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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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왕 (3)

‘성공이다.’

강현수가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터트렸다.

영혼의 계약서가 나왔다는 건.

세실리아가 강현수와 손을 잡을 마음을 먹었다는 뜻이다.

‘애초에 일방적인 종속은 무리였어.’

사생아라고는 하나 로크토 제국 황실의 직계.

섀도 가드를 자신의 수족으로 만든 수완가.

거기다 차기 아틀란티스 차원의 정보를 움켜쥐는 정보 조직의 수장.

송하나나 투황처럼 천천히 친분을 쌓아 포섭할 수도 없고 이반 야멜리코넨처럼 호구도 아니다.

그렇기에 걱정이 많았다.

혹시 손을 잡는 것 자체를 거부하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 성공했어.’

강현수와 손을 잡는 것은 세실리아에게도 큰 이득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한테도 엄청나게 큰 이득이지.’

또한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도 큰 이득이었다.

“다크 나이트는 저에게 어떤 지원을 해 줄 수 있죠?”

세실리아가 강현수에게 물었다.

“자금을 원하시면 돈을 드릴 것이고 무력을 원하시면 랭커 플레이어들을 지원해 드릴 겁니다.”

“돈과 무력이라. 그럼 저에게 10억 골드와 랭커 플레이어 열 명을 지원해 주실 수 있나요?”

국가를 대표하는 거대 길드라도 동원하기 힘든 자금과 전력이다.

하지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구오피를 독점 판매하는 황금 군주 사에마알이 아틀란티스 차원 전역에서 돈을 갈퀴째 긁어모으고 있다.

10억 골드는 엄청나게 큰돈이지만.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지.’

랭커 플레이어 열 명.

어지간한 거대 길드도 랭커 플레이어를 열 명까지 보유하긴 힘들었다.

그러나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소환수 열 기만 동원하면 끝이야.’

마룡 카라스 레이드 과정에서 3백 명이 넘는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 들을 소환수로 만들었기에.

랭커 플레이어 열 명이 아니라 백 명도 얼마든지 동원이 가능했다.

“의문이군요.”

“뭐가 말입니까?”

“그만한 자금력과 무력을 가진 집단이 어둠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세실리아의 진심으로 놀란 것 같았다.

“더 필요하신 것은 없습니까? 원하신다면 더 많은 자금과 랭커 플레이어도 지원이 가능합니다.”

강현수의 말에 세실리아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더 있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세실리아가 말끝을 흐렸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지원을 받으면?

그만큼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세상의 진리.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 당신의 것이 되어 주겠다고 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다크 나이트의 역량으로 자신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상대가 주는 만큼만 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야.’

세실리아가 10억 골드와 열 명의 랭커 플레이어를 요청하기는 했지만.

그건 다크 나이트의 역량을 시험해 보기 위해 과하게 던진 것이었다.

‘무란 왕국 사태 때 다크 나이트 소속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 20명 정도가 전멸했다고 들었는데.’

그렇기에 세실리아는 다크 나이트의 세력이 상당히 약해졌다고 판단했다.

한데.

‘전혀 아니었어.’

어차피 마음먹은 거 조금 더 과감하게 불러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럼 백억 골드와 1백 명의 랭커 플레이어를 지원해 주실 수 있나요?”

세실리아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백억 골드의 자금이라면?

지금 기초 단계에 있는 정보 조직을 빠르게 완성시킬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귀족들을 포섭하고 세력을 키우는 데도 상당히 큰 도움이 된다.

거기다 1백 명의 랭커 플레이어는?

‘일국의 힘과 맞먹는다.’

일국의 군주조차 적당한 명분이 없다면 1백 명의 랭커를 동원할 수 없었다.

1백 명이라는 숫자는.

국가 존속의 위기에 처한 왕실이 왕국 소속 랭커와 거대 길드의 랭커 들을 모조리 긁어모아야 겨우 가능한 수치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엄청난 자금과 무력을.

황실의 청소부 섀도 가드를 장악했다고 하나.

고작 황실의 사생아에게 지원해 줄 정도라면.

‘얼마나 거대한 세력을 키웠다는 말인가?’

어쩌면 로크토 제국의 황실과 맞설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가능할까?’

불가능할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내 인생을 걸어 볼 만하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자신이 먼저 거두어 달라고 간청할 것이다.

전적으로 믿는 건 아니지만.

‘미래의 나는 실패자였다고 했으니까.’

결국 로크토 제국의 황제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로크토 제국을 멸망시킨 원흉이 되었다고 했다.

세실리아의 기준으로 그건.

실패자였다.

아니, 나라를 망하게 해 수억 명의 백성들을 고통 속에 죽어 가게 했으니.

‘단순한 실패자가 아니라 인류의 역적이겠지.’

사실 현재의 세실리아로서는.

자신이 로크토 제국을 멸망시킬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실감 나지 않았다.

“지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강현수의 시원한 대답에 세실리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 계약을 하죠.”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실리아가 영혼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러던 중.

“그 대가로 전 무엇을 드려야 하죠?”

세실리아가 강현수에게 물었다.

영혼의 계약서에 어떤 내용을 적느냐에 따라.

세실리아는 강현수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은데.’

이기적이라는 것은 알지만.

다크 나이트에 속하더라도.

단순한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따르는 하위 조직원이 아닌.

지시를 내리는 상위 간부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제가 내리는 직위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제약이 있나 보군요.”

강현수의 말에 세실리아는 다크 나이트라는 조직에서 내리는 직위 자체가 하나의 제약이자 페널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크 나이트라는 조직이 변질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것도 그 제약 때문이겠지.’

“그렇습니다. 계약서 작성을 그만두시겠습니까?”

