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선물 (2)
전신을 갑옷으로 빈틈없이 감싼 강현수가 당당히 로크토 제국의 황궁을 가로질렀다.
‘꽤 까다로운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허술하게 통과시켜 줘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장을 통해 신분을 검사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다크 나이트의 수장인 척마혈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미리 약속을 잡았다지만 너무 프리한데.’
강현수가 황궁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어서 오시지요.”
그런 강현수를 맞이한 사람은.
‘검성 로하스 공작.’
근위 기사단의 수장이자 로크토 제국의 황실이 보유한 최고의 플레이어.
“처음 뵙겠습니다. 제1근위 기사단장 로하스라고 합니다.”
검성 로하스 공작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강현수가 로하스 공작의 손을 잡았다.
꾸우욱!
그 순간 강한 악력이 강현수의 손을 옥죄어 왔다.
‘테스트라도 할 생각인가?’
강현수가 가볍게 손에 힘을 주는 순간.
우드득!
검성 로하스 공작의 손이 힘없이 우그러들었다.
‘차라리 다른 식으로 싸움을 걸어왔으면 몰라도.’
순수하게 손아귀의 힘을 겨루는 거라면?
‘검성이 아니라 검신이 와도 압도할 자신이 있다고.’
괴력 스킬을 가지고 있는 강현수의 힘 스텟은.
아틀란티스 차원을 통틀어 최고였다.
그것도 독보적으로 말이다.
“계속하실 건가요?”
강현수의 물음에.
“아닙니다.”
검성 로하스 공작이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힘겹게 대답했다.
‘굳이 망신을 줘서 척을 질 필요가 없는 인물이지.’
강현수가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검성 로하스 공작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진짜 다크 나이트의 수장인지 확인하실 목적이셨겠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강현수가 검성 로하스 공작의 안내를 받으며 황궁의 심부로 들어갔다.
‘검성 로하스 공작이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두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하다니.’
회귀 후의 변화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회귀 전이었다면?
‘애초에 이쯤에 만날 일도 없었겠지만.’
설사 만났더라도.
‘절대 이런 대접을 받지 못했겠지.’
상대는 무려.
수많은 제후국을 거느린 로크토 제국의 최고위 귀족이자.
아틀란티스 차원의 4대 검사로 추앙받는 살아 있는 전설.
검성 로하스 공작이었으니까.
반면 회귀 전의 강현수는?
‘그저 흔하디흔한 중고레벨 플레이어 중 하나였을 뿐이지.’
물론 시간이 흐른 후 강현수는 황의 칭호를 손에 넣은 플레이어가 되었다.
즉, 검성과 동급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칭호를 손에 넣기까지.
‘무려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
한데 지금은?
고작 3년 만에 황도 아니고 신의 칭호를 손에 넣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지.’
마왕을 쓰러트리고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이곳입니다. 문을 열어라.”
검성 로하스 공작의 명령에.
끼이이익!
근위 기사들이 화려하게 치장된 문을 열었다.
‘황궁치고는 방이 작네.’
대전이나 여러 명이 모이는 회의실이 아닌.
‘황제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방 같네.’
“들어가시지요.”
검성 로하스 공작의 말에.
저벅저벅.
강현수가 방 안으로 들어갔고.
꽈아앙!
강현수가 들어가자마자 방문이 닫혔다.
“어서 오시게,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여.”
로크토 제국의 황제 로디우스 1세가 의자에 앉아 강현수를 맞이했다.
‘확실히 건강이 좋아 보이지는 않네.’
밝은 화장으로 가리기는 했지만.
칙칙한 피부와 탁한 눈빛을 숨길 수는 없었다.
“로크토 제국의 군주이신 로디우스 1세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강현수가 한쪽 무릎을 꿇고 로디우스 1세에게 예를 취했다.
“그대는 나의 신민도 아니고 신하도 아니지 않은가? 하니 그만 일어나게.”
