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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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제이 (3)

‘뭐지?’

강현수가 탈리만 남작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전보다 약해진 거 같은데.’

직접 싸워 본 만큼 강현수는 탈리만 남작이 얼마나 강한 마족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강하기는 하지만.’

풍기는 마기의 양이나 스킬의 위력 등이.

‘확실히 약해졌어.’

단지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기는 했다.

전투 후 공간 이동 게이트를 이용해 편하게 도착해 미리 쉬고 있던 강현수와 달리.

탈리만 남작은 전투를 치른 후 잠시도 쉬지 못하고 직접 날아서 이곳에 도착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스킬의 위력 자체가 낮아졌어.’

그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좀 둔하고.’

이건 체력 저하라기보다는.

힘, 민첩, 마기 같은 주력 스텟 자체가 하락한 느낌이었다.

‘한번 확인해 보자.’

강현수가 시스템창을 열어 갱신된 기록들을 확인했다.

[마족을 제거하고 그 마기를 영구히 흡수했습니다.]

[여신의 눈물 EX랭크가 영구히 흡수한 마기를 정화해 특수 스텟 신성으로 전환합니다.]

[신성 스텟이 상승하였습니다.]

……후략……

‘열 개가 떴었네.’

강현수가 이곳에 오기 전 소환수를 동원해 처치한 최상급 도플갱어의 수는 아홉 마리.

그럼 당연히 아홉 개의 메시지가 떠야 했지만.

‘하나가 더 떴어.’

그때 강현수가 한 일은?

‘탈리만 남작의 분신을 제거한 것뿐이야.’

그건 즉.

‘분신 자체가 하나의 마족으로 인정되었다는 거네.’

탈리만 남작이 만들어 낸 분신은 단순히 스킬이나 일시적으로 마력을 소모해 만들어 낸 존재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육체와 마기를 소모해서 만든 분신이었구나.’

그럼 본체라고 할 수 있는 탈리만 남작이 저렇게 약해진 것도 이해가 갔다.

‘급하기는 급했구나.’

얼마나 급했으면 영구적인 힘의 손실을 감수하고 도망쳤겠는가?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넘어와서 손해만 봤네.’

탈리만 남작의 입장에서는 승급을 위해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왔다가 강현수를 만나.

‘승급은커녕 강등만 당한 셈이지.’

절로 이가 갈릴 일이다.

한데 일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용호길드가.

‘수하들을 죽이고 뒤통수까지 쳤으니.’

분노가 하늘을 찌를 만도 했다.

‘좋은 구경거리가 되겠어.’

탈리만 남작의 힘이 온전했다면?

용호길드가 이길 확률이 너무 떨어졌다.

‘사실상 제로에 가깝지.’

하지만 힘이 영구적으로 소모된 덕분에.

‘나름 해볼 만한 싸움이 됐어.’

뭐, 그렇다고 해 봐야 용호길드가 이길 확률이 0%에서 10% 정도로 늘어난 것뿐이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용호길드가 탈리만 남작의 힘을 최대한 소모시켜 주면?

‘내가 뒤처리하기 편하니까.’

강현수는 느긋하게 탈리만 남작과 용호길드의 전투를 감상했다.

꽈아아앙!

퍼어어엉!

오러를 비롯한 온갖 공격 스킬들이 난무하고.

“아아악!”

“살려 줘!”

-캬아아악!

-용왕님을 위하여!

용호길드 소속 플레이어들과 용종 몬스터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그때.

-크허어어엉!

최전선에서 분투하던 용호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호왕 이근택 역시.

탈리만 남작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른팔을 잃었다.

“도대체 지원군은 언제 오는 거야!”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초조해진 용왕 이지용이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를 닦달했다.

“아까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금쯤 거의 다 왔을 겁니다!”

“아까 전에도 그 소리를 했잖아!”

용왕 이지용이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트리며 분노했다.

“금방 도착할 겁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됩니다!”

“이익!”

용왕 이지용이 당장이라도 때려죽일 듯이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를 노려봤다.

‘그럴 만도 하지.’

강현수도 용왕 이지용의 심정을 이해했다.

