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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상치 못한 선물 (3)

    ‘로디우스 1세의 입에서 세실리아를 후계자로 삼겠다는 말이 나오다니.’

    아예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로디우스 1세를 만나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전개였다.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아들이 개차반이다.

    손주들도 개차반이다.

    사생아라고는 하지만.

    로크토 제국과 황실을 이끌어 나갈 재능이 있는 황족은.

    ‘세실리아뿐이지.’

    또 황태자인 로디우스 2세는 미우나 고우나 세실리아의 친부다.

    당연히 세실리아가 황제 자리에 오르더라도.

    ‘굳이 로디우스 2세를 죽일 이유가 없지.’

    로디우스 1세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일단 세실리아를 정식으로 황족 명부에 올리는 절차부터 밟을 생각이네.”

    현재 세실리아의 공식적인 신분은 남작 영애일 뿐이다.

    세실리아를 황태녀로 삼기 위해서는 황족 신분부터 손에 넣어야 했다.

    “한데 그 이야기를 왜 저한테 하시는지?”

    이런 말은 당사자인 세실리아에게 할 이야기이지 않나?

    “자네가 그 아이의 가장 큰 후원자이지 않은가? 아무 대가 없이 무상으로 지원을 해 주지는 않았을 테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기로 했겠지. 그걸 말끔하게 포기하게.”

    로디우스 1세의 말에 강현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포기하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세실리아를 이용해 로크토 제국을 자네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야심을 버리라는 뜻이네.”

    로디우스 1세의 말에 강현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신 자네가 그 아이에게 투자했던 것들을 세 배로 갚아 주지. 이 정도면 자네 입장에서도 꽤 남는 장사 아닌가?”

    로디우스 1세의 말을 들은 강현수가 속으로 코웃음을 터트렸다.

    제대로 된 진실을 모르니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아마 영혼의 계약서나 신념의 서약 같은 아이템을 사용했겠지. 그런 것들은 두 사람이 모두 동의하면 파기가 가능하다네.”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럼 세실리아가 황태녀가 되는 일은 없겠지. 대로크토 제국의 황제가 다른 이의 꼭두각시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느니 차라리 망하는 게 낫다?”

    강현수의 말이 짧아졌다.

    “그렇다네.”

    하지만 로디우스 1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활활 불타는 눈빛으로 강현수를 압박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투자금의 세 배가 아니라 열 배를 원합니다. 또 세실리아를 차기 황제로 삼겠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해 저에게 주십시오.”

    강현수의 말에 로디우스 1세의 두 눈이 강한 희열로 물들었다.

    “좋네, 그렇게 하지. 잠시만 기다리게.”

    꾸욱!

    로디우스 1세가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를 누르자.

    근위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 세실리아를 데려오라.”

    “예.”

    지시를 내린 로디우스 1세가 곧바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불멸의 서약.’

    EX랭크 아이템으로 훼손 및 위, 변조가 불가능한 종이였다.

    ‘저걸 방패로 쓴 미친놈도 있었지.’

    당연하지만 실패했다.

    훼손 및 위, 변조가 불가능하다는 거지.

    완전히 소멸시키는 건 가능했으니까 말이다.

    로디우스 1세가 쓱쓱 글을 적어 내려갔다.

    내용은 간단했다.

    황태자인 로디우스 2세를 폐위시키고 황태녀인 세실리아를 차기 황제로 삼겠다는 게 끝이었다.

    서류 작성을 끝낸 로디우스 1세는 친필 서명을 한 후 황제의 직인까지 찍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세실리아가 근위 기사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자네가 약속을 지킬 차례네.”

    “당신과 맺은 영혼의 계약서를 무효화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강현수의 말에.

    “동의해요.”

    세실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계약의 당사자들이 진심으로 파기를 원합니다.]

    [영혼의 계약서가 파기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더니.

    화악!

    강현수와 세실리아의 몸에서 밝은 빛무리가 뿜어져 나와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받게. 한데 자네가 투자한 금액에 대해서는…….”

