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74화 (74/365)

환영식

“커억!”

부카쿠 백작이 입에서 붉은 피를 내뿜으며 힘없이 뒤로 밀려 났다.

“버릇이 없군. 내 말을 듣든 말든 그건 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피해를 보는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이니.”

그 말을 끝으로 정체불명의 존재가 허공으로 녹아 버리듯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부카쿠 백작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누구인가?

서부의 맹호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네임드 플레이어다.

그런 자신이 선공을 가했음에도 상대의 반격에 내부가 진탕될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끝까지 싸웠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없었기에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전신의 근육을 폭발시키며 모든 마력을 끌어올려 전력으로 오러에 휩싸인 검을 휘둘렀다.

‘팔 하나 정도 베어 내서 전투 불능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오만이었다.

‘오히려 내가 당했을 수도 있어.’

반격을 가하는 속도.

무기에 실려 있던 힘.

전신에 뿜어져 나오는 마력.

파괴적인 오러.

그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오히려.

‘날 봐준 걸 수도 있어.’

자신보다 한 수 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누구지?’

저런 실력을 가진 이라면.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리가 없다.

네임드 플레이어인 자신을 꺾을 수 있는 이는 같은 네임드 플레이어밖에 없다.

그것도 왕이나 황 같은 거창한 칭호를 가진 인물일 확률이 높았다.

‘중화길드의 도왕이 회색빛 오러를 사용한다고 듣기는 했는데.’

오러가 어떤 빛을 내뿜느냐는 익힌 스킬에 따라 결정되기에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도왕은 죽었는데?’

죽은 자가 살아 움직일 리는 없으니 다른 인물이리라.

‘도대체 어떤 조직이라는 말인가?’

미래 예지라는 믿기 힘든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를 보유한 것도 모자라.

자신을 압도하는 실력자를 고작 전령으로 사용했다.

특히 마지막에 자신의 눈앞에서 은신 스킬을 사용해 허공으로 녹아들듯 사라지는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적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적이라면 이런 정보를 줄 리가 없다.

‘보고를 올려야겠어.’

이건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부카쿠 백작이 수련장을 빠져나가 왕실로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성공이네.’

대도시 바란에 비상소집령이 떨어졌다.

급히 성벽을 보수하고 전투 병력을 배치하는 걸 보니 도왕을 보내면서까지 경고한 게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뭐, 저렇게 해도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회귀 전보다 피해가 줄어들 건 확실했다.

“어떻게 됐어?”

투황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성공했어.”

“정말? 와! 다행이다!”

근심 가득했던 투황의 표정이 환해졌다.

축 늘어져 있던 토끼 귀도 기운을 차렸는지 허공으로 뻣뻣하게 솟아올랐다.

“미리 대비하면 막을 수 있겠지?”

“그건 확신할 수 없지만,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는 있겠지.”

차원 게이트는 수시로 열린다.

하지만 이번에 열릴 차원 게이트는 그 규모가 달랐다.

“우리가 잘하면 막을 확률이 조금 더 올라겠지?”

투황의 말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각개격파였다.

차원 게이트에서 나온 용종 몬스터들을 나오는 족족 사냥하면?

‘회귀 전처럼 참담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거야.’

문제는 마룡 카라스.

‘그놈이 나오면 무조건 도망쳐야 해.’

현재 강현수 파티의 전력으로 절대 잡을 수 없는 괴물이었다.

‘언제쯤 열리려나?’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 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오늘도 꽝인가?’

강현수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파지지직!

허공이 일그러지며.

거대한 차원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릉!

낮은 으르렁거림과 함께.

쿠우웅! 쿠우웅! 쿠우웅!

묵직한 발소리가 대지를 진동시켰다.

“왔다.”

강현수의 말에 끝나기도 전에 송하나와 투황이 전투준비를 했다.

중위 용종인 드래곤 터틀을 시작으로 하위 용종인 리자드맨까지 온갖 종류의 용종 몬스터들이 차원 게이트에서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수가 족히 1천은 넘어 보였다.

“가자.”

강현수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송하나와 투황이 그 뒤를 따랐고.

두두두두!

1,980기에 달하는 소환수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얼음왕의 목걸이를 지키는 20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소환수를 총동원한 것이다.

크롸롸롸롸!

붉은빛 등껍질을 가진 드래곤 터틀 한 마리가 노성을 토해 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이놈이 어딜!”

투황이 앞으로 달려 나가 주먹을 내질렀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드래곤 터틀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화르르륵!

파지지직!

송하나가 화염과 뇌전을 내뿜으며.

서걱! 서걱!

용종 몬스터들을 베어 넘겼다.

‘대단해.’

강현수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저 둘을 500레벨대 플레이어라고 생각할 것인가?

최소 랭커.

높게 치면 네임드 플레이어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강현수가 탐식의 검을 뽑아 들고 용종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용종 몬스터들은 나오는 족족 강현수, 송하나, 투황의 경험치로 전환되었다.

소환수들 역시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특히 도왕, 화염의 기사, 검귀, 일살권, 마도기사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거기다 카발 1~7호와 중화 1~2호 역시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소화했다.

‘무난하네.’

강현수의 레벨이 미친 듯이 상승했다.

아이템과 스킬북도 꽤 랭크가 높았다.

대부분이 C랭크 이상이었고 드물기는 하지만 B랭크나 A랭크도 나왔다.

용종 몬스터들은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며 당당하게 차원 게이트를 빠져나온 것에 비해 너무도 허무하게 죽어 나갔다.

사실 차원 게이트를 빠져나온 용종 몬스터들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것과 달리 엄청나게 거대한 차원 게이트이기는 하지만.