‘나도 정말 짜증 났거든.’

배가 고파서 자장면을 시킨다.

안 온다.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보면?

‘이미 출발했다고 하지.’

알겠다고 하고 기다리지만.

자장면은 오지 않는다.

또 전화를 하면.

‘거의 다 와 간다고 금방 도착할 거라고 하지.’

하지만 오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용왕 이지용의 답답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용왕 이지용이 애타게 지원군을 기다리는 사이.

“아아악!”

“커어억!”

용호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전멸 직전의 위기에 놓였다.

호왕 이근택은 빈사 상태였고.

용왕 이지용이 소환한 용종 몬스터들은 전멸해 버렸다.

용종 몬스터를 더 소환하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마력이 없었다.

“박지훈!”

잔뜩 화가 난 용왕 이지용이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를 향해.

“도대체 지원군은 언제 오는…….”

분노를 터트리려고 했지만.

“박지훈! 박지훈! 너 어디 간 거야!”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방금 전까지 곁에 있던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는 보이지 않았다.

“쿨럭!”

그러는 사이.

용호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완전히 전멸했고.

콰직!

호왕 이근택 역시 목이 꺾이며 숨이 끊어졌다.

“근택아!”

용왕 이지용과 호왕 이근택은 길드 마스터와 부길드 마스터이기 이전에 가장 끈끈한 친구 사이였다.

또 용왕 이지용에게 있어서 전적으로 자신을 믿어 주는 진심으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우군이었다.

“이이익!”

용왕 이지용이 호왕 이근택의 숨통을 끊은 장본인인 탈리만 남작을 노려봤다.

“흥! 이것이 배신자의 말로다. 그러게 왜 배신을 한 거냐? 배신을 하면 이런 비참한 꼴을 당할 줄 몰랐느냐?”

탈리만 남작의 말에 용왕 이지용이 할 말을 잃었다.

박지훈.

튜토리얼에서부터 함께했던 동기.

용호길드의 창단 멤버이자 공신.

박지훈은 용왕 이지용의 지낭이었고.

지금까지 박지훈의 말을 들어 일이 잘못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박지훈이 없었다면?

용호길드 또한 없었으리라.

그렇기에 이번 위기도 박지훈의 말만 잘 따르면 넘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훈이가 배신을?’

오지 않는 지원군과 사라져 버린 박지훈.

‘도대체 왜?’

용왕 이지용은 박지훈의 배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용호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용왕 이지용과 간부 박지훈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공동 운명체였다.

그렇기에 믿었다.

절대 배신할 일이 없는 인물이기에.

박지훈의 말을 의심 없이 따랐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마치 사기꾼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용호길드가 이렇게 무너져서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고?’

사기꾼이 사기를 치려면 그에 합당한 이득이 있어야 했다.

한데 용호길드가 무너져도 박지훈이 가지고 갈 수 있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손해만 있을 뿐.

‘혹시 나와 수뇌부를 제거하고 용호길드를 차지하려는 건가?’

그건 불가능하다.

간부이기는 했지만.

플레이어로서 박지훈의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네임드 플레이어도 아니고 랭커 플레이어도 아니었다.

거기다 용호길드 내에는 박지훈을 좋아하는 이들보다 싫어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실력도 없는 게 길드장에게 아부해서 출세했다고 질투하는 이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지낭이나 책사 같은 포지션에 있는 이들은 많은 괄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제대로 된 인정을 받는 경우는.

그런 포지션에 있으면서도 플레이어로의 강함을 입증했을 때뿐이다.

그 최소한의 조건이 랭커 플레이어.

박지훈의 경우는.

‘그런 케이스에 해당하지 않아.’

오히려 신뢰를 주던 용왕 이지용이 실각하거나 사망하면?

실 끊어진 연 신세가 되어 용호길드에서 쫓겨나거나.

붙어 있더라도 찬밥 신세를 면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박지훈!”

용왕 이지용이 목이 터져라, 박지훈을 불렀다.

하지만 박지훈은 나타나지 않았고.

콰직!

맹공을 펼치던 탈리만 남작의 검이.

