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군왕 신창후의 비밀 (3)
‘뭐지? 이렇게 쉽게 수락한다고?’
검왕 장석원 못지않게 강현수도 적잖이 놀랐다.
인의군왕 신창후가 이렇게 시원스럽게 수락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고유 스킬 레플리카 – SS랭크를 사용합니다.]
[스택 하나가 소모됩니다.]
[선택 예지 – EX랭크의 레플리카를 만듭니다.]
[레플리카 선택 예지 – F랭크가 생성되었습니다.]
[레플리카 스킬은 원본의 200%의 능력치를 갖습니다.]
‘선택 예지?’
스킬 증폭을 얻기 위한 시도 중에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스킬이 레플리카로 복사되었다.
‘예지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스킬은 미래 예지만 있는 게 아니었나?’
강현수가 화들짝 놀라 선택 예지의 정보를 확인했다.
[선택 예지 – F랭크]
-유일 패시브 스킬
-레플리카 스킬입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두 가지 미래를 보여 줍니다.
-영구 스택 : 0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두 가지 미래를 보여 준다고?’
미래 예지와 비슷한 스킬이었다.
‘랜덤성이 강하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미래 예지는 액티브 스킬이지.’
반면 선택 예지는 패시브 스킬이다.
결정적으로 영구 스택이 마음에 걸렸다.
스택은 일반적으로 충전되기 마련이지만.
‘영구 스택은 사용하면 그대로 소멸해 버리겠지.’
이러면 강현수는 선택 예지를 사용할 수 없고 당연히 랭크를 올릴 수도 없다.
왜?
스택이 처음부터 0개였으니까.
‘아마 EX랭크 스킬북을 습득해 얻은 스킬이겠지. 스택도 몇 개 되지 않았을 거고.’
그런 스킬을 레플리카를 통해 강제로 F랭크로 만들었으니.
이런 엉망진창의 결과가 나온 것이리라.
‘레플리카 스킬 랭크가 더 성장한다면 달라질까?’
아무리 성장해도 힘들 것 같았다.
레플리카 스킬이 200% 강화되었는데도 스택이 0개라면?
300% 되어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이런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니.’
개인의 강함만으로 정도를 추구하며 고려길드라는 거대 길드를 만든 게 아니었다.
‘선택 예지 스킬의 힘이 컸겠지.’
중요한 기로가 올 때.
자신의 선택에 따른 두 가지 미래를 보여 준다.
말 그대로.
‘사기 스킬이네.’
하지만 회귀 전 인의군왕 신창후는 힘없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죽었다.
‘스택이 바닥나서 자신이 죽는 미래를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힘없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일 수도 있다.
강현수가 인의군왕 신창후를 바라봤다.
‘선택 예지 스킬이 발동해서 다크 나이트에 소속되는 미래와 소속되지 않는 미래를 본 건가?’
두 가지 미래 중에 다크 나이트에 소속되는 미래가 더 밝았다면?
인의군왕 신창후의 빠른 선택이 이해가 갔다.
그러나.
“영감, 노망난 거야?”
그건 선택 예지 스킬의 존재를 알고 있는 강현수의 경우였고.
그걸 전혀 모르는 검왕 장석원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일일 뿐이었다.
“미친 것도 아니고 노망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일을 그렇게 쉽게 결정한다고?”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일이야. 다크 나이트에 소속된다고 해서 강제로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어렵게 생각할 일이 뭐가 있나?”
인의군왕 신창후의 말에 검왕 장석원은 기가 찼다.
고려길드가 어떤 길드인가?
테라 왕국을 대표하는 3대 길드 중 하나다.
그런 초거대 길드가.
‘정체도 제대로 모르는 암중 세력 다크 나이트 밑으로 들어간다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고려길드가 다크 나이트 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길드 마스터인 인의군왕 신창후 개인이 들어가는 거였지만.
인의군왕 신창후가 길드원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임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동맹을 맺는 거랑 밑으로 들어가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야. 지시를 거부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고!”
