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냥꾼 토벌전 (2)
“노예 수급이 급격히 줄어들었어요!”
“중화길드 놈들 때문입니다.”
“중화길드는 루자베누에서만 설치고 있어요. 진짜 문제는 3인조 파티입니다. 그놈들 때문에 마이트어 왕국 전역에서 노예 수급에 문제가 생겼어요.”
“맞습니다. 중화길드는 다른 거대 길드와의 알력 다툼 때문에 어차피 루자베누 외의 지역에는 설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 3인조 파티는 다릅니다.”
루자베누가 마이트어 왕국의 대도시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말끔하게 포기할 수 있다.
대영주나 거대 길드가 인간 사냥꾼 척살 지시를 내리는 건 가끔 있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3인조였다.
“그놈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업을 계속 이어 갈 수 있어요.”
“그놈들 실력이 보통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냥개들이 모조리 당했습니다.”
노예 상인들은 인간 사냥꾼들을 관리하는 중소 규모의 길드를 동원해 3인조를 잡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해 버리고 말았다.
“고레벨 플레이어가 분명합니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초보자 사냥터에서 설치는 건지.”
“쓸데없이 정의감이 넘치는 놈들 아니겠습니까?”
“이놈들이 계속 설치면 우리가 상당히 곤란해집니다.”
“해결 방법이 없겠습니까?”
노예 상인들이 자신들의 사업 재개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공권력을 동원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아, 그 방법이 있었군요.”
“돈은 좀 들겠지만, 그게 가장 좋겠군요.”
노예 사냥꾼들은 쉽게 가는 길을 선택했다.
공권력을 동원해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감옥에 넣어 버리면?
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제가 연락을 취해 보겠습니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노예 상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건 공권력이다.
그렇기에 귀족들에게 정기적으로 돈과 노예를 상납하며 공생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 공권력을 이용하면?
돈이 좀 많이 깨지기는 하지겠지만.
고작 세 명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파티 따위는 가볍게 제재할 수 있었다.
“아예 제거해 버리는 게 말끔하기는 한데.”
“돈만 많이 먹이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하긴 고레벨 플레이어라고 해 봐야 고작 몬스터를 사냥해 먹고사는 평민 아닙니까?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저항해 봐야 공권력에 대항한 범죄자 신분이 될 뿐이지요.”
“그렇게 되면 오히려 더 쉽게 제거할 수 있겠군요.”
“하하하! 그 건방진 놈들은 목숨으로 우리 사업을 망친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 * *
‘아쉽네.’
인간 사냥꾼들의 윗선인 중소 길드 놈들을 대거 척살했다.
하지만 강현수와 송하나의 칭호는 변함이 없었다.
반면 투황의 칭호가 크게 성장했다.
초보자 사냥터의 수호자가 SS랭크를 찍었고 자유의 수호자 칭호도 A랭크가 된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한 투황과 SSS랭크와 A랭크에서 시작한 강현수, 송하나가 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어차피 적립되었을 거니까.’
초보자 사냥터의 수호자는 EX랭크가 되기 직전일 것이고.
자유의 수호자도 SS랭크로 성장하기 위한 경험치를 많이 쌓았을 것이다.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충분히 초보자 사냥터의 수호자와 자유의 수호자 칭호를 EX랭크로 만들 수 있을 터였다.
“가자.”
강현수 일행이 다시금 초보자 사냥터로 향했다.
그 후 얼마 가지 않아 노예 사냥꾼들을 발견했다.
“히익!”
“나타났다!”
노예 사냥꾼들은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하지만.
콰콰콰콰콰!
꽈아앙!
강현수 일행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전투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일방적인 사냥이었다.
강현수 일행은 손쉽게 노예 사냥꾼의 손에 잡혀 있던 초보자 플레이어들을 구해 냈다.
“이놈들은 죽여도 죽여도 계속 기어 나오네. 끝이 있는 거 맞아?”
투황이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언젠가는 뿌리 뽑을 수 있을 거야.”
지금도 강현수 일행의 활약 덕분에 마이트어 왕국에서 활동하던 노예 사냥꾼들이 잔뜩 움츠러든 상태였다.
“그런데 그놈들이 가만히 있을까?”
송하나 걱정스럽다는 어조로 물었다.
“뭐가?”
“저번에 중소 길드 플레이어들을 보냈잖아. 어쩌면 거대 길드가 나설 수도 있지 않을까?”
송하나의 물음에 강현수는 코웃음을 쳤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거대 길드는 체면을 중시해. 돈을 받고 모르는 척을 해 주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노예 상인들을 위해서 직접 나서지는 않을 거야. 뭐, 설사 나선다고 해도. 박살 내 버리면 그만이기도 하고.”
