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티스길드
“노예 상인 놈들이 우리한테 의뢰를?”
“네, 조사평 님. 귀족 신분을 가진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인간 사냥꾼들을 족치고 있어서 상당히 곤란한 모양입니다.”
“오호, 귀족이라!”
맨티스길드의 마이트어 왕국 지부장이자 광살검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조사평이 눈을 번뜩였다.
“뒤탈은?”
맨티스길드가 미친놈들로 이루어진 길드이기는 했지만.
최소한의 상황 판단 정도는 할 줄 알았다.
만약 그 정도 주변머리도 없었다면?
이 정도 규모로 성장하지도 못했으리라.
“마이트어 왕국의 귀족이 아니라 무란 왕국의 귀족이라고 합니다.”
“그럼 죽인다고 해도 마이트어 왕국에서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서지는 않겠네.”
“예, 무란 왕국에서 조사대를 보낼 수는 있겠지만, 자국도 아니고 타국인데 뭘 얼마나 조사하겠습니까?”
“대가는?”
“1백만 골드를 제시했습니다.”
“그놈들이 제법 똥줄이 탔던 모양이야, 그 정도 거금을 제시하다니.”
“받아들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는 하지. 귀족 피 맛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보수가 너무 적어. 3백만 골드어치의 아이템과 노예를 보내라고 해.”
“알겠습니다.”
“귀족 신분의 고레벨 플레이어라. 피가 무슨 색일지 궁금하네.”
맨티스길드의 마이트어 왕국 지부장 광살검 조사평의 두 눈이 진한 살기로 물들었다.
* * *
‘너무 조용하네.’
강현수는 노예 거래소 한 곳을 제대로 박살 냈다.
그런데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그냥 포기한 건가?’
하부 조직인 중소 길드를 동원했더니 실력에서 밀린다.
공권력을 동원했더니 신분에서 밀린다.
그럼 사실상 노예 상인들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놈들이 이렇게 조용히 있을 놈들이 아닌데.’
방법이 없다고 포기한다?
그럴 리가 없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저항할 놈들이야.’
중소 길드의 길드원들을 희생양 삼아 함정을 팔 수도 있고 뇌물을 먹인 귀족들을 이용해 강현수 일행의 행보를 방해할 수도 있다.
‘노예 상인들은 자기 돈벌이에 방해가 되면 귀족도 암살하는 놈들이야.’
그런 놈들이 타국의 귀족.
그것도 작위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최하위 귀족인 남작을 방치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뭐, 차분히 기다리면 되겠지.’
강현수는 노예 거래소에서 확보한 장부를 암왕 세실리아의 수하에게 넘겼다.
‘역시 정보 조직이 있으니까 좋네.’
암왕 세실리아는 자금과 무력이 확보되자 무서운 속도로 세력을 넓혔다.
특히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로크토 제국과 강현수의 활동 무대라고 할 수 있는 마이트어 왕국의 정보 조직 확장에 주력했다.
그 결과.
‘편하네.’
강현수는 크게 고생하지 않고 노예 상인들의 거점을 타격할 수 있었다.
‘다음 목표는 좀 멀리 떨어져 있네.’
공간 이동 게이트도 이용할 수 없는 소도시로 보도를 통해 이동해야 했다.
“가자.”
“응!”
“얼른 다 때려 부숴 버리자고!”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와 투황이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람이 크겠지.’
불법 노예 거래소를 공격해 억울하게 노예로 팔릴 뻔한 사람들을 구해 준다.
노예 신세로 떨어진 이들에게 있어 강현수 일행의 행동은 일종의 구원이었다.
구원받은 이들의 감사 인사는 몬스터를 사냥해 강해지는 쾌감과는 다른 정신적인 기쁨을 준다.
‘거기다 칭호 업그레이드라는 실질적인 보상도 있고.’
정신적인 보상과 실질적인 보상.
송하나와 투황이 잔뜩 흥분해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일단 마이트어 왕국은 우리가 정리를 하더라도 타국까지는 무린데.’
아틀란티스 차원은 넓다.
로크토 제국과 그 제후국의 영토만 해도 지구의 유라시아 대륙만 한데.
‘그에 비견되는 영토를 가진 제국이 두 개나 더 있지.’
강현수 일행이 아틀란티스 차원의 모든 국가의 인신매매를 뿌리 뽑는 건.
‘몇십 년을 투자해도 불가능해.’
고작 세 명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나서도 쉽사리 뿌리 뽑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잘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어.’
강현수에게는 한 가지 계획이 있었다.
아직은 준비 단계지만.
‘성공하면 아틀란티스 차원의 인신매매를 뿌리 뽑는 건 물론 더 큰 보상을 받을 수도 있어.’
하나 아직은 준비 단계일 뿐.
또한 계획이 성공한다고 해도 아틀란티스 차원의 인신매매를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기대했던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아틀란티스 차원의 인신매매 조직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겠지.’
그럼 마왕군에 대항하는 인류의 힘이 커진다.
그것만 해도 강현수에게는.
‘충분히 큰 보상이지.’
일단 지금은 부지런히 움직여 마이트어 왕국의 인신매매를 근절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 * *
“여기로 오는 게 확실하지?”
“예, 노예 상인들이 일부러 이곳에 대한 정보를 남겨 놨다고 했습니다. 가짜도 아니고 진짜 있는 대규모 노예 거래소니 그놈들이 지나칠 리가 없습니다.”
“그럼 잠시 후면 귀족 나리의 피 맛을 볼 수 있겠군.”
광살검 조사평의 얼굴에 광기 어린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겨우 세 명인데 너무 과하게 데리고 온 거 아닐까요?”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광살검 조사평이 데리고 온 맨티스길드원의 숫자는 무려 3백 명.
