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선물
도플갱어 군단이 다크 나이트를 포함한 발해, 고려, 용호길드 연합의 손에 전멸당했다는 소식이 아틀란티스 차원 전역을 강타했다.
용호길드가 도플갱어 군단의 은신처를 찾아내 급습했고.
지원 요청을 받은 다크 나이트와 발해, 고려길드가 지원을 와서 도플갱어 군단 토벌에 성공했다.
발해, 고려, 용호길드는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다크 나이트가 참 대단하기는 한 것 같아.
-그러게 무란 왕국에서는 마족의 침공을 막아 내다가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가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고 들었는데.
-괜히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 신의 칭호를 받은 게 아니라니까.
-발해, 고려, 용호길드도 대단하지.
-그건 그렇지. 비밀 조직 하나와 거대 길드 셋이 마족을 퇴치한 셈이니까.
당연히 다크 나이트를 포함한 발해, 고려, 용호길드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그런데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는 도대체 뭘 한 거야?
-뭐, 응원이라도 했나 보지.
-그건 아니고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이동하는 중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이동하는 와중에 토벌이 끝난 거지.
-마족과 싸우기 겁이 나서 일부러 천천히 간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반면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는 큰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는 진짜 억울했다.
일부러 천천히 가기는커녕 지원 요청을 받자마자 최대한 빨리 움직였음에도.
공간 이동 게이트를 통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전투가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가 조금이라도 빨리 왔다면 용왕이랑 호왕이 살아남았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참 아쉽게 됐어.
마족을 토벌하는 데 희생이 없을 수는 없다.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건 용호길드였다.
길드 마스터와 부길드 마스터를 포함한 간부들이 대거 전멸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이다.
살아남은 간부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은 거대한 덩치의 용호길드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명성도 없었고.
역량도 없었다.
많은 이들이 용호길드를 안쓰럽게 생각했고.
그들을 영웅이라고 추켜세웠지만.
그런다고 용호길드가 처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결국 용호길드는.
커다란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 * *
‘성공했네.’
강현수는 소환수인 도플갱어 킹 탈리만과 최상급 도플갱어들을 용호 길드의 간부로 위장해 투입시켰다.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도플갱어 킹과 최상급 도플갱어들답게 완벽하게 자신의 배역을 소화해 냈다.
‘이제 잘게 쪼개기만 하면 되겠어.’
강현수가 소환수 도플갱어들을 간부로 위장시켜 용호길드에 투입시킨 건.
용호길드를 존속시켜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럴 가치도 없고 필요도 없지.’
수뇌부가 전멸한 용호길드의 수준은 급격히 떨어졌다.
하지만 비대한 덩치는 그대로다.
‘시간과 돈을 쏟아부으면 정상화가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없었다.
도플갱어 킹과 도플갱어들을 용호길드에 묶어 두는 것도 비효율적이었고.
정상화시키면 쓸 만해진다고 해도.
약해진 거대 길드를 관리하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중화길드와는 상황이 다르지.’
중화길드에는 진구평이라는 쓸 만한 장기짝이 있었고.
‘시범 타자라 각국의 지원도 빵빵했어.’
그러나 용호길드는 그럴 일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중화길드는 내가 직접 챙기지 않으면 내 손을 떠났을 거야.’
아마 잘게 찢겨 마이트어 왕국군과 또 다른 거대 길드인 골드길드나 적화길드에 흡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용호길드는 그럴 일이 없었다.
강현수에게는.
‘발해길드와 고려길드가 있으니까.’
도플갱어들을 이용해 분열을 일으켜 용호길드를 잘게 쪼개면?
‘발해길드와 고려길드가 알아서 주워 갈 거야.’
용호길드의 간부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은 잘게 쪼개진 조각이 타 길드나 테라 왕국군에 흡수되지 않게 막는 역할만 하면 그만이다.
‘용호길드와 도플갱어 군단의 충돌에 대한 소문도 잘 퍼진 것 같고.’
암왕 세실리아의 힘이 컸다.
사공작 오르페수스나 또 다른 마왕의 하수인들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아군끼리 서로 죽고 죽인 셈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더욱 혼란스러워해라.’
