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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 없는 후원 (2)

‘좀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명색이 EX랭크 아이템이고.

마족 전용 아이템인 만큼.

검왕 장석원이 그 가치를 꽤 높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분위기를 잡고 내놓으라고 쪼아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알아서 가져다 바칠 줄이야.’

강현수 입장에서는 당연히.

‘개꿀이지.’

하지만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내가 보기에 수십 수백억 골드의 값어치를 할 것 같지는 않은데? 높게 잡아 봐야 1억 골드 미만 아닌가?”

“명색이 EX랭크 아이템입니다! 거기다 대마족 전용 병기죠! 아무리 낮게 잡아도 최소한 3억 골드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마왕군과의 전투가 잦은 다크 나이트 입장에서는 10억 골드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현수의 말에 검왕 장석원이 열변을 토했다.

여신의 눈물 하나로 퉁 치려고 했는데.

강현수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마왕군과의 싸움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 외의 상황에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말 아닌가?”

시큰둥하기까지 한 강현수의 태도에.

“그러니 다크 나이트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최고의 아이템 아닙니까? 여신의 눈물이 가진 가치는 무조건 10억 골드 이상입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검왕 장석원이 결연한 표정으로 여신의 눈물을 어필했다.

“뭐, 그렇기는 하지.”

“그럼 제발 받아 주십시오.”

검왕 장석원이 제발 받아 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강현수에게 애원했다.

‘대충 짐작이 가네.’

지금 현재 검왕 장석원의 속마음은?

-제발 이거 먹고 떨어져라, 제발! 10억 골드 이상의 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받아 놓고 염치없이 다른 것도 가지고 가지는 않을 거지?

정도이지 않을까?

‘이쯤 할까.’

휘하에 포섭할 계획인 검왕 장석원을 너무 핀치에 몰아넣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애초에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고.’

강현수가 잠시 고민하다 수락하려는 찰나.

“또 제가 추가로 1억 골드를 다크 나이트를 위한 후원금으로 내놓겠습니다.”

검왕 장석원이 돈 보따리까지 열었다.

‘아이템을 더 가지고 가는 게 어지간히 무섭나 보네.’

사실 당연했다.

돈은 벌면 그만이지만.

‘S랭크 아이템부터는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지.’

편의상 ‘몇천만 골드의 가치가 있다.’, ‘몇억 골드의 가치가 있다.’ 하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정말 돈이 급한 경우가 아니면 S랭크 이상의 아이템을 판매하지 않지.’

그저 길드 내부에서 돌릴 뿐.

절대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다.

길드가 망하기 직전인 상황이라면 모를까.

“고맙네. 그럼 이만 밖으로 가지.”

강현수의 말에 검왕 장석원의 표정이 환해졌다.

발해길드의 아이템 창고가 통째로 털릴 위기 상황을 모면한 것이다.

-현수야, 이야기 잘 끝났어. 거기는 어때?

발해길드의 아이템 창고를 나서는 강현수의 머릿속으로 송하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도 잘 끝났어. 무력시위가 필요한 상황은 없었지?

있었다면 송하나가 요청을 했을 것이고.

강현수도 대대장급 소환수 열 기를 투입했을 것이다.

-없었어. 엄청 친절하던데.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였어. 후원금도 2억 골드나 받았어.

-다행이네. 무슨 일 있으면 곧바로 연락해.

-알았어.

송하나와의 대화를 끝마친 강현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고려길드의 길드 마스터 신창후는 여전하구나.’

발해길드와 마찬가지로 테라 왕국의 3대 길드 중 하나인 고려길드 마스터 인의군왕 신창후.

‘성품이 의롭기로 유명했지.’

괜히 인의군왕이라는 칭호가 붙은 게 아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 자체가 어질고 올곧았다.

강현수가 굳이 고려길드에 송하나와 투황만 보낸 이유는.

고려길드의 길드 마스터 인의군왕 신창후의 인격을 믿었기 때문이다.

인의군왕 신창후를 싫어하는 이들은 그저 인심을 얻기 위한 연기일 뿐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그건 결코 연기가 아니었다.

‘회귀 전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약자들을 지킨 사람이었으니까.’

인의군왕 신창후는 만인이 존경할 만한 인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또한.

그런 성품을 가지고 있음에도 강자존의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고려길드라는 거대 길드를 키워 낼 만큼.

‘압도적으로 강하지.’

물론 인의군왕 신창후가 신, 황, 존, 제, 성급의 칭호를 가진 최상위권 네임드 플레이어들을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 중 하위권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지.’

