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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레벨 플레이어-114화 (114/365)

대가 없는 후원

‘뭐, 어디까지나 임시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무력을 이용해 억지로 찍어 누른 것뿐이다.

하지만.

‘임시가 계속 임시로 남아 있으리라는 법은 없지.’

발해길드와 검왕 장석원 정도라면?

‘휘하에 거두기에 충분하지.’

발해길드 자체가 강현수에게 있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길드이기도 하고 말이다.

‘뭐, 쉽지는 않겠지만.’

얻으면 좋고.

얻지 못하더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야.’

물론 그 전에.

‘저놈을 처단해야지.’

황소욱.

현재 발해길드의 간부이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큰 존재감이 없었다.

‘도플갱어로 몰아 죽여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황소욱이라는 이름의 플레이어가.

‘도플갱어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로 남겠지.’

별다른 고통 없이.

다른 이들의 추모를 받으며 죽는다?

‘그건 황소욱에게 어울리는 죽음이 아니지.’

강현수가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에.

치이이익!

은화가 녹아내리는 소리와 함께 도주를 시도했던 발해길드 간부들의 정체가 속속 드러냈다.

“이익!”

그와 동시에 검왕 장석원의 얼굴은 점점 더 사납게 일그러졌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도플갱어에게 당했다니.”

검사 결과.

발해길드의 간부 여덟 명이 도플갱어로 밝혀졌다.

“간부로 끝이 아니라. 모든 길드원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해야 할 거다.”

“알겠습니다.”

강현수의 말에 검왕 장석원이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장 길드원들을 소집해.”

검왕 장석원의 명령에 간부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크 나이트는 우리 발해길드의 은인입니다. 우리 발해길드는 앞으로 다크 나이트의 행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간다니까.’

발해길드는 다크 나이트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또 다크 나이트는 발해길드보다 월등히 강한 강자다.

‘당연히 친하게 지내는 게 좋겠지.’

또 다크 나이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지만.

다크 나이트가 발해길드에 도움을 청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검왕 장석원이라면?

‘이해득실을 따져 보고 움직이겠지.’

손해라고 판단되면?

상황이 어렵다며 세 치의 혀로 때우고도 남을 놈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큰 도움을 받았는데.

감사의 말과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을 주겠다고 한 걸 제외하면?

‘물질적인 보상이 없잖아.’

무려 테라 왕국의 3대 길드 중 하나인 대발해길드다.

당연히.

‘부자지. 그것도 아주 큰 부자.’

그런 만큼 웬만큼 뜯어먹는 정도로는?

‘뜯어먹었다는 티도 안 나지.’

그런데.

‘이렇게 말로 때우면 쓰나.’

더군다나 지금 발해길드에는?

‘그게 있지.’

황소욱이 아주 잘 써먹었던 EX랭크 아이템.

‘여신의 눈물.’

마기를 흡수해 착용자의 마력으로 전환시켜 주는 마족 한정 사기템.

‘플레이어끼리의 전투에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지만.’

상대가 마족이라면?

실로 엄청난 위용을 발휘한다.

“우리 다크 나이트의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니, 참으로 고맙네.”

“다크 나이트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 입니다.”

“하하하,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겠군. 그래, 어느 정도 금액을 대가 없이 후원해 줄 생각인가?”

“예? 대가 없는 후원요?”

강현수의 말에 검왕 장석원이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대가 없는 후원?

지구 시절에나 들어 봤던 말이다.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넘어온 후에는?

대가 없는 후원이니 기부니 하는 말을 들어 본 역사가 없었다.

유망주 플레이어를 길드 차원에서 밀어줄 때 후원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엄연히 대가를 바라고 하는 후원으로.

후원이라는 말보다는 투자라는 말이 더 잘 어울렸다.

또 그 후원 및 투자는?

유망주 플레이어에게 있어 일종의 족쇄였다.

꼼꼼하게 계약서를 작성하고 후원금을 몇 배로 뽑아먹기 전까지 길드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

한데 뜬금없이 대가 없는 후원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검왕 장석원이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물었다.

“자네가 우리 다크 나이트의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가장 손쉬운 게 대가 없는 후원 아니겠나? 발해길드 같은 거대 길드라면 몇억 골드 정도는 손쉽게 후원해 줄 수 있겠지?”

“며, 몇억 골드.”