그리고.
‘그 사실을 위에 알려라.’
그럼?
용호길드의 뒷배와 도플갱어 군단의 뒷배는.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지.’
강현수로서는 제대로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그나저나 일이 조금 꼬였네.’
강현수는 도플갱어 토벌이 마무리되면 적염제 도르초프를 직접 만나 휘하에 들어오라고 설득할 생각이었다.
‘적염제 도르초프는 나중에도 계속해서 현재의 칭호를 유지한다.’
신의 칭호를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실력이 퇴보하거나 답보 상태에 있지 않고 꾸준히 성장해 현재의 명성을 지켰다는 게 중요했다.
‘결정적으로 지구 출신 플레이어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기도 하고.’
거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
적염제라는 칭호를 손에 넣은 최상위 네임드 플레이어.
자기 자신만 잘 먹고 잘살 생각이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지구 출신 플레이어들의 권익을 위해 뻔히 손해 볼 걸 알면서도 로크토 제국의 황실과 대립했지.’
오지랖이 넓은 걸 수도 있고 정의감이 넘치는 걸 수도 있다.
누군가는 바보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강현수는 그런 그가 좋았다.
회귀 전.
‘적잖은 도움을 받기도 했고.’
설득을 통해 휘하에 넣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적당히 동맹을 맺고 그의 행보에 도움을 줄 생각이었는데.
‘벌써 복귀했을 줄이야.’
이제 강현수가 직접 로크토 제국으로 찾아가는 것 말고는 적염제 도르초프를 만날 방법이 없었다.
‘자연스러운 만남이 좋은데.’
그래도 첫 만남에 나중에 한번 찾아가겠다고 말을 건네 뒀으니.
‘부자연스럽지는 않겠지.’
적염제 도르초프 입장에서는 강현수가 찾아가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적염제 도르초프를 포섭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해.’
회귀 전 적염제 도르초프가 가장 간절히 염원했던 걸 이뤄 주겠다고 하면 된다.
‘잘하면 휘하에 넣을 수도 있을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협력 관계나 동맹 관계는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슬슬 그 녀석들을 요리해야겠네.’
황소욱과 신소희.
그간은 도플갱어들을 정리하느라 바빠 방치 및 조사만 했지만.
이제 처리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주군, 세실리아입니다.
갑자기 암왕 세실리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지?
-로크토 제국의 황제 로디우스 1세가 주군께 정식으로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정식 초대장?
-예, 다크 나이트의 수장 척마혈신과의 독대를 원한다고 합니다.
-독대?
강현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와 독대를 할 이유가 없을 텐데.’
그간 강현수는 소환수를 통해 지속적으로 로디우스 1세와 교류해 왔다.
그러니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굳이 나를 직접 만날 필요가 없을 텐데.’
거기다 황제와의 독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황제는 단순한 개인이 아닌 제국 최고의 권력자다.
신분이 아무리 확실한 이라고 해도 암살의 위협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독대는 거의 불가능했다.
황제와 독대를 한다는 건.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는 뜻이지.’
즉, 로크토 제국의 황제 로디우스 1세와의 독대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정식 초대장을 보네?’
그건 다크 나이트에게 힘을 실어 주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날짜는?
-내일입니다.
-너무 촉박한데?
-로디우스 1세에게 시간이 얼마 없는 듯합니다.
세실리아의 말을 들은 강현수는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가 보네.’
회귀 전의 로디우스 1세는 지금으로부터 몇 달 후 사망한다.
당연히.
‘지금쯤 생명이 위독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
강현수를 만난 나비효과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평온한 말년을 보내야 할 황제가 오공작과 정면으로 부딪쳤으니.’
체력과 심력 소모가 꽤 컸으리라.
‘거기다 건장의 반지도 나한테 줬고.’
무려 대로크토 제국의 황제이니 대체품을 구하기는 했겠지만.
‘EX랭크이니만큼 몇 달은 걸렸겠지.’
고령이니만큼.
고작 그 몇 달의 공백이 로디우스 1세의 건강을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
‘회귀 전보다 더 빨리 사망할 수도 있어.’
