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군단의 침공
‘암왕 세실리아가 있어서 다행이네.’
무사히 테라 왕국에 입국한 강현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강현수 일행이 테라 왕국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문제 하나가 있었다.
바로 무란 왕국의 명예 귀족 작위였다.
타국에서는 꽤 쓸 만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무란 왕국과 적대적인 테라 왕국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지.’
테라 왕국에 한해서는 무란 왕국의 명예 귀족 작위보다 로크토 제국의 자유민 신분이 훨씬 더 쓸 만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섀도 가드를 장악한 암왕 세실리아였다.
‘이중 인장이라는 기술이 있을 줄이야.’
이중 인장은 하나의 인장 위에 다른 인장을 추가시키는 기술이었다.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섀도 가드들은 이중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신분이 두 개인데 인장이 하나니 당연히 문제가 발생했겠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 바로 이중 인장이다.
대중적인 신분과 숨긴 신분.
마력을 주입하는 양에 따라 둘 중 원하는 신분을 상황에 맞게 드러낼 수 있는 신기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설마 로크토 제국의 정식 귀족 신분을 줄 줄이야.’
암왕 세실리아는 강현수에게 새로운 인장과 함께 로크토 제국의 귀족 작위를 선물했다.
작위는 각국의 왕과 백작 이상의 대귀족들만 하사할 수 있다.
그 말은.
‘세실리아가 백작 이상의 고위 귀족을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었다는 뜻이지.’
로크토 제국의 황제 로디우스 1세의 남은 수명은 대략 1년 남짓.
‘황위를 차지할 준비를 차곡차곡 해 나가고 있구나.’
로크토 제국의 황제 로디우스 1세는 강현수가 예견한 마라지아강 범람이 일어나자.
‘사공작 오르페수스를 실각시키기 위해 움직였지.’
그러나 쉽지가 않았다.
오공작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사이지만.
‘황제와 대립할 때만큼은 한 몸처럼 움직이지.’
그 결과 현재 로크토 제국은 황제와 오공작의 대립으로 무척 시끄러웠다.
귀족들은 황제파와 오공작파로 나뉘었고.
중립적인 입장에 있던 로크토 제국 귀족들은 어디에 줄을 대야 하나 갈팡질팡했다.
‘세실리아가 그 틈을 잘 파고들었어.’
강현수가 지원해 준 막대한 자금과 무력을 이용해.
중립적인 입장에 있던 귀족들을 끌어모아.
‘중립파를 만들었지.’
사생아이기에 겉으로 신분을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중립파의 수장은 세실리아야.’
세실리아는 고작 2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로크토 제국의 3대 파벌 중 하나의 수장이 되어 있었다.
‘황제가 직접 나섰는데도 사공작 오르페수스 처리가 쉽지 않은 게 문제이기는 하네.’
황제가 고령이 아니었다면?
보다 빠른 처리가 가능했을 것이다.
한데 워낙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다 보니.
‘권력 누수가 일어났지.’
차기 황제 자리에 앉을 황태자라도 멀쩡했다면?
누수되는 황제의 권력이 황태자에게 흘러가는 효과라도 생겼을 것인데.
‘황태자는 개망나니지.’
그 때문에 황제파 귀족들 중 상당수가 중립파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 세력을 암왕 세실리아가 먹어 치웠다.
‘나중에 직접 처리해야겠어.’
망나니 황태자와 사공작 오르페수스.
그 둘을 하나로 묶어서 처리하면?
‘충분히 세실리아가 로크토 제국의 황좌에 앉을 수 있어.’
강현수의 수족인 세실리아가 로크토 제국의 황제가 되면.
‘로크토 제국의 전력을 고스란히 보존해 마왕군과의 전쟁에 투입시킬 수 있다.’
이건 인류 전체에도 큰 이득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테라 왕국부터 구해야지.’
겸사겸사 회귀 전의 원한도 갚고 말이다.
* * *
‘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강현수가 추억에 잠긴 눈빛으로 테라 왕국의 대도시 베록커토를 둘러봤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대도시 베록커토는 강현수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평화롭네.’