억이라는 단위를 듣는 순간 검왕 장석원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천만 골드만 해도 중소 규모 길드나 강소 길드 입장에서는 평생 가도 구경도 하기 힘든 거액이다.

한데 천만 골드를 넘어서 몇억 골드라면?

발해길드가 아무리 거대 길드라고 해도 기둥뿌리 하나는 뽑아내야 할 정도의 엄청난 거액이다.

“자네, 반응이 왜 그러나? 설마, 아까 한 말이 모두 빈말이었나?”

강현수의 물음에.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어떻게 마련해 드려야 하나 고민했을 뿐입니다. 아무리 거대 길드라고 해도 몇억 골드나 되는 현금을 가지고 있기는 힘들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말게. 현물 후원도 받으니까. 일단 아이템 보관 창고부터 가 보지. 어서 안내하게.”

강현수의 말에.

검왕 장석원이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예, 따라오시지요.”

강현수를 발해길드의 아이템 보관 창고로 안내했다.

* * *

“이게 좋아 보이는군. 이것도 괜찮아 보이고.”

강현수는 신나게 쇼핑을 했고.

“크윽!”

검왕 장석원의 눈에서는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비싸고 실용성 좋은 것만 쏙쏙 집어 가는 거야!’

발해길드의 아이템 창고는 무척이나 방대하다.

그러니 당연히.

외부인이 제대로 품목을 확인하려면 몇 날 며칠은 고생을 해야 한다.

아이템 창고에는 그 효용성이 애매하고 팔기도 애매한 것들이 있기도 하지만.

정말 좋은 아이템임에도 아직 적당한 주인을 찾지 못해 임시로 대기하고 있는 것도 있다.

또한 전투 상황에 따라 아이템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에 대기하고 있는 것도 있다.

한데 강현수는 마치 발해길드의 아이템 목록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애매한 아이템은 모두 패스하고.

큰 공을 세우면 상으로 주려고 보관했던 아이템이나.

교체용으로 대기하고 있던 아이템만 쏙쏙 골라 갔다.

‘혹시 우리 발해길드 내부에 다크 나이트 첩자가 있나?’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나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강현수는 회귀 전 발해길드의 일원이었으니까.

‘그냥 처음에 고맙다고 하고 경비에 보태라고 백만 골드쯤 쥐여 줄걸.’

검왕 장석원이 때늦은 후회를 했다.

강현수와 다크 나이트는 발해길드의 은인.

당연히 적당한 보상을 해 주는 게 맞았다.

하지만 괜히 말로 대충 때우려다가.

‘아이템 창고가 거덜 나게 생겼어.’

더 무서운 점은.

‘이제 겨우 1억 골드어치를 골랐을 뿐이야.’

검왕 장석원은 슬슬 강현수가 무서워졌다.

‘도대체 얼마나 더 뜯어 가려고.’

몇억 골드라고 했지만.

2억 골드는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족히 5억 골드는 뜯기게 생겼다.

“좀 아쉽군. 전체적으로 랭크가 높은 아이템이 없어. 높은 게 SS랭크 수준에 불과하다니? 혹시 SSS랭크 이상의 아이템을 보관하는 창고가 따로 있나?”

“그런 건 없습니다!”

진짜였다.

사실 아이템 창고에 SSS랭크나 EX랭크 아이템이 없는 건 당연했다.

왜?

그 정도 등급이라면.

사실 주인이 없을 수가 없었다.

당장 쓸모가 없어도.

자신과 맞지 않아도.

그냥 사용하거나.

아니면 예비용으로 개인적으로 보관하지.

창고에 넣어 두지는 않으니까.

검왕 장석원도 여신의 눈물이라는, 사냥에 별다른 효용이 없는 아이템을 예비용으로 보관하고 있었다.

‘어?’

살짝 발끈했던 검왕 장석원의 머릿속에서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다크 나이트는 주로 마왕군과 싸우는 경우가 많으시겠군요.”

“아무래도 그렇기는 하지.”

“그럼 이건 어떠십니까?”

검왕 장석원이 예비용으로 보관하고 있던 여신의 눈물을 꺼내 들었다.

EX랭크 등급이고.

혹시 사용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예비용으로 보관하고 있었지만.

‘사실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지.’

발해길드는 마기를 사용하는 마족보다 몬스터나 플레이어와 싸울 일이 더 많았다.

