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연출 (2)
‘여전하네.’
강현수는 검왕 장석원이 어떤 성격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적당히 도발했지.’
발해길드는 테라 왕국의 3대 길드라고 불리는 거대 길드다.
당연히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그 자부심에 걸맞은 실력도 가지고 있지.’
그러나 발해길드 내부의 도플갱어들을 색출하고 황소욱과 신소희를 제거해야 하는 강현수 입장에서 그런 강한 자부심은.
‘방해만 될 뿐이야.’
그렇기에 그 자부심을 적당히 꺾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성격이 조금 급하시네요?”
강현수가 태연한 표정으로 손에 힘을 주자.
파직! 파직!
검푸른 오러가 일그러지더니.
파삭!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저는 물리적인 대화보다 말로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강현수의 전신에서 진득한 살기와 함께.
“발해길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네요?”
폭발적인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럼 지금부터 발해길드가 원하는 대로 물리적인 대화를 나눠 볼까요?”
강현수의 말에 검왕 장석원과 발해길드 간부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아, 아닙니다.”
“저희도 말로 하는 대화를 좋아합니다.”
“흥분을 조금만 가라앉히시죠.”
발해길드의 간부들은 방금 전까지 강현수를 소 닭 보듯 하며 반쯤 무시했다.
다크 나이트라는 말에 작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대발해길드의 길드 하우스에서 오만한 모습을 보인 것.
대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검왕 장석원에게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며 맞먹으려는 모습을 보고.
강현수를 그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애송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는.
강현수가 아니라가 자신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발해길드의 간부들은 고양이 앞에 선 쥐라도 된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며 강현수 앞에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그건.
“제가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넓은 아량을 베풀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틀란티스 차원은 법과 규칙보다 약육강식과 강자독식이 우선시되는 세상.
절대적인 힘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시되지.’
역시 적당한 쇼를 보여 준 보람이 있었다.
‘검왕 장석원, 강하기는 강하네. 그 짧은 시간에 EX랭크 방어 스킬을 셋이나 쓰게 만들다니.’
현재 강현수의 실력은 냉정하게 평가해서 검왕 장석원보다 윗길은 확실하지만.
맨손으로 전력을 다한 검왕의 오러를 소멸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호의 반지를 이용하면 이런 연출이 가능하지.’
EX랭크가 된 수호의 반지에는 총 열 개의 EX랭크 방어 스킬을 저장하고 있다.
‘쿨타임이 제법 길기는 하지만.’
EX랭크 방어 스킬들을 연달아 사용하면?
‘사실상 무적 상태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지.’
당연히 효율은 훨씬 떨어졌다.
맨손으로 오러를 잡는 연출을 하지 않았다면?
굳이 EX랭크 방어 스킬을 셋이나 쓸 필요는 없었으리라.
‘하지만 때로는 이런 연출이 필요하지.’
마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역시.
일종의 연출이었다.
레벨 업을 하고 생긴 미분배 스텟을 힘 대신 마력에 모두 쏟아부었으니까 말이다.
‘괴력 스킬의 효율을 생각하면 엄청난 손해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부디 넓은 마음으로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과 간부들이 전원 강현수 앞에 고개를 숙이는 진풍경을 연출할 수 있었다.
‘어차피 손해 본 것도 아니고.’
수호의 반지에 저장된 EX랭크 스킬은 쿨타임이 돌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다.
마력 스텟에 올인한 미분배 스텟은?
스킬 강화를 통해
가 되어 무한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강현수에게 있어서.
언제든지 복구할 수 있는 자원에 불과했다.
‘뭐, 최근 괴력 때문에 힘 스텟만 찍어서 잔여 스텟이 너무 힘에 몰리는 것 같아서 적당한 조절이 필요하기도 했고.’
힘 스텟만 높은 것보다는 적절한 균형이 중요했다.
그러니 이런 연출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마력을 비롯한 다른 스텟들을 찍어 줘야 했으니.
그걸 조금 앞당겼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용서하지.”
“감사합니다.”
발해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과 간부들은 군기가 빠짝 든 신병처럼 빠릿빠릿했다.
그 이유는 하나.
‘어찌 이렇게 강할 수가!’
‘맨손으로 길드 마스터의 오러를 소멸시키다니?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신급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도 저런 위용을 보여 줄 수는 없을 터인데.’
‘아틀란티스 차원을 통틀어 최강자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실력자다.’
강현수의 실력을 엄청나게 높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호의 반지가 가진 EX랭크 방어 스킬들을 망설임 없이 소모하고.
마력을 흡수하는 뱀피릭 오러를 응용해 검왕 장석원의 오러를 소멸시켜 버리는 짓을 한 보람이 있었다.
물론 이런 짓을.
‘다른 놈들이 했다면 금방 들통났겠지.’
빈틈없이 연속된 스킬 발동.
섬세한 마력 컨트롤.
회귀 전 절대자의 자리에 있었던 경험.
강현수가 아니라 다른 이가 이런 수작을 부렸다면?
설사 더 높은 스텟과 더 많은 EX랭크 방어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검왕 장석원의 검에 손가락이 잘려 나갔거나.
방어 스킬과 오러가 충돌해 큰 폭발이 일어났을 것이다.
“우리 다크 나이트는 아틀란티스 차원의 수호와 인류의 번영 그리고 타 차원에서 온 플레이어들의 귀환을 목표로 움직인다.”
“정말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그야말로 인류의 수호신이나 마찬가지군요.”
