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연출
‘대대장을 바꿔야겠네.’
강현수가 임시 대대장이었던 서부의 맹호를 해임시키고.
최상급 도플갱어를 바탕으로 만든 소환수를 임시 대대장에 임명했다.
‘이름은 뭐로 하지?’
원래 가지고 있던 이름을 알아내 붙여 줄 수도 있었지만.
곽동수를 죽인 녀석에게 그런 배려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냥 도플갱어 1호라고 부르자.’
나중에 더 강한 도플갱어를 소환수로 만들면 그놈을 1호라고 부르고 이놈을 2호라고 부르면 그만이다.
-도플갱어 1호, 현재 아틀란티스 차원에 침투한 도플갱어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지?
-제 휘하에 있던 녀석들은 1백 마리 정도입니다. 또한 저에게 지시를 내리는 마계 귀족이 하나 있습니다. 그 외에 도플갱어들에 대한 정보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도플갱어 1호가 공손히 대답했다.
강현수가 도플갱어 1호를 소환수로 만들자마자 대대장에 임명한 이유는.
‘지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지.’
대대장으로 임명되어 지성이 회복되어야.
정확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다.
‘뭐, 전투력도 뛰어난 편이니 어차피 교체해야 하기도 했지만.’
그런데.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 빈약한데.’
이게 다라면 실망이었다.
-너와 비슷한 수준의 도플갱어는 몇 마리나 있지?
-저도 모릅니다.
-너에게 지시를 내리는 마계 귀족의 현재 위치는?
-모릅니다.
강현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놈은 도대체 아는 게 뭐야?’
명색이 최상위 도플갱어 아닌가?
그런데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빈약했다.
-아틀란티스 차원에 침투한 도플갱어들에 대해서 네가 알고 있는 정보를 다 토해 내 봐.
강현수의 지시에.
-마계 귀족인 탈리만 남작의 지시를 받아 1백 명의 수하들과 함께 차원 게이트를 넘어 아틀란티스 차원에 왔습니다. 그 후에는…….
도플갱어 1호가 열심히 정보를 토해 냈지만.
‘알맹이가 하나도 없잖아.’
도플갱어들의 수장인 탈리만 남작이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다른 도플갱어들에 대한 정보도 없어.’
강현수는 골치가 아팠다.
‘완전 점조직처럼 구성되어 있네.’
지시를 내리는 것도 직접 만나서 전달해 주는 게 아니었다.
일종의 도플갱어 전용 텔레파시를 통해 교신하고 있었다.
‘도플갱어들끼리 텔레파시가 가능한 줄은 몰랐네.’
이건 회귀 전에도 몰랐던 정보였다.
단, 이 텔레파시는 양방향 통행이 아니라 일방통행이었다.
상위 개체가 하위 개체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형태랄까?
‘그럼 도플갱어 한 마리를 살려 보내고 소환수로 감시하게 시킨 것도 무용지물이잖아.’
얼굴을 찌푸린 강현수가 감시를 명령한 소환수에게 유일하게 살려 보낸 도플갱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럼 지금 넌 너보다 하위 개체인 도플갱어들에게 텔레파시로 지시를 내릴 수 있나?
-불가능합니다.
-왜? 소환수가 되었기 때문인가?
-아닙니다. 애초에 제가 거느리고 있는 수하들은 저의 권속이기에 가능했을 뿐, 다른 도플갱어들에게는 지시를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럼 넌 탈리만 남작의 권속이었겠구나.
-그렇습니다.
-지금은?
-제가 죽으면서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지금의 저는 오직 주인님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종일 뿐입니다.
-네, 권속이었던 도플갱어들도 소환수로 되살아났다. 그 녀석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나?
-관계가 끊어져 불가능합니다. 하나 주군께서 제 권속이었던 자들을 제 휘하에 넣어 주신다면 가능합니다.
‘죽은 후 소환수로 부활하면 기존의 권속 관계가 끊어진다는 거군.’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소환수들은 다른 누군가의 권속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소환수들은 자신을 부활시켜 준 창조주.
강현수의 권속이었으니까 말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전원 복귀하지 못한 거지?”
“저자는 누구야?”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도착했구나.’
도플갱어 1호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캐내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발해길드의 길드 하우스에 도착해 있었다.
‘뭐, 별로 영양가 있는 정보는 없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가장 큰 수확은.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에 네 권속이었던 자들이 있겠지?
-예, 주인님.