이건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가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한데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강현수는 처음 로디우스 1세를 만난 이후 지금까지 소환수를 통해서만 로크토 제국과 교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가는 게 낫겠지.’
무려 대로크토 제국의 황제인 로디우스 1세가 강현수에게 직접 올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왠지 전처럼 반지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소환수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가야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생각이다.
-낮은 확률이지만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황제가?
강현수의 물음에.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암왕 세실리아가 재빨리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만에 하나 함정이라면?
그건 로크토 제국에게 있어 큰 불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강현수가 로크토 제국과 충돌한다면?
‘로크토 제국의 황궁을 초토화시키고 황제의 숨통을 끊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마룡, 도플갱어 킹, 권황, 무존, 무란의 수호성, 도왕, 화염의 기사, 광살마존, 호왕, 용왕, 마도기사, 일살권, 검귀, 아귀 등의 소환수들을 언제든 소환할 수 있고.
추가로 인의군왕 신창후, 검왕 장석원. 멸마창왕 진구평, 살황 송하나, 투황, 암왕 세실리아도 동원이 가능했다.
여기에 고레벨 플레이어, 마족, 몬스터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소환수 여단 병력까지 총동원하면?
무려 5,900에 달하는 병력이 쏟아져 나온다.
‘그것도 최하가 600레벨대 플레이어나 몬스터 수준의 무력을 지닌 병력이지.’
이 정도라면?
능히 로크토 제국의 수도를 초토화시키고도 남는 수준의 무력이었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
애초에 로디우스 1세의 공식 초대장이 함정일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로디우스 1세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간 친분을 쌓아 온 다크 나이트의 수장을 적대할 리가 없었고.
또 그간 다크 나이트들이 황궁에서 연기로 변해 사라지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하기도 했고 말이다.
‘거기다 내 신변을 억류하기 위한 함정이라면 굳이 정식으로 초대장을 보낼 필요도 없지.’
비밀 초대장을 보내는 게 뒤처리가 더 깔끔했다.
황제가 정식으로 초대장을 보내 모셔 온 손님을 강제로 억류하는 건?
‘로크토 제국의 체면을 똥물에 처박는 격이니까.’
사실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도.
강현수가 로크토 제국의 수도를 날려 버릴 필요는 없었다.
‘속전속결로 황제와 황태자의 신변만 확보해도 충분하지.’
그 후 황제와 황태자를 압박해 휘하 지휘관으로 만들면?
‘로크토 제국을 간단하게 손에 넣는 셈이지.’
로크토 제국 전역에서 지원군이 몰려오겠지만.
빠져나가는 건 간단했다.
소환수들의 소환을 해제하고.
강현수 자신은 달의 그림자 스킬을 사용해 황궁을 빠져나가면 끝이었으니까.
‘뭐, 어디까지나 로디우스 1세가 먼저 뒤통수를 쳤을 경우지.’
황태자인 로디우스 2세는 몰라도.
‘황제인 로디우스 1세는 압박을 통해 휘하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인물이 아니니까.’
또 충돌이 발생하면?
다크 나이트는 공식적으로 로크토 제국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신변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고령의 황제가 죽기라도 하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거지.’
강현수는 지금 당장 로크토 제국과 척을 질 생각이 없었다.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고.’
어차피 로디우스 1세는 얼마 가지 않아 죽는다.
‘그 후에 움직여도 충분하지.’
달의 그림자 스킬을 이용해 황궁에 잠입하고.
‘황태자에서 차기 황제가 된 로디우스 2세를 죽이든 꼭두각시로 만들든 하면 그만이야.’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굳이 로디우스 1세가 생존해 있는 동안 로크토 제국과 척을 질 필요가 없었다.
‘괜히 서두르다가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어차피 로디우스 1세가 사망하면?
‘로크토 제국은 막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어.’
그걸 막는 유일한 방법은.
‘세실리아가 로크토 제국 최초의 여황제로 등극하는 거지.’
그럼 자동으로.
‘로크토 제국이 내 손에 들어온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해내야지.’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세실리아를 로크토 제국의 주인으로 만들어야 했다.
강현수 개인의 이득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