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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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만찬 (2)

* * *

검살존 라그노와 적염제 도르초프는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를 이끄는 수장이다.

존과 제의 칭호를 가진 이들이니 로크토 제국 입장에서는 최고의 실력자를 무려 둘이나 보낸 것이다.

그러나 검살존 라그노와 적염제 도르초프의 심기는 그리 편하지 않았다.

‘고작 도플갱어 같은 하급 마족을 사냥하는 데 내가 나서야 하다니.’

귀족이자 기사인 검살존 라그노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그렇기에 하급 마족을 잡기 위해 자신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의 격에 맡지 않는 임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계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남작. 거기다 도플갱어 출신이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다고.’

마음 같아서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주군인 황제 로디우스 1세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토벌대의 수장 자리를 맡았다.

반면 적염제 도르초프의 경우는.

‘타 차원의 플레이어들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적염제 도르초프는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로, 거대 길드인 레드베어길드의 길드 마스터였다.

마룡 카라스 토벌 당시.

적염제 도르초프는 장거리 원정을 떠난 상태였다.

그렇기에 마룡 카라스 토벌에 참여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었다.

마룡 카라스 토벌에 참가했던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 들은 모두 전멸했으니까.

하나 적염제 도르초프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빠졌기에 전투의 방향이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들을 희생시키는 쪽으로 진행되었고.

그랬기에.

‘전멸이라는 큰 피해를 입은 거다.’

적염제 도르초프가 마룡 카라스 토벌대에 합류했다면?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들의 희생이 큰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제아무리 권황과 무존이라고 해도.

그가 반대하는 작전을 무작정 강행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런 일이 발생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적염제 도르초프가 이번 작전에 자진해서 지원한 건.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들의 희생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다크 나이트에게 그날 치른 핏값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아 낼 것이다.’

마룡 카라스의 숨통을 끊은 건 다크 나이트다.

하지만 그 전투는 다크 나이트 단독으로 치른 게 아니다.

‘수백에 달하는 토벌대의 희생이 있었기에 다크 나이트가 마룡 카라스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마룡 카라스와의 전투에서 다크 나이트의 정예들이 희생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숫자는 채 20명도 되지 않는다.

그럼 당연히 더 많은 희생을 치른 토벌대 소속 국가와 길드에게 마룡 카라스 레이드 성공으로 얻은 전리품을 넘겨주어야 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는 그 전리품을 망자들과 함께 나누지 않고 홀로 독점했지.’

적염제 도르초프가 다크 나이트의 공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20% 정도면 충분하지.’

넉넉하게 잡아도 30%가 최선이었다.

‘그동안은 다크 나이트의 위치를 알 수 없어 청구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단지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면.

‘황제가 다크 나이트와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것 같던데 왜 전리품을 요구하지 않은 거지?’

비공식적으로 전리품을 받았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럴 확률은 낮다.’

마룡 카라스의 손에 권황과 무존이 사망하고 토벌대가 전멸했다.

대도시 바란에 대피령이 떨어지고 2차 토벌대를 소집하는 와중에.

‘다크 나이트가 마룡 카라스를 쓰러트렸다는 소문이 퍼졌지.’

그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자.

‘로크토 제국은 큰 망신을 당했어.’

반대로 다크 나이트의 명예는 드높아졌다.

로크토 제국이 다크 나이트에게 전리품을 받아 냈다면?

‘대대적으로 홍보해서 떨어진 제국의 명예를 회복하려 했겠지.’

이렇게 가만히 입 다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다크 나이트가 독점하고 있는 정보의 중요성을 의식해 로크토 제국이 통 큰 양보를 한 거겠지.’

거대한 제국을 경영하는 황제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나.

‘그건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야.’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들은 강제로 아틀란티스 차원에 끌려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몬스터나 마족과 싸우고 있다.

그럼 최소한.

‘보상이라도 제대로 받아야지.’

적염제는 다크 나이트를 만나 마룡 카라스 레이드에서 희생당한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들의 몫에 해당하는 전리품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살존 라그노와 적염제 도르초프는 토벌대의 수장임에도 도플갱어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애초에 도플갱어들을 중대한 위협으로 생각했다면?

제보를 받았음에도 토벌대를 파티 단위로 쪼개 수색을 보내지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신호탄이 터진 장소에 도착한 검살존 라그노와 적염제 도르초프는 자신들이 큰 착각을 했음을 깨달았다.

측량 불가 수준의 거대한 마기가 그들의 몸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도플갱어를 하급 마족이라고 무시했던 검살존 라그노는.

‘저게 마족?’

자신의 전신을 짓누르는 마기의 존재감에 어금니를 악물었고.

도플갱어는 안중에도 없고 다크 나이트를 만나 전리품을 받아 낼 생각만 했던 적염제 도르초프는.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겠어.’

죽음의 공포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전신을 칠흑빛 갑주로 뒤덮은 플레이어 하나가 강대한 마기를 뿜어내는 마족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서 도와야 해.’

‘이 자리에서 저놈을 죽이지 못하면 큰일이다.’

검살존 라그노와 적염제 도르초프가 지진이 난 듯 흔들리는 대지를 딛고 살을 벨 것 같은 마기의 폭풍을 뚫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어딜 가는 거냐!”

전신이 칠흑빛 갑주로 뒤덮인 플레이어의 외침과 함께 거대한 마기의 주인이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놓치면 안 돼!’

‘이런!’

