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복수 (3)
‘그럴 리가 없어.’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자신과 도플갱어 일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무조건 저놈을 죽인다.’
그래야 도플갱어 일족이 살아남을 수 있다.
“으아아아!”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의 몸에서 칠흑빛 마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마기를 숨기는 것을 포기하고 전력을 다해 눈앞의 적을 제거해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금까지 도플갱어들은 자신들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마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도플갱어도 마족.
마기를 사용해야 본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기를 사용하면?
빼도 박도 못하고 흔적이 남는다.
흔적이 남으면 당연히 마족의 침공 소식이 알려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는 마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어.’
마족의 침공 소식이 알려지는 게.
‘우리 일족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는 비밀이 알려지는 것보다는 낫다.’
꽈아앙! 꽈아앙!
마기에 휩싸인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가 맹공을 퍼부었고.
강현수는 침착하게 그 공격을 막아 냈다.
‘꽤 다급해졌구나.’
마기까지 뿜어낼 줄은 몰랐다.
마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의 실력이 한 단계 올라갔다.
현재 강현수의 순수한 실력은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가 짐작한 것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신급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 수준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러나.
순수한 실력 자체는 황급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 수준으로 올라섰다.
거기다 EX랭크 무기 탐식의 검, EX랭크 갑옷 세트 마룡갑, EX랭크 장신구 얼음 왕의 목걸이, 수호의 반지, 건강의 반지, 악몽의 반지까지.
‘템빨도 실력을 많이 올려 주지.’
도플갱어들의 수장은 마계 귀족이다.
그런 만큼 강현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테라 왕국으로 넘어왔다.
당연히 그 준비 중에는 북부에 보관해 놨던 얼음 왕의 목걸이를 가지고 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얼음 방패의 발동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어.’
얼음 방패는 임의로 발동시킬 수도 있지만.
착용자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위험에 처하면 자동으로 발동한다.
발동 시간 30분에 쿨타임은 3일.
쿨타임이 꽤 길기는 하지만.
‘얼음 방패가 있으면 반쯤 무적이나 마찬가지지.’
얼음 방패 스킬은 발동 중 착용자가 받는 모든 데미지를 흡수한다.
그 말인즉.
“으아아아아!”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가 줄기줄기 뿜어내서 날린 마기가.
꽈아아아앙!
강현수에게는 아무런 데미지도 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또한.
“이런 미친놈!”
꽈앙! 꽈앙! 꽈앙!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 일변도로 나갈 수도 있다.
단 단점이 있다면.
많은 데미지를 받을수록.
얼음 방패의 유지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꽤 넉넉하게 남아 있던 얼음 방패의 발동 시간이 10초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서걱!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의 팔 하나를 베어 낼 수 있었다.
“이익!”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는 적잖이 당황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크게 밀렸다.
더군다나 숨겨 두었던 마기까지 사용했음에도.
강현수의 머리카락 한 올 잘라 내지 못했다.
파직!
그때 얼음 방패의 발동 시간이 끝났고.
강현수의 몸을 뒤덮고 있던 푸르스름한 얼음 조각이 모두 녹아내렸다.
‘아직 희망이 있어.’
상대의 몸을 보호하던 스킬이 종료되었다.
그렇다면?
‘충분히 죽일 수 있다.’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가 강현수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그런데.
‘뭐지?’
강현수는 여전히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 일변도로 나왔다.
‘설마 다시 발동시킬 수 있는 건가?’
그런 스킬이 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그럴 리가 없어.’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가 모든 마력을 끌어모아 강현수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퍼어어엉!
커다란 폭음과 함께 공격을 한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의 팔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자신이 날렸던 공격이 고스란히 되돌아온 것이다.
“넌 왜 그렇게 학습 능력이 없냐?”
강현수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음 방패는 발동 시간이 종료되었고 쿨타임도 3일이나 남았다.
그러나 강현수에게는 수호의 반지에 내장된 방어 스킬들이 있었다.
모두 EX랭크.
얼음 방패처럼 강력하고 지속 시간이 길지도 않지만.
‘그 대신 하나하나가 1초 무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막강한 방어 스킬들이지.’
태생이 F랭크였던 E랭크였든.
수호의 반지에 저장된 방어 스킬들은 모두 EX랭크로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당연히 EX랭크에 걸맞은 방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 죽어라.”
콰콰콰콰!
강현수가 핏빛 오러에 휩싸인 검을 휘둘렀고.
서걱!
곽동수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의 몸이 둘로 갈라지며.
그대로 소멸했다.
[최상위 마족 도플갱어를 쓰러트리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족 사냥꾼 A랭크가 SS랭크로 성장합니다.]
[최상위 마족 도플갱어를 쓰러트리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족 포식자 B랭크가 주어집니다.]
‘새로운 칭호라.’
마족 사냥꾼이 SS랭크가 되었고 마족 포식자라는 새로운 B랭크 업적을 얻었다.
지금까지처럼 마족들을 계속해서 사냥하면?
‘마족 사냥꾼과 포식자가 업그레이드되고 마족 살해자와 학살자 업적도 얻을 수 있겠지.’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강현수에게는 그런 업적들보다.
‘동수 형, 내가 너무 늦었지. 미안해.’
도플갱어에게 살해당한 곽동수의 복수를 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도 복수는 해 줬으니까, 그곳에서 편하게 쉬어.’
그러나.
“죽여!”
“저놈들이 도망친다.”
강현수에게는 죽은 곽동수를 여유롭게 애도할 수조차 없었다.
우두머리인 최상위 도플갱어가 죽자.
몬스터들은 지배자를 잃고 날뛰기 시작했고.
그 틈을 노려 생존한 도플갱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기 때문이다.