이기는 건 무리라도 비기는 건 가능해 보였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자국에서는 무란의 수호성이라고 불리고 타국에서는 무란의 수호자라고 불렸던 칼무스 공작과 비슷한 수준이지.’

왕급 칭호를 가진 자들 중에서는 최강자라는 뜻이었다.

‘내가 꼭 얻어야 하는 스킬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지금의 인의군왕 신창후를 만들어 준 고유 스킬.

‘스킬 증폭.’

보유한 모든 스킬의 위력을 대폭 올려 주는 사기 스킬.

‘어떻게 보면 레플리카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

레플리카는 F랭크일 때는 본래 위력의 10%밖에 발휘하지 못하지만.

EX랭크로 성장하면?

‘모든 레플리카 스킬의 위력이 300% 증가한다.’

보유 스킬의 위력을 상승시켜 준다는 점에서 레플리카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레플리카는 레플리카 스킬 한정이야.’

반면 스킬 증폭은?

‘보유한 모든 스킬의 위력이 증가한다.’

스킬 증폭을 레플리카로 만들면?

‘이중 증폭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야.’

레플리카로 증폭된 스킬 증폭이 다시금 모든 보유 스킬을 증폭시킨다.

‘스킬 증폭의 상승치가 얼마나 되느냐가 관건인데.’

일반적으로 강화형 스킬은 F랭크가 1%고 EX랭크가 45%다.

그러나 레플리카 같은 규격 외 스킬은?

‘10%~300%지.’

스킬 증폭이 일반적인 스킬일 리가 없다.

그랬다면?

‘인의군왕 신창후가 지금의 위치에 서지 못했을 테니까.’

만약 스킬 증폭이 규격 외 스킬인 레플리카와 같은 성장 폭을 가지고 있다면?

‘EX랭크로 성장하면 모든 스킬의 위력이 300% 증가한다.’

여기에 레플리카로 증폭되는 수치까지 합치면?

‘900%.’

레플리카와 스킬 증폭이 EX랭크로 성장하면 나오는 수치다.

‘EX랭크 스킬 증폭이 다시 EX랭크 레플리카의 위력을 증폭시켜 주고 그 후에 EX랭크 레플리카가 다시 EX랭크 스킬 증폭을 강화시켜 주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럼 사실상 무한 성장이니까.’

강화가 도돌이표처럼 이어지면?

스킬 위력이 900%가 아니라 100조%, 1,000조% 이상 강화되어 버린다.

그럼?

‘마왕도 스킬 한 방에 때려잡겠지.’

가이아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그런 힘을 부여해 줄 수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겠지.

‘일단 신창후를 만나 스킬 증폭부터 손에 넣자.’

또 운 좋게 인의군왕 신창후를 휘하에 거둘 수 있다면?

강현수의 전력 역시 엄청나게 증가하는 꼴이 된다.

‘뭐, 그게 아니라 우호적인 관계만 맺어도 좋고.’

물론 그 전에.

“길드원을 전원 소집했습니다.”

“검사를 시작하죠.”

발해길드의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지만 말이다.

치이이익!

“도플갱어다!”

“잡아!”

발해길드에 숨어 든 도플갱어들의 정체가 속속 드러났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숫자가 많지는 않네.’

30명의 간부 중에 여덟 명이 도플갱어였던 것에 비해.

일반 길드원들 중 도플갱어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나왔다.

‘애초에 수뇌부를 장악하는 게 목적이었을 테니까.’

일반 길드원 중에 도플갱어가 많지 않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끝났습니다.”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수라고는 하지만.

도플갱어에게 살해당한 이들이 추가로 나온 상황.

‘속이 쓰릴 수밖에 없겠지.’

강현수도 기분이 묘했다.

곽동수처럼 친분을 유지하던 이는 없었지만.

얼굴 정도는 알던 이들 중에도 도플갱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확실히 회귀 전과는 달라.’

회귀 전 도플갱어에게 살해당하고 신분을 빼앗긴 이들과.

현재 도플갱어에게 살해당하고 신분을 빼앗긴 이들은 서로 달랐다.

‘내가 원인이겠지.’

강현수가 회귀 후 벌인 일들로 인해 도플갱어 군단의 침공이 앞당겨졌고.

그로 인해 희생자들의 운명이 뒤바뀐 것이다.

강현수가 바꾼 미래로 인해 회귀 전 도플갱어에게 살해당했던 이들 중 목숨을 구한 이들이 있었고.

곽동수처럼 미래가 뒤틀려 회귀 전에는 살아남았지만.

지금 현재 살해당한 이들도 있었다.

‘미안하다.’

