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124화 (124/365)

이간계 (2)

‘아슬아슬했네.’

조금만 늦었으면?

일을 그르칠 뻔했다.

강현수는 마룡갑을 입고 있었고.

소환수들은 완전무장을 한 상태로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마크를 달고 있었다.

“생포를 최우선으로 한다.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죽여도 상관없다!”

강현수가 겉으로 보여 주기 위한 명령을 내린 후.

꽈앙! 꽈앙!

도플갱어들을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용호길드 소속 중저 레벨 플레이어들을 포함해 주변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뭐야? 이놈들 왜 자기들끼리 싸워?”

“그러게?”

그들이 보기에 강현수와 소환수들은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이었다.

또 도플갱어들도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의 눈에는 새롭게 등장한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기존에 전투를 치르던 아군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진실을 알고 있는 우두머리 도플갱어로서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팅! 팅!

강현수와 소환수들이 부상을 당한 도플갱어들이 흘린 피 위로 은화를 떨어트렸다.

치이이익!

순식간에 은화가 녹아내렸고.

“도플갱어다!”

“진짜 있었어!”

그제야 용호길드 소속 중저 레벨 플레이어들과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진실을 알아차렸다.

“도플갱어가 진짜 있었다니!”

“도플갱어들이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해 용호길드 소속 플레이어를 공격한 거였어!”

“억지로 분쟁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킬 속셈이었구나!”

“진짜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그걸 알고 미리 막으러 온 거야!”

상황이 급변했다.

‘이런 망할.’

얼굴을 찌푸린 우두머리 도플갱어가 상급자에게 지원을 요청하려 했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을 모두 전멸시켜서라도 비밀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서걱!

강현수가 휘두른 핏빛 오러를 머금은 검이 우두머리 도플갱어의 목을 날려 버렸다.

* * *

‘어서 전쟁이 벌어졌으면 좋겠군.’

탈리만 남작이 앞으로 있을 만찬을 떠올리며 군침을 삼켰다.

지금은 비록 남작이지만.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대규모 살육전이 벌어지면?

‘승급을 할 수 있다.’

잘만 하면.

‘고위 귀족이 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

승급에 대한 욕망.

탈리만 남작은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넘어왔다.

‘일이 조금 꼬이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다.’

다크 나이트라는 놈들이 도플갱어들의 정체를 밝히는 바람에 조금 곤란해졌지만.

‘수습하면 그만이다.’

다크 나이트라는 놈들을 제거하고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를 쓸어버린 후.

더 큰 전쟁을 일으키면?

충분히 승급이 가능했다.

물론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하찮은 인간 따위를 돕기 위해 직접 움직여야 하다니.’

그것도 인간의 수하 신분을 연기하는 수고까지 해 가면서 말이다.

도플갱어들의 정체를 밝히는 방법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런 수고를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왜?

굳이 용호길드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고 피와 살육을 즐길 수 있었으니까.

‘그 건방진 놈을 도와줘야 하다니.’

탈리만 남작은 용왕 이지용을 좋아하지 않았다.

‘주제 파악도 하지 못하는 버러지 놈.’

탈리만 남작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용왕 이지용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비천한 노예 주제에.’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숨통을 끊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정체를 밝히는 방법이 등장한 탓에 용호길드라는 방패의 도움이 필요했고.

용왕 이지용이 계약한 마계 백작의 눈치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갈가리 찢어 죽여 주마.’

지금 당장은 마족과 계약을 맺은 인간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제약이 풀리고 대대적인 아틀란티스 차원 침공이 가능해지면?

‘노예들의 도움 따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

그때가 되면?

용왕 이지용과 계약한 마계 백작도 그를 보호해 주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놈들은 도대체 언제 일을 벌이는 거야?’

휘하 도플갱어들에게 분쟁을 일으키라는 지시를 보냈다.

지금쯤이면 연락이 와야 하는데.

아직 감감무소식이었다.

“탈리만 남작님!”

그때 도플갱어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무슨 일이냐?”

“작전이 실패했다고 합니다.”

“뭐?”

탈리만 남작은 어이가 없었다.

고작 중저 레벨 플레이어 파티 하나 전멸시키는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실패하다니?

“발해길드와 고려길드가 어떻게 알았는지 선수를 쳤습니다. 그래서 작전에 동원된 녀석들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끄응.”

탈리만 남작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이러면 일이 꼬인다.

다시 작전을 실행하려고 해도.

‘인간들이 믿지 않겠지.’

오히려 도플갱어의 수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방법을 바꿔야겠군.’