이 정도면 맨티스길드의 마이트어 왕국 지부 인원의 1/3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쯧쯧쯧, 그놈들은 귀족 나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따로 쓸데가 있어서 데리고 온 거야.”
“그게 무슨?”
“스킬북과 노예 좋지. 하지만 기왕이면 피 맛도 보고 더 많은 재물과 노예를 챙기는 게 더 좋지 않겠어. 마침 불법 시설인 대규모 노예 거래소도 근처에 있잖아.”
광살검 조사평의 말에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은 그제야 3백 명이나 되는 길드원을 동원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노예 상인 놈들의 뒤통수를 치실 생각이시군요.”
“뒤통수를 치다니. 노예 거래소는 어디까지나 귀족 나리들이 박살 낸 거야. 우리는 조금 늦게 도착했을 뿐이고.”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의 입가에 광기 어린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부장인 광살검 조사평이 나섰기에 자신은 피 맛을 보지 못할 줄 알았다.
한데 이런 큰 선물을 준비해 놨다니.
“꿩도 먹고 알도 먹는 훌륭한 계책이십니다.”
사실 훌륭하다기보다는 허술한 계획이었다.
노예 상인들이 바보도 아니고 노예들이 풀려나는 게 아니라 실종되는 상황에서 그게 맨티스길드원들이 벌인 일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광살검 조사평과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왜?
그냥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증거를 남길 생각도 없고 설사 증거가 남아도 그만이었다.
노예 상인 놈들이 어찌 감히 맨티스길드에게 책임을 묻겠는가?
맨티스길드와 노예 상인들은 일종의 공생 관계였지만.
힘의 우위는 확실히 맨티스길드에게 있었다.
사실 공생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노예 상인들의 착각이었다.
맨티스길드에게 있어 노예 상인들은 쓸 만한 수하이자 배고플 때 언제든 뒤탈 없이 먹어 치울 수 있는 비상식량 같은 존재였으니까.
“어?”
그때 멀리서 사람 셋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놈들인 것 같습니다.”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이 3인의 인상착의를 확인하고 광살검 조사평에게 보고를 올렸다.
“복장은 평범하네.”
귀족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플레이어 파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포위할까요?”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의 말에 광살검 조사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못 도망치게 막기만 해 절대 죽이지는 마라.”
광살검 조사평의 지시에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역시 혼자만 재미를 보려고 하는구나.’
하지만 불만을 토로할 용기는 없었다.
거기다 잠시 후 노예 거래소를 습격해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의 대답에 광살검 조사평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죽이려나? 직접 죽이는 것만은 못하지만 구경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한데.’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은 광살검 조사평이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저 셋을 죽일지 열심히 예측해 봤다.
수하들과 내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의 머릿속에 광살검 조사평이 패배한다는 가정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광살검 조사평의 실력이 능히 왕의 칭호를 받고도 남을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광살검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살인마인 탓에 세간의 평가가 박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이려나?’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은 수하들에게 포위망을 구성하라는 지시를 내린 후 느긋하게 머리를 굴리며 어떤 방법에 돈을 걸까 고민했다.
그때.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왔고.
부지부장 아귀 지청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 * *
“포위망이 펼쳐졌어.”
강현수의 말에.
“어쩐지 감이 좋지 않더라니.”
투황이 입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저기서 한 놈 온다.”
송하나의 말에 강현수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놈은?’
모습을 드러낸 플레이어는 낯선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한 얼굴이었다.
‘광살마존 조사평.’
머더러 집단인 맨티스길드의 부길드장.
수많은 살육을 벌여 아틀란티스 차원의 공적 중 하나로 지목되었던 인물.
‘머더러임에도 존의 칭호를 받았지.’
뭐, 존경보다는 혐오와 공포를 담고 있는 그다지 좋지 않은 뜻이 담긴 칭호였지만 말이다.
거기다 실력 자체는.
‘신의 칭호를 받은 플레이어 못지않았지.’
실제로.
‘신의 칭호를 받은 수호신 이철민과 싸워 동수를 이룬 적이 있기도 했고.’
수호신 이철민이 기동성과 공격력이 떨어지는 탱커이기도 했고.
본신의 능력보다는 수호의 반지가 가진 힘으로 인해 신의 칭호를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회귀 전 신의 칭호를 받은 플레이어였어.’
그런 수호신 이철민과 동수를 이뤘다는 건 실제 광살마존 조사평의 실력이 신의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에 근접했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네.’
기왕이면 실력이 꽤 높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왜냐하면.
‘저놈은 절대 살려 둘 수 없어.’
이 자리에서 무조건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광살마존 조사평은 강현수의 원수 중 하나인 검존 주위천과는 경우가 달랐다.
검존 주위천은 현재 중화길드 소속으로 강현수가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었다.
또 사고를 치지 못하게 사전에 방지하거나 제재를 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광살마존 조사평의 경우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인류 전체에게 해악이 되는 놈이야.’
장차 실력이 늘어난 뒤 소환수로 만드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해 목줄을 채워 놓은 채 살려 둔다면?
‘오히려 내가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는 걸 이용해 더 설치고 다닐 놈이야.’
거기다 광살마존 조사평은 제정신이 아닌 광인.
언제 어떻게 미친 짓을 저지를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이 자리에서 죽여서 소환수로 만든다.’
결정을 내린 강현수가.
타악!
앞으로 튀어 나갔다.
“호오! 귀족 나리가 제법 용감하시군. 성질도 급하시고.”
광살마존 조사평이 미소를 지으며 강현수를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콰콰콰콰콰!
핏빛 오러에 휩싸인 강현수의 검과 칙칙한 칠흑빛 오러에 휩싸인 광살마존 조사평의 검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순간.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커억!”
광살마존 조사평이 전신에서 붉은 피를 뿜어내며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