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마초 길드 포섭기 (2)
광혈제 이고르.
아직 광혈제라는 칭호를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레드베어길드 내부에서 슈퍼 루키 취급을 받고 있었다.
뛰어난 실력과 포기를 모르는 더러운 성질머리 때문에 레드베어길드 내에서도 미친개로 통하는 이고르는.
길드 마스터인 적염제 도르초프를 제외하면 컨트롤이 불가능한 존재였다.
한데 그런 이고르를 어린아이 다루듯 손쉽게 제압해 공포라는 감정을 심어 주다니?
‘최소 랭커 플레이어다.’
어쩌면 네임드 플레이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레드베어길드가 지배하는 대도시 크레니저였다.
자신의 안방 같은 곳에서.
그것도 길드 하우스 앞에서.
소속 길드원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았다.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큰 망신이었고.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미친놈이더라도.
미우나 고우나 같은 길드원 아니겠는가?
“아까 저 녀석에게 말했었는데?”
강현수의 대답에.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의 눈이 이고르에게 향했다.
“다, 뭐시기의 수장이라고 했었는데.”
이고르의 대답에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가 얼굴을 찌푸렸다.
“타 길드의 길드 마스터 같은데,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고 생각하지 않아?”
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적이었다면?
자살할 생각이 아니고서야 대낮에 당당하게 홀로 레드베어길드의 길드 하우스로 쳐들어오지는 않았으리라.
거기다 미친 듯이 덤벼들었던 이고르가 멀쩡하게 살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타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도 이건 선을 넘은 거지.’
건방지게 어디 감히 대레드베어길드 하우스 앞에서 길드원을 두들겨 팬단 말인가?
레드베어길드는 로크토 제국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초거대 길드 중 하나였다.
거기다 길드 마스터인 도르초프는 무려 적염제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중화길드, 발해길드, 고려길드같이 각 왕국의 거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고 해도.
감히 레드베어길드의 길드 하우스 앞에서 이런 무례를 저지를 수는 없다.
“적염제를 만나러 왔다고 하니까, 저 녀석이 갑자기 덤벼들어서 말이야. 망신을 준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강현수의 기계적인 답변에.
빠직!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어디 감히 우리 길드 마스터님 칭호를 함부로 불러! 너, 죽고 싶어!”
“미안하게 생각해?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너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냐!”
“그따위 변명을 하고 감히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잔뜩 흥분한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투기를 줄줄 뿜어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반응에 강현수가 작은 탄성을 토해 냈다.
광혈제 이고르 때문에 깜빡했는데.
‘레드베어길드 놈들이 원래 이런 성향이었지.’
길드 마스터인 적염제 도르초프의 열렬한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길드.
전체적으로 성격 급한 마초들로 이루어져 있는 길드.
마법사나 힐러 계열 플레이어보다 전사와 탱커 계열 플레이어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길드.
‘이러다 이놈들을 다 때려눕혀야 할 수도 있겠네.’
일단 저놈들을 진정시키려면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라는 신분을 밝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다…….”
강현수가 다시금 자기소개를 하려는 순간.
“이게 도대체 무슨 소란이야!”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레드베어길드의 길드 마스터 적염제 도르초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드 마스터를 뵙습니다!”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적염제 도르초프에게 인사를 했다.
그 후.
“어떤 놈이 길드 하우스 앞에서 이고르를 피 떡으로 만들어놨습니다.”
“타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것 같은데, 건방지게 길드 마스터의 칭호를 찍찍 부르지 않습니까?”
“길드 마스터를 만나러 왔다고 하는데, 그럼 예의를 갖추어야지. 너무 건방집니다.”
“우리 레드베어길드를 얼마나 만만하게 봤기에 이따위로 행동한다는 말입니까?”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엄마, 아빠에게 고자질하는 어린아이처럼 강현수의 언행을 일러바쳤다.
“타 길드의 길드 마스터? 오늘은 날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적염제 도르초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약속도 없이 찾아와 감히 길드 마스터님의 칭호를 부르며 나오라고 한 겁니까?”
“이런 건방진 놈!”
“제가 당장 피 떡으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강현수를 노려봤다.
“도대체 누구이기……?”
소란을 일으킨 타 길드의 길드 마스터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적염제 도르초프의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혀까지 굳어 말문이 막혔다.
화려한 흑룡 장식이 일품인 전신 갑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때의 기억이 화인처럼 남아 잊고 싶어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마기를 뿜어낸 마계 귀족을 홀로 상대한 자.
다크 나이트의 수장.
척마혈신.
“전에 만났을 때 한번 찾아간다고 했었지?”
척마혈신의 목소리가 적염제 도르초프의 귓가를 울렸다.
확실했다.
목소리마저 똑같았다.
“왜, 까먹었나?”
척마혈신의 까먹었냐는 말을 듣는 순간, 적염제 도르초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재빨리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한 다음 입을 열려는 순간.
“이 건방진 새끼가 어디 우리 길드 마스터님한테 반말이야! 반말이!”
“너 진짜 죽고 싶어!”
“이거 미친놈 아니야?”
“얼마나 황당하면 길드 마스터께서 말문이 막히셨겠냐고!”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막말을 토해 내며.
스르릉!
칼을 뽑아 들고.
콰콰콰콰!
마력을 끌어 올렸다.
“히익!”
적염제 도르초프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야! 이 미친놈들아!”
척마혈신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 그 입 닥치지 못해!”
저놈들은 순식간에 한 줌의 핏물로 변해 버린다.
“저분이 감히 뉘신 줄 알고!”
그건 막아야 했다.
퍼억!
적염제 도르초프가 검을 뽑아 든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어디 건방지게 칼을 뽑아!”
