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와의 담판
‘엄청나네.’
내성에 입장하는 순간 근위 기사들이 사방에서 벌 떼처럼 달려들어 도왕을 완벽하게 포위했다.
근위 기사들의 수준이 범상치가 않았다.
전원이 거대 길드에서 몇 파티 존재하지 않는 고레벨 플레이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신급 칭호를 얻은 플레이어라도 살아 나가기 힘들겠는데.’
로크토 제국의 황제가 머무르는 내성을 호위하기 위한 인원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현수가 도왕의 시선으로 황궁 내부를 구경했다.
‘멀쩡하네.’
강현수는 회귀 전 로크토 제국의 황궁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왜?
‘로크토 제국이 마왕군에 패배해 이미 멸망한 후였으니까.’
확실히 폐허로 변했을 때와는 많은 게 달랐다.
잠시 후.
도왕은 근위 기사들에게 완벽하게 포위된 상태에서 대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황제 폐하, 스스로 다크 나이트라 주장하는 자를 데리고 왔사옵니다.”
“수고했네, 로하스 공작.”
로하스 공작의 보고에 로크토 제국의 황제가 도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황제는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이지.’
로크토 제국의 현 황제 로디우스 1세.
로디우스 1세는 일반인임에도 아무런 무리 없이 거대한 제국을 통솔하고 있었다.
‘뭐, 사실 황제 입장에서는 플레이어로 각성해 봤자 고생만 하는 거지.’
튜토리얼을 거치며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겨야 한다.
무사히 살아남아 플레이어가 되었다고 해도.
황제의 몸으로 사냥을 해서 레벨을 올려 봐야 별다른 쓸모가 없었다.
말 한마디로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들을 움직일 수 있는 황제에게 개인의 무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체력 스텟을 부지런히 찍어 건강해지는 게 이득의 전부였다.
‘뭐, 황제가 신급 칭호를 얻은 플레이어의 무력을 얻는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거대한 제국을 통솔하는 황제에게 느긋하게 사냥을 하며 레벨을 올릴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레벨 업에 한눈을 팔다가 정사를 소홀히 해 권력이 누수되면?
‘오히려 그게 더 큰 손해지.’
강현수가 황제를 살피는 사이.
황제도 강현수가 조종하는 도왕을 살폈다.
탐색의 시간이 끝나고.
“다크 나이트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
황제 로디우스 1세가 입을 열었다.
“근위 기사에게 로크토 제국의 멸망을 막을 방책을 알려 주러 왔다고 했다고 들었는데, 맞나?”
“맞습니다.”
“호오, 다크 나이트에 미래 예지 스킬을 가진 자가 있다고 하더니, 그자에게 들은 정보인가?”
“그렇습니다.”
“로크토 제국이 멸망한다라.”
황제 로디우스 1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든 국가는 그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지. 하지만 궁금하군. 도대체 언제 어떻게 로크토 제국이 멸망하는가?”
“지금으로부터 23년 후, 로크토 제국은 마왕군의 침공을 막아 내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마왕군이 엄청나게 강력한가 보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로크토 제국뿐입니다. 테라 왕국, 무란 왕국, 마이어트 왕국 등등의 제후국들은 큰 피해를 입기는 하지만 그 명맥을 유지합니다.”
“오직 로크토 제국만이 멸망한다?”
“그렇습니다.”
“그 이유가 무능한 황태자 때문인가?”
황제 로디우스 1세의 물음에 강현수는 적잖이 놀랐다.
‘알고 있었구나.’
하긴 현명한 황제라고 불리는 로디우스 1세가 외아들의 어리석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는 합니다.”
“호오, 그럼 다른 큰 이유는 뭔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에는 듣는 귀가 너무 많군요.”
근위 기사들은 황제의 명만을 따르는 존재.
하지만 그건 명분상일 뿐.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분명 오공작과 손을 잡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로하스 공작과 제1근위 기사단만 남기고 모두 물러가라.”
황제 로디우스 1세의 말에 근위 기사들 중 몇몇이 앞으로 나섰다.