“난 결정을 내렸다.”
검왕 장석원의 말에도 인의군왕 신창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뭔데? 정말 단순히 강해지고 싶기 때문이야?”
“고려길드의 존속과 생존을 위해서다.”
“다크 나이트에 들어가지 않으면 고려길드가 망하기라도 해?”
검왕 장석원의 물음에.
“그럴지도 모르지.”
인의군왕 신창후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돌겠네.”
검왕 장석원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저 영감탱이가 저렇게 나올 때 반대로 가면 꼭 안 좋은 결과가 나오는데.’
검왕 장석원은 발해길드와 고려길드가 이웃사촌인 관계로 좋든 싫든 오랜 시간을 인의군왕 신창후와 함께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공공의 적을 막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친 적도 있었고 이권 때문에 다툰 적도 있다.
그러나 항상 중요한 기로에서 의견이 갈리면?
‘나만 손해를 봤단 말이지.’
그중에는 발해길드의 존속이 위험할 정도의 큰 사건도 하나 포함되어 있었다.
그 후.
검왕 장석원은 웬만하면 인의군왕 신창후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잘 생각해서 결정하게. 아까 나한테 자네 입으로 말했지, 다크 나이트가 길드의 멸망을 막아 준 은인이라고? 마왕군의 침공은 앞으로 더 빈번해질 수밖에 없네. 이번 일은 그 시작에 지나지 않지. 다크 나이트의 도움 없이 그 수많은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동맹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인가?”
“최소한의 대안은 되겠지만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
“끄응.”
검왕 장석원이 머리를 감싸 쥐고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전 다크 나이트 소속이 되겠습니다. 입단 절차를 진행해 주십시오.”
인의군왕 신창후의 말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도기사를 대대장에서 해임한 후 지휘관 임명 스킬을 시전했다.
[플레이어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인의군왕 신창후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예를 선택했다.
화아악!
[대대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모든 스텟이 15% 증가합니다.]
‘지휘관의 축복.’
강현수가 A랭크인 지휘관의 축복까지 사용하자.
[지휘관의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모든 스텟이 25% 증가합니다.]
인의군왕 신창후의 스텟이 총 40% 증가했다.
사아아악!
인의군왕 신창후의 몸에서 제어되지 않은 마력이 뿜어져 나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어때?
강현수가 의지로 물었고.
-예상은 했지만.
“정말 놀랍군요.”
인의군왕 신창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의지와 말을 섞어서 대답했다.
‘미친, 진짜였어.’
반면 검왕 장석원은 기겁했다.
‘괴물이 더 괴물이 됐잖아.’
인의군왕 신창후가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검왕 장석원의 피부를 따끔거리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때.
“저도 휘하 길드원들의 스텟을 영구적으로 강화시켜 줄 수 있군요.”
“믿을 만한 이들에게 시전하면 좋을 거다, 대가는 내가 치를 터이니. 물론 사전에 나에게 보고를 해야 되겠지만.”
강현수의 말투가 바뀌었다.
“주군께 송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인의군왕 신창후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자기만 강해지는 게 끝이 아니라고? 이런 망할!’
그 대화를 들은 검왕 장석원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안 그래도 괴물 같던 영감탱이가.
진짜 괴물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길드원들까지 강해진다고?’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는 대등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길드 마스터인 검왕 장석원의 실력이 인의군왕 신창후에게 한 끗발 차이로 밀리기는 했지만.
보유한 랭커 플레이어의 숫자는 발해길드가 더 많았다.
한데 인의군왕 신창후가 더 강해지고 길드 소속 랭커 플레이어들까지 강해진다면?
‘힘의 균형이 깨진다.’
동맹이든 협력 관계든 힘의 균형이 맞아야 유지가 가능하다.
검왕 장석원은 다크 나이트와 동맹을 맺은 뒤 인의군왕 신창후와 힘을 합칠 생각이었다.
