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 (2)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이끄는 파티는 결국 한계를 맞이했다.
파티의 리더인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선택은?
동료들을 미끼로 버리는 거였다.
“살려 줘! 날 버리지 마!”
“야이! 나쁜 놈아! 살려 달라고!”
체력이 약한 딜러들부터 하나둘 버려졌고.
결국 남은 파티원은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와 그의 등에 업힌 골렘술사 유카뿐이었다.
‘이런 젠장!’
탱커 플레이어인 하야토는 파티원들 중 체력 스텟이 가장 높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은 한계였다.
그나마 중간중간 골렘술사 유카가 마력을 회복해 진흙 골렘을 소환해 시간을 끌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더는 무리야.’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자.
가볍게만 느껴지던 골렘술사 유카의 무게가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헉헉! 이제 네가 걸어!”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골렘술사 유카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말했다.
“하, 하야토, 나 더 이상 못 걸어. 다리가 안 움직여.”
골렘술사 유카의 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설사 다리가 멀쩡했다고 해도.
골렘술사 유카는 체력이 바닥나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킁킁! 인간 냄새가 난다!”
“저기 있다!”
그러는 사이 오크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싸우는 건 무리야.’
오크 족장이 무려 셋이나 있었다.
“유카, 마력은 어느 정도 회복됐어?”
“진흙 골렘 하나 정도는 소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얼른 소환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야지.”
“아, 알았어.”
골렘술사 유카가 남은 마력을 쥐어짜서 진흙 골렘 한 기를 만들어 냈다.
“인간이다! 죽여라!”
쿠오오오!
오그 족장 셋이 달려들었고.
쿠쿠쿠쿠!
진흙 골렘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기는 건 무리지만.
약간의 시간을 끄는 건 가능했다.
“하야토, 이제 다시 도망…….”
골렘술사 유카가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이름을 부르며 뒤를 돌아봤지만.
그런 골렘술사 유카의 눈에 보이는 건 등을 돌리고 혼자 도망치는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뒷모습뿐이었다.
“하야토! 네가 어떻게 날 버릴 수가 있어!”
골렘술사 유카가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너만 아니었으면 애초에 이런 위기를 겪지도 않았어! 최대한 시간을 끌어!”
“지금 나를 버리는 거야?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고 했잖아! 항상 함께라고 했잖아! 하야토!”
골렘술사 유카가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어느새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모습은 골렘술사 유카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골렘술사 유카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하야토가 날 버렸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야토만은 믿고 있었는데.
결국.
‘버림받았어.’
또 이용당했다.
‘아무도 날 사랑해 주지 않아.’
항상 이용하려고만 할 뿐.
골렘술사 유카는 바보가 아니다.
그렇기에.
하야토가 자신으로 인해 큰 이득을 누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내 곁에 있어 줬으니까.’
파티원들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쓸모가 있으면.’
칭찬해 줬고 사랑과 관심을 줬다.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괜찮았는데.’
그런 거짓된 사랑과 관심이라도 받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거짓된 사랑과 관심이 진심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또 혼자야.’
사람을 믿고 의지했지만.
지금까지 상처만 받았다.
‘미워.’
항상 자신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증오스러웠다.
‘이제는 믿지 않을 거야.’
믿지 않으면?
의지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
‘차라리 모두 없어지는 게 나아.’
사람이라는 존재가 사라지면.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없지만.
상처받지도 버림받지도 않을 수 있다.
‘다 없애 버리자.’
그러면.
‘상처받지도 버림받지도 않을 거야.’
골렘술사 유카의 눈빛이 광기로 물들며.
광혈마녀 유카의 눈빛으로 변했다.
그 순간.
[전직 조건을 완료했습니다.]
피처럼 붉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가이아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전직 시스템입니다.]
[오류! 오류!]
푸른빛의 시스템 메시지가 미친 듯이 깜빡거렸지만.
유카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U-EX랭크 절망과 공포의 누더기 골렘술사로 전직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피처럼 붉은 시스템 메시지가 푸른빛의 오류 시스템 메시지를 무시하고 떠올랐다.
유카가 예를 선택했고.
화악!
붉은 빛이 유카의 몸을 휘감았다.
[U-EX랭크 절망과 공포의 누더기 골렘술사로 전직하셨습니다.]
[SS랭크 물 골렘 소환 스킬이 SSS랭크 블러드 골렘 소환 스킬로 변경되었습니다.]
[S랭크 아이언 골렘 소환 스킬이 SS랭크 본 골렘 소환 스킬로 변경되었습니다.]