차라리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를 공격해 도발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놈들이 당하고만 있어도 좋고 반격으로 용호길드에 싸움을 걸어도 나쁠 건 없으니.’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이 실행하는 차선책에 불과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어.’

그럼 승급이 불가능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우리의 존재가 너무 크게 알려졌다.’

이러면 도플갱어들의 활동 반경은 더 줄어들게 되고.

설사 정체를 감추고 분쟁을 일으키더라도.

‘그게 전쟁까지 이어질 확률은 크게 줄어들겠지.’

탈리만 남작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탈리만 남작님, 용왕 이지용이 찾아왔습니다.”

“그놈이 직접?”

탈리만 남작이 얼굴을 찌푸렸다.

‘알 만하군.’

분명히 이번 작전 실패에 대한 질책을 하러 찾아온 것이리라.

‘건방진 놈.’

탈리만 남작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헛소리를 하면 버릇을 고쳐 주마.’

죽이지는 못하지만.

회복이 가능한 팔다리 한두 개 정도는 얼마든지 잘라 버릴 수 있었다.

덜컹!

“탈리만 남작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용왕 이지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작전이 실패한 것 말이냐? 그건 네놈들의 잘못이 크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놈들이 네놈들 영역에서 설치고 다닌단 말이냐?”

“그걸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중저 레벨 길드원들만 습격한 게 맞으시겠죠?”

“그렇다.”

“한데 왜 간부인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파티가 습격을 받았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오늘 고레벨 플레이어 파티 다섯 개가 전멸했습니다! 우리 용호길드가 보유하고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 전력의 2/3가 날아갔다는 말입니다!”

“그걸 왜 나한테 따지느냐? 설마 내가 그랬다고 생각하느냐?”

“그건 아닙니다만.”

사실 그럴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탈리만 남작만 용왕 이지용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게 아니다.

용왕 이지용 역시 탈리만 남작이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용왕 이지용은 사건이 터진 뒤 간부들을 소집해 회의를 했다.

간부들의 의견은 탈리만 남작의 짓이라는 의견과 다크 나이트의 짓이라는 의견으로 갈렸다.

하지만 간부들의 의견이 하나로 일치된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탈리만 남작이 우리 인간을 하찮은 벌레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거지.’

탈리만 남작은 확실한 계획 성공을 위해 용호길드의 고레벨 플레이어들 역시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인물이었다.

또 용호길드의 힘이 약해지면?

용왕 이지용과 용호길드는 더더욱 탈리만 남작과 도플갱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어리석은 놈. 다크 나이트들에게 대놓고 망신을 당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당했느냐.”

탈리만 남작은 이번 일을 다크 나이트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용왕 이지용이 이를 악물며 사과를 했다.

“그런데 다크 나이트에게 당한 건 탈리만 남작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계획 실패.

도플갱어들의 정체 발각.

이건 전적으로 탈리만 남작의 실책이었다.

탈리만 남작의 수하인 도플갱어들이 정체를 드러내지만 않았다면?

용호길드는 희생당한 길드원들의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를 공격할 수 있었다.

“오히려 탈리만 남작님 때문에 우리 용호길드가 큰 피해를 보고도 다크 나이트를 적대하거나 발해 길드와 고려 길드를 공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

다크 나이트의 공격이 도플갱어들의 소행으로 둔갑해 버렸으니까.

“지금 네놈 따위가 나를 질책하는 것이냐?”

탈리만 남작의 몸에서 농도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탈리만 남작의 전신에서 마력으로 위장한 마기가 넘실거렸다.

“질책하는 게 아니라, 용호길드의 입장을 설명한 것뿐입니다.”

용왕 이지용이 주먹을 꽉 움켜쥐며 억지로 화를 눌러 담았다.

마음 같아서는 탈리만 남작의 실책을 강하게 질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힘이 없는 게 죄지.’

그러나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분께 모두 고할 것이다.’

용왕 이지용의 계약자인 마계 백작에게 탈리만 남작의 실책을 알리면?

마계 백작이 자신을 대신해 합당한 처벌을 내려 주리라.

용왕 이지용은 마음속으로 칼을 갈며 훗날을 기약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칼을 가는 건 용왕 이지용만이 아니었다.

‘건방진 놈.’

탈리만 남작은 마족의 노예인 인간 주제에 자신에게 꼬박꼬박 대드는 용왕 이지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자기들이 약해서 생긴 일이거늘.’

용호길드의 플레이어들이 다크 나이트들을 무난히 제압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다크 나이트를 죽이거나 생포해 습격 사실을 사방에 알렸다면?