그럼 대충 힘의 균형이 맞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데 인의군왕 신창후가 제대로 뒤통수를 쳐 버렸다.
자칫 잘못하면?
‘다크 나이트와 고려길드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어.’
말이 동맹이지 사실상 하부 조직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현대사회에도 그런 경우가 만연하지 않은가?
친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하 관계.
동료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하 관계.
동맹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하 관계.
‘그렇다고 다크 나이트 밑으로 들어가면 상하 관계가 확정되는 건데.’
절대적이지 않다고는 하지만.
정말 부당한 지시가 아니라면?
상사가 까라는데 부하 직원이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고민이 많은가 보네.’
사실 이게 당연한 거고.
‘인의군왕 신창후의 경우가 특이했던 거지.’
송하나나 투황처럼 오랜 시간 친분을 쌓아 온 것도 아니고.
황금 군주 사에마알이나 암왕 세실리아처럼 절박한 것도 아니다.
거기다 이반 야멜리코넨처럼 호구도 아니니.
사실 제안은 했지만.
‘곧바로 수락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밑밥을 깔아 놓은 것뿐이다.
그래야 정말 힘이 필요한 절박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한 말을 떠올릴 테니까.’
한데 인의군왕 신창후의 결정 덕분이 일이 쉬워졌다.
거기다.
-주군,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인의군왕 신창후가 먼저 나섰다.
-가능하겠어?
-제 스킬을 보여 줄 생각입니다.
-무슨 스킬?
-선택 예지라는 스킬인데, 제가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준 녀석입니다.
-예지 스킬인가 보군.
-예, 제가 선택한 미래와 선택하지 않은 미래를 보여 줍니다. 하지만 이제 아쉽게도 그 효용이 다했습니다.
-다크 나이트에 들어온다는 선택을 했을 때 본 미래가 뭐지?
-생존입니다.
-들어오지 않았을 때의 선택지는?
-죽음이었죠.
‘그랬구나.’
설사 휘하로 들어오지 않더라도 동맹으로 지켜 주고 챙겨 줄 생각이었다.
인의군왕 신창후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정도로는.
‘회귀 전에 맞이했던 죽음을 비틀 수 없었던 모양이군.’
그럴 만도 했다.
앞으로 점점 거세질 마왕군의 침공은.
‘아틀란티스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 정도로 강력하니까.’
이제 겨우 첫 번째를 막았고.
두 번째를 막고 있는 중일 뿐이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인의군왕 신창후의 말에.
“좋아.”
검왕 장석원이 따라나섰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인의군왕 신창후와 검왕 장석원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저도 다크 나이트에 들어가겠습니다.”
검왕 장석원이 결국 결정을 내렸다.
인의군왕 신창후의 설득이 통한 것이다.
‘단순히 스킬을 보여 줬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그간 인의군왕 신창후가 보여 준 삶의 흔적들이.
검왕 장석원을 설득시켜 주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신뢰가 꽤 두터웠구나.’
놀라울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회귀 전 검왕 장석원의 목을 벤 사람이.
‘인의군왕 신창후였으니까.’
대머리 영감이라고 놀리는 것부터.
강현수를 따라 수하들 없이 홀로 경쟁 상대라고 할 수 있는 고려길드의 길드 하우스로 찾아온 것까지.
두 사람의 사이가 강현수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각별했던 모양이다.
‘회귀 전에는 도플갱어들의 수작질에 원수지간이 되어 버렸지만.’
이제 그런 미래는 없다.
도플갱어의 수작질을 원천 봉쇄하기도 했고.
또 다른 오해가 생기더라도.
‘내가 풀어 줄 수 있어.’
애초에 둘 모두 강현수의 휘하에 들어온 이상.
서로가 서로를 적대할 일은 없을 것이다.
‘좋네.’
회귀 전 목숨을 잃었던 두 사람의 운명을 뒤틀었다는 사실이.
참 기분 좋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