강현수는 거대 길드와 일전을 벌여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다만 그럴 필요성이 없기에 가만히 있을 뿐.
하지만 그 거대 길드가 인간 사냥꾼같이 인류 전체를 좀먹는 존재라면?
빠르게 처리하는 게 인류 전체에도 더 큰 이득이었다.
“그럼 걱정할 건 없겠네.”
강현수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송하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강현수 일행은 태연하게 인간 사냥꾼 척살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와중.
“저놈들입니다!”
“잡아라!”
정규군 복장을 입은 마이트어 왕국군이 강현수 일행을 포위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강현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마이트어 왕국군의 지휘관을 노려봤다.
“네놈들이 선량한 플레이어들을 학살한 머더러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하!”
강현수는 어이가 없었다.
‘노예 상인들 수작이구나.’
중간 관리자인 중소 길드를 동원한 무력 제압에 실패하니 공권력을 동원한 것이다.
‘머리를 잘 썼네.’
사실 이건 외통수에 가깝다.
순순히 잡혀 들어가면?
누명을 쓰게 된다.
반항하면?
어쨌든 국가 공권력에 대항한 범죄자가 된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는 해결이 쉽지가 않지.’
인권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희박하고 무죄 추정의 원칙도 없고 신분제가 존재하는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공권력은 엄청난 힘이었다.
“내가 선량한 플레이어들을 학살한 머더러 플레이어라고? 그쪽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은데? 난 선량한 플레이어들을 노예로 잡아가려 한 인간 사냥꾼들을 척살했을 뿐이다.”
“그건 조사하면 다 나오게 되어 있다! 일단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싫다면?”
“지금 마이트어 왕국의 국법을 무시하겠다는 거냐!”
챙!
마이트어 왕국군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고 강현수 일행을 겨눴다.
“저놈들을 포박하라! 저항하면 현장에서 즉참하라!”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마이트어 왕국군이 포위망을 좁혀 왔다.
사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반응하든 손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무란 왕국의 시리우스 남작이다. 내 동료들 또한 모두 남작 작위를 가지고 있지.”
“그게 무슨?”
마이트어 왕국군을 이끌고 있던 지휘관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저 상부의 지시를 받고 왔을 뿐이다.
고레벨 플레이어일 확률 높지만 그래 봐야 평민.
오히려 반항해 도주하면 더 큰 이득이었다.
한데 귀족이라니?
“미, 믿을 수 없다!”
마이트어 왕국군 지휘관의 외침에.
“봐라.”
강현수가 인장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왼손의 손등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문양이 뿜어져 나왔다.
작위 귀족의 신분을 증명하는 인장이었다.
“어?”
당당하던 마이트어 왕국군의 지휘관이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
상대가 평민이라면?
아무리 고레벨이라고 해도 손쉽게 압박할 수 있다.
하지만 귀족의 신분이라면?
이야기가 180도 달라진다.
차라리 자국의 귀족이라면 상부에서 권력으로 찍어 누를 수도 있다.
하나 타국의 작위 귀족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억지로 체포하면?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이런 미친.’
가짜가 아닐까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진짜 귀족의 인장이 확실했다.
애초에 평민의 인장을 위조하기도 쉽지 않은 판국이다.
작위 귀족의 인장 위조는 아예 불가능했다.
“그대는 지금 아무런 증거도 없이 타국의 작위 귀족을 체포하겠다고 했다. 거기다 저항하면 즉참하라는 명령까지 내렸지? 내 직접 외교부로 찾아가 이 일을 항의할 것이다.”
강현수의 말에 마이트어 왕국군의 지휘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그저 노예 상인과 연결되어 있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을 뿐이다.
노예 상인과 아예 연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난 그저 용돈 조금 받은 정도에 불과하다고.’
이 문제가 공론화되고 외교 문제로 비화되면?
‘날 지켜 줄 리가 없어.’
상부에서는 자신을 버릴 것이다.
‘고작 용돈 조금 챙겨 준 놈들을 위해 죽으라고?’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무슨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시리우스 남작님.”
“오해?”
“그렇습니다.”
“내가 봤을 때는 절대 오해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자네, 노예 상인들한테 뒷돈 받고 있는 거 아닌가?”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왕국군 소속과 정확한 직책을 말하게. 내 정식으로 항의를 넣을 것이니. 왕국군 지휘관이 범죄자와 손을 잡는 건 엄청난 중죄이지 않은가?”
“살려 주십시오! 전 그저 상부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을 뿐입니다!”
“그 상부가 누군데?”
강현수의 말에 마이트어 왕국의 지휘관은 자신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술술 불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아무 잘못도 없다.”