한 번에 통과할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다.

더군다나 용종 몬스터들 덩치가 좀 큰가?

많아 봐야 한 번에 천여 마리 정도밖에 차원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었다.

한데 차원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자신들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숫자의 적들이 포위 진형을 갖추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맹공을 퍼부었다.

거기다 강현수, 송하나, 투황, 도왕, 화염의 기사, 검귀, 일살권, 마도기사, 카발 1~7호, 중화 1~2호 같은 강자들이 최선두에서 동료들을 짚단 베듯 베어 버린다.

어디 그뿐인가?

뒤에서 후발대인 용종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기에 먼저 진입한 선발대 중하위 용종 몬스터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앞으로 진군할 수밖에 없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아틀란티스 차원에 진입했던 중하위 용종 몬스터들은.

너무도 불리한 전황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다 선보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 나갔다.

그때였다.

파지지직!

차원 게이트를 통해 상위 용종 몬스터인 드레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릉!

쿠웅!

날개 없는 드래곤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압도적인 덩치를 가진 드레이크는 여태까지 나왔던 용종 몬스터와는 그 격이 달랐다.

카아아악!

그 뒤를 이어 와이번이 무리를 지어 쏟아져 나왔고.

쉬이익! 쉬이익!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는 바실리스크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상위 용종들이 쏟아져 나오는구나.’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냈던 중하위 용종들을 압도하는 전투력을 지닌 개체들이 대거 등장한 이상.

‘쉽지 않겠어.’

방금 전처럼 일방적인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강현수의 입가에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와이번을 소환수로 만들어서 타고 날아다니면 기동성이 올라가겠어. 드레이크랑 바실리스크도 지상전을 치를 때 탱크처럼 쓰면 딱이겠고.’

그동안 등장했던 용종들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아 소환수로 만들기 애매했다.

그나마 드래곤 터틀 정도가 쓸 만했는데.

방어력만 높지 기동성도 떨어지고 공격력이 너무 약해서 활용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소멸한 소환수가 있음에도 새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다.

그 결과 현재 소환수의 숫자는 1,500마리 정도로, 5백 마리 정도가 소멸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드러낸 용종들은 달랐다.

와이번은 기동성이 뛰어났고.

드레이크는 움직이는 작은 성처럼 거대했으며.

바실리스크는 강력한 맹독을 뿜어냈다.

거기다 세 용종 모두 브레스 사용이 가능했다.

‘특히 바실리스크의 석화 브레스는 스킬 저항력이 웬만큼 높지 않으면 무조건 걸리지.’

질은 낮은데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적들에게 제격이었다.

‘네놈들을 기다렸다.’

강현수가 소환수의 숫자가 줄어들었음에도 새로 만들거나 소멸한 소환수를 부활시키지 않은 이유는?

바로 저놈들을 새로운 소환수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럼 가 볼까.’

타악!

강현수가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뱀피릭 오러를 끌어 올렸다.

캬아아아악!

하늘로 날아오르던 와이번 무리는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강현수를 발견하고는 입을 쩍 하고 벌렸다.

화르르륵!

와이번 무리가 일제히 강현수에게 화염 브레스를 발사했다.

휘익!

강현수가 뱀피릭 오러에 휩싸인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사아아악!

와이번 무리가 뿜어낸 화염 브레스가 허공에서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화염 브레스를 구성하고 있던 마력을 뱀피릭 오러가 흡수해 버린 것이다.

와이번 한 마리가 강현수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며 덤벼들었다.

서걱!

하지만 뱀피릭 오러를 두른 강현수의 검에 그대로 다리가 잘려 나갔다.

콰직!

강현수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머리를 꿰뚫어 버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강현수는 검을 휘둘러 와이번 무리를 무자비하게 사냥했다.

끼이이익!

동료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가자 와이번 무리가 기이한 비명을 지르며 강현수와 거리를 벌렸다.

만만한 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늘 높이 몸을 피하려는 것이다.

‘하늘로 도망치게 내버려 둘 것 같으냐.’

강현수가 차원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상위 용종 중 와이번을 가장 첫 번째로 노린 것은 바로 하늘로 도망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대 구성.”

강현수의 외침과 동시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소환수 와이번 아홉 마리가 탄생했다.

‘지휘관 임명.’

와이번들을 소대장으로 임명했다.

‘연대 소환.’

그 후 다른 장소에서 싸우고 있던 소환수 아홉 기를 소환했다.

“타라!”

강현수의 지시에 소환된 중화 1~2호와 카발 1~7호가 소환수 와이번들에 탑승했다.

“처리해.”

“충!”

캬악!

중화 1~2호와 카발 1~7호가 와이번에 탑승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와이번은 초기에 처리하지 않으면 곤란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이점이다.

와이번의 방어력이 상위 용종치고는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공격력이 뛰어났다.

특히 하늘을 날아다니며 브레스를 뿜어내거나 급강하해서 발톱이나 부리로 공격하면?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고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저놈들한테 맡겨 놓고.’

강현수의 시선이 드레이크와 바실리스크에게로 향했다.

송하나, 투황, 도왕, 화염의 기사, 검귀, 일살권, 마도기사가 열심히 선전하고 있지만.

‘머릿수가 많아.’

차원 게이트는 더 이상 드래곤 터틀이나 리자드맨 같은 중하위 용종을 토해 내지 않았다.

와이번, 드레이크, 바실리스크 같은 상위 용종만 끊임없이 뱉어 냈다.

‘최대한 안정적으로 제거해야 해.’

그래야 앞으로 등장할 최상위 용종인 드라칸과 드래고니안을 상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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