강현수는 곽동수를 비롯한 희생자들에게 마음속으로 사죄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마왕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지구로의 귀환을 위해.

강현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회귀 전에 펼쳐졌던 일들을 비틀어 나갈 것이다.

회귀 전의 참상이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강현수의 말에.

“도대체 어디를?”

검왕 장석원이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수의 아이템과 골드를 강탈해 간 강현수가 사라진다면?

엄청나게 기쁜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차피 줄 건 다 줬다.

그럼?

친분을 쌓든.

동맹을 맺든.

도움을 받든.

발해길드 입장에서는 강현수를 상대로 뭔가 추가로 얻는 것이 있어야 했다.

“고려길드에 다녀올 생각이다.”

강현수의 대답에.

검왕 장석원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그러시구나. 제가 길잡이를 붙여 드릴까요? 아니면 제가 직접 안내를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신창후와 만나 차후의 일도 상의해야 하니까요.”

‘속이 훤히 보이네.’

아마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 보라는 심보이리라.

“그럼 같이 가든지.”

강현수의 말에.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검왕 장석원이 잽싸게 따라나섰다.

결국 강현수와 검왕 장석원이 함께 고려길드로 향했다.

‘아예 고려길드에 눌러앉았으면 좋겠네.’

검왕 장석원은 강현수가 고려길드에 머물렀으면 했다.

그럼 귀찮은 뒷수발이나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골드와 아이템 강탈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필요할 때는?

직접 찾아가면 그만이니까.

‘고려길드는 얼마나 뜯기려나? 우리가 EX랭크 아이템 하나를 바쳤으니 그쪽도 그래야 격이 맞겠지?’

검왕 장석원은 강현수가 고려길드에서 부릴 행패(?)를 상상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검왕 장석원의 소망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였다.

은근슬쩍 말로 때우고 넘어가려고 했던 검왕 장석원과 달리.

인의군왕 신창후는 선뜻 2억 골드라는 거금을 다크 나이트에 쾌척한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 * *

“다크 나이트의 수장께서 직접 오신다는 말씀입니까?”

인의군왕 신창후가 인자한 표정으로 송하나에게 물었다.

“예, 잠시 후면 도착할 거예요.”

“발해길드와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군요. 다행입니다. 장석원 그 친구가 자존심 강해서 쉽지 않았을 텐데.”

인의군왕 신창후는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 발해길드로 갔다는 말에 적잖이 걱정을 했었다.

검왕 장석원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풀린 모양이군. 하긴 장석원이 바보는 아니지.’

자존심도 강하고 잔머리도 잘 굴리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상황 판단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었다.

또 은인을 박대할 정도로 인정머리 없는 인간도 아니었다.

“아,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같이 오겠다고 했다네요.”

“검왕 장석원이 말입니까?”

“네.”

“허어, 그거 놀랄 일이군요.”

비록 도플갱어들의 수작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최근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사이는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런데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직접 고려길드의 길드 하우스에 찾아온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나 보군.’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는 청소가 끝났지만.

타 길드는 아직 아니었다.

거기다 도플갱어들이 테라 왕국 전역에서 활동할 수도 있고 어쩌면 주변 국가들에게까지 그 마수를 뻗쳤을 수도 있다.

‘장석원이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도플갱어에 대한 경각심이 더 커진다.’

그럼?

‘다른 이들의 피해를 좀 더 빠르게 막을 수 있다.’

테라 왕국의 3대 길드 중 하나가 나서는 것과.

둘이 나서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지.’

걱정했던 건 검왕 장석원이 체면 때문에 피해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었는데.

직접 고려길드로 온다고 하니 그런 걱정은 접어 놔도 될 것 같았다.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과 다크 나이트께서 성문을 통과하셨다고 합니다.”

“그럼 내 직접 마중을 나가야겠군.”

인의군왕 신창후가 직접 길드 하우스 밖으로 나섰다.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자 왕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검왕 장석원.

최근 마왕군의 침공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다크 나이트의 수장.

둘 중 그 누구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기왕이면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게 좋겠지.’

문제는.

‘그놈을 어찌 설득한다?’

검왕 장석원은 발해길드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해 가끔 오만해 보일 정도였다.

‘쉽지 않겠어.’

일단 자존심을 치켜세워 주며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거의 다 왔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아, 저기 모여 있네요. 어서 가시죠.”

그 자부심 넘치는 검왕 장석원이 길잡이를 자처하며 다크 나이트의 수장으로 보이는 인물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것도 허리를 굽실거리고 존댓말까지 쓰면서.

반면 다크 나이트의 수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알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하대를 하며 검왕 장석원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인의군왕 신창후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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