훗날 마왕군과의 전쟁이 격해지면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따로 빼놓기는 했지만.

‘그때가 언제 올 줄 알고.’

솔직히 팔아 버리거나 다른 EX랭크 아이템으로 바꾸고 싶기도 했지만.

‘팔아도 헐값밖에 못 받지.’

다른 플레이어들도 생각이 비슷했기에 제대로 된 값을 받을 수가 없었다.

‘마족의 마기를 감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발해길드에 도플갱어들이 득실거렸지만 전혀 알아내지 못했다.

“여신의 눈물이라? 마족 전용 아이템이군.”

강현수가 흥미를 보이자.

‘괜히 꺼냈나?’

살짝 아까워졌다.

여신의 눈물은 마족의 침공이 대대적으로 시작되면?

그 값어치가 미친 듯이 오를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다.

‘아니야. 그때가 언제 올 줄 알고.’

마룡의 용종 군단이 무란 왕국을 침공하기도 했고.

발해길드도 도플갱어들의 공격을 받기는 했지만.

‘무력은 충분해.’

무란 왕국은 큰 피해 없이 마룡과 용종 몬스터 군단의 습격을 막아 냈고.

발해길드가 피해를 받기는 했지만.

기습이 아닌 정면 승부였다면?

도플갱어들을 충분히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거기다 마기를 마력으로 전환시켜 주는 옵션은.

‘장기전에는 도움이 되지만 단기전에는 별다른 효용이 없어.’

결정적으로.

‘다른 아이템을 빼앗기는 게 더 치명타야.’

지금까지 강현수가 고른 아이템은 사냥에도 좋고 플레이어와의 전투에도 좋고 마족과의 전쟁에도 좋은 것들이다.

반면 여신의 눈물은?

‘어디까지나 마족 전용.’

그리고 명색이 EX랭크다.

‘창고에 있는 A, S, SS랭크 아이템을 다 털리는 것보다는 여신의 눈물 하나 주는 게 더 큰 이득이야.’

EX랭크 아이템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여신의 눈물이 가진 옵션의 효용성이 지금 당장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해도.

‘다른 EX랭크 아이템에 비해 떨어진다는 거지.’

족히 몇억 골드의 값어치는 하고도 남았다.

거기다 상대는 최근 마왕군과 가장 많이 충돌한 다크 나이트 아니겠는가?

“수억 골드가 아니라 수십 수백억 골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지요.”

검왕 장석원의 말에.

‘여신의 눈물로 끝내고 싶어서 난리가 났네.’

강현수가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나머지는 그냥 얻어걸린 건데.’

강현수가 아이템 창고에 온 진짜 목적은 여신의 눈물을 얻기 위해서였다.

적당히 둘러보고 마땅한 게 없다며 검왕 장석원을 쪼아서 얻어 낼 생각이었는데.

‘알아서 가져다 바치네.’

아마 중간에 쇼핑을 했던 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얼마나 했다고.’

고작 A~SS랭크 아이템 몇 개(?) 집었을 뿐이다.

거기다 강현수가 쇼핑을 한 건.

회귀 전에 직접 사용했거나 다른 길드원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봤기에 자동으로 눈에 들어왔고.

그중에서 제법 쓸 만하겠다 싶은 것들은 소환수에게 착용시키면 괜찮겠다 싶어서 주워 담은 것에 불과하다.

‘뭐, 장석원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

강현수가 발해길드 창고에 있는 A~SS랭크 아이템을 싹쓸이 해 가면 상당히 곤란할 테니까 말이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던 강현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당연히 강현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전혀 없었다.

여신의 눈물은.

‘단순히 마기를 마력으로 바꿔 주기만 하는 게 아니니까.’

여신의 눈물이 가지고 있는 진짜 가치는.

‘수십 수백억 골드 이상이지.’

EX랭크 검 중에 최고는 탐식의 검이고.

EX랭크 반지 중에 최고는 수호의 반지였으며.

EX랭크 목걸이 중에 최고는 얼음 왕의 목걸이였다.

그리고.

‘EX랭크 팔찌 중에 최고는 여신의 눈물이지.’

발해길드를 통째로 가져다 바쳐도 얻을 수 없는 최고의 보물.

그런 보물이 너무도 손쉽게.

강현수의 손으로 굴러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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