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식 (3)
드라칸과 드래고니안을 정확히 1백 마리 사냥해 소환수로 만들었다.
그러자 더 이상 드라칸과 드래고니안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마룡 카라스만 남은 건가?’
그럴 확률이 높았다.
‘슬슬 철수해야겠네.’
마음 같아서는 마룡 카라스가 나오자마자 잡아서 소환수로 만들어 두고두고 예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강하지.’
강현수가 미리 나선 덕분에 용종 몬스터로 이루어진 군대는 모두 전멸했다.
하나 수하라고 할 수 있는 용종 몬스터가 없더라도 마룡 카라스는 강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비교적 손쉽게 상대가 가능하겠지.’
회귀 전 무란 왕국은 마룡 카라스가 이끄는 용종 몬스터 군단의 침공에 로크토 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에 도움을 요청했다.
국가 간의 장거리 공간 이동 게이트 사용 불가 정책으로 인해 피해가 커졌지만.
어쨌든 비교적 빠르게 다수의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들이 소집되기는 했다.
‘문제는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들이 마룡 카라스에게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는 거지.’
마룡 카라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족히 10만은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용종 몬스터 군단의 벽을 뚫어야 했다.
‘족히 1백만에 가까운 병력이 증발하고 모여든 네임드 플레이어 13명과 랭커 2백 명이 희생된 후에야 마룡 카라스에게 접근할 수 있었지.’
그 후에 벌어진 마룡 카라스와의 접전에서 네임드 플레이어의 여덟 명과 랭커 1백 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굳이 따지자면 마룡 카라스를 사냥하며 입은 피해보다 용종 몬스터 군단과 싸우느라 입은 피해가 더 큰 셈이었다.
‘거느리고 있는 용종 몬스터 군단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마룡 카라스는 휘하의 용종 몬스터 군단을 고기 방패로 사용했다.
‘끔찍했지.’
마룡 카라스는 용종 몬스터 군단을 전방에 놓고 자신은 후방에서 강력한 공격 스킬을 펑펑 사용했다.
가끔 전방에 나오기도 했는데,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들이 달려들면 용종 몬스터들을 이용해 적당히 치고 빠지며 자신의 안위를 챙겼다.
지휘관으로서는 최악의 행동이었지만.
‘용종 몬스터들은 마룡 카라스를 절대적으로 따른다.’
인간 군대의 지휘관이 그런 짓을 했다면 경질당하거나 반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하나 용종 몬스터로 이루어진 군대에는 그럴 일이 없었다.
‘이번에는 그런 식으로 싸우기 힘들 거다.’
상중하위 용종 몬스터는 차원 게이트를 통해 추가로 쏟아 낼 수 있겠지만.
‘최상위 용종은 다르지.’
강현수가 1백 마리를 제거해 소환수로 만들었다.
마룡 카라스와 함께 나오는 놈들의 숫자는 많아 봐야 열 마리 아래.
그 정도로는 회귀 전과 같은 위용을 보이기 힘들었다.
“얼마 안 남았어! 다들 힘내자!”
“알았어!”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강현수의 외침에 송하나와 투황이 눈을 번뜩이며 검과 주먹을 휘둘렀다.
‘참 좋은 사냥터이기는 하지.’
고레벨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 결과 한번
로 돌아갔음에도 현재 강현수의 레벨은 500레벨을 넘어섰다.
‘잘하면 600레벨까지 가능하겠네.’
스킬 강화의 쿨타임이 7일이라는 게 참 아쉬웠다.
송하나와 투황의 경우 강현수보다 몬스터를 잡는 속도가 느렸다.
2천 마리에 가까운 소환수를 동원하는 강현수와 자기 몸뚱이로 직접 몬스터를 때려잡아야 하는 송하나, 투황의 레벨 업 속도가 같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수의 용종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기에 600레벨은 무난히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질 수 없지.’
강현수도 열심히 용종 몬스터들을 잡으며 광렙을 했다.
쿠우웅!