[SS랭크 진흙 골렘 소환 스킬이 SSS랭크 플래시 골렘 소환 스킬로 변경되었습니다.]
……후략……
피처럼 붉게 물든 시스템 메시지가 연속적으로 유카의 눈앞에 떠올랐다.
꽈앙!
그사이 진흙 골렘이 박살 났고.
쿵! 쿵! 쿵!
오크 족장들이 서서히 다가왔다.
유카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바닥났던 마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새롭게 얻은 스킬들과 그 스킬들을 활용할 지식들이 머릿속에 넘쳐흘렀다.
유카가 손을 들어 올려 새롭게 얻은 스킬을 사용하려는 순간.
꽈아아앙!
강현수가 등장해 핏빛 오러가 담긴 검을 휘둘러 오크 족장 세 마리를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유카 씨, 괜찮아요?”
강현수의 물음에.
유카가 얼굴을 찌푸렸다.
‘인간은 다 죽여 버려야 해.’
그래야 버림받지도 않고 상처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람은 달라.’
그렇지만?
저 사람도 하야토처럼 자신을 버릴 수 있다.
‘머리가 아파.’
강현수의 등장과 함께.
유카 스스로 새롭게 창조해 낸 인간에 대한 정의와 기준이 흔들렸다.
그때.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어.’
좋은 해결책이 유카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네, 괜찮아요.”
“늦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유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
강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과는 다르게 뭔가 표정이 기계적이었다.
그동안 강현수는 달의 그림자 스킬을 쓴 상태로 하야토 파티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렇기에 유카가 어떻게 버려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흑화하기 전에 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늦은 건가?’
강현수는 긴장감을 빠짝 끌어올렸다.
“일단 가죠.”
강현수는 유카를 안아 들고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쿠욱! 인간이다!”
“죽여라!”
그때 수백 마리 규모의 오크들과 마주쳤다.
‘잔챙이들이네.’
강현수의 소환수들이 주변에 존재하는 대규모 오크 무리를 모조리 박살을 냈지만.
수백 마리 규모로 활동하는 오크들은 아직 완전히 토벌하지 못했다.
숫자가 워낙 많기도 했고.
경험치 수급 문제로 강현수 곁에서 20킬로미터 이상 떨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콰콰콰콰!
강현수의 검이 핏빛 오러에 휩싸였고.
꽈아아앙!
순식간에 오크 무리를 분쇄해 버렸다.
그럼 당연히 오크들의 사체가 잔존 마력으로 변해 강현수의 몸으로 흡수되어야 했지만.
이변이 발생했다.
우득! 우득!
산산이 조각난 오크들의 사체가 뭉쳐지며.
쿠오오오!
언데드 몬스터의 형상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게 무슨?”
강현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언데드 몬스터의 형상을 띠고 있기는 했지만.
저건 언데드 몬스터가 아니었다.
‘누더기 골렘.’
피로 만들어진 블러드 골렘, 뼈로 만들어진 본 골렘, 살덩이로 만들어진 플래시 골렘의 합체 형태로.
‘오직 광혈마녀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골렘이지.’
강현수가 재빨리 유카의 얼굴을 살폈다.
“어, 어떻게 하죠? 언데드 몬스터들이 나타났어요. 엄청 강해 보이는데.”
유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 봐라?’
강현수는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를 버리는지 안 버리는지 알고 싶다 이거지?’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날 위험에 처하게 하기에는 저놈들이 너무 약한데.’
광혈마녀 유카.
인류 최강의 플레이어.
모든 인류의 공적.
그러나 그래 봤자.
‘아직은 미완성이지.’
강현수가 마음만 먹으면?
저 정도 숫자의 누더기 골렘들은 가볍게 쓸어버릴 수 있었다.
‘적당히 연기를 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나중에 유카가 강현수의 진짜 실력을 알게 되면?
‘역효과야.’
어차피 연기를 해야 한다면?
‘제대로 하는 게 낫지.’
강현수가 아까 역소환했던 도플갱어 킹 탈리만을 비롯한 도플갱어들을 다시금 소환했다.
-네가 직접 오크 대족장으로 변하고 다른 도플갱어들은 오크 대전사와 전사로 변해서 나를 공격해라.
강현수의 지시에.
-충.
도플갱어 킹 탈리만이 순식간에 5미터의 덩치를 가진 오크 대족장으로 화했고.
다른 도플갱어들은 오크 대전사와 오크 전사로 화했다.
“쿠오오오! 인간 죽인다!”
“히익!”
오크 대족장으로 화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과 오크 대전사로 화한 도플갱어들이 등장하자.
