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간계 (3)
‘제법 빠르네.’
로크토 제국의 도플갱어 토벌대가 테라 왕국이 도착했다.
‘확실히 회귀 전과는 달라.’
회귀 전 로크토 제국은 도플갱어 군단의 침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도플갱어라는 마족의 존재 자체를 뒤늦게 파악한 탓도 있었지만.
‘로크토 제국이 테라 왕국의 내전을 의도적으로 방치한 탓이 크지.’
도플갱어의 개입 여부를 몰랐더라도 어쨌든 제후국에 극심한 내전이 발생한 상황이다.
당연히 말리는 게 정상이다.
한데 로크토 제국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히 내전을 부추기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마 외교를 담당하는 사공작 오르페수스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갔었겠지.’
사공작 오르페수스는 마왕의 하수인.
그의 입장에서는, 테라 왕국의 내전이 길게 이어지는 편이 좋았다.
왜?
그게 마왕군에 이득이 되니까.
‘로크토 제국의 황제 로디우스 1세도 회귀 전에는 제후국들의 힘을 줄이는 계획에 동의했지.’
하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강현수는 로디우스 1세와의 첫 만남 이후 소환수 한 기를 로크토 제국의 수도에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그 소환수를 통해 로디우스 1세와 비밀리에 접촉해 정보를 교환했다.
‘그간 미래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던져 줬지.’
그 정보 중에는 로크토 제국에게 이득이 되는 것도 있었고 손해가 되는 것도 있었으며 아무 상관이 없는 정보도 있었다.
중요한 건.
‘내가 준 정보가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거지.’
그렇기에 로크토 제국의 황제 로디우스 1세는 강현수가 주는 정보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준 정보는 간단했다.
-도플갱어 군단의 침공으로 테라 왕국이 멸망한다.
-사공작 오르페수스가 제후국의 힘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를 펴며 토벌대 파견을 반대할 것이다.
‘제후국이 멸망하면 로크토 제국으로서도 큰 손해야.’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토벌대를 투입시켜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강현수의 예언처럼 사공작 오르페수스가 이참에 제후국의 힘을 줄이는 게 좋다며 토벌대 투입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게 악수였지.’
이번 일로 인해 로디우스 1세는 사공작 오르페수스가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 결과.
‘회귀 전과 다르게 토벌대가 투입되었지.’
그것도 모자라 로디우스 1세는 사공작 오르페수스가 쥐고 있던 외교권을 빼앗아 황제파 귀족에게 넘겨 버렸다.
이 일로 황제파 귀족과 오공작파 귀족의 대립이 더 극심해졌다.
‘황제가 오공작의 밥그릇 중 하나를 빼앗아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지.’
자칫 잘못하면 내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내전이 일어날 리가 없어.’
로디우스 1세는 로크토 제국의 황제.
오공작이 가지고 있는 국방, 법치, 행정, 외교, 감찰의 권한은 본래 황제의 것이었다.
황제 입장에서는 자기 것을 다시 되찾아왔을 뿐이다.
오공작으로서는 화는 나지만 반란을 일으킬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
‘거기다 로디우스 1세는 고령이야.’
로디우스 1세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노인이었고.
황태자인 로디우스 2세는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개망나니다.
‘오공작 입장에서는 황제인 로디우스 1세가 죽는 걸 기다리는 게 이득이지.’
왜?
황태자인 로디우스 2세가 황제 자리에 오르면 더 많은 권력을 더 손쉽게 빼앗아 올 수 있으니까.
더군다나 오공작은 서로 협력하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서로 대립하는 존재이기도 하지.’
황제가 일공작이 가지고 있는 국방이나 오공작이 가지고 있는 감찰 권한을 회수했다면?
오공작도 이렇게 얌전히 숨죽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의 경우.
‘로크토 제국 내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가장 약하지.’
오히려 사공작 오르페수스를 제외한 다른 공작들의 입장에서는.
‘외교권까지 자기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로디우스 1세가 머리를 잘 썼어.’
그간 로디우스 1세는 사공작 오르페수스만 집중 공격했다.
나머지 공작들의 경우 실책이 있어도 굳이 지적하지 않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 역시 일절 탐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황제인 로디우스 1세가 황태자인 로디우스 2세를 위해 오공작이 쥐고 있는 신권을 무너트리고 황권을 강화할 목적이라고 생각해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차분히 보면 로디우스 1세의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공작 오르페수스뿐이었지.’