    “제가 원하는 건…….”

    이윽고 열 배로 불어난 투자금을 어떻게 지급할 것인지에 대한 협의가 끝났다.

    “황실 보고에서 알아서 가져가도록 하게. 안내는 로하스 공작이 해 줄 것이니.”

    “알겠습니다.”

    강현수가 불멸의 서약을 받아 들고 몸을 돌렸다.

    * * *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 순순히 떠났다.

    ‘성공했다.’

    로디우스 1세의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차기 황제의 족쇄였던 영혼의 계약서가 소멸했다.

    계획이 성공한 것이다.

    ‘꽤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로디우스 1세가 세실리아를 차기 황제로 삼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대안이 없기도 했지만.

    ‘다크 나이트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지.’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스킬을 보유한 비밀 집단.

    일국에 준하는 강력한 무력을 가진 비밀 집단.

    신의 칭호를 가진 초월적인 수준의 강자가 이끄는 비밀 집단.

    이번 도플갱어 군단 토벌에서 드러난 다크 나이트의 전력은 로디우스 1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런 강력한 힘을 가진 비밀 집단이.

    ‘세실리아를 선택했어.’

    쉽게 말해 로크토 제국의 멸망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 바로 세실리아라는 뜻이었다.

    아마 가만히 내버려 뒀다면?

    ‘내가 죽은 후 황위 쟁탈전을 일으켜 세실리아를 황제로 만들었겠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세실리아는 중립파 귀족들이라는 로크토 제국 3대 파벌 중 하나의 수장이었고.

    다크 나이트라는 든든한 뒷배의 지원이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단 그렇게 되면.

    ‘차기 황제가 다크 나이트에게 끌려다니게 된다.’

    그래서 아예 판을 다시 짠 것이다.

    어차피 피 튀기는 내전을 통해 세실리아가 황제 자리에 오를 것이라면.

    ‘내 손으로 직접 넘겨주는 게 낫다.’

    그래야 내전으로 손실되는 로크토 제국의 힘을 보존할 수 있고.

    ‘다크 나이트의 입지를 줄일 수 있지.’

    가장 중요한 건 손해를 보는 당사자인 다크 나이트였다.

    투자금을 열 배로 돌려준다고 하더라도.

    로크토 제국이라는 거대한 먹잇감을 통째로 삼킬 수 있었던 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보잘것없는 대가일 수밖에 없지.’

    더군다나 다크 나이트는.

    ‘내 도움이 없더라도 세실리아를 로크토 제국의 황제 자리에 올릴 자신이 있었겠지.’

    하지만 다행히 다크 나이트의 수장은 적당한 보상을 받고 세실리아의 차기 황제 자리를 보장하는 유언장을 써 준 것만으로 로디우스 1세의 제안을 수락했다.

    ‘다크 나이트의 신념이 변질되지 않았다는 증거겠지.’

    그들의 목적은 마왕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이번 일은 다크 나이트라는 단체의 입장에서는 손해지만.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는 큰 이득이다.’

    그렇기에 순순히 수락한 것이다.

    ‘그에 합당한 보상을 줄 것이다.’

    로디우스 1세는 투자금 열 배로 입을 싹 닦을 생각이 없었다.

    로크토 제국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그들의 공신력과 명예를 더 올려 줄 생각이다.

    ‘다크 나이트 같은 조직의 힘이 더 커져야, 아틀란티스의 수호에 유리하다.’

    단체의 이익보다 인류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정의로운 집단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세실리아, 이 할아비가 너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히 크다.”

    로디우스 1세가 웃으며 세실리아에게 말했다.

    “황송하옵니다.”

    세실리아가 웃는 얼굴로 공손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늘 속에 가려진 세실리아의 눈빛은.

    차가운 냉기와 싸늘한 독심으로 가득했다.

    세실리아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지금까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주제에, 할아비라고?’

    로디우스 1세와 세실리아가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실리아가 태어난 후.