-그 녀석들이 위장한 신분이 뭔지 이야기해 봐.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에 잠입해 있던 도플갱어 1호의 권속이었던 녀석들을 빠르게 솎아 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검사 전에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또한.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 앞에서.
‘꽤 볼만한 쇼를 선보일 수 있겠어.’
강현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최대한 빨리 길드 마스터께 알려야 해.”
“알았어.”
생존한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사정 설명을 끝냈다.
“저 사람이 다크 나이트?”
“한국어를 썼다며? 그럼 한국 사람 아닌가?”
“근데 다크 나이트는 무란 왕국인이었잖아. 그럼 일본인 아니야?”
“재일 교포일 수도 있지.”
“그냥 한국인인데 무란 왕국에서 활동한 거 아닐까?”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강현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동료인 길드원들을 도와주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 대부분은 호의적인 눈빛을 보냈고.
일부는 동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강현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현재 강현수에게 호의와 동경 어린 시선을 보내는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다 구면이네.’
회귀 전 꽤 오랜 시간 발해길드 소속으로 있었으니.
구면이 아닐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색하네.’
회귀 전에는 황소욱의 수작 때문에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같은 길드 소속임에도 강현수에게 경계와 의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황소욱이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 오르고 강현수가 발해길드를 탈퇴한 후로는 반쯤 적대적 관계나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
경계, 의심, 적대감을 보이던 이들이.
호의, 동경, 친근함을 보인다.
‘내가 바꿨어.’
회귀 후 많은 성과를 이뤘다.
그러나.
그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회귀 전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이들이.
자신에게 전혀 다른 시선을 보내자.
‘실감이 나네.’
회귀 후 제대로 미래를 비틀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길드 마스터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죠.”
완전무장을 한 발해길드 소속 랭커 플레이어 넷이 강현수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알겠습니다.”
강현수가 발해길드 소속 랭커 플레이어들의 안내를 받아 발걸음을 옮겼다.
‘변한 게 없네.’
발해길드의 내부는 이미 훤히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호위 대형이 참.’
발해길드 소속 랭커 플레이어 넷은 강현수를 사방에서 호위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태도도 정중했다.
하지만 이런 형식의 호위 진형은.
‘포위 진형이 될 수도 있지.’
아마 허튼수작을 부리면 그대로 제거해 버리겠다는 의도이리라.
‘내 실력을 얕잡아 보고 있는 게 확실해.’
보고는 받았지만.
대략 상위 랭커 수준으로 짐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고작 랭커 네 명만 보냈을 리가 없지.’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전혀 나쁠 게 없지.’
강현수의 무력을 낮게 잡고 있어야.
‘앞으로 보여 줄 쇼가 더 빛을 발하지.’
똑똑똑!
“다크 나이트님과 생존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들어와.”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큰 디귿 자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발해길드의 회의실이 보였다.
정중앙에는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검왕 장석원이 자리해 있었고.
양옆에는 발해길드의 고위 간부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우선 길드원들을 도와준 것에 대해 길드 마스터로서 감사드립니다.”
검왕 장석원의 말이 머릿속으로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황소욱.’
고위 간부들이 자리해 있는 곳에.
강현수의 원수 황소욱이 자리해 있었다.
훈련소에서 스킬 강화를 레플리카 스킬로 만들기 위해 황소욱을 찾았을 때는.
‘힘이 없어서 네놈을 어찌할 수 없었지.’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마음만 먹으면 이 자리에서 황소욱을 갈가리 찢어 죽이는 게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럴 수는 없지.’
참아야 했다.
‘죽이는 건 언제든지 가능해.’
강현수가 해야 할 건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네놈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 후 죽여 주마.’
그리고 지금은.
“도플갱어라는 마족을 생포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거기다 우리 발해길드원인 곽동수 플레이어가 도플갱어였다고는 말을 들었는데.”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과 담판을 지어야 할 때였다.
“그렇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시죠.”
강현수의 말에 검왕 장석원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도플갱어의 몸에 상처를 낸 후.
흘러내린 피에 은화 하나를 떨어트렸다.
치이이익!
곧바로 은화가 녹아내렸다.
“진짜였군요.”
“곽동수 플레이어는 도플갱어에게 살해당한 후 자신의 신분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이 중에도 그런 케이스가 있을 겁니다.”
“우리 발해길드의 간부 중에 도플갱어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쉽게 믿기 힘든 말씀을 하시는군요.”