거기다 로디우스 1세는 사공작 오르페수스가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소문까지 퍼트렸다.
그리고 그 소문을 조사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공작 오르페수스를 자택 연금시키고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나머지 공작들은?
‘갈팡질팡하고 있지.’
사공작 오르페수스가 진짜 마왕의 하수인이라 황제 로디우스 1세가 공격을 한 건지.
아니면 오공작의 힘을 줄이기 위해 황제 로디우스 1세가 사공작 오르페수스에게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누명을 씌운 건지.
‘알 수가 없지.’
여기에 세실리아가 이끄는 중립파가 황제파에 힘을 실어 주었다.
혼란에 빠진 공작들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사공작 오르페수스를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대신.
‘조사의 중립성을 지키겠다며 오히려 황실 조사대에 자신의 수족들을 추가해 버렸지.’
사공작 오르페수스가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걸 빌미로 황제인 로디우스 1세를 정치적으로 압박하면 된다.
소문대로 사공작 오르페수스가 마왕의 하수인이라면?
사공작 오르페수스를 버리면 그만이다.
괜히 사공작 오르페수스를 돕겠다고 편을 들다가는?
자신들도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누명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뒤처리는 하고 가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
로디우스 1세의 수명은 1년이 채 남지 않은 상황.
로디우스 1세가 죽기 전에 사공작 오르페수스만 처리해도 강현수 입장에서는 크게 한숨 돌리게 된다.
‘사실 가장 좋은 건 로디우스 1세가 황태자를 폐위시키고 세실리아를 후계자로 삼는 건데.’
그렇게 되면?
로디우스 1세가 사공작 오르페수스를 처리하지 못하고 사망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세실리아가 사생아란 말이지.’
거기다 여자다.
로크토 제국의 역사상 여황제가 등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중립파 귀족들의 세력이 많이 늘었다고 해도.
‘아직 황제파와 오공작파에 비할 바는 아니야.’
황제인 로디우스 1세도 자신의 외아들인 황태자를 후계로 삼았고.
오공작파 역시 어리석은 황태자를 지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립파가 섣부르게 나서 봐야.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세실리아의 정체가 드러날 확률만 높아져.’
유일한 해결책은.
‘황태자를 죽여 버리는 건데.’
그럼 로디우스 1세의 대안은 개망나니 손자들과 사생아인 세실리아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위험 부담이 너무 커.’
달의 그림자 스킬을 사용하면?
황태자를 죽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뒤처리가 문제였다.
‘복수의 문양은 분명히 있을 거고.’
그것도 중화길드원들이 사용하던 하위 랭크 수준이 아니라 평생 지워지지 않은 EX랭크의 복수의 문양이 자리 잡고 있을 거다.
‘또 로디우스 1세가 나를 의심하면 곤란해.’
황실의 삼엄한 경계를 자유롭게 뚫고 다닐 만한 존재는?
다크 나이트뿐이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고 해도 황제인 로디우스 1세의 의심을 산다면?
‘애써 만든 로크토 제국과 다크 나이트의 연계가 무너져 버릴 수도 있어.’
아니, 연계가 무너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가 되어 버릴 것이다.
‘일단은 기다리자.’
황제인 로디우스 1세가 살아 있을 때 황태자를 죽이는 것보다.
로디우스 1세가 사망하고 황태자인 로디우스 2세가 황제에 오른 후 처리하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할 수도 있어.’
지금 집중해야 할 건.
도플갱어들의 수장 탈리만 남작과 토벌대의 충돌이었다.
* * *
저벅저벅.
용호길드 간부의 모습을 한 탈리만 남작이 사냥터로 진입했다.
‘이 몸이 하등한 인간들을 돕기 위해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수하 도플갱어들만 보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계획이 실패할 확률이 올라간다.’
탈리만 남작은 인간을 마족보다 하등하고 나약한 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족 우월주의에 빠져 몇몇 인간들이 마족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부정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다크 나이트라.’
마룡 카라스 남작이 다크 나이트에게 당했다.
물론 다크 나이트 단독으로 이뤄 낸 성과는 아니다.
로크토 제국과 그 제후국에서 모집된 정예 플레이어들이 모두 힘을 합쳐 이뤄 낸 성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크 나이트를 만만하게 볼 수는 없지.’
어쨌든 마룡 카라스 남작의 숨통을 끊은 건 다크 나이트였고.
도플갱어들의 정체를 감별하는 방법을 알린 것도 다크 나이트였다.
