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군단의 침공 (2)
‘구경꾼이 많네.’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는 표정으로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 파티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 파티의 대립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러니 전쟁이 날 수밖에 없지.’
거대 길드에게 체면과 자존심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중국인들로 이루어진 마이트어 왕국 소속 길드의 경우.
체면과 자존심에 대한 집착이 도를 넘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거대 길드들은 대체적으로 비슷하지.’
사실 거대 길드 입장에서는 좋든 싫든 체면과 자존심을 챙길 수밖에 없다.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해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지속적인 도전을 받으니까.’
또 길드원 충원과 세력권 유지 면에서도 큰 불안 요소가 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계속해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저 지금 힘이 많이 빠졌어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공격해 주세요.’라고 광고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테라 왕국의 거대 길드 수장들은 바보가 아니지.’
당연히 서로 손해가 날 전면전 같은 짓은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거대 길드 사이에 시비가 붙어도 적당히 서로의 체면을 차리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다.
‘그걸 막은 게 도플갱어들의 수작이지.’
화해의 사신을 죽이거나 추가 도발을 해서 강제로 전면전으로 치닫게 만든다.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도 적당히 이용하겠지.’
저들의 대다수가 발해길드의 세력권인 대도시 베록커토를 기반으로 생활하는 이들이다.
저들의 눈과 입이 발 없는 말이 되어 대도시 베록커토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
‘베록커토에 거주 중인 플레이어들은 물론 귀족과 일반인 들까지 발해길드를 우습게 보겠지.’
꽈아아앙!
“커억!”
특히 대도시 베록커토를 대표하는 발해길드의 정예가 일방적으로 깨지는 모습 같은 자극적인 소문은 말이다.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도플갱어가 확실하다.’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수준은 비슷하다.
당연히 저런 일방적인 결과는 절대 나올 수가 없다.
‘제법이네.’
도플갱어는 전투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족 중에서라는 말이지.’
마족은 최하위 계급이라고 해도 웬만한 몬스터 정도는 가볍게 찢어발길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다.
더군다나 아틀란티스 차원에 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면?
‘마룡 카라스처럼 승급을 했을 수도 있고.’
마계 귀족인 마룡 카라스의 경우 승급을 위해 엄청난 제물이 필요하지만.
‘작위도 없는 도플갱어 같은 최하급 마족의 승급은 비교적 적은 제물로도 가능하지.’
강현수는 회귀 전 테라 왕국이 도플갱어들의 손에 어떻게 무너졌는지 똑똑히 경험한 장본인이다.
‘마지막 순간 모습을 드러낸 도플갱어들의 전투력은 꽤 뛰어났지.’
특히 도플갱어들의 수장이었던 마계 귀족의 경우.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 수백이 합공을 해서 겨우 잡았을 정도로 강했어.’
강현수가 테라 왕국에 온 것은 그 싹을 조기에 끊기 위해서였다.
‘아직 늦지 않았어.’
저 정도 수준이라면?
충분히 제압이 가능했다.
파강!
발해길드 탱커의 방패가 둘로 갈라졌다.
“죽어!”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가 함성과 함께 오러에 휩싸인 검을 휘둘렀다.
강현수가 가만히 있는다면?
발해길드 소속 탱커의 몸이 둘로 갈라질 것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사소한 충돌은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다.
하나 길드원이 공개적으로 살해당한다면?
발해길드 입장에서는 무조건 물리적인 보복을 가해야 했다.
도플갱어들이 중간에 빠지더라도 자기들끼리 치고받을 수밖에 없는 판이 깔린 것이다.
파강!
강현수의 검이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의 검을 가로막았다.
“넌 뭐야?”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
아니,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가 성난 표정으로 강현수에게 물었다.
“이건 대고려길드의 행사다. 끼어들지 말고 물러서. 그러지 않으면 네놈도 죽는다.”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의 말에 강현수가 피식하고 비소를 터트렸다.
“어디서 고려길드원도 아닌 놈들이 고려길드원 행세를 하고 있어.”
강현수의 말에.
“고려길드가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강철수 님은 고려길드 소속이 확실하다고.”
“성하윤 님도 마찬가지야.”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려면?
네임드 플레이어나 못해도 랭커 수준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계속해서 마주치니 모르고 싶어도 얼굴과 이름을 알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 대다수가 발해길드의 영향권이 미치는 대도시 베록커토 근처 사냥터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고려길드의 영향권에 있는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또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사냥터가 일정 부분 겹치기도 했다.
“미친놈이었군. 죽어라.”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가 강현수에게 검을 휘둘렀다.
‘뭐, 거의 확실하기는 하지만 확인은 해야 하니까.’
파강!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의 공격을 막아 낸 강현수가 가볍게 검을 휘둘러.
서걱!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의 팔을 베어 냈다.
“아아아악!”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가 비명을 터트렸고.
잘려 나간 팔의 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팅!
강현수가 은화 하나를 꺼내 바닥에 생긴 피 웅덩이에 던져 넣었다.
치이이익!
그 순간 은화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확실하구나.”
강현수의 말에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사실 처음에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가 아니라고 했을 때 뜨끔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저게 뭐야?”
“피에 닿았는데 왜 은화가 녹아?”
“저놈이 독을 쓴 건가?”
중소 길드 플레이어들은 아직 제대로 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건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의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니.
“죽여!”
강현수가 입을 나불대기 전에 제거해야 했다.
‘아홉 마리라.’
아무리 전투력이 떨어지더라도 마족은 마족.