강현수의 마지막 기억 속 대도시 베록커토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에 불과했다.
대도시 베록커토는 발해길드의 길드 하우스가 자리 잡은 곳으로.
회귀 전 강현수는 발해길드를 떠나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 대도시 베록커토에서 활동했다.
그렇기에 수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자.
‘수많은 악연이 있는 곳이지.’
하나 결국은 도플갱어 군단의 침공을 막지 못하고 멸망해 버린 수많은 도시 중 하나에 불과했다.
“여기가 베록커토야? 분위기가 꽤 흉흉한데.”
투황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고.
“그러게.”
송하나도 동의했다.
“일단 숙소부터 잡자.”
강현수가 일행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겉으로 드러난 표정은 태연했지만.
마음속은 꽤 복잡했다.
단순히 다시금 베록커토에 왔기 때문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빠르다.’
강현수가 기억하기로 지금은 막 도플갱어 군단의 침공이 시작되었을 시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인간들 사이에 침투하는 중이어야 했다.
한데.
‘벌써 분쟁이 발생했어.’
그 말은 도플갱어 군단의 침공 시점이 회귀 전보다 빠르다는 뜻이었다.
‘뭐, 그럴 만도 하지.’
강현수가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넘어오고 대략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가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니까.’
마왕군의 입장에서는 내부에서 심어 둔 간자인 카발길드가 박살 났고 마룡 카라스의 침공이 별다른 성과 없이 실패했다.
그럼?
‘다음 계획을 앞당길 수도 있지.’
앞으로 이런 일들이 점점 더 많이 벌어질 것이다.
‘큰 줄기는 변하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침공 시기가 당겨진다거나 하는 소소한 변화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힘을 키워야 해.’
회귀 전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강현수지만.
그건 회귀 전의 경험과 지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긋나는 정보가 점점 많아진다.’
어쩌면 큰 줄기가 뒤틀릴지도 모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회귀 전의 정보를 써먹을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는 동안 최대한 성장해야 해.’
또 회귀 전의 정보를 변화된 현재 상황에 맞게 재가공할 필요가 있다.
‘세실리아가 정보 조직을 확대 중이니 충분히 가능할 거야.’
정보는 중요하다.
정보를 꾸준히 수집하면?
‘나비효과로 현재 상황이 아무리 뒤틀려도 회귀 전의 정보를 충분히 써먹을 수 있어.’
침공 순서나 시기 그리고 장소는 뒤틀릴 수 있지만.
침공하는 마족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사전에 출현 징조만 알아내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어.’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침공 시기만 조금 앞당겨진 상황.
조금 늦기는 했지만.
얼마든지 대처가 가능했다.
‘테라 왕국의 거대 길드 사이에 전운이 흐르고 있어.’
이유는 지속적인 사냥터에서의 충돌.
대도시 베록커토와 주변 사냥터는 발해길드의 영토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발해길드는 중화길드와 다르다.
베록커토 주변의 사냥터를 통제하거나 사냥터 이용료를 받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은연중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더 좋은 사냥터의 우선권을 쥐고 있었다.
타 길드 입장에서는?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들고일어나 발해길드에 대항할 정도는 아니었다.
발해길드는 좋은 사냥터의 우선권을 쥐고 있는 것뿐.
타 길드 소속이라고 좋은 사냥터에서 사냥을 못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괜히 불공평하다고 들고일어나 봐야, 중소 길드만 손해지.’
아틀란티스 차원은 힘이 모든 것인 세상이었고.
특히 사냥터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다.
괜히 시비가 붙었다가 그게 전쟁으로 발전하면?
‘중소 길드만 일방적으로 척살당할 뿐이야.’
발해길드는 타 거대 길드에 비해 나름 자비로운 지배자였다.
그렇기에 대도시 베록커토 주변의 사냥터는 긴 시간 평화로웠다.
한데.
‘그 평화가 깨졌어.’