그때 차원 게이트 너머로 칠흑빛 광택이 도는 거대한 용의 앞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를 이어 날카로운 뿔이 달린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와 앞발만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차원 게이트가 꽉 차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모습을 드러냈던 상위 용종 몬스터들이 어린아이로 보일 정도의 엄청난 크기였다.
‘마룡 카라스.’
강현수가 전력을 다해 전장을 이탈했다.
이제는 정말 철수할 때였다.
‘하지만 갈 때 가더라도.’
첫 만남이니만큼 가벼운 인사 정도는 해 주는 게 예의였다.
-총공격.
강현수가 육성이 아니라 의지로 송하나와 투황를 비롯한 모든 소환수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화르르륵!
송하나는 마지막 남은 마력을 모두 쥐어짜서 강력한 화염구를 날렸고.
“하압!”
투황은 마력을 가득 머금은 주먹을 휘둘러 황금빛 오러를 날렸다.
꽈르르르릉!
천둥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뇌전을 가득 머금은 도왕의 오러가 날아갔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인간형 소환수들 역시 최고의 공격 스킬을 난사했다.
-콰콰콰콰콰!
용종 몬스터형 소환수 들의 경우 가장 강력한 무기인 브레스를 뿜어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막 차원 게이트를 빠져나온 마룡 카라스의 몸이 화염, 뇌전, 오러, 브레스를 비롯한 온갖 공격 스킬로 뒤덮였다.
-콰라라라라!
분노한 마룡 카라스가 성난 포효와 함께 입을 쩍 하고 벌렸다.
그와 동시에 상상을 초월하는 아득한 마력이 느껴졌다.
모인 마력이 마룡 카라스의 입을 타고 뿜어져 나왔다.
콰콰콰콰콰콰!
모든 것을 파괴하는 마룡의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사아아아악!
마룡 카라스를 공격했던 모든 적들이.
허공으로 녹아들듯 사라져 버렸다.
꽈아아아아아앙!
마룡 카라스가 전력을 다해 뿜어낸 브레스가 애꿎은 대지를 강타했다.
크르르르!
브레스 공격을 내뿜었던 마룡 카라스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토해 냈다.
-쥐새끼 같은 놈들.
어떤 방법을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때 주변을 살피던 마룡 카라스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없었다.
선발대로 가서 정렬하고 있어야 할 자신의 병사들이.
-도대체 어째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오직 자신뿐.
-설마 방금 그놈들이!
확실했다.
그놈들이 자신의 부하들을 전멸시켰다.
그러고 보니 적들 중 용종 몬스터가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던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용종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마룡 카라스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한데 무슨 수를 쓴 것인지 그놈들이 자신을 향해 브레스를 뿜어냈다.
물론 뭔가 다르기는 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언데드?
자신의 수하들을 죽인 후 언데드로 만든 것인가?
그렇다고 치기에는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언데드라면 네크로맨서가 만드는 것인데.
마족과 계약해 힘을 얻은 네크로맨서라면 자신에게 대항할 수가 없었다.
왜?
마룡 카라스는 드래곤이자 마족인 존재.
그것도 무려 작위를 지닌 고위 마족이었다.
변수가 발생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
마룡 카라스의 머릿속에 다른 마족들의 얼굴이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배신자가 있다.
그 경우를 제외하면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인간들이 자신의 침공 계획을 눈치채고 선공을 취했다.
인간이 자신의 침공 정보를 미리 알 수는 없으니 배신자가 정보를 알려 줬다는 결론밖에 내려지지 않았다.
마룡 카라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그렇게밖에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크르르르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먼저 차원 게이트를 통과한 수많은 상중하위 용종.
그놈들을 지휘하라고 보낸 최상위 용종.
자신의 수하인 용종 몬스터들이.
싹 다 죽어 버렸다.
사실 정확히 따지자면 총지휘관인 마룡 카라스의 책임이 가장 컸다.
가장 강한 그가 먼저 차원 게이트를 통과했다면?
이런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룡 카라스는 자신이 먼저 나서지 않고 수하인 용종 몬스터들을 먼저 보냈다.