“황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저자가 어떤 무엄한 짓을 할지 모르옵니다.”
근위 기사단의 단장으로 보이는 이들이 반발했다.
“어허, 로하스 공작과 제1근위 기사단이 있는데 저자 혼자 무슨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러들 가라.”
황제 로디우스 1세가 재차 명령을 내리자.
대다수의 근위 기사들이 대전을 빠져나갔다.
“자, 그럼 이제 말해 보게.”
“사공작 오르페수스 공작이 마왕의 하수인입니다.”
강현수의 말에 대전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사공작 오르페수스 공작이 마왕의 하수인이다?”
“예.”
“물증이 있는가?”
“없습니다.”
“황태자의 무능과 오르페우스 공작의 배신이라. 그럼 또 다른 이유는 뭔가?”
황제 로디우스 1세의 말에 강현수가 도왕의 입을 빌려 차분하게 국가 간 공간 이동 게이트 사용 불가로 인한 기동성 저하와 사냥터 통제의 부당함을 나열했다.
“문제가 꽤 많기는 하군.”
“이 문제들을 모두 해결한다면, 로크토 제국은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그대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가정하에서겠지.”
“그렇습니다.”
“다크 나이트는 왕족이나 귀족과 연이 없는 플레이어들이 모여 만든 조직인 모양이군.”
“맞습니다.”
강현수는 선선히 인정했다.
아틀란티스의 왕족이나 귀족이 끼어 있었다면?
왕과 귀족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조치들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다고는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손에 쥔 권력을 놓지 못하는 게 바로 권력자의 습성이지.’
하나 현명한 권력자라면?
국가라는 틀이 무너지면 자신이 어떻게든 지키려 했던 권력도 결국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진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다크 나이트가 무란 왕국에서 큰 활약을 했다는 건 짐도 알고 있다. 하나 그대들의 말을 모두 진실이라고 믿기는 힘들 구나.”
미래 예지라는 스킬이 없을 수도 있다.
설사 있다고 해도 그 미래를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조작했을 수도 있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국의 황제로 군림해 온 로디우스 1세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 정체도 밝히지 않고 황제와 귀족들의 권력을 제한해야 나라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수상한 놈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만무했다.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짐의 마음에 의심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냐?”
“그렇습니다.”
의심이라는 놈은 참으로 간사하다.
그렇기에 고래로부터 의심을 바탕으로 하는 이간계는 최고의 전략 중 하나였다.
의심의 씨앗을 퍼트릴 만한 말을 듣는 순간.
믿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해서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이 자리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물론입니다.”
도왕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소환수.
소환 해제를 하면 끝이다.
설사 소환 해제를 할 틈도 없이 소멸한다고 해도.
다시 부활시키면 그만이다.
“진심이구나.”
로디우스 1세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도왕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얼굴을 보여 줄 수 있겠느냐?”
“송구합니다.”
“거절이라. 참으로 오만하구나.”
로디우스 1세의 말에 로하스 공작을 포함한 근위 기사들의 눈에서 진한 노기가 피어올랐다.
감히 누구의 명을 거역한다는 말인가?
“하면 나에게 네 말이 진실이라는 증거를 보여 줄 수 있겠느냐? 기왕이면 그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정보가 좋겠구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재앙 하나를 알려 드리지요.”
사실 증거는 안 보여 줘도 그만이다.
황제는 강현수가 증거를 보여 주든 보여 주지 않든.
진실을 이야기하든 거짓을 이야기하든.
결국 사공작 오르페수스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애초에 황제를 만난 순간부터 강현수의 계획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황제가 내 말을 좀 더 비중 있게 들어 주는 게 더 좋겠지.’
미래 정보를 알려 준다고 해서 강현수에게 손해가 날 일은 없었다.
‘어차피 알려 주려고 했던 거니까.’
강현수의 말에 무게를 주기 위해 알려 달라고 하지 않더라도 꼭 알려 줄 정보 하나가 있었다.
“석 달 후 로크토 제국의 수도에 큰 폭우로 인한 홍수가 있을 겁니다.”