‘드라칸이나 드래고니안보다 전투력이 약하기는 하지만.’
경험치는 더 많이 줄 게 확실했다.
또한.
‘업적도 팍팍 오르겠지.’
마계 남작의 작위를 가진 마룡 카라스 한 마리 잡고 엄청난 업적을 얻어 냈다.
눈앞의 도플갱어들이 비록 작위는 없지만.
‘어쨌든 마족이잖아.’
그럼 분명히 업적 상승에 도움을 주거나.
서걱! 좌악!
‘새로운 업적을 주겠지.’
강현수가 무자비하게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을 베어 넘겼다.
“이익! 오러가 사라진다!”
“치료 스킬도 듣지를 않아!”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강현수의 실력이 뛰어난 건 이미 확인했다.
하나 자신들은 아홉.
강현수는 혼자였다.
당연히 합공을 하면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왜?
자신들에게는 힐러가 있었으니까.
한데.
공격 스킬과 방어 스킬이 눈 녹듯 사라진다.
힐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이 되자.
“커억!”
“크아아악!”
도플갱어들은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쪽에도 나타났어!
그때 강현수의 머릿속에 송하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 마리만 남겨 놓고 모두 제거해야 해.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고. 소환수를 보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끼리 충분히 할 수 있어.
-날 뭐로 보고! 걱정하지 마! 나랑 송하나 둘이면 충분해!
송하나와 투황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의 머릿속에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직접 만나게 하는 게 좋겠네.’
강현수가 도플갱어들을 제거하는 중이지만.
어차피 플레이어나 마족이나 죽으면 사체가 잔존 마력으로 흩어지는 건 똑같다.
죽은 이들이 도플갱어인지 플레이어인지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놈들의 수법은 내가 잘 알지.’
회귀 전 지독할 정도로 당해 왔던 도플갱어들의 뻔한 수법.
‘송하나와 투황이 제압하고 있는 놈들은 아마 여기 있는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로 위장했을 거야.’
반대로 이곳에 있던 놈들은 송하나와 투황이 있는 장소의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로 위장했을 확률이 높다.
왜?
‘그래야 오해가 더 커지니까.’
죽은 사람이 멀쩡히 돌아다니거나 죽인 사람이 난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 일이 꼬일 가능성이 있다.
가장 좋은 건?
‘목격자만 남기고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플레이어들을 모두 제거하면 간단하지.’
그럼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는 서로가 서로의 길드원을 살해했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콰직!
강현수의 검이 마지막 남은 도플갱어의 숨통을 끊었다.
그와 동시에.
[마족 도플갱어를 쓰러트리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족 사냥꾼 B랭크가 주어집니다.]
B랭크 업적 하나를 얻었다.
‘짜네.’
마룡 카라스를 사냥했을 당시 나왔던 칭호는 총 네 개.
마계 귀족 사냥꾼, 마계 귀족 포식자, 마계 귀족 살해자, 마계 귀족 학살자였다.
‘그중에서 사냥꾼이 가장 낮은 랭크였지?’
한데 그 낮은 랭크도 EX가 아니라 고작 B랭크였다.
‘뭐, 겨우 아홉 마리 잡은 거니까 어쩔 수 없나.’
그때였다.
[마족 도플갱어를 쓰러트리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족 사냥꾼 B랭크가 A랭크로 성장합니다.]
‘랭크가 상승했어?’
그럴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송하나와 투황이 잡았구나.’
그런 강현수의 예측에 확신을 주듯.
-한 마리는 생포했고 나머지는 다 처치했어!
-내가 소환수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고 했지?
강현수의 머릿속으로 송하나와 투황의 대답이 들려왔다.
‘역시.’
강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지시를 내렸다.
-고려길드 플레이어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설득해 줘. 오해를 풀어야 하니까.
-알았어.
-가려고 하면 강제로라도 붙잡아 놓을게.
투황이 조금 과격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허용할 수 있지.’
강제로 붙잡아서라도 오해를 풀어야 했다.
-내가 갈게 잠시만 기다려.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죽을 위기에서 벗어난 발해길드 플레이어들에게 다가갔다.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저들이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죽을 뻔한 위기에서 벗어난 발해길드의 탱커가 강현수에게 물었다.
‘동수 형.’
곽동수.
회귀 전 강현수가 발해길드 소속이었을 무렵.
황소욱을 제외하면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인물이었다.
‘정이 많았지.’
곽동수는 고유 스킬 레플리카 때문에 길드 내에서 따돌림당하던 강현수를 안쓰럽게 생각해 이것저것 챙겨 준 인물이었다.
뭐, 중간에 황소욱이 수작을 부려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할 정도로 만나기 힘들었지만.
‘어쩌다 한번 만났을 때마다 나에게 많은 신경을 써 줬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발해길드에 있을 무렵 자신에게 색안경을 끼지 않고 먼저 다가와 준 길드원들이 몇몇 있었다.
다만.
‘황소욱 이 자식이 근무지 변경이니 소속 변경이니 해서 친했던 이들과 붙어 있을 시간을 없게 만들어 버렸지.’
황소욱이 유일하게 허락했던 존재는.
‘신소희뿐이었어.’
그때 강현수는 황소욱과 신소희만이 진짜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황소욱의 시커먼 속내를 알고 큰 충격을 받고 발해길드를 떠날 때.
신소희는 강현수를 따라 함께 발해길드를 나왔다.
‘그때는 진심인 줄 알았는데.’
한데 아니었다.
신소희는 그저 황소욱이 붙여 놓은 끄나풀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