‘여단 소환.’
강현수가 플레이어들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소환수들을 소환해 넓은 포위망을 구성했다.
‘한 놈만 빼놓고 모조리 죽여.’
소환수들은 강현수의 명령에 따라.
콰직! 서걱!
도주에 성공해 희희낙락하던 도플갱어들을 무참히 제거했다.
도플갱어 한 마리를 살려 준 건.
소환수를 꼬리로 붙여 다른 도플갱어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쪽은 어때?
강현수가 송하나와 투황에게 물었다.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랑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 중에 도플갱어가 섞여 있어서 같이 처리했어. 생존한 몬스터들과 도플갱어들은 도망치고 있고.
-계속 질척거리면서 시간을 끌더니 갑자기 저러네.
송하나와 투황을 공격했던 놈도 강현수의 손에 죽었던 최상위 도플갱어의 지시를 받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소환수들을 보내 줄게. 그동안 최대한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 줘.
-소환수는 굳이 안 보내 줘도 괜찮을 것 같아.
-여기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야.
‘하긴.’
발해길드 쪽은 강현수가 최상위 도플갱어에게 잡혀 있느라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못했다.
반면 고려길드 쪽은?
‘송하나와 투황이 화려하게 날뛰었겠지.’
칭호는 없지만.
실력만큼은 상위 네임드 플레이어 수준에 도달한 송하나와 투황이다.
그런 두 사람이 아무런 제약 없이 힘을 발휘했으니.
‘일방적이었겠네.’
이쪽과는 사정이 달랐으리라.
-알았어. 그럼 뒷정리 부탁해. 무슨 일이 있으면 또 연락하고.
-그렇게 할게.
-완벽하게 마무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대화를 마무리한 강현수가 빠르게 몬스터들과 도플갱어들을 제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가 끝났다.
“도망친 놈들을 꼭 잡았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잖아.”
플레이어들은 도주한 도플갱어들을 잡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도망친 도플갱어들은 한 마리만 남기고 강현수의 소환수들이 말끔하게 정리했지만.
플레이어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 하나가 강현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설마 동수 형이 도플갱어였을 줄이야.”
“그러게 말이야. 사람 좋은 척한 것도 다 연기였던 건가?”
“진짜 무섭다.”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파티의 리더였던 곽동수의 정체가 도플갱어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동수 형을 도플갱어 취급하면 안 되지.’
곽동수는 도플갱어에게 살해당한 피해자였지.
처음부터 도플갱어가 위장한 모습은 아니었다.
“진짜 곽동수 플레이어는 도플갱어에게 살해당했을 겁니다. 그 후 도플갱어가 곽동수 플레이어의 흉내를 낸 거죠.”
강현수의 말에.
“아!”
“하긴, 튜토리얼 때부터 동수 형이랑 함께해 온 사람도 있는데, 처음부터 도플갱어였을 수가 없지.”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이제야 제대로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동수 형이 당할 정도면 다른 사람도 더 있는 거 아니야?”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강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어제까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잔을 기울였던 길드원이.
기꺼이 자신의 등을 맡기고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친구가.
마족인 도플갱어일 수도 있다는 말 아니겠는가?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대대적인 검사를 하면 발해길드에 파고든 도플갱어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겁니다. 주기적으로 검사를 한다면 추가 침입도 어려울 거고요.”
강현수의 말에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돌연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럼 도플갱어가 위장하고 있던 대상이던 길드원들은…….”
“이미 도플갱어들에게 살해당했을 겁니다.”
도플갱어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위장한 대상을 살려 두지 않는다.
살려 두는 경우도.
‘더 큰 이간질을 위해서지.’
예를 들어 도플갱어가 발해길드 간부의 모습을 빌려 고려길드를 공격하거나 시비를 건다면?
고려길드는 해명을 요청할 것이고.
당사자인 발해길드 간부는 그런 적 없다며 펄쩍 뛰며 고려길드가 증거도 없이 괜한 시비를 거는 거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면?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사이는 앙숙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다양하지.’
같은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사이를 이간질하거나.
플레이어와 귀족이 서로 원한을 갖게 만든다든지.
‘심지어 상인에게 고리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지.’
말 그대로 인간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기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존재가 바로 도플갱어였다.
만약 회귀 전 도플갱어의 정체를 알아내는 방법이 더 늦게 알려졌다면?
‘테라 왕국의 멸망만으로 끝나지 않았겠지.’
아마 주변의 다른 왕국들 역시 연쇄적으로 무너졌으리라.
반대로 도플갱어의 정체를 알아내는 방법이 더 빨리 알려진다면?
‘이간질에 빠져 허무하게 죽어 나갈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어.’
또한 테라 왕국군과 플레이어들의 전력 역시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었다.
“일단 최대한 빨리 복귀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의 말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완전히 저물어 시야에 제약이 생겼다.
거기다 하루 종일 사냥을 하고 연달아 치열한 전투를 치러 체력과 마력이 바닥나기 직전이었고.
식사도 제때 하지 못해 굶주림까지 찾아온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습격을 받는다면?
상당히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가시죠.”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의 말에 강현수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는 와중.
‘여단장의 눈.’
강현수가 스킬 하나를 시전했다.
그러자 그간 전투로 죽어 간 이들의 혼백이 눈에 들어왔다.
혼은 흩어지고 있었고.
백 역시 흐릿해지고 있었다.
‘여단 구성.’
강현수가 직업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사아아아악!
그간의 전투에서 죽어 간 도플갱어들이.
우득우득!
마력으로 이루어진 육체를 얻어 부활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가졌던 최상급 도플갱어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복귀하기에 여념이 없는 플레이어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