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간계
플레이어는 마력을 사용하고 마족은 마기를 사용한다.
물론 그 근본을 따져 보면 마력이나 마기나 그 성질이 조금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종류의 힘이다.
마계의 대기에는 마력이 넘쳐 나고.
그 마력을 머금은 존재가 바로 몬스터와 마족이다.
단지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몬스터는 순수하게 마력 그 자체를 사용하고.
마족의 경우는 신체에 흡수된 마력이 심장을 통과하는 순간,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마기로 전환될 뿐이다.
또한 마기는 절망, 공포 같은 마이너스한 감정과 산 자의 피와 살을 흡수해 자신의 힘으로 삼는다.
쉽게 말해 범용성이 엄청나게 좋았다.
그러나 마기에도 단점 아닌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사용하는 마기의 양이 많으면 마기 특유의 파괴적인 기운이 고스란히 겉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물론 사용하는 마기의 양이 적으면?
마력과 큰 차이가 없어 사실상 구분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중하급 마족이 대부분인 도플갱어들은 정체를 감추고 활동하기 용이했다.
하지만.
상급이나 최상급만 되어도 힘의 사용에 제약을 받는다.
당연히 마계 귀족의 경우 그 제약이 월등히 크다.
특히 백작 이상의 고위 마족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마기가 뿜어져 나와 정체를 감추는 게 아예 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마계 귀족 중 최하위 서열인 탈리만 남작의 경우는 다행스럽게도 정체를 감추고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이 본래 가진 힘의 1할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그 정도로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마기를 사용하면?
‘정체가 드러나지.’
그건 용호길드가 마왕의 하수인이라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미친 짓인 것이다.
‘물론 마기를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힘을 보태 줘도 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 도움으로 다크 나이트, 발해길드, 고려길드를 상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너는 내가 무슨 종족인지 잊었느냐?”
“도플갱어 아닙니까?”
“그래, 우리 도플갱어 일족은 다른 자들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 특기다. 겉모습뿐 아니라 풍기는 기운까지 말이다. 다른 마계 귀족이었다면 본래 가진 마기의 1할만 사용해도 마기가 겉으로 드러나겠지만, 난 다르다. 최대 5할까지 사용해도 정체를 감출 수 있지.”
“아!”
용왕 이지용의 표정이 밝아졌다.
5할.
고작 절반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려 마계 귀족이 가진 힘의 절반이야.’
그 정도만 동원해도 네임드 플레이어나 랭커 플레이어 수십은 가볍게 썰어 버릴 수 있었다.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아니, 무조건 이길 수 있습니다.”
용왕 이지용이 승리를 확신했다.
“그럼 전쟁을 준비해라. 내가 너의 수하로 위장해 참가해 주마. 그리고 명분 역시 내가 알아서 만들어 주겠다.”
“명분은 어떤 식으로?”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을 동원해 용호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죽이겠다. 그 정도 손해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지?”
고작해야 중하위 레벨의 플레이어 몇 명이 죽는 것뿐이다.
“예, 물론입니다, 탈리만 남작님. 그 정도는 손해라고 할 수도 없죠.”
방금 전까지 속으로 탈리만 남작을 욕했던 용왕 이지용이 순식간에 태도를 180도 바꿨다.
마음속에 피어났던 의심도 사라졌다.
‘그래, 마족이 우리를 용호길드를 공격할 리가 없다. 다크 나이트의 짓이었던 게 확실해.’
“그럼 난 이만 가 보마.”
“살펴 가십시오.”
용왕 이지용이 고개를 깍듯이 숙이고 탈리만 남작을 배웅했다.
그리고 곧바로 용호길드의 간부들을 소집했다.
* * *
‘일이 꼬였네.’
도플갱어 1호를 통해 도플갱어의 수장 탈리만 남작과 용호길드의 길드 마스터 용왕 이지용의 대화를 고스란히 전해 들은 강현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틈은 있어.’
탈리만 남작의 힘이 필요한 용왕 이지용이 마지막에 꼬리를 내리기는 했지만.
‘분명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탐탁지 않아 했어.’
탈리만 남작에게 있어 마족과 계약한 인간은.
‘마족의 노예에 불과한 존재지.’
그런 비천한 존재가 마계 귀족인 자신과 맞먹으려 하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용왕 이지용은 탈리만 남작이 마계 귀족이기는 하지만.
‘자기 상급자라고 생각하지 않지.’
오히려 대등한 존재로 생각하는 듯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용왕 이지용은 아틀란티스 차원에서는 왕이 부럽지 않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권력자이고.
고위 마계 귀족과 계약을 맺은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
‘그럼 탈리만 남작이나 자신이나 결국 고위 귀족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하급자일 뿐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아.’
탈리만 남작은 용왕 이지용을 노예 취급하고.
용왕 이지용은 탈리만 남작을 자신과 동급으로 생각한다.
‘이건 충분히 이용할 수 있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에 애써 봉합되기는 했지만.
‘신뢰할 수 없는 아군은 적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줘야지.’
강현수가 다시금 용호길드가 자리 잡은 대도시 베슬퍼실로 향했다.
* * *
공간 이동 게이트를 통해 대도시 베슬퍼실에 도착한 강현수가 근처에 위치한 고레벨 사냥터로 향했다.
‘여기 있다고 했는데.’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가 보고한 내용이니 확실했다.
강현수가 열심히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찾아다녔다.
잠시 후.
‘찾았다.’
얼마 가지 않아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 파티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확실하네.’
도플갱어 1호의 보고대로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 파티는 전원 간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용호길드의 간부라는 건?
마족과 계약을 맺은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뜻이다.
