾸준히 사용한 덕에 지휘관은 축복 스킬 역시 S랭크로 상승한 상태였다.
그 결과 30%의 스텟 증폭률을 보였고.
“정말 대단해요!”
지휘관 임명과 지휘관의 축복을 받은 광혈마녀 유카의 모든 스텟이 총 40%나 증가했다.
“아, 그리고 하나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뭐죠?”
강현수의 물음에 유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얼마 전에 전직을 했거든요.”
“전직요?”
“예, 그게 뭐냐면. 아, 그냥 보여 드릴게요.”
그 말과 함께 유카가 자신의 상태창과 아까 떴던 시스템 메시지창을 강현수에게 오픈했다.
‘뭐지?’
시스템 메시지창을 본 강현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이아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전직 시스템? 오류?’
회귀 전에도 이런 시스템 메시지는 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
‘U-EX랭크? 이게 뭐지?’
광혈마녀 유카의 직업 랭크가 이상했다.
‘얼음 왕의 목걸이가 계속 성장하는 걸 보고 EX랭크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직접 그 실체를 확인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래서 그렇게 강했던 건가?’
광혈마녀 유카는 회귀 전 인류 최강의 플레이어라고 불렸던 존재.
신의 칭호를 받은 네임드 플레이어들조차 광혈마녀 유카를 이기지 못했다.
‘이유는 두 개야.’
하나는 EX랭크를 뛰어넘은 직업.
또 하나는.
‘붉은 시스템 메시지.’
가이아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았고 오류가 발생했다는 건?
‘누군가 가이아 시스템을 변경시켰다는 거야.’
하필 그 변경 대상이 회귀 전 수천만의 인명을 살상했던 인류의 공적이다?
‘마왕이 벌인 일일 확률이 높아.’
마왕군은 가이아 시스템의 방호를 뚫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뚫는 걸 넘어서 개입까지 가능했던 건가?’
그럼 광혈마녀 유카만이 아니라.
‘다른 인류 공적들도 이런 식으로 탄생한 걸 수도 있어.’
인류 공적들은.
‘모두 규격 외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또 동족인 인류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똘똘 뭉쳐 있었다.
‘어떤 식으로 시스템에 개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회귀 전에 인류 공적을 모두 제거한다는 계획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겠어.’
인류 공적들을 조기에 제거한다고 해도.
‘다른 플레이어가 전직 조건을 만족하면?’
강현수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인류 공적이 탄생할 수도 있었다.
‘상관없어.’
회귀 전의 정보가 비틀어진다는 단점은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다.
‘단점은 새롭게 손에 넣은 장점으로 상쇄하면 그만이야.’
강현수 본인 자체가 수많은 규격 외의 힘을 손에 넣었고.
로크토 제국을 장악했으며.
송하나, 투황, 광혈마녀 유카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운명을 뒤틀었다.
‘지금처럼만 해 나가면 돼.’
마계 귀족이나 인류 공적이 나타난다?
회귀 전에는 수많은 네임드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쳤음에도.
엄청난 희생을 치른 후 겨우 쓰러트릴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은?
강현수와 소환수 그리고 휘하에 넣은 지휘관들만으로도 얼마든지 처리가 가능했다.
“뭐가 이상한가요?”
광혈마녀 유카가 초조한 표정으로 강현수에게 물었다.
그녀가 초조한 이유는.
‘혹시 알아차렸으면 뭐라고 변명하지?’
누더기 골렘을 언데드 몬스터로 위장했던 게 걸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그저 처음 보는 메시지와 직업 랭크가 있어서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아, 그렇군요.”
광혈마녀 유카의 얼굴이 환해졌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다시 이동하죠.”
“네!”
강현수 일행이 휴식을 취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강현수의 소환수들은 빠른 속도로 오크 무리를 소탕하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전 송하나라고 해요.”
송하나가 먼저 광혈마녀 유카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간 송하나 역할을 한 도플갱어는 광혈마녀 유카와 제대로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었기에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런데.
“네, 반가워요. 전 사카자키 유카라고 해요.”
유카가 감정이 일절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송하나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그건 투황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카 씨?”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광혈마녀 유카를 부르자.
“네, 부르셨어요?”
무표정하던 광혈마녀 유카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역시 뭔가 이상한데?’