유카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 어떻게 하지?’
새롭게 손에 넣은 스킬로 골렘을 만들어 강현수를 진심을 확인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정말 강력한 적인 오크 대족장과 오크 대전사들이 나타났다.
‘함께 싸워야 하나? 그럼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유카가 혼란에 빠져들었고.
금방이라도 강현수를 공격할 것 같았던 언데드 몬스터의 형태를 한 누더기 골렘들 역시 행동을 멈췄다.
“아까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강현수가 당황한 표정을 짓고는 유카를 내려놓았다.
“하압!”
그리고 힘찬 기합과 함께 오크 대족장으로 화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에게 달려들었다.
꽈아앙! 꽈아앙!
오러의 파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고.
유카의 수준으로는 감히 측량하기조차 힘든 거대한 마력 충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콰직! 퍼석!
골렘술사인 유카의 지시가 없어 행동을 멈추고 있던 누더기 골렘들이.
강현수와 오크 대족장으로 화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싸움에 휘말려 순식간에 박살이 나 버렸다.
‘엄청나다.’
유카는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자신이 급격히 강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직업이 변화했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스킬들을 얻었으며.
스텟도 상승했다.
그래서 강현수를 위기에 처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어.’
오크 대족장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누더기 골렘들은 순식간에 쓸려 나갔을 것이다.
문제는 강현수도 강하지만.
진흙 골렘을 일격에 박살 내 버렸던 오크 대족장 역시 엄청나게 강하다는 점이었다.
‘어?’
그런 유카의 눈에 이상한 점이 들어왔다.
누더기 골렘들이 쓸려 나가고.
대기가 떨리고 대지 갈라지는 수준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내 주변은 멀쩡해.’
거기다.
오크 대전사들 역시 유카를 향해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
유카는 그제야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강현수가.
유카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모두 몸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캬우우욱!
강현수는 오크 대족장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유카를 향해 덤벼드는 오크 대전사들을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있었다.
문제는.
“안 돼!”
그 과정에서 강현수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카는 강현수를 돕고 싶었지만.
방금 전 누더기 골렘을 소환하느라 마력을 모두 소모했기 때문에.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었다.
설사 마력이 남아 있다고 해도.
유카의 실력으로 만들어 낸 골렘은 전투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칫, 사단 소환!”
그때 강현수의 외침과 함께.
사아아악!
마력으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생겨나 유카를 호위하고 오크들을 공격해 포위망을 뚫기 시작했다.
“쿠워어어억! 모두 모여라!”
이에 오크 대족장이 힘찬 함성을 터트리자!
쿠오오오!
사방에서 오크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강현수의 소환수들과 오크들이 전투가 아닌 대규모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틈에 달아나죠.”
강현수의 말에 유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뭐죠?”
“제 소환수들입니다. 제 직업이 소환사 계열이거든요. 아까도 보시지 않았나요?”
“아!”
유카가 작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처음 오크 대족장의 습격을 받았을 때.
강현수의 외침과 함께 튀어나온 소환수들이 다른 이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줬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볼 생각도 못 했는데.
‘소환사라서 그런 거였어.’
유카의 얼굴이 환해졌다.
강현수와 자신의 공통점 하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아까도 저 녀석들 덕분에 시간을 벌고 겨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강현수가 설명과 함께 소환수들이 벌어 준 틈을 이용해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다.
그때 상황이 급변했다.
“쿠오오오! 잡아라!”
오크 대족장이 오크 족장과 대전사들을 이끌고 소환수들의 방어진을 뚫고 다시 추격해 온 것이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졌다.
“먼저 가세요. 제가 뒤를 막겠습니다!”
강현수의 말에.
“싫어요!”
유카가 거절했다.
“이러다가는 우리 둘 다 죽을 수밖에 없어요! 유카 씨라도 살아야죠! 그러니까 어서 가세요!”
강현수가 유카를 바닥에 내려놓은 후.
퇴로를 막기 위해 다시금 오크 대족장을 향해 덤벼들었다.
꽈앙! 꽈앙!
강현수가 홀로 분전하며 오크 대족장과 다른 오크들을 막아 냈다.
“아…….”
진짜였다.
진심이었다.
강현수는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자신을 버리고 혼자 도망친 하야토와 달랐다.
‘드디어 찾았어.’
믿고 의지해도 배신당할 걱정이 없는 사람.
괜히 마음을 줬다가 상처받거나 버림받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사람은 믿을 수 있어.’
모든 인간을 죽이면 상처받지도 버림받지도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예외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방금 유일한 예외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