‘전쟁 명분을 쌓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고 싶다 이거지? 내가 대신 만들어 주마.’
그러나 희생되는 이들은 힘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용호길드의 중하위 레벨 플레이어들이 아니라.
‘인류를 배신한 네놈들이 될 거다.’
강현수가 소환수들을 소환했다.
소환수들은 전원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마크를 달고 있었다.
-죽여라.
강현수가 소환수들에게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검을 뽑아 들고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강현수의 뒤를 따라.
콰콰콰콰콰!
소환수들이 폭발적인 오러를 뿜어내며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습격이다!”
“막아!”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놈들의 습격이다!”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반응했다.
그리고 기습을 받았음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여유롭게 전투준비를 했다.
왜냐하면.
이 습격이 실제 상황이 아니라 주변에 보여 주기 위한 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가 적당히 떡밥을 뿌려 놨기 때문이다.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이 중하위 레벨 플레이어들을 공격해 죽임으로써 명분 쌓기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고레벨 플레이어들도 함께 공격할 수도 있다.
-그저 명분을 쌓기 위해 벌이는 일이니 아마 적당히 싸우는 척만 하면 끝날 거다.
-공격력은 약하지만 최대한 화려한 스킬들을 사용해 전투를 치르는 시늉만 해라.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가 날린 떡밥에 용왕 이지용도 동의를 했고.
같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간부들에게 그 사실을 전파했다.
‘그러니 긴장 따위를 할 리가 없지.’
미리 습격당할 거라는 사실도 예측하고 있었고.
그저 주변에 보여 주기 위한 쇼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겉보기에만 화려하고 실속은 하나도 없는 스킬들을 사용하며 치열한 전투를 하는 시늉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꽈아아앙!
이건 보여 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
“커억!”
“뭐야?”
“진수가 죽었어!”
강현수가 휘두른 검에 두 명의 고레벨 플레이어가 목숨을 잃었다.
강현수의 뒤를 이어 소환수들 역시 전력을 다해 맹공을 퍼부었다.
“막아!”
“죽여!”
뒤늦게 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반격에 나섰지만.
“커어억!”
“아아악!”
강현수와 소환수들의 합공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 파티가 전멸했다.
“뭐야? 저거 발해길드랑 고려길드 마크잖아?”
“지금 발해길드원과 고려길드원이 힘을 합쳐서 용호길드원을 죽였어.”
충돌 소리를 듣고 몰려온 중소 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강현수의 소환수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중에는.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알아서 찾아와 줬네.’
강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고.
그 뒤를 따라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로 위장한 소환수들이 고레벨 플레이어들에게 공격을 시작했다.
“이런 미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용호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꽈앙! 꽈앙! 꽈앙!
핏빛 오러에 휩싸인 강현수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오러가 흩어지고 방어 스킬이 분쇄되었다.
결국 두 번째로 등장한 용호길드의 고레벨 플레이어들도 순식간에 전멸했다.
“너희들도 용호길드 편을 들 생각인가?”
강현수의 물음에.
“아, 아닙니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주변에 몰려 있던 중소 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제법 쓸 만한 놈들이 있네. 여단 구성.’
강현수는 죽은 용호길드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소환수로 만든 후.
-가자.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 * *
탈리만 남작 휘하에 있는 도플갱어들은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하고 대도시 베슬퍼실 근처에 있는 중저 레벨 플레이어들의 사냥터로 향했다.
그들의 목적은 용호길드 소속 중저 레벨 플레이어 파티 하나를 전멸시키는 것이었다.
‘여기 있었구나.’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이 용호길드 소속 중저 레벨 플레이어 파티를 발견했다.
“저놈들 뭐야?”
“발해길드랑 고려길드 놈들이잖아?”
용호길드 소속 중저 레벨 플레이어 파티가 당황한 표정으로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을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관객이 없군.’
관객이 있었다면?
바로 죽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관객이 없으면?
‘적당히 시간을 끌면서 소란을 일으켜야겠군.’
관객을 끌어모아야 했다.
“죽여!”
-소란을 일으키며 적당히 시간을 끌어라.
우두머리 도플갱어가 휘하 도플갱어들에게 가짜 명령과 진짜 명령을 동시에 내렸고.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이 용호길드 소속 중저 레벨 플레이어 파티에게 공격을 가했다.
“막아!”
“지원 요청해!”
피우우웅!
용호길드 소속 중저 레벨 플레이어 파티가 신호탄을 터트리고 최대한 버티기에 들어갔다.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은 느긋하게 용호길드 소속 중저 레벨 플레이어 파티를 압박하며 시간을 끌었다.
“뭐야? 싸움?”
“저건 발해길드랑 고려길드 마크잖아.”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용호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공격하고 있어.”
소란이 일어나자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 파티들이 몰려들었다.
‘관객들이 모였구나.’
우두머리 도플갱어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이제 죽여라.
우두머리 도플갱어의 명령이 떨어지자.
콰콰콰콰!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이 전심전력을 다해 맹공을 퍼부었다.
꽈아앙! 꽈아앙!
강력한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오며 용호길드 소속 중저 레벨 플레이어 파티의 방어진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제 끝장이다.’
우두머리 도플갱어가 검을 휘둘러 용호길드 소속 중저 레벨 플레이어의 숨통을 끊으려는 순간.
서걱!
좌측에서 날아온 한 줄기의 핏빛 오러가 우두머리 도플갱어의 팔을 잘라 냈다.
“크윽!”
당황한 우두머리 도플갱어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 우두머리 도플갱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전신을 칠흑빛 갑주로 감싼 강현수와 소환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