“폭우와 홍수?”
“예, 마라지아강이 범람해 수도를 덮칠 것이니, 지금부터 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족히 수만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생길 테니까요. 또한 황궁이 물에 잠겨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망신을 당하실 겁니다.”
강현수의 말에 로디우스 1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곳도 아니고 수도라니?
시골 마을이라면 모르겠지만 수도는 배수 시설이 완벽하게 설치되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건물 역시도 상당히 튼튼하게 지어져 있다.
결정적으로 마라지아강은 거대한 댐 세 개가 수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댐 세 개가 완공된 후 많은 폭우가 있었지만 홍수가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거기다 황궁까지 물에 잠긴다니?
“쉬이 믿기는 힘든 말이구나.”
“그래서 골랐습니다.”
“골랐다라.”
더 많은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일부러 마라지아강의 범람만 알려 주었다는 뜻이었다.
“좋다, 믿어 보마.”
“하면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짐의 신하가 될 생각은 없느냐? 나의 품으로 들어온다면 네 계획을 실행하기가 월등히 수월할 것이다.”
황제는 부귀영화를 논하지 않았다.
다크 나이트라는 조직이 그간의 대화로 물질적인 것에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기도 했고.
애초에 황제의 품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뜻과 동일했으니까.
“크나큰 영광이오나 거절하겠사옵니다.”
“음? 거절이라. 그렇다고 해도 큰 선물을 준 이를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받거라, 선물이다.”
황제가 도왕에게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들 중 하나를 빼서 건넸다.
근위 기사 중 하나가 반지를 받아 강현수의 지시를 받고 있는 도왕에게 건넸다.
반지를 받은 강현수가 정보를 확인했다.
‘통이 크네.’
무려 EX랭크 반지였다.
[건강의 반지 – EX랭크]
-체력 스텟을 3,000 증가시켜 줍니다.
-정신력 스텟을 3,000 증가시켜 줍니다.
-체력 스텟을 100% 증가시켜 줍니다.
-정신력 스텟을 100% 증가시켜 줍니다.
황제가 사용하던 것이라서 그런지 체력 스텟과 정신력 스텟에 모든 능력치가 ‘몰빵’되어 있었다.
‘뭐, 나쁘지 않지.’
옵션은 심플했지만.
효과는 상당히 좋았다.
특히 탱커 입장에서는?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꼭 사고 싶을 정도로 옵션이 좋았다.
“귀빈 대접을 해 줄 터이니, 황궁에 머무는 것은 어떠하냐?”
“홍수로 인한 피해를 수습했을 즘에 제가 직접 찾아오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사아아악!
도왕의 몸이 허공으로 녹아들듯 사라졌다.
“어찌 된 것인가?”
로디우스 1세가 로하스 공작에게 물었다.
“마력이 허공에 녹듯 사라졌사옵니다. 은신술이라고 하기보다는 공간 이동에 가깝사옵니다.”
“공간 이동이라? 그게 가능한 일인가?”
황궁 내부에서는 공간 이동 스킬 발동이 불가능하다.
촘촘한 마력 역장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오나, 실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인지라.”
“하면 다크 나이트라는 자들이 갑자기 짐의 침소로 찾아올 수도 있겠구나.”
“경계를 강화하고 방책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하라. 그리고 위치 추적은?”
“아무런 반응이 없사옵니다.”
황제가 하사한 반지에는 위치 추적 스킬이 내장되어 있었다.
그 범위도 상당히 넓었다.
한데 반응이 없다니?
“하면 그 짧은 시간에 수도를 벗어났다는 말인가?”
황제의 표정이 굳어졌다.
공간 이동 스킬은 발동 범위가 짧다.
한데 수도를 벗어나다니.
마력 역장이 펼쳐져 있는 곳에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하고 그 범위조차도 상식을 뛰어넘는다.
“역시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다크 나이트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라.”
“예, 황제 폐하.”
지시를 내린 로디우스 1세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다크 나이트라.’
믿어야 하는가, 믿지 말아야 하는가?
믿는다면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그날 밤.
황제는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