로디우스 1세의 말에 강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게.”
로디우스 1세가 강현수에게 자리를 권했다.
‘파격적이네.’
로크토 제국의 황제를 만나는 이는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나마 대우를 받는 이들이.
‘낮은 자리에서 서 있는 정도지.’
예외가 있다면 가족 정도랄까?
이곳은 신분제 사회였고.
같이 의자에 앉아 눈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눈다는 건.
‘상대를 나와 대등한 존재로 인정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
강현수가 의자에 앉아 로디우스 1세를 바라봤다.
부른 용건이 있을 테니 먼저 말해 보라는 뜻이었다.
“하하하,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군. 어려워하는 기색도 없고.”
로디우스 1세가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강현수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는 기색은 일절 없었다.
“전에 왔던 다크 나이트의 사신이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네. 로크토 제국이 멸망한다더군. 당연히 그대도 알고 있겠지?”
강현수가 소환수를 통해 대화를 나눴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 말 진짜인가?”
“진짜입니다.”
“그럼 그 미래는 아직도 변화 없이 그대로인가?”
“그건 저도 모릅니다.”
아마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로디우스 1세에게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모르기는, 자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건 황제 폐하께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강현수의 반문에.
로디우스 1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물론 그렇겠지. 나도 나름 노력을 했다네. 사공작 오르페수스를 철저하게 조사했지. 하지만 아직까지 그가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허술한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앞으로도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내가 적잖이 곤란해져.”
증거도 없이 사공작 오르페수스를 마왕의 하수인으로 몰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사공작 오르페수스의 목을 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네.”
증거도 없이 그런 일을 벌였다가는?
‘정말 내전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
그건 피해야 했다.
“거기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나한테는 시간이 얼마 없네.”
“시간이 없다 하심은?”
“모르는 척하는군.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내 생명의 불꽃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제가 그걸 어찌 알겠사옵니까?”
강현수는 거짓을 말했다.
알고 있다고 하면?
자신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볼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하하하! 그걸 왜 모르나? 내 안색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을. 사실 내 생명의 불꽃이 조금만 더 길게 남아 있었다면, 오늘 자네를 부르지도 않았을 걸세.”
로디우스 1세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뭐, 맞는 말이기는 하지.’
강현수는 신급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이자.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밀 조직의 수장이다.
그런 인물이 로크토 제국의 황제와 호위도 없이 단둘이 독대를 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로디우스 1세 입장에서는 나름 모험을 한 셈이다.
“세실리아.”
로디우스 1세가 갑자기 암왕 세실리아의 이름을 언급했다.
‘어떻게?’
강현수는 적잖이 놀랐다.
다크 나이트와 세실리아의 연결 고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
‘세실리아는 암왕이다.’
정보전에서는 대륙 최고의 실력을 지닌 인물이 바로 그녀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 대한 정보를 흘렸을 리가 없다.
“그 아이가 자네와 손을 잡았지?”
강현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구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로디우스 1세의 눈빛을 보며.
이게 단순한 찔러보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몰랐네. 그저 중립파 귀족의 수장을 찾아 포섭하기 위해 움직였지. 한데 자꾸 황실의 정보가 뒤틀리더군.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로디우스 1세가 심유한 눈빛으로 강현수를 바라보며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갔다.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녀석을 중립파 귀족의 수장이라고 착각할 뻔했어. 한데 아니더군. 세실리아 그 아이가 중립파 귀족들의 수장이었어. 하하하! 설마 섀도 가드를 장악해 내 눈과 귀를 가릴 줄이야! 그 사실을 알고 정말 크게 놀랐네! 그 아이에게 그런 재능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로디우스 1세가 웃음을 터트리며 목소리로 높였다.
‘역시 황제라 이건가.’
강현수의 개입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회귀 전 세실리아는.
‘지금쯤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 채 정보 조직을 다듬고 있었겠지.’
세실리아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한 건 로디우스 1세가 사망하고 로디우스 2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였다.