검살존 라그노와 적염제 도르초프는 마족이 하늘로 도망치는 모습에 소리 없이 절규했다.

하지만.

검살존 라그노와 적염제 도르초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인가?”

그런 그들의 귀에 전신을 칠흑빛 갑주로 뒤덮은 플레이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를 이끌고 있는 라그노 후작이라고 합니다. 한데 귀공께서는 누구이신지요?”

검살존 라그노는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그렇기에 자신을 소개할 때 항상 검살존이라는 칭호를 자랑스럽게 밝혔고.

주군인 로크토 제국 로디우스 1세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검살존 라그노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신분을 밝혔고.

또 상당히 조심스럽게 상대의 정체를 물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신급 플레이어가 확실하다.’

상대를 신급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검살존인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마기의 주인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신급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뿐이니까.

“나는 다크 나이트다.”

전신을 칠흑빛 갑주로 뒤덮은 플레이어의 대답에 검살존 라그노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에 이 정도 강자가 있었단 말인가?’

검살존 라그노는 주군인 로크토 제국의 황제 로디우스 1세에게 다크 나이트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전해 들었다.

또 다크 나이트와 협력해 테라 왕국의 도플갱어들을 절멸시키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검살존 라그노는 그걸 다크 나이트를 잘 지휘해 도플갱어를 처리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구나.’

다크 나이트에 이 정도 강자가 있다면?

잘 지휘하기는커녕.

‘오히려 납작 엎드려 토벌대 전체가 다크 나이트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형국이지 않은가.’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다크 나이트와 협력하라는 로크토 제국의 황제 로디우스 1세의 명령 자체가 일종의 체면치레로 느껴졌다.

차마 황제가 신하에게 다크 나이트에게 가서 납작 엎드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와 적염제를 보내셨구나.’

더 아래 등급 플레이어를 보냈다면?

다크 나이트 앞에서 찍소리도 못 할 게 뻔했다.

그나마 존과 제의 칭호를 가진 이들을 총책임자로 보내야.

로크토 제국 토벌대의 위신도 서고.

다크 나이트 앞에서도 어느 정도 자기주장을 할 수 있으리라.

뭐, 하급 마족이라고 무시하던 도플갱어가 엄청나게 강하기도 했고 말이다.

“아, 그러셨군요. 로크토 제국의 황제 폐하께옵서 토벌대에게 다크 나이트와 협력해 도플갱어들을 처단하라 명하셨사옵니다. 혹 이 사실을 알고 있으신지?”

“알고 있다. 그런데 좀 늦었군. 조금만 더 빨랐다면 그놈의 숨통을 끊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송구합니다. 하나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검살존 라그노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알겠다. 그럼 일단 뒷수습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보도록 하지.”

“예!”

전신을 칠흑빛 갑주로 뒤덮은 다크 나이트의 말에 검살존 라그노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한편 검살존 라그노와 함께 토벌대의 수장 역할을 맡고 있는 적염제 도르초프는.

‘큰일 날 뻔했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내가 큰 착각을 했구나.’

적염제 도프초프가 마룡 카라스 레이드 당시 사망한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들 몫의 전리품을 요구하려고 했던 건.

그들이 큰 활약을 했고 그 때문에 다크 나이트가 마룡 카라스 레이드에 성공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어.’

직접 마족과 대적해 보니 알 수 있었다.

‘마족은 강하다.’

하급 마족 출신 도플갱어 마계 귀족이 이 정도인데.

최상위 마족 출신 마룡 마계 귀족은 얼마나 강했겠는가?

더군다나 마룡 카라스의 경우 수만에 달하는 용종 몬스터들까지 대동하고 있었다.

‘큰 도움이 되지 않았었던 거야.’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들이 아예 아무런 활약도 못 하지는 않았겠지만.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었겠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로크토 황실에서도 전리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거였어.’

단순히 정치적인 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꽤 강해 보이는데 당신은 누구지?”

그때 다크 나이트가 적염제 도르초프에게 말을 걸었다.

“레드베어길드의 길드 마스터 도르초프라고 합니다.”

“적염제?”

“그리 불리고 있습니다.”

“나중에 한번 찾아가도록 하지.”

“예?”

“왜, 싫은가?”

“아닙니다. 좋습니다.”

다크 나이트의 물음에 적염제 도르초프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왜 나를 찾아온다는 거지? 좋은 뜻인가, 나쁜 뜻인가?’

“그럼 나중에 보지.”

다크 나이트가 혼란에 빠진 적염제 도르초프를 뒤로하고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다가갔다.

* * *

‘좋았어.’

투구 속에 가려진 강현수의 입이 쫙 하고 벌어졌다.

타이밍이 환상적이었다.

싸움이 더 길어졌다면?

방금 전과 같은 위용을 보여 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은 그걸 모르지.’

또 검살존 라그노와 적염제 도르초프는 강현수가 탈리만 남작과 대등하게 싸운 이유가 템빨.

특히 그중에서도 마족 한정 사기템인 여신의 눈물의 효과가 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는.

강현수의 실력을 신급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 수준으로 착각했다.

‘아직 멀었는데 말이야.’

하나 지금 강현수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가 그렇게 착각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이 일이 퍼지면?

다크 나이트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진다.

또한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는.

‘이번 일을 로디우스 1세에게 상세히 보고하겠지.’

그럼 로디우스 1세 역시.

‘다크 나이트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겠지.’

또한.

다크 나이트가 내뱉는 말의 무게감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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