그리고.
퍼억! 퍼억! 퍼억!
“당장 무기 집어넣고 마력 갈무리하지 못해!”
재빨리 다른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두들겨 패 무력 진압했다.
그 후.
“그간 강녕하셨습니다. 그때 하신 말씀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제가 직접 마중을 나갔을 텐데요.”
“로크토 제국에 들를 일이 있어 온 김에 찾아온 것뿐이다. 미리 연락을 주지 못한 건 미안하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 그러셨군요. 뭐, 충분히 그러실 수 있죠, 하하하! 그런데 길드원들이 무례를 범한 모양입니다.”
“신분을 밝히고 적염제를 만나러 왔다고 하니까 경비를 서던 길드원 하나가 다짜고짜 덤벼들더군. 그래서 일단 때려눕혔다. 미안하군.”
“하하하, 아닙니다. 충분히 그러실 수 있죠. 그런데 그 미친, 아, 죄송합니다. 무례한 짓을 저지른 놈이 누굽니까?”
“저놈인데?”
강현수가 초점이 풀린 멍한 눈으로 자신과 적염제 도르초프를 바라보고 있는 광혈제 이고르를 가리켰다.
‘저 미친놈이 기어이 사고를 쳤구나.’
적염제 도르초프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라는 신분을 밝혔으면 얌전히 안내나 할 것이지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저놈이 원래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러하니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지. 그런데 다른 길드원들이 저놈을 때려눕혔다고 단체로 난리를 쳐서 말이야.”
“하하하, 그랬군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적염제 도르초프가 호탕하게 웃으며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재빨리 무릎 꿇고 싹싹 빌라는 안구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도대체 저놈이 누군데 길드 마스터가 저렇게 납작 엎드리는 거야?”
“그러게.”
“혹시 위험한 놈이라 우릴 걱정해서 저러시는 거 아니야?”
육체파 마초들만 모여 있는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적염제 도르초프의 안구 신호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이놈들아, 얼른 척마혈신 님께 사과드리지 못해!”
결국 참다못한 적염제 도르초프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척마혈신?”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잖아!”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무려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에게 무례를 범하는 수준을 넘어서.
‘건방진 새끼라고 했는데.’
욕설을 하고.
‘죽여 버린다는 말은 하지 말걸.’
협박을 했으며.
‘나 아까 칼 뽑았는데. 죽을 뻔했네.’
무기까지 뽑아 들었다.
“죄송합니다!”
“다 저희 잘못입니다!”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육체파 마초들이기는 하지만.
다 돌대가리만 있는 건 아니었다.
또 아틀란티스에서 오래 굴러먹은 이들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힘의 논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강자에게 머리 숙이는 걸 크게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놈들도 반성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 번만 용서를 해 주시면…….”
적염제 도르초프의 애원에.
“알았다.”
강현수가 재빨리 용서를 해 줬다.
‘토할 거 같아.’
항상 카리스마 넘치고 상남자, 마초 같은 모습을 보여 주던 적염제 도르초프가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하는 애원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어.’
인지 부조화가 오면서 속이 메슥거렸다.
“일단 들어가시죠.”
적염제 도르초프의 말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뒤를 따랐다.
그런 강현수의 귀에.
“이야, 역시 강한 분답게 통이 크시네!”
“그러게. 난 마계 귀족을 홀로 때려잡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호탕하신 분일 줄 알았다니까.”
“근데 나는 길드장님이 납작 엎드렸다는 말이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나도 헛소문인 줄 알았어.”
“근데 진짜였네.”
“그러게 말이야.”
“길드장님도 강자 앞에서는 우리랑 똑같구나.”
“그러면서 우리 앞에서만 무게 잡고 말이야.”
시끄럽게 떠드는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말이 고스란히 들려왔다.
하지만 그들의 말소리는 강현수의 귀에만 들리는 게 아니었다.
레드베어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적염제 도르초프의 귀에도 다 들렸다.
으드득!
적염제 도르초프가 이를 악물었다.
그와 동시에 적염제 도르초프의 얼굴이 마치 잘 익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졌네.’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말과 행동이 부끄러운 것 같았다.
‘괜찮은데.’
강현수는 적염제 도르초프를 비롯한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레드베어길드의 성향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까는 너무 오랜만이라 깜빡했지만.’
오히려 그들의 언행으로 인해 회귀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좋네.’
레드베어길드와 함께했던 기억은.
강현수에게 있어 회귀 전 얼마 되지 않는 좋은 추억이었다.
회귀 전의 향수가 떠오르며 뭉클한 감정이 치솟았다.
적염제 도르초프와 광혈제 이고르를 비롯한 레드베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얼핏 보면 바보 또는 정신 나간 미친놈들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누구보다도 여리고 정도 많은.
‘따듯한 마음을 가진 녀석들이지.’
거기에 지치지 않는 열정과 뜨거운 심장.
결정적으로 약자를 지키고자 하는 정의를 품고 있다.
물론.
광혈제 이고르처럼.
‘진짜 미친놈들도 꽤 섞여 있기는 하지.’
그러나 적염제 도르초프의 눈물겨운 컨트롤 덕분에 나름 잘 커버가 됐다.
하지만.
마왕군과의 전면전이 최고조로 치달을 무렵.
‘다 죽었지.’
그것도 적군이 아닌 아군의 함정에 빠져서.
‘살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힘없는 일반인들을 지키기 위해 장렬히 산화했다.
“한데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건지?”
적염제 도르초프가 의아한 표정으로 강현수에게 물었다.
“너 살려 주려고.”
강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툭 하고.
마음속에 있던 진심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