    로디우스 1세는 세실리아를 섀도 가드의 수장 브리번 남작에게 맡겼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관심을 주거나 신경을 써 준 적이 없었다.

    그저.

    ‘황실의 치부인 내가 죽기만을 바랐으면서.’

    가끔 생사 여부만 확인했을 뿐.

    ‘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후계자로 삼겠다고? 로크토 제국과 황태자의 안위를 위해서?’

    세실리아가 가장 증오하는 건 친부인 황태자 로디우스 2세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친조부인 로디우스 1세 역시.

    ‘난 당신이 싫어.’

    증오했다.

    ‘주군의 명령만 아니었다면.’

    절대 이따위 연기를 하지 않았으리라.

    세실리아도 이성적으로는 로디우스 1세에게 훌륭한 후계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나 감성적으로는 황제 로디우스 1세나 황태자 로디우스 2세의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것같이 고통스러웠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어.’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주군의 지시다.’

    강현수는 이번 일을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건 세실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실리아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철부지가 아니었다.

    ‘기다리면 그만이야.’

    얼마 가지 않아 로디우스 1세는 죽는다.

    로디우스 2세의 경우.

    ‘황태자 자리에서 폐위된 것 자체가 큰 충격이겠지.’

    그러나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로디우스 1세에게 황위를 물려받아 로크토 제국의 황제 자리에 오르면.

    ‘가장 비참하게 죽여 주마.’

    로디우스 1세는 세실리아가 친부인 로디우스 2세를 해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세실리아에게는 그런 생각이 1그램도 없었다.

    “네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하명하시지요.”

    “하명이라니, 부탁이라니까.”

    “어떤 부탁이신지요?”

    세실리아의 물음에.

    “후우!”

    로디우스 1세가 잠시 숨을 고른 후.

    “쉽지는 않겠지만, 네 아비를 용서해 다오. 이건 황제로서 황태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할아비가 손녀에게 하는 사적인 부탁이다.”

    로디우스 1세의 말을 들은 세실리아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도 네 아비가 어떤 인물인지 안다. 내 아들이니 왜 모르겠느냐? 하나 그 녀석이 있었기에 지금의 네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세실리아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방금 전처럼 표정이 굳어지지는 않았다.

    “당장은 무리겠지만, 노력하겠나이다.”

    “그래, 그렇겠지. 만나 본 적도 없으니 정도 없고 분노만 있을 것이다. 하나 부모 자식 사이의 인연은 천륜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지. 쉽지 않은 일인데, 노력한다고 답해 주니 참으로 고맙구나.”

    로디우스 1세가 웃으며 세실리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아비의 존재가 너의 정통성과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거라.”

    할아비가 손녀에게 하는 부탁이라고 했지만.

    이는 로디우스 1세가 황제로서 내리는 명령임과 동시에.

    협박이었다.

    “명심하겠나이다.”

    세실리아가 웃는 얼굴로 다시금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 * *

    ‘일이 쉽게 풀렸네.’

    작은 선물 보따리를 기대하고 찾아왔는데.

    로크토 제국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영혼의 계약서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지.’

    이미 세실리아는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이자 소환수였다.

    영혼의 계약서?

    그딴 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무효로 돌려도 상관없었다.

    ‘뭐, 로디우스 1세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일이 쉽게 풀렸다.

    로디우스 1세가 강현수의 직업 일인여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쉽게 세실리아를 후계자로 삼을 리가 없었겠지.’

    오히려 강현수를 적대시했을 수도 있다.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세실리아를 후계자로 삼더라도.

    ‘나에게 온갖 제약을 걸려고 했겠지.’

    하나 영혼의 계약서나 신념의 서약 같은 아이템에 의한 제약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일이 쉽게 풀렸어.’

    거기다 로디우스 1세가 통 크게 투자금을 열 배로 보상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결과 지금 강현수는.

    “들어가지지요.”

    아틀란티스 차원 최고의 보물 창고 중 한 곳인.

    로크토 제국의 황실 보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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