“우리 발해길드도 다크 나이트님의 높으신 뜻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강현수의 말 한마디에.
사방에서 아부가 쏟아졌다.
“우리는 얼마 전 예지를 통해 마족인 도플갱어의 침공을 알아차렸고, 이를 막기 위해 테라 왕국에 왔다. 그러니 발해길드의 전폭적인 협력을 원한다. 발해길드의 공식적인 입장은?”
“다크 나이트에 전폭적으로 협력하겠습니다.”
발해길드의 길드장 검왕 장석원이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사실 검왕 장석원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의 오러를 어린아이 팔목 꺾듯 소멸시켜 버린 측정 불가의 무력을 가진 존재가 하는 말이다.
‘다크 나이트와 충돌하면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발해길드가 그대로 멸망할지도 모른다.
‘길드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엎드려야 할 때다.’
이게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로서 검왕 장석원이 내린 결정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호명하는 놈들은 앞으로 나오도록. 진철호, 정은호…….”
강현수의 입에서 간부들의 이름이 연달아 호명되었다.
호명당한 간부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가.
퍼억!
그대로 주변에 있던 다른 간부들을 밀치고.
와장창!
회의실에 있는 창문을 깨고 도주를 시도했다.
“잡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이 직접 몸을 날리며 다른 길드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창문을 깨고 밖으로 도주했던 간부들이.
“커억!”
“크으으윽!”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깨진 창문을 통해 되돌아와 회의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저벅저벅.
그 깨진 창문 사이로 완전무장한 플레이어 열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그 열 명의 플레이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와 마력이 범상치 않았다.
‘이게 무슨?’
‘전원 네임드 플레이어가 확실하다.’
‘네임드 플레이어 열 명이 도대체 왜 우리 발해길드에?’
‘적인가, 아니면 아군인가?’
발해길드의 간부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나와 비슷한 수준의 강자들이다.’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은 검을 움켜쥐고 전신의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그때.
척!
열 명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강현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주하는 도플갱어들을 전원 제압했습니다, 주군.”
“앞으로는 굳이 생포할 필요 없다. 저항하거나 도주하는 도플갱어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참하라.”
“충!”
열 명의 플레이어들이 공손한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깨진 창문과 문가에 자리 잡았다.
‘저들이 전부 다크 나이트?’
‘마룡 카라스 레이드 당시 주력의 대부분이 전멸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빙산의 일각이었단 말인가?’
‘도대체 얼마나 방대한 조직이기에 랭커 플레이어와 네임드 플레이어급의 실력자들을 이렇게 많이 보유할 수 있는 거지?’
‘이들이 전부가 아닐 것이 분명하다.’
발해길드의 간부들은 다크 나이트의 엄청난 저력에 제대로 위축당했다.
기가 질린 것은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검왕 장석원의 입장에서는 강현수 같은 강자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한데 그것도 모자라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강자가 무려 열 명이나 있다니?
‘저들의 인내심이 조금만 약했다면, 오늘 발해길드가 그대로 멸망했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오만했다.’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은 본인과 발해길드가 강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자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강현수에게 축객령을 내렸고 검을 뽑아 들었다.
한데 아니었다.
강자는 강현수와 다크 나이트였고.
자신은 약자였다.
약자가 강자에게 지시를 내리고 무시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아틀란티스 차원에서는 목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는 중죄였다.
거기다 도주한 이들은.
‘도플갱어가 확실하다.’
한데 발해길드의 일은 발해길드가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를 쳐 놓고.
‘도플갱어들의 도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어.’
다크 나이트 입장에서는 발해길드가 도플갱어들을 감싼다거나 한 편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저들이 정도를 걷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발해길드의 길드 하우스가 붉은 피로 물들었으리라.
검왕 장석원은 이제 다크 나이트라는 조직에 대해 두려움을 넘어 경외감을 느낄 지경이었다.
“뭐, 그래도 테스트는 해 봐야겠지. 도와주겠나?”
강현수의 물음에.
“예, 제가 돕겠습니다!”
검왕 장석원이 힘차게 대답한 후.
강현수의 지시에 따라 은화를 통해 도주하려다 실패한 발해길드 간부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이제야 좀 고분고분해졌네.’
회귀 전.
사망하기 직전까지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로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던 검왕 장석원.
일반 길드원이자 중레벨 플레이어였던 강현수는 당시 그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듣는 것조차 큰 영광이었다.
한데 그런 검왕 장석원이.
강현수의 말 한마디에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만족스럽기도 한데.’
뭔가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뭐, 이게 맞는 거지.’
검왕 장석원은 무력만 강한 머저리가 아니다.
오히려 지력과 정치력 만렙을 찍은 능구렁이다.
도플갱어들이 일으킨 분쟁에 휘말려 사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해길드를 이끌어 나갔다면?
‘훗날 마왕군과의 전면전이 벌어졌을 때 큰 도움이 되었겠지.’
지금 현재 검왕의 칭호를 지니고 있는 만큼.
살아남아 계속 성장했다면?
‘못해도 검왕의 칭호는 유지했겠지.’
어쩌면 신의 칭호를 손에 넣었을지도 몰랐다.
‘대대장들을 총동원한 보람이 있네.’
임시 대대장까지 다 긁어모으면 총 12명.
여기에 암왕 세실리아와 마룡 카라스를 제외한 열 명을 총동원해 무력시위를 한 결과.
강현수는 말 한마디로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발해길드를 완벽하게 장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