“그렇습니다.”
“알겠네. 그만 물러가게.”
“예, 남작님!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이트어 왕국군의 지휘관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물러갔다.
‘역시 귀족 신분이 좋기는 좋아.’
지금은 강현수의 소환수가 되어 버린 무란의 수호성 칼무스 공작이 명예 남작 작위를 권했을 때 굳이 거절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인 만큼 귀족 신분이 있으면 웬만한 일은 모두 프리 패스지.’
영지도 없고 의무를 짊어질 필요도 없는 명예 작위지만.
명예 작위를 가지고 있는 이도 엄연한 귀족이었다.
“계속 움직이자.”
방해꾼을 물리친 강현수가 인간 사냥꾼 척살을 선언했다.
“그런데 그냥 내버려 둘 거야?”
송하나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강현수에게 물었다.
“지금 당장은.”
“그럼 나중은 아니라는 말이네?”
“좀 더 조사를 한 후에 노예 상인들과 손잡은 귀족들 명단을 싹 풀어 버릴 거야.”
“왜 당장 하지 않는 거냐?”
투황이 불만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알려 봐야 꼬리만 잡을 뿐이야. 몸통을 잡으려면 좀 더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알았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조사를 잘할 수 있을까?”
투황은 무인이다.
정보 수집이나 염탐 같은 건 전혀 할 줄 몰랐다.
“걱정할 필요 없어. 그건 전문가한테 맡기면 되니까.”
암왕 세실리아.
그녀라면?
이 정도 정보로도 충분히 마이트어 왕국의 노예 상인 조직을 뿌리째 뽑아낼 수 있으리라.
* * *
“이런 망할!”
“설마 놈이 귀족이었을 줄이야!”
노예 상인들은 거금을 주고 구슬렸던 귀족에게 엄청난 폭언을 들었다.
그중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감히 타국의 귀족을 죽이라고 하다니, 네놈들이 나를 실각시키려고 작정을 한 거냐?
귀족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살해 의뢰를 했냐?
귀족 모독죄로 목이 날아가고 싶으냐?
그 외에도 정말 귀에 피가 날 정도로 험한 말들이 나왔다.
“쓸데없이 돈만 날렸어!”
“도대체 귀족이 왜 이따위 짓을 하는 거야!”
노예 상인들은 귀족에게 의뢰비로 줬던 돈을 위로금이라는 명목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오?”
“더 많은 돈을 주고 귀족들을 움직이는 게 어떻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자기 보신에 도가 튼 놈들이요. 차라리 마이트어 왕국의 귀족이었다면 작위로 깔아뭉개기라도 할 것인데, 타국의 귀족 아니오?”
“하면 어쩌자는 거요? 저놈들을 저대로 방치하겠소?”
이미 한철 장사를 반쯤 망쳤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3인조가 이제 인간 사냥꾼뿐만 아니라 노예시장까지 공격했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쫄딱 망할 수밖에 없소.”
“맞소. 어떻게든 그놈들을 제거해야 하오.”
노예 상인들은 절박했다.
이대로 저 3인조를 방치하면?
그간 벌어 놓은 돈이 있으니 쫄딱 망하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노예 상인 사업을 접어야 했다.
“한데 어떻게 제거한다는 말이오? 플레이어들을 동원할 수도 없고.”
고레벨 플레이어로 추정되는지라 선이 닿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동원해도 당할 확률이 높았다.
또 귀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절대 개입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맨티스길드 놈들에게 연락을 취해 보는 게 어떻겠소?”
“그 미친 살인귀 놈들에게 말이오?”
“어쨌든 그들도 우리의 귀중한 거래 상대 아니오.”
“그렇기는 하지만.”
“그놈들이라면 상대가 귀족이라면 오히려 좋아할 거요.”
“실력도 충분하지.”
“그놈들과는 그다지 상종하고 싶지 않은데.”
“방법이 없지 않소!”
“미친놈들은 미친놈들로 상대하는 게 맞는 방법이오.”
“좋소. 그럼 맨티스길드 놈들에게 연락을 해 봅시다.”
맨티스길드.
로크토 제국을 포함한 그 제후국들을 배경을 활동하는 초거대 길드.
하지만 국가에 정식으로 등록된 정상적인 길드가 아니었다.
맨티스길드는 머더러들로 이루어진 길드였다.
살육에 빠져 인간 사냥에 제대로 맛을 들인 살인마들의 길드.
그렇기에 노예 상인들도 웬만하면 깊게 연관되고 싶지 않아 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살육에 눈이 돌아간 미친놈들과 누가 깊게 연관되고 싶어 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같은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는.
맨티스길드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