다크 나이트가 가지고 있는 대외적인 이미지가 큰 타격을 입었으리라.

탈리만 남작과 용왕 이지용은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서로 힘을 합쳐야 했다.

“내가 직접 나서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를 치겠다.”

탈리만 남작의 말에 용왕 이지용의 눈이 번뜩였다.

“직접 말씀이십니까?”

“그래, 대신 네놈 수하의 모습을 빌려야겠다.”

“무슨 생각인지 알겠습니다. 얼마든지 빌려드리죠.”

용왕 이지용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난 손해 볼 게 없어.’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세력이 약해지면?

용왕 이지용만 이득을 본다.

당연히 발해길드와 고려길드가 항의를 하겠지만.

‘그럼 도플갱어의 수작이라고 주장하면 그만이야.’

거짓말도 아니고 진실이니 조사를 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로크토 제국에서 도플갱어 토벌대를 만들어 테라 왕국으로 보냈다고 들었는데.’

탈리만 남작이 그들과 마주치면?

적잖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탈리만 남작이 당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와 충돌하는 것 자체가 손해였다.

왜냐하면 1차 토벌대를 쓰러트려 봤자.

‘더 강력한 2차 토벌대가 투입될 테니까.’

사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토벌대에게 적당한 규모의 희생양을 던져 주고 당분간 은신처에 틀어박혀 있는 거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각국의 정부와 플레이어들이 모든 도플갱어가 토벌되었다고 착각하면?

다시 비밀리에 활동을 재개하면 그만이다.

그게 용호길드 간부 회의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굳이 토벌대가 온다는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지.’

또 용호길드 간부 회의에서 나온 해결책을 탈리만 남작에게 알려 줄 필요도 없었다.

좋은 뜻으로 이야기해 줘 봐야.

‘쥐새끼처럼 숨어 있으라는 거냐며 난리 칠 게 뻔하니까.’

결국 자신의 말을 듣기야 하겠지만.

‘자존심이 잔뜩 상해 이런 상황을 만든 잘못을 나에게 뒤집어씌우겠지.’

오히려 이번에 된통 당하는 게 낫다.

그래야 좀 고분고분해질 테니까 말이다.

또 건방진 탈리만 남작에게 ‘빅엿’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

* * *

용왕 이지용이 용호길드의 길드 하우스로 복귀했다.

“역시 네 예상대로였다.”

용왕 이지용이 심복인 간부 박지훈에게 말했다.

“그럼 해결책을 알려 주지는 않으셨겠군요?”

간부 박지훈이 용왕 이지용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내가 왜 싫은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그놈을 돕는단 말이냐?”

“잘하셨습니다. 이번 기회에 탈리만 남작의 그 건방진 콧대를 꺾어 놔야 합니다.”

“그래야지. 차라리 탈리만 남작이 발해길드나 고려길드와 공멸해 버렸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볼까요? 토벌대에게 탈리만 남작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알린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됐다. 명색이 마계 귀족이다. 그 정도 전력에 당할 놈이 아니야. 그리고 괜히 우리가 뒤에서 수작을 부린 게 알려지면 큰일이다.”

“알겠습니다.”

“그냥 가만히 두고 봐. 탈리만 남작이 깨지든 발해길드와 고려길드가 깨지든 우리는 손해 볼 게 없으니까.”

“네.”

간부 박지훈이 공손히 대답하며 물러났다.

-머리가 없지는 않네.

간부 박지훈의 머릿속에 아쉽다는 듯한 강현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조금 더 설득해 볼까요?

간부 박지훈의 모습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가 강현수에게 물었다.

-아니, 괜히 더 해 봐야 역효과야. 지금까지는 무난하게 내 생각대로 움직였지만, 이 이상은 무리다.

너무 탈리만 남작에게 적대적인 모습만 보이면?

오히려 용왕 이지용이 용호길드 간부로 위장하고 있는 도플갱어 소환수들을 수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용왕 이지용은 약삭빠른 놈이야. 아무리 설득해도 넘어가지 않을 거다.

탈리만 남작에게 정보를 숨긴 건?

그냥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다.

더 좋은 해결책을 말하지 않은 건?

그런 생각을 못 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마족인 탈리만 남작의 정보를 적이라고 할 수 있는 토벌대에 넘기는 건?

빼도 박도 못하는 역적질이었다.

용왕 이지용이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네가 대신 해 줘야겠다.

-알겠습니다, 주군.

강현수의 명령을 받은 도플갱어 1호가.

하급 간부들에게 용왕 이지용의 명령이라며 탈리만 남작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토벌대에 알릴 것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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