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군왕 신창후의 비밀 (2)
다크 나이트는 마왕군과의 전투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사실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들이나 그들이 만든 길드 역시 원초적으로는 마왕군과의 전투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소극적인 경우가 많지.’
거기다 자원한 것도 아니고 강제로 끌려온 처지다.
강제 징집해 놓고 목숨 걸고 마왕군과 싸워 아틀란티스 차원을 지키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지.’
보상으로 지구로 귀환시켜 준다고는 하지만.
‘그건 보상이라고 할 수 없지.’
강제로 끌고 와서 강제로 부려 먹었다.
그러는 와중에 죽은 사람도 있고 다친 사람도 있다.
그럼 양심적으로 일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은 돌려보내 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상황이 이러니 당연히 플레이어들은 마왕군과 싸워 아틀란티스 차원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지.’
플레이어들이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힘이 전부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힘이 필요했다.
최소한의 생존이라는 조건이 충족되면?
아틀란티스 차원에서의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몬스터를 사냥한다.
강함에 대한 욕망과 권력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사냥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마왕군과의 전쟁을 대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만족감을 위해서다.
‘마왕군과 싸우는 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원해서 한 선택이 아니야.’
상황이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길드들은 조직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아.’
그건 발해길드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인의군왕 신창후가 말 몇 마디로.
‘검왕 장석원을 낚아 버렸어.’
이미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었고.
플레이어들의 존재 이유에도 적합하니.
‘철회할 수는 없겠지.’
인의군왕 신창후가 거침없이 영혼의 계약서를 작성해 나갔다.
내용은 간단했다.
마왕군과의 전쟁이 벌어지면 전력을 다해 다크 나이트를 돕는다.
말로 하는 건 쉽다.
막상 상황이 닥치면?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얼마든지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영혼의 계약서를 작성하는 순간.
‘빼도 박도 못하지.’
살고 싶다면.
무조건 계약서의 내용을 지켜야 했다.
“자, 어서 서명하시게.”
인의군왕 신창후가 검왕 장석원에게 영혼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크윽!”
검왕 장석원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이대로 사인하면 나만 손해야.’
자기가 나라의 녹을 먹는 군인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데 왜 최전선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
“몇 가지 사항을 수정했으면 합니다.”
결국 검왕 장석원이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했다.
“어떤 부분을 말이지?”
강현수가 검왕 장석원에게 물었다.
“일단 우리끼리 똘똘 뭉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 단순한 협력 관계보다는 동맹을 맺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검왕 장석원이 생각할 때 이런 협력 관계는 결국 손해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맹을 맺게 되면?
‘필요할 때 다크 나이트와 고려길드의 무력을 빌릴 수 있어.’
그럼 손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아니, 그 점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오히려 더 큰 이득을 볼 수도 있다.’
피할 수 없다면?
내줄 건 내주고 가지고 올 건 가지고 와야 했다.
“오호, 동맹이라.”
인의군왕 신창후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고.
‘아주 좋아.’
강현수도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터트렸다.
‘애초에 동맹을 맺고 싶었는데.’
그게 힘들 것 같아 일단은 부분적인 협력 관계로 가려고 했다.
한데 가장 까다로운 상대일 것 같은 검왕 장석원이 먼저 동맹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속셈인지는 대충 이해가 가네.’
하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는 테라 왕국 3대 길드다.
이 둘이 힘을 합치고 강현수가 돕는다면?
‘테라 왕국 최강의 연합 길드가 될 수도 있다.’
그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테라 왕국에 존재하는 또 다른 3대 길드 중 하나는.
‘어차피 쳐서 없애야 하는 대상이니까.’
용호길드.
길드 마스터인 용왕 이지용과 부길드 마스터 호왕 이근택이 힘을 합쳐 만든 길드로, 규모 자체는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같은 3대 길드라고는 하지만 발해길드와 고려길드가 힘을 합쳐야 대등해질 정도로 규모 차이가 크지.’
사실상 테라 왕국 최강의 길드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길드 수뇌부가 마족과 계약을 했지.’
카발길드와 비슷한 케이스였다.
단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길드원 전원이 마족과 계약한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간부들만 계약을 했다.
또한.
‘카발길드처럼 이미지 작업을 하지는 않았지.’
오히려 용호길드의 성향은 평소에도 매우 공격적이었다.
그래서 훗날 정체가 드러난 후에도.
‘저놈들 저럴 줄 알았다는 평가가 매우 많았어.’
정체가 드러난 시점도 카발길드보다 월등히 빨랐고 말이다.
전면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계속해서 수상한 행동을 했고.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기 직전에.
‘아군의 뒤통수를 치고 마왕군에 합류했지.’
용호길드의 길드원들은?
마족과 계약한 고위 간부들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산 제물로 희생되었다.
‘용호길드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세력이 커진다.’
원래도 거대했지만.
도플갱어 군단의 침공으로 수많은 길드가 몰락하고 테라 왕국이 무너지는 걸 기회로 삼아.
‘소속 길드를 잃은 플레이어들과 망국의 병사가 된 테라 왕국군 출신 플레이어들을 흡수해 힘을 키웠지.’
전성기 당시 용호길드의 군사력은 가히 일국에 비견할 만했다.
‘그때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지.’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훗날 용호길드의 정체가 밝혀지자.
‘그제야 도플갱어 군단이 용호길드를 도와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도 용호길드는 분명 도플갱어 군단과 협력하고 있을 터였다.
‘카발길드와 용호길드는 경우가 달라.’
길드원 전원을 제거해야 했던 카발길드와 달리.