강현수가 세실리아에게 물었다.

세실리아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도.

‘이런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어.’

앞으로 세실리아가 가야 할 길은 험한 가시밭길이다.

게다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알 수 없다.

‘미래는 변하는 거지.’

다크 나이트라는 조직 자체가 지금은 자신의 우군으로 다가왔지만.

만약 계약을 거부한다면?

‘적이 될 수도 있어.’

로크토 제국을 무너트리는 걸 막기 위해 자신의 반대편에 설 수도 있다.

‘나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다크 나이트라는 조직의 힘을 어렴풋이 알게 된 이상.

세실리아에게는 선택지가 사라져 버렸다.

로크토 제국이라는 사나운 맹수를 집어삼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데 여기에 자신이 절대 집어삼킬 수 없는 다크 나이트라는 사나운 맹수마저 적으로 돌변한다면.

갈가리 찢겨 죽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하죠. 단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그게 무엇입니까?”

“제 자유의지를 보장해 주세요.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살아가는 꼭두각시의 삶은 지금까지만으로 충분하거든요.”

“물론입니다.”

강현수의 대답에 세실리아는 그 내용을 영혼의 계약서에 추가했다.

잠시 후.

영혼의 계약서 작성이 끝났다.

“보시죠.”

세실리아가 영혼의 계약서를 강현수에게 건넸다.

강현수가 영혼의 계약서를 읽어 봤다.

계약 내용은 단순했다.

꼬거나 비틀 수 있는 내용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상이 없군요. 그럼 도장을 찍을까요?”

강현수의 말에 세실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툭!

세실리아가 손가락에 작은 상처를 내 피를 인주 삼아 지장을 찍었다.

툭!

강현수 역시 손가락에 작은 상처를 낸 후 피를 인주 삼아 지장을 찍었다.

세실리아와 강현수 두 사람 모두 지장을 찍자.

화아아악!

영혼의 계약서가 하나의 빛으로 화해 둘로 갈라졌다.

그리고 세실리아와 강현수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이제 계약 조건을 지켜 주시죠.”

세실리아의 요구에.

“조금 좁기는 하지만 가능하겠군요.”

사아아악!

강현수가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를 바탕으로 만든 소환수 1백 명을 소환했다.

“이게 무슨!”

강현수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인간의 형상으로 변해 가는 모습에 세실리아는 경악했다.

1백 명의 소환수는 모두 중대장과 소대장으로 임명된 상태.

거기다 완전무장을 한 상태이기에.

겉으로 드러난 신체 부위가 없었다.

‘중대장으로 임명된 50기는 네임드 플레이어고 소대장으로 임명된 50기는 랭커 플레이어를 바탕으로 만들었지.’

일인여단이 되며 중대장은 64기를 임명할 수 있고 소대장은 192기의 소환수를 임명할 수 있었다.

‘랭커를 바탕으로 만든 녀석들의 실력이 조금 떨어지지만.’

네임드 플레이어를 바탕으로 중대장에 임명한 녀석들이 커버를 해 줄 테니.

‘전체적인 실력은 랭커 플레이어 1백 명보다 더 높았으면 높았지 떨어지지는 않아.’

강현수로서는 영혼의 계약서 내용을 성실히 지킨 것이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군요. 인간이 아닌가요?”

세실리아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자세히 살펴봐도 괜찮을까요?”

세실리아의 물음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세실리아가 소환수들에게 다가갔다.

“얼핏 보면 인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인간이 아닌 게 티가 나는군요. 숨소리도 없고 심장도 뛰지 않습니다. 어찌 이런 존재가.”

소환수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감탄했다.

“이들이 랭커 플레이어와 대등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세실리아의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콰콰콰콰콰!

1백 기의 소환수가 동시에 마력을 끌어 올렸다.

“정말이었군요.”

1백 기의 소환수들이 뿜어내는 마력의 압박에 세실리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슈우우욱!

소환수들이 마력을 갈무리했다.

세실리아는 1백 기의 소환수들을 보고 놀랐지만.

강현수는 다른 점에 더 놀랐다.

‘아무도 안 왔어.’

분명 소환수들의 마력을 느꼈을 터인데.

세실리아의 수하들이 단 한 명도 진입하지 않았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인기척은 느껴지는데 말이야.’

이건 충성심이 없다기보다는.

‘그만큼 세실리아를 믿고 있는 거겠지.’

아마 세실리아가 외부에 연락을 취할 방법을 따로 가지고 있기도 할 터였다.

“받으시죠.”

강현수가 세실리아에게 한 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지구의 카드를 본떠 만든 것으로, 지구의 현금 인출 카드와 동일한 역할을 했다.

“1백억 골드가 들어 있는 체크 카드입니다.”

강현수의 말에 세실리아가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받았다.

“골드로드상단이 다크 나이트의 소유인가 보군요.”

세실리아는 강현수가 내민 카드가 골드로드상단이 발급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구오피 약초로 아틀란티스 전역에서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정말 미래를 꿰뚫고 있나 보군요.”

세실리아의 얼굴에 드러난 만족감이 커졌다.

단순히 강력한 소환수와 거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미래를 아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이다.

세실리아는 그 힘을 자신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전 계약 내용을 모두 지켰습니다.”

강현수의 말에 세실리아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세실리아가 계약 내용을 지킬 차례였다.

강현수가 대가를 지불한 이상 세실리아는 계약을 거부할 수 없었다.

“직위를 내려 주십시오, 주군.”

세실리아가 공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지휘관 임명.’

강현수가 세실리아를 분대장으로 임명했다.

[플레이어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잠시 망설이던 세실리아가 강현수를 한번 바라보고는 예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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