“지금 당장 이곳에 있는 간부들을 전부 검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해서 고려길드와의 충돌 같은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러다 어쩌면 발해길드가 무너질 수도 있겠죠.”
강현수의 말에 검왕 장석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건 제가 간부 회의 후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강현수의 말에 검왕 장석원의 얼굴에 진한 불쾌함이 피어올랐다.
‘이런 건방진!’
검왕 장석원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사실 강현수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발해길드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야.’
또 외부인인 강현수의 지시를 받고 움직일 일이 아니었다.
설사 이 자리에 있는 발해길드의 간부 중 도플갱어가 있다고 해도.
‘그 사실은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해.’
자칫 이 사실에 외부에 알려지면?
‘발해길드의 명성이 땅에 떨어진다.’
아마 마족에게 농락당했다고 온갖 비웃음을 당할 게 뻔했다.
“그건 제가 알아서 결정합니다. 그리고 증언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만 가 보시죠. 호위들이 귀빈을 모시는 접객실로 안내해 드릴 겁니다.”
검왕 장석원이 강현수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전 증언을 하기 위해 발해길드에 온 게 아닙니다.”
“그럼 왜 오신 겁니까?”
“발해길드에 숨어 있는 도플갱어들을 직접 뿌리 뽑기 위해서죠.”
“그건 제가 알아서 결정한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도 발해길드에 암약하고 있는 도플갱어들을 지금 당장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강현수의 말에.
빠직.
검왕 장석원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사실 지금까지 존대를 해 주고 깍듯하게 손님 대접을 해 준 것은.
강현수가 발해길드원들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또 도플갱어라는 마족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을 아무런 대가 없이 알려 준 것 역시 일종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검왕 장석원은 강현수에게 귀빈 대접을 해 주고 충분한 보상을 해 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이곳은 대발해길드의 길드 하우스였고.
자신은 발해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왕 장석원이었다.
다크 나이트?
정체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비밀 조직일 뿐이다.
거기다.
‘얼굴도 가리고 신분도 밝히지 않았어.’
그런 이를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진짜 다크 나이트인지 다크 나이트인 척하는지 알 수도 없고.’
검왕 장석원 입장에서는?
은인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상대의 무례를 참아 줬다.
다크 나이트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듣기도 했고.
그 결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게 발해길드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지금까지 많은 양보를 했다.
한데도 저렇게 오만하게 나온다는 건.
‘발해길드를 무시한다는 뜻이겠지.’
다른 건 몰라도.
발해길드를 무시하는 건 절대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발해길드의 일입니다. 그 누구도 발해길드의 행사에 끼어들 수는 없습니다. 경과는 차후 따로 설명해 드릴 테니 그만 회의실에서 나가 주시죠.”
말을 마친 검왕 장석원이 강현수를 호위하고 있던 네 명의 랭커 플레이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뭘 하고 있나? 어서 귀빈을 접객실로 모셔라.”
“예.”
검왕 장석원의 명령에 랭커 플레이어 네 명이 강현수에게 다가갔다.
‘이게 내가 베풀어 줄 수 있는 마지막 자비다.’
그러나.
탁!
강현수는 랭커 플레이어들의 손을 뿌리치며.
“발해길드의 일은 무슨. 그러다 도플갱어를 놓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검왕 장석원의 인내심을 산산조각 낼 말을 내뱉었다.
빠직!
그 순간 검왕 장석원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챙!
검왕 장석원이 검을 뽑아 들었고.
콰콰콰콰콰콰!
순식간에 검푸른 오러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와 검왕 장석원의 검을 뒤덮었다.
휘익!
검왕 장석원의 검이 강현수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죽일 생각은 없다.
부상을 입힐 생각도 없었다.
어찌 되었든 발해길드의 은인이고 귀빈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경고를 해 줄 참이었다.
‘네놈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힘을 지니고 있는지 깨닫게 해 주마.’
그리하여.
발해길드를 우습게 보는 저 오만방자함을 꺾어 줄 것이다.
그러나.
탁!
이어진 강현수의 행동에 검왕 장석원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강현수가 맨손으로 검푸른 오러에 휩싸인 검왕 장석원의 검을 잡아 버렸기 때문이다.
파지지직!
검푸른 오러가 강한 스파크를 뿜어내며 자신에게 닿은 모든 것을 파괴하려 했지만.
강현수의 손에는 티끌만 한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