용인화 스킬을 사용해 악착같이 버티던 용왕 이지용의 목을 반쯤 베어 냈다.

“커억!”

용왕 이지용은 죽음을 직감했다.

“네놈은 정말 엄청 단단하구나. 진짜 마룡족에 비견될 만한 방어력이야. 하지만 그래 봤자다.”

서걱!

다시 휘둘러진 탈리만 남작의 검이 용왕 이지용의 목을 말끔하게 베어 버렸다.

‘도대체 네가 왜 나를…….’

용왕 이지용은 죽어 가면서까지 박지훈의 배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헉헉헉!”

용왕 이지용까지 제거한 탈리만 남작이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이번 전투로 인해 마기의 원천을 2할이나 잃어 약해진 상태라는 게 제대로 실감이 났다.

아무리 다크 나이트와 싸워 떨어진 체력과 마력이 채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라고는 하지만.

‘고작 이런 조무래기들을 쓸어버리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다니.’

하나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어쨌든 수많은 강자들을 죽여.

그들의 마력을 흡수했으니까 말이다.

‘꾸준히 살육을 이어 나가면 손실된 마기를 회복하는 걸 넘어서 더 강해질 수 있어.’

하지만 그 전에.

용왕 이지용이 왜 자신을 배신했는지 그 이유부터 알아봐야 했다.

탈리만 남작이 용왕 이지용의 기억을 흡수했다.

그리고.

‘뭐지?’

더 큰 의문을 느꼈다.

‘이놈은 그저 이용당했을 뿐이야.’

자신을 싫어하기는 했지만.

배신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용왕 이지용이 자신을 배신한 이유는.

‘박지훈.’

그 인간의 수작이었다.

짝짝짝!

그때 힘찬 박수 소리와 함께.

“혼자서 용호길드를 쓸어버리다니 대단한데.”

탈리만 남작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크 나이트!”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과 대등하게 싸웠던 다크 나이트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박지훈.”

용왕 이지용이 자신을 배신하게 만든 원흉이 자리해 있었다.

“모두 네놈들의 수작이었구나!”

탈리만 남작이 으르렁거리는 음성으로 분노를 토해 냈다.

“맞아.”

“크윽!”

탈리만 남작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찢어 죽이고 싶지만.

상황 자체는 자신에게 불리했다.

“두고 보자.”

그 말과 함께 탈리만 남작이 맹금류의 형상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여단 소환.”

그때 다크 나이트가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고.

사아아아악!

강대한 마력이 느껴짐과 동시에.

휘익!

칠흑빛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마룡의 앞발이 탈리만 남작을 향해 날아왔다.

“이런!”

피하기는 무리였다.

퍼억!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 냈지만.

그 대가로 탈리만 남작은 힘없이 대지에 처박힐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탈리만 남작이 경악한 눈빛으로 허공을 올려보았다.

그곳에서는.

“카라스 남작?”

죽었다고 알려진 마룡 카라스가.

비행이 가능한 용종 몬스터들과 함께 하늘을 장악하고 있었다.

“여단 구성.”

그때 다시금 다크 나이트가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순간.

사아아아악!

강대한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용왕 이지용과 호왕 이근택을 포함한 용호길드 소속 플레이어들과 탈리만 남작의 수하였던 도플갱어들이.

부활했다.

“이이이이!”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자.

탈리만 남작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마계에 연락할 여력이 없는 모양이네.”

용호길드가 탈리만 남작이 도착하기 전에 도플갱어들을 전멸시켜 준 덕분이었다.

“이제 너만 죽으면 되겠어.”

다크 나이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크아아아아앙!

마룡 카라스가 포효를 터트리며 탈리만 남작에게 달려들었고.

그것도 모자라.

콰콰콰콰!

파지지직!

화르르륵!

부활한 용왕 이지용과 호왕 이근택을 포함한 용호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온갖 공격 스킬을 발동시키며 탈리만 남작을 공격했다.

하지만 탈리만 남작 입장에서 가장 기막힌 일은.

동족이자 충실한 수하이며.

절대 자신을 배신할 수 없는 권속인 도플갱어들이.

살기를 줄줄 뿜어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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