용호길드는 수뇌부만 제거하면 그만이다.
‘용호길드가 무너지면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세상이다.’
여기에 용호길드가 와해된 후 프리가 된 플레이어들을 발해길드와 고려길드가 흡수하면?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연합은 테라 왕국 정부도 쉽게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보유하게 된다.
그렇게 강력해진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연합이 강현수의 지시대로 움직여 준다면?
‘테라 왕국 전체를 통째로 손아귀 안에 넣을 수도 있어.’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과 고려길드의 길드 마스터 인의군왕 신창후가.
‘내 휘하로 들어와야 해.’
동맹 관계도 나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게 좋지.’
강현수가 용호길드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이렇게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검왕 장석원은 동맹의 장점에 대해 열변을 토해 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검왕 장석원이 강현수에게 물었다.
“좋네.”
“하하하, 그럼 당장 영혼의 계약서 문구부터 수정하시죠.”
검왕 장석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펜을 들었다.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뭡니까?”
“더 강해지고 싶지 않아?”
강현수의 물음에 검왕 장석원과 인의군왕 신창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정확히 무슨 말씀이십니까?”
질문은 검왕 장석원에게 했는데 대답을 요구하는 건 인의군왕 신창후가 먼저였다.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더 강해지고 싶지 않으십니까?”
“레벨 업을 말씀하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저 두 사람의 레벨이 얼마일 것 같으십니까?”
강현수가 지금까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던 송하나와 투황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규모 도플갱어 무리의 습격을 단둘이서 막아 냈다고 들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대략 1100~1200레벨 정도는 될 거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인의군왕 신창후의 말에.
“레벨 상태창만 오픈해 줄 수 있어?”
강현수가 송하나와 투황에게 물었다.
“알았어.”
“뭐, 그 정도쯤이야.”
송하나와 투황이 레벨 상태창을 오픈했다.
플레이어 레벨 : [801]
플레이어 레벨 : [821]
송하나의 레벨이 801이었고.
투황의 레벨이 821이었다.
“허어.”
인의군왕 신창후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그건.
검왕 장석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감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는데.’
인의군왕 신창후는 분명 저 둘이 도플갱어 무리의 대규모 습격을 막아 냈다고 말했다.
그럼 그건 사실일 것이다.
더군다나 인의군왕 신창후는 플레이어 보는 눈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거기다.
‘내가 보기에도 저 둘의 실력은 아까 봤던 자들 못지않아. 그런데 고작 800레벨 초반이라고?’
800레벨 초반대의 플레이어들은 귀하다.
또 어디 가서 당당하게 목에 힘을 주고 다닐 정도의 뛰어난 실력자다.
하지만.
‘네임드 플레이어와 비교할 수는 없지.’
한데 저 두 사람의 전력은 최상위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 수준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상태창 레벨을 두 눈을 직접 봤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에게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스텟을 상승시켜 줄 수 있는 스킬이 있습니다.”
강현수의 말에 검왕 장석원과 인의군왕 신창후가 눈을 부릅떴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일시적인 버프는 아닌 것 같군요. 영구적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스텟이 얼마나 상승합니까?”
“최소 모든 스텟 40%입니다. 앞으로 계속 상승할 예정이고요.”
“놀랍군요. 하면 그 영구적인 버프를 받는 대가는 무엇입니까?”
당연히 공짜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인의군왕 신창후의 물음에 강현수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가 아니야.’
그 누구보다도 현실적이면서도.
‘인의를 행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크 나이트 소속이 되어야 합니다. 탈퇴도 불가능하고요.”
강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탈퇴하면 페널티가 있는 겁니까?”
검왕 장석원이 물었다.
“페널티라고 할 것도 없지. 한번 소속되면 자의든 타의든 탈퇴가 아예 불가능하니까.”
“하면 다크 나이트로서 해야 할 의무 같은 게 있습니까?”
“내 지시를 따라야 한다.”
강현수의 말에 검왕 장석원이 입을 다물었다.
최소 40%.
탐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니, 미친 듯이 탐이 났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강현수의 멱살을 잡고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아이템과 스킬을 통해 스텟을 올리는 건 가능하지만.
40%는 SSS랭크 아이템은 되어야 가능한 수치였다.
거기다.
‘모든 스텟이라고 했어.’
모든 스텟을 영구적으로 올려 주는 아이템이나 스킬은 무척이나 희귀했다.
대부분은 스텟 중 몇 개를 올려 주는 식이다.
‘업적이 스텟을 올려 주기는 하지만.’
그건 퍼센트가 아니라 고정값이었다.
‘EX랭크 업적도 모든 스텟 50이 한계야.’
현재 검왕 장석원의 레벨은 1300이 넘었고.
스텟의 총합은 15,000이 넘었다.
모든 스텟이 40% 증가한다면?
‘스텟의 총합이 6,000이나 증가한다.’
말로 듣고도 믿기 힘든 수준의 증가치였다.
단숨에 600레벨이 상승한 것과 같은 스텟을 얻게 된다는 말 아니겠는가?
당장 수락하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참아야 한다.’
억지로 꾹 눌렀다.
‘난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야.’
그런 자신이 다크 나이트 밑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발해길드가 다크 나이트의 하위 조직이 될 수도 있어.’
자신과 길드의 명운이 달려 있는 중차대한 일인 것이다.
“그 지시는 절대적입니까?”
인의군왕 신창후가 강현수에게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수락할지 거절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 받아들이겠습니다.”
인의군왕 신창후가 시원스럽게 대답했고.
“영감, 미쳤어?”
검왕 장석원은 경악한 표정으로 인의군왕 신창후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