사냥터 우선권을 놓고 발해길드와 타 길드의 충돌이 벌어졌다.
충돌을 빚는 길드가 그저 그런 중소 길드였다면?
애초에 충돌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벌어졌다고 해도 힘의 논리로 금방 수습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 발해길드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이들은 테라 왕국의 또 다른 거대 길드 중 하나인 고려길드였다.
발해길드 입장에서는 고려길드가 일부러 시비를 걸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웃긴 것은.
‘고려길드에서는 반대로 발해길드가 자신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이 모든 게.
‘도플갱어의 농간이지.’
결국 전쟁이 벌어지고.
‘고려길드가 무너진다.’
승리한 발해길드 역시 길드원의 숫자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전쟁을 막아야 한다.’
길드와 길드의 전쟁.
그중에서도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전쟁이 테라 왕국을 무너트리는 전쟁의 시발점이 된다.
‘테라 왕국이 건재했다면.’
마왕군과의 전면전 당시 엄청난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
강현수 일행이 사냥터로 향했다.
그러나 진짜 목적은 사냥이 아니었다.
‘충돌 순간을 잡아야 해.’
지금은 단순히 서로 충돌하고 기분이 상해 돌아가는 수준이지만.
‘조만간 실종자가 나올 거야.’
그럼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할 것이다.
‘도플갱어들이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줄 거고.’
그럼 거대 길드 간의 전쟁이 발발한다.
‘최대한 빨리 꼬리를 잡으면 좋겠는데.’
도플갱어 군단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은 대도시 베록커토만이 아니다.
‘테라 왕국 전역에서 크고 작은 분란의 씨앗을 뿌리고 있을 거야.’
그 대상은 길드와 길드가 될 수도 있고 길드와 귀족이 될 수도 있으며 귀족과 왕이 될 수도 있다.
‘가장 크게 터지는 게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충돌이야.’
이 충돌을 막아 내고 도플갱어들의 존재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장으로 삼는다면?
‘도플갱어의 농간을 막아 낼 수 있어.’
은으로 손쉽게 감별이 가능하니 오히려 별다른 피해 없이 처리가 가능할 수도 있다.
도플갱어 군단의 침공이 무산되면?
‘업적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가능해.’
마룡 카라스 레이드가 끝난 뒤 받은 업적은.
‘마계 귀족을 제거하거나 마왕군의 침공을 저지했을 때 성장한다.’
전투력이 낮고 숫자가 많은 도플갱어 군단의 힘은 무력이 아니다.
오직 의태와 이간질뿐이다.
파해법을 알고 있는 강현수 입장에서 도플갱어 군단은.
‘맛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지.’
강현수 일행은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사냥터에 도착해 헤어졌다.
“꼭 막아.”
강현수의 말에.
“걱정하지 마. 꼭 막을게.”
“맡겨 두라고!”
송하나와 투황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한 후 자리를 떴다.
강현수는 발해길드의 영역을 담당하고.
송하나와 투황은 고려길드의 영역을 담당하기로 했다.
만약 아무 일이 없으면?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 철수하기로 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강현수는 사냥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플레이어들과 마주쳤지만.
대부분은 발해길드 소속이거나 중소 길드 소속이었을 뿐.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는 마주치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자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나.
사냥터는 고요하기만 했다.
‘오늘은 허탕인가?’
강현수가 송하나와 투황에게 철수하자고 말하려는 순간.
꽈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이 자식이 감히 우리 발해길드를 무시해!”
“무시는 무슨! 엄연히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왜? 정곡을 찔리니까 화나냐?”
성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타났어. 그쪽은?
강현수가 의지로 송하나와 투황에게 물었다.
-아직.
-우리도 합류할까?
-아니, 계속 대기해 줘. 이쪽에 나타났으면 그쪽에도 나타날 확률이 높아.
-알았어.
-그렇게 할게.
송하나와 투황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가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잠시 후.
충돌 현장에 도착한 강현수는 발해길드 소속 플레이어 파티와 고려길드 소속 플레이어 파티의 싸움을 목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