‘이번 기회에 다크 나이트라는 조직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다크 나이트는 계속해서 마왕군의 침공을 방해하고 있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초월적인 스킬.
강력한 무력.
정확히 몇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하기조차 힘든 은밀함.
다크 나이트를 제거해야.
자신의 대외 활동이 원활해지고.
앞으로 차원 게이트를 넘어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올 마왕군이 원활히 활동할 수 있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스킬이 가장 문제야.’
도플갱어들의 약점을 알아낸 것도 그 스킬의 힘이리라.
‘어디 한번 와 보거라.’
탈리만 남작은 다크 나이트들이 자신을 향해 덤벼들기를 바랐다.
‘모조리 죽여 주마.’
다크 나이트를 죽이면?
기억의 일부를 얻을 수 있다.
죽은 다크 나이트의 외형을 흉내 내면?
다크 나이트로 위장해 그들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다.
‘음?’
그때.
두두두두!
열 명 남짓의 플레이어들이 빠른 속도로 접근해 포위망을 구성했다.
‘뭐지? 다크 나이트인가?’
미래를 알 수 있는 초월적인 스킬을 가진 다크 나이트라면.
자신의 공격을 예상했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순찰 중인 발해길드나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일 수도 있겠지.’
어쩌면 다크 나이트, 발해길드, 고려길드의 연합일 수도 있었다.
‘누구든 상관없다.’
다크 나이트든 발해길드든 고려길드든 어차피 탈리만 남작의 입장에서는 죽여야 할 적일 뿐이었다.
한데 그런 탈리만 남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로크토 제국의 문양?’
열 명으로 이루어진 로크토 제국 토벌대 파티였다.
“저놈들이 도플갱어란 말이지?”
“정보가 확실하다면 그렇겠지.”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처럼 보이는데.”
“피를 은에 뿌려 보면 정체가 드러난다고 하니 테스트를 해 보면 되겠지.”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가 나누는 대화에 탈리만 남작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가 온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용호길드에서도 알려 주지 않았고.
탈리만 남작이 주군으로 모시는 마계 공작 역시 알려 주지 않았다.
오히려.
‘샤달리안 대공의 계약자가 로크토 제국이 토벌대를 보내는 걸 막겠다고 했다고 들었는데.’
탈리만 남작으로서는 뒤통수를 연달아 얻어맞은 격이었다.
현재 사공작 오르페수스는 자신의 계약자인 샤달리안 대공과 연락을 취할 수가 없었다.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의심을 받고 가택 연금을 당한 상태로 대대적인 조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증거도 감춰야 할 판에 산 제물을 사용해 계약자인 샤달리안 대공과 연락을 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 잘못해 걸리기라도 하면?
빼도 박도 못하고 마왕의 하수인으로 낙인찍힐 테니까.
거기다 용호길드의 경우.
강현수의 소환수인 도플갱어 1호로 인해 정보를 차단하는 걸 넘어서 탈리만 남작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로크토 제국 토벌대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괜한 의심을 피하고 싶다면 얌전히 있어라.”
휘익!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 중 하나가 검을 휘둘렀다.
목이나 심장을 노린 건 아니고 팔을 노린 공격이었다.
“큭큭큭!”
탈리만 남작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탁!
탈리만 남작이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가 휘두른 검을 왼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힘을 줘 검을 잡아당겼다.
“어어?”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원이 검을 놓지 못하고 얼떨결에 그대로 끌려왔다.
덥석.
탈리만 남작의 오른손이 로크토 제국 토벌대원의 머리를 붙잡았고.
콰직!
그대로 으깨 버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건 네놈들을 모조리 죽인 후 알아보도록 하마.”
분노한 탈리만 남작의 전신에서 측량 불가 수준의 칠흑빛 마기가 뭉글뭉글 뿜어져 나왔다.
“히익!”
“지, 진짜 마족이었어!”
“당장 지원 요청해!”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 파티가 화들짝 놀라 외쳤지만.
휘익!
칠흑빛 마기에 휩싸인 탈리만 남작의 검은 이미 토벌대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 순간.
콰콰콰콰!
한 줄기의 핏빛 오러가 탈리만 남작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큭!”
탈리만 남작이 공격을 멈추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막기 위해 검을 비틀었다.
꽈아아앙!
마기가 담긴 검과 핏빛 오러가 충돌하며 커다란 폭발음이 터져 나왔고.
저벅저벅.
“얼른 신호탄이나 쏴.”
강현수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