그것도 약한 순서대로.
하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차원 게이트는 불안정하다.
아틀란티스 차원을 보호하는 가이아 시스템을 강제로 뚫고 들어오는 것이기에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처음 통과하는 이들은 차원의 미아가 될 확률이 높았다.
특히 가진 힘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 확률이 올라간다.
오만한 마룡 카라스가 수하 용종 몬스터들을 위해 차원 게이트를 처음으로 통과하는 위험을 감수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불안정한 차원 게이트라도 시간이 흐르면 점점 안정화가 된다.
마룡 카라스는 차원 게이트의 안정이 끝난 후 넘어왔다.
사실 가장 좋은 건 안정화가 끝난 후에 모든 병력이 넘어가는 것이지만.
병력이 워낙 많았기에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준비한 병력의 절반도 보내지 못하고 차원 게이트가 닫힐 수도 있었으니까.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다시 돌아가면 마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배신자들의 싹을 뽑을 것이다.
문제는 당장은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
쿠웅! 쿠웅!
마룡 카라스가 분노를 뿜어내는 와중에도 차원 게이트는 계속해서 용종 몬스터들을 뿜어냈다.
-어쩔 수 없지.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후발대로 오는 병력이라도 긁어모아 인간들의 국가를 침공해 새로운 차원 게이트를 오픈할 수 있는 힘을 모아야 했다.
* * *
‘도대체 언제 온다는 거야?’
부카쿠 백작의 얼굴이 난감함으로 물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의 경고에 따라 비상소집령을 내렸다.
성벽을 보수하고 전쟁 비축 물량을 쌓은 것도 모자라 경계도 강화했다.
어디 그뿐인가?
무란 왕실에 정식으로 지원 요청까지 했다.
지원 병력으로 온 무란 왕실 소속 플레이어들과 거대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진작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는데.
나타난다는 적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설마 내가 낚인 건가?’
네임드 플레이어인 부카쿠 백작은 상대의 실력을 보고 그 말을 믿었다.
한데 지금 대도시 바란에는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는커녕 고블린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장기간 지속된 준비 태세에 지친 병사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원병으로 온 무란 왕실 소속 플레이어들과 소집되어 온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도 불만이 잔뜩 쌓여 은근히 부카쿠 백작을 돌려 까고 있었다.
정체도 모르는 자의 말을 왜 믿냐?
그런 자에게 당할 정도면 서부의 맹호라는 칭호를 내려놔야 한다.
호인족이 무슨 겁이 그렇게 많냐? 혹시 토인족 아니냐?
저 정도면 내가 도전해서 서부의 맹호라는 칭호를 빼앗겠다.
우리 몸값이 얼만데 계속 여기 묶여 있어야 하냐?
사냥을 못 하니까 좀이 쑤셔 죽겠다.
비상소집령 해제하고 사냥하다가 일 터지면 오면 그만 아니냐?
정말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는 거 맞냐?
부카쿠 백작 면전에 대고 그렇게 말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기들끼리 수군거린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청각이 예민한 수인족의 특성을 뻔히 알면서도 저렇게 자기들끼리 떠는 건.
부카쿠 백작에게 대놓고 들으라고 하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으드득!
절로 이가 갈렸다.
‘어쩔 수 없다.’
이미 저질러 버렸으니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차라리 잘되었어.’
그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그저 자신이 망신당하고 끝나면 될 일이다.
반대로 그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도시 바란이 피로 뒤덮이겠지.’
부카쿠 백작은 딱 3일 정도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 후에도 잠잠하다면?
비상소집을 해제하고 무란 왕실에서 보내 준 지원군도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망신살이 제대로 뻗치겠군.’
앞으로 귀찮은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크아아아아앙!
감히 측정하기조차 힘든 강대한 마력이 담긴 포효가 부카쿠 백작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도대체 어떤 몬스터가?’
그렇게 생각하고 포효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부카쿠 백작의 눈에.
칠흑빛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거대한 마룡의 모습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