강현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의 광혈마녀 유카는.
‘딱 봐도 정상이 아니야.’
그간 함께했던 광혈마녀 유카는?
‘누가 말을 걸든 항상 밝게 웃으며 대답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
과거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대상은 오직 강현수뿐이었다.
“앞으로 계속 함께할 동료들인데 친하게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강현수의 말에.
“아, 네! 그렇게 할게요!”
광혈마녀 유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송하나와 투황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 자체가 없었고.
송하나 또는 투황이 먼저 말을 걸면?
‘웃으면서 대답하기는 하는데 엄청 기계적인 느낌이야.’
그나마 전처럼 무표정은 아니기에.
얼핏 봤을 때는 크게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광혈마녀 유카에게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게 상처만 주는.
차라리 제거해 버리는 게 더 이로운 해충 같은 존재들이다.
거기서 유일하게 벗어나 있는 대상은?
오직 강현수뿐이다.
그렇기에 강현수가 아닌 다른 사람과는?
친분을 쌓거나 대화를 나눌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그나마 강현수가 친하게 지내라고 했기에 웃는 시늉이라도 해 주는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애초에 상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광혈마녀 유카의 입장에서는.
해충인 다른 인간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두는 것 자체가 강현수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광혈마녀 유카는 바보가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면.
강현수가 자신을 싫어하거나 이상하게 볼 거라는 사실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다.
‘뭐, 이 정도면 양호하지.’
강현수는 광혈마녀 유카의 회귀 전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괜히 친하게 지내라고 더 압박을 주면?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니까.’
강현수 일행은 편하게 휴식을 취한 후.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쿠워억! 인간이다!”
한 무리의 오크들이 강현수 일행을 향해 덤벼들었다.
강현수, 송하나, 투황이 선두의 오크들을 쓸어버리자.
“골렘 소환!”
광혈마녀 유카가 골렘을 소환했다.
주르르륵!
바닥에 고여 있던 피가 하나로 뭉쳐 블러드 골렘을 만들어 냈고.
뼈가 본 골렘으로, 살이 플래시 골렘으로 변했다.
그리고.
꽈아앙! 콰직!
무서운 속도로 오크 무리를 쓸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블러드 골렘, 본 골렘, 플래시 골렘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불어나는 속도가 엄청나네.’
역시 회귀 전 인류 최강의 플레이어라고 불렸던 이다운 무력이었다.
‘최대치가 1만 기를 넘었을 정도였지 아마?’
사실상 혼자서 사단 하나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숫자였다.
‘일인군단처럼 스텟이 영구적으로 손실되는 페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이한 단점 중 하나는 재료가 되는 몬스터나 플레이어의 수준에 따라 골렘의 랭크가 결정된다는 건데.
그것조차도.
“골렘 합성!”
촤르르륵!
늘어난 골렘들이 하나로 뭉쳐지며.
쿠오오오!
강화되었다.
‘업그레이드로 극복이 가능하지.’
나머지 단점은 골렘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마력이다.
그러나 그것도.
‘마력이 아니라 골렘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을 소모해서 유지가 가능하지.’
블러드 골렘의 경우.
마력 공급이 없더라도 블러드 골렘을 구성하고 있는 피가 조금씩 소모되는 식으로 유지가 가능했다.
‘광혈마녀는 대규모 학살이 계속해서 벌어질수록 힘이 급격하게 커진다.’
회귀 전 수많은 인간을 죽이며 골렘들을 계속해서 강화시키면서 그 숫자를 늘려 나갔고.
수천만 명의 시체를 이용해 만들어진 1만 기가 넘는 골렘 사단을 운용했다.
‘그렇지만 광혈마녀의 골렘 소환 스킬은 꼭 사람을 대상으로만 발동하는 게 아니야.’
오크를 대상으로도 얼마든지 골렘 소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오히려 아무런 힘이 없는 일반인들보다.
‘전투력이 뛰어난 오크를 재료로 사용하면 더 강한 골렘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즉 오크 군단의 침공은.
강현수 일행에게 있어 좋은 경험치 공급원임과 동시에.
새롭게 합류한 광혈마녀의 힘을 빠르게 키울 수 있는 최고의 골렘 재료 공급처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