하지만.
‘내가 자금과 무력을 지원해 줬어.’
그 덕분에 세실리아는 로디우스 1세가 살아 있는 지금 정보 조직을 완성시키고 중립파 귀족들을 포섭해 자신의 세력으로 삼았다.
“나에게 단 하나만 알려 주게. 미래의 세실리아는 어떤 존재가 되나?”
로디우스 1세의 물음에.
“아틀란티스의 모든 정보를 움켜쥐는 존재가 됩니다.”
강현수가 순순히 대답을 해 줬다.
‘굳이 감출 필요도 없고.’
혹시 아는가?
세실리아의 주가를 최대한 높여 놓으면.
‘떡고물이라도 하나 떨어질지.’
사생이라고는 하지만.
‘세실리아도 황족이야.’
그것도 로디우스 1세의 친손녀.
로디우스 1세가 황실의 수호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세실리아에게 힘을 실어 주면?
강현수로서는 예상치 못한 보너스를 얻는 셈이 된다.
‘뭐,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된다고 해 봐야 믿지도 않을 거 같고.’
로디우스 1세가 세실리아를 경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런 핑계가 통할 리가 없었다.
“대단하군. 정보는 상당히 중요하지. 정보를 움켜쥐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하지만 적이 된다면 그만큼 골치 아픈 존재가 또 없지.”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황태자인 로디우스 2세는 그 정보를 움켜쥔 자를 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말로는.
‘아주 비참했지.’
로디우스 1세는 세실리아를 경계하고 있었다.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아틀란티스 차원의 정보를 움켜쥐고 있는 이가 아군이었다면.
‘로크토 제국이 멸망할 리가 없었으니까.’
강현수가 지그시 로디우스 1세를 주시했다.
마치 세실리아를 어떻게 할지 물어보듯이.
“나는 자식 복이 없네.”
로디우스 1세가 갑자기 황태자 로디우스 2세를 언급했다.
“그리고 손주 복도 없지.”
그 후 손주들을 언급했다.
“사실 로크토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현 황태자를 폐위시키고 방계 황족 중 똘똘한 녀석을 새로운 황태자로 임명하는 게 맞아.”
‘역시 알고 있었구나.’
바보도 아니고.
현군이라 불리는 로디우스 1세가.
‘그걸 모를 리가 없긴 하지.’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귀 전 로디우스 1세는 자신의 외아들을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폐위당한 황태자, 그것도 정통성이 가장 강력한 선황의 외아들이 황제가 되지 못하면 어찌 될 것 같나?”
“죽겠지요.”
새로운 방계 황족 출신 황제에게 있어 한때 황태자였던, 그것도 강력한 정통성을 가진 선황의 외아들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장 강력한 정적이 될 수밖에 없지.’
그게 로디우스 1세가 황태자 로디우스 2세를 폐위시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난 아들을 살리고 싶었네. 또 로크토 제국의 저력을 믿었지.”
망나니 황태자 로디우스 2세가 황위에 오르더라도.
황실의 권력이 약해질지언정.
황실과 로크토 제국 자체는 굳건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데 그게 한낱 물거품에 불과한 꿈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네.”
황제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황태자 로디우스 2세는 어차피 죽는다.
거기다 덤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로크토 제국까지 멸망한다.
강현수가 말한 미래를 믿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믿고 있다면?
로디우스 1세로서는.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겠지.’
괜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작은 선물 보따리를 기대했는데.’
세실리아를 언급하고.
황태자를 언급했다.
그럼 다음 수순이 뭐겠는가?
‘상상하지 못한 큰 선물을 받아 갈 수도 있겠어.’
강현수가 차분하게 로디우스 1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황태자를 폐위시키고.”
그리고 드디어.
“세실리아 그 아이를 황태녀로 삼을 생각이네.”
로디우스 1세의 입에서 강